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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는 플레이어-298화 (298/381)

298화

드워프에게 마룡 허물을 맡기고 이 틀이 지났다.

그간 강현과 김혜림은 개인정비와 가벼운 나들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 다.

당연히 로산 저지 작전 쪽도 꼼꼼 히 챙겼다.

소형 선박에 베니스 남작가의 문양 을 새긴 돛을 달았고,배 안에는 함 정형 보구들을 발 디딜 틈 없이 설 치해 두었다.

‘갑판에 오르면 넝쿨 포박 함정이 먼저 발동하게 설치해 둬야겠군. 넝 쿨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끈끈이 함정이 발동하도록 배치해 두 자. 넝쿨에 묶인 채로 끈끈이 범벅 이 되면 어지간해선 못 벗어나겠 지.’

기껏해야 C~B급밖에 안 되는 보 구들이지만 보구끼리 연계되도록 설 치해 두었기에 어지간해선 쉽게 벗 어나지 못할 거다.

강현은 선실에도 꼼꼼하게 함정형 보구를 설치해 놓곤 까치발로 선박 에서 빠져나왔다.

“작업은 이걸로 끝. 덫이 완성되었 으니 여우가 발을 디디길 기다리기 만 하면 되겠군.”

“대기하고 있다가 여우가 덫에 걸 리면 확 덮치는 거죠?”

“일부러 갑판에는 설치하지 않았 어. 항해 시작하고 나서 얼마간은 발동하지 않을 거야. 망망대해 한복 판에 가서야 발동하겠지.”

“하긴 바닷속이면 우리가 훨씬 유 리 하죠.”

강현에게 무적 능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로산을 제거할 수 있다는 보 장은 없다.

여태껏 지역장들은 강현에게 덤벼 들었기에 맞상대하기만 하면 되었 다.

허나 로산은 다르다.

로산의 목적은 웨이브 봉인석을 제 국에 푸는 것이지, 강현을 죽이는 게 아니다.

로산이 도망일변도로 나온다면 무 조건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긴 어렵 다.

그렇다면 퇴로를 끊어 버려야 한 다.

바다 위에선 도망칠 길이 없으니 배에 태워 보내기만 하면 강현의 승 리다.

무엇보다 강현에겐 해신의 축복이, 김혜림에겐 켈피가 있어서 수중전에 서 단연코 앞선다고 선언할 수 있 다.

“몇 시야?”

“12시 조금 넘었어요.”

“점심시간이군.”

“저택으로 가서 먹을 거예요?”

“시장도 가깝겠다 시장에 가서 먹 자고. 저번에 먹은 태국 음식 괜찮 던데 거기나 갈까.”

“태국계 이세계인이 차린 식당 말 하는 거죠? 거기 음식 괜찮더라고 요. 나중에 한번 만들어 볼까 싶어 요.”

“이젠 에스닉 요리까지 하려고?”

“후후,배워 둬서 나쁠 건 없죠. 나중에 늙어서 은퇴하면 우리 식당 이나 차릴까요? 글로벌 푸드 레스토 랑 어때요? 잘나갈 것 같은데.”

“그때쯤 되면 나도 식칼을 쥘 수 있겠지.”

“저기요? 식당 차리자고 했지 독극 물 판매점을 차리자고 한 게 아니거든요? 아! 빙백검 냉동고에 넣어 두 면 음식 상할 일은 없겠다. 그쵸?”

“하늘 계단으로 공중에서 식사하는 기분 내는 이색 식당으로 만들어도 나쁘지 않겠군.”

“계단 유지하는데 마나 엄청 드는 거 알죠? 이윤 남은 거 마나포션 값으로 다 빠져나갈 걸요?”

강현과 김혜림은 실없는 대화를 나 누며 부둣가로 올라섰다.

식사하러 가려던 차에 리넬슨 자작 가의 병사가 허겁지겁 달려와선 두 사람을 불렀다.

“손님 분들! 자작님이 급하게 찾으 십시다. 당장 저택으로 가시지요.”

“자작님이 날 찾으셨나?”

“네,시급하게 알릴 사항이 있다 하십니다.”

“그럼 가 봐야겠군. 빠른 길로 안 내해.”

요 이틀간 강현 쪽에서 필요한 게 있을 때나 얘기를 나눈 게 고작이었 다.

고로 리넬슨 자작 쪽에서 먼저 강 현을 찾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강현과 김혜림은 무슨 일인가 싶어 자작가 저택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 다.

?

“사이런스가 쥬리안으로 오고 있다 는 정보를 입수했네.”

리넬슨 자작을 찾아가자마자 들은 첫 마디였다.

자작은 매우 심각한 사태라는 양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각하게 말하는 와중에 미안하지 만 사이런스가 누구인지 기억이 가 물가물하다.

강현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머릿속 도서관에서 사이런스란 자의 정보를 끄집어냈다.

“드리안 공작가의 마나마스터인 사 이런스를 말하는 겁니까?”

“달리 누가 있겠나. 자네가 도착한 직후에 사이런스가 온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네. 혹시 자네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의견을 물으려고 부른 걸세.”

“소문의 진위는 확인하셨습니까?”

“사람을 파견했더니 남부전선을 따 라 야영 흔적이 남아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네. 북쪽 산맥을 경유해서 이 리로 들어올 모양인 것 같네. 숫자 는 대여섯쯤 되어 보이고.”

전선에 나서야 할 귀하디귀한 마나 마스터가 전선을 이탈하여 소수 정 예로 움직이고 있다.

쥬리안에 정박해 있는 선박에 타격 을 주려고 이탈한 걸지도 모른다. 허나 은밀하게 행해야 하는 작전치 곤 너무 쉽게 위치를 들켰다.

작위적인 냄새가 난다.

“일부러 정보를 홀렸군요.”

“왜 그리 생각하나?”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작전에서 야영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는 건 일 부러 위치를 노출하기 위함입니다. 더군다나 사이런스가 있던 남부전선 에서 쥬리안까지 일직선으로 이동하 면 쥬리안 남쪽 평원을 통해서 들어 와야 정상입니다. 그걸 일부러 우회 해서 북쪽 산기슭을 통해 오는 건 비효율적이지요.”

“일부러 정보를 흘린다는 건 노리 는 바가 있다는 거군. 양동작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겠어. 화공에 대비해서 선박 간의 간격도 벌려 두고 항구 경비를 강화해야겠군.”

“선박을 노외는 게 아닙니다.”

“쥬리안에서 소수정예로 시도할 만 한 작전이라곤 선박을 노리는 것밖 에 없네. 그것도 아니라면 날 암살 하려는 거겠지.”

“바로 그겁니다. 뒤통수에 마나마 스터를 놔두고 출정할 순 없는 노릇 이지요. 제가 리넬슨 자작님이라면 반드시 사이런스를 제거하고 출정하 고 싶을 겁니다.”

리넬슨 자작이 해상전의 달인이긴 하나 지상전에서의 싸움에도 능한 건 아니었다.

옛날 옛적 지상전에선 전술이 7, 무력이 3의 비중을 차지했다면,웨이브와 이세계인 등장 이후에는 무 력이 7, 전술이 3으로 뒤바뀌었다. 사이런스가 쥬리안 북녘산에 자리 잡고만 있어도 리넬슨 자작은 압박 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이런스를 무시하고 출정하자니 쥬리안이 쑥대밭이 될 거고,산속으 로 들어가자니 적의 게릴라전에 휘 말려 목이 달아날 가능성이 높다.

리넬슨 자작은 강현의 조언에서 사 이런스의 목적을 유추해 냈다.

“목적은 선박이 아니라 나였군.”

“현재로선 그리 봐야겠지요.”

“단순하지만 성가신 작전이구먼.

사이런스 그 작자도 평균 이상은 하 는군. 알겠네,사이런스 대책은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그리고 데이낙 스 백작님으로부터 서신이 왔네. 읽 어 보게나.”

데이낙스 백작이 사람을 풀어 로산 의 흔적을 추적해 주기로 한 이후로 시간이 꽤 흘렀다.

언제쯤 소식이 오나 했는데 이제야 도착한 셈이었다.

강현이 리넬슨 자작에게 신세를 지 고 있다는 걸 전해 듣곤 자작가로 서신을 넣은 모양이었다.

강현은 리넬슨 자작으로부터 봉인 의 씰이 붙어 있는 서신 한 장을 건네받았다.

데이낙스 백작에게 받은 개봉의 썰 로 봉인의 썰을 풀어 서신 내용을 확인했다.

급하게 적었는지 글씨체가 지렁이 탱고 추듯 구불구불하기 짝이 없었 다.

악필을 떠듬떠듬 살펴 읽어 보니 대강 두 가지 사실을 간추려 낼 수 있었다.

1. 한 달 전,데릭로우스를 탄 자 들이 로드의 협곡에서 빠져나와 크 레인 북쪽 산맥으로 들어갔다.

2. 슈앙이 공왕 전하께 최강현의 존재를 알렸다. 공왕 전하께서 왕궁 의회를 소집하여 최강현을 위한 지 원군을 파견한다고 했으니 염두에는 두고 있어 둬라. 혹시 모르니 이 사실이 외부에 흘러갔을 수도 있다.

1번은 강현이 원했던 정보였다.

데릭로우스를 탄 자들이란 로산 일 행을 뜻한다.

한 달 전에 로드의 협곡에서 나왔 으니,역산하면 이틀 안에 쥬리안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2번 사실은 매우 달갑지 않은 정 보였다.

거봐라. 괜히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한 게 아니다.

정보란 건 징검다리를 한두 번 거 칠수록 보안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슈앙에서 공왕에게로,공왕에서 왕 궁 의회에게로.

그 과정에서 정보가 유출되었다고 봐야 한다.

사이런스가 쥬리안으로 방향을 튼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작님을 노리는 게 아니라 절 노 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네는 조직을 치기 위해 움직이 고 있잖나. 설마 공작파와 조직이 손을 잡은 건 아니겠지? 조직을 지 원하기 위해 사이런스를 파견했다면 그 또한 앞뒤가 맞아떨어지네만.”

“공작파와 조직이 손을 잡았다면 쥬리안이 아니라 남부전선으로 직행 했겠지요. 두 세력이 손을 잡은 건 아닙니다. 조직은 배를 타기 위해서, 사이런스는 절 제거하기 위해서 오는 겁니다.”

“이해가 안 되는군. 공작파의 사이 런스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네 를 제거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뭔 가? 여태까진 데이낙스 백작님의 체 면을 생각해서 참고 있었네만 자네 가 대체 누구길래 공작파에서 저리 과감하게 나오는 겐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된 마 당에 리넬슨 자작에게만 정체를 숨 겨 봐야 아무 의미 없었다.

로산도 쥬리안에 거의 다 도착한데 다 산중에서 이동 중이라 강현의 소 식을 전해 듣진 못할 거다.

다만 로산이 산에서 나와 도심에 들어서면 어떤 형태로든 강현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될 게 분명하다.

‘슈앙이 바보 같은 짓을 해 준 덕 분에 선박이랑 함정형 보구가 다 쓸 모없게 되었군. 작전 변경이 필요하 겠어.’

작전 변경을 위해선 리넬슨 자작과 의 원활한 소통이 필요했다.

강현은 줄곧 깊게 눌러 쓰고 있던 로브 후드 앞자락을 뒤로 젖혔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지요,최강현입 니다.”

초면인지라 누군가 싶어 긴가민가 하던 리넬슨 자작이었으나,최강현 이름 석 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강현이라면 제국에서 연합기사 단을 이끌었던! 갑자기 행방불명되어서……. 근데 어째서 여기에? 이, 이것이 정녕 실화인가?”

본인의 입을 통해 듣고도 믿기지가 않는지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연합기사단 소속으로 제국의 내로 라하는 황족과 귀족들을 내몰았던 유명인을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하도 행방불명된 지 오래되어 이젠 거의 전설에 가까운 인물로 회자되 던 자다.

그런 자를 요 며칠 동안 곁에 두 고 있었으면서도 몰랐다는 게 얼떨 떨할 따름이었다.

강현 앞에선 귀족 작위마저 무색하 다.

리넬슨 자작은 저도 모르게 경직되

었다.

“이거 참……. 내가 용을 앞에 두 고도 용인지 몰랐구나.”

“여태까지처럼 대해 주십시오. 그 것보다 작전 변경이 필요합니다. 조 직의 인물들이 산을 벗어나면 독자 적인 정보망을 통해서 제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아낼 겁니다. 그 전에 북녘산에서 결판을 내야 합니다.”

“그거야 맞는 말이네만,험한 산이 라 찾으려면 상당한 병력을 투입해 야 되네. 너무 요란을 떨면 조직 쪽 에서도 미리 알아차릴 것 같네만.”

“수색대를 투입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군요.”

“무슨 말인가?”

강현이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을 지 으며 검지를 동그랗게 말았다.

옆에 서 있던 김혜림은 금세 강현 의 버릇에서 그의 생각을 알아차렸 다.

‘또 상대방 농락하는 계책 떠올렸 나 보네.’

아니나 다를까,강현이 말았던 검 지를 튕기며 경쾌하게 검갑을 두드 렸다.

티잉!

“저희가 조직 놈들을 찾지 않아도 사이런스가 발바닥에 땀나도록 대신 뛰어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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