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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는 플레이어-289화 (289/381)

289화

크레인 공국으로 말할 것 같으면, 베니스 백작가가 무너지면서 자연스 럽게 개혁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 다.

베니스 백작가가 무너진 데엔 여러 원인이 있었는데,그중 가장 큰 원 인을 꼽자면 김혜림이라 할 수 있었 다.

수 년 전,김혜림은 카니발로 간 강현을 찾기 위해 그가 거쳐 갔던 베니스 백작가에 방문했었다. 당시에도 베니스 백작가의 실세는 여전히 나탈리아였다.

강현이 나탈리아에게 매혹을 걸면

서 그녀를 이용했고,매혹이 풀린 후에 나탈리아는 강현을 철전지 원 수처럼 여기게 되었다.

안 그래도 농락당해서 불같이 화가 나 있는 나탈리아에게 강현의 위치 를 묻고 있으니 정상적인 답변이 돌 아올 리 만무했다.

돌아온 것은 김혜림을 향한 사살 명령이었고,그 이후 상황은 따로 말할 것도 없었다.

김혜림은 베니스 백작가를 쑥대밭 으로 만들었으며,나탈리아를 인질 삼아 공국의 추격대를 뿌리친 끝에 카니발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김혜림에 의해 박살이 난 베니스 백작가는 힘을 회복하지 못하고 급격히 쇠락해 갔다.

더하여 크레인 공국 왕궁 내에서 궐기가 일어나 외척들을 몰아내고 공왕이 교체되었다.

그 당시에 궐기를 주도한 게 데이 낙스 남작이었다.

“자네가 보기엔 내 각오가 너무 물 러 보였나?”

“남의 손에 의해 나라가 바뀌길 바 라는 심보부터가 문제지요.”

“본인이 원하는 건 본인 스스로 이 루란 거군.”

데이낙스 남작이 강현에게 협력하 던 시절에 둘이서 나눴던 대화다.

변화는 자신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는 걸 깨달은 데이낙스 남작은 선왕 의 동생이었던 왕족을 찾아갔다. 선왕의 동생은 왕위에 흥미가 없어 스스로 계승권을 포기하고 은거생활 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데이낙스 남작은 왕족에게 궐기하 여 이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제 안했다.

조카에게서 왕위를 빼앗는 일만큼 은 할 수 없다며 한사코 거부하던 그에게 데이낙스 남작이 이리 말했 다.

“왕이 뭐 그리 대수입니까? 나라가 망하면 왕이고 뭐고 무슨 의미가 있 단 말입니까? 정치라면 지긋지긋하다고 하셨지요. 왕이란 게 원래 그 런 자리입니다. 지긋지긋하지 않은 왕? 그런 왕이 왕이라고 생각하십니 까? 두통을 느끼지 않는 왕은 폭군 아니면 꼭두각시뿐입니다. 일어서소 서. 크레인 공국을 재건할 어진 왕 의 자격이 있는 자는 당신밖에 없습 니다.”

그 말에 왕족이 마음을 바꾸어 데 이낙스 남작과 뜻을 함께하기로 했 다.

데이낙스 남작을 중심으로 궐기 세 력을 모아 베니스 백작과 외척을 몰 아내고 새 정권을 구축했다.

데이낙스 남작은 혁명 성공의 1등 공신으로 인정받아 백작으로 작위가 승격되었으며 크레인 공국의 주축이 되었다.

원하는 바를 이루었으나 데이낙스 백작이 된 이후의 생활은 그리 녹록 치 않았다.

크레인 공국이 황제파를 지지한다 고 입장을 표명하자마자,공작파가 크레인 공국으로 병력을 보냈기 때 문이었다.

현재 크레인 공국 남부 지방에선, 크레인 군과 공작군이 격전을 벌이 고 있었다.

“로프르방의 상황은 어떻게 됐나?”

“쇼튼 자작이 2천의 병력을 이끌고 합류한 덕에 급한 불은 꼈답니다. 대신 브리튼 교 사제들이 폭우로 강이 불어난 탓에 제때 도착하지 못하 고 있다 합니다.”

“되는 일이 없군. 뒤늦은 가을 홍 수라니.”

“사제들 없이도 저지선이 무너지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겠지요. 왕궁에 서 새로 보낸 소식은 없습니까?”

“병사들을 징집 중인데 워낙 갑작 스럽게 전쟁이 시작된 탓에 일처리 가 느린 것 같더군. 한동안 지금 배 치된 병력만으로 버텨야 하네.”

“어떻게든 겨울까지만 버텨 보죠. 겨울이 되면 적들은 보급로가 끊기 고 병력 충원도 힘들 겁니다. 겨울 의 구름다리가 얼마나 미끄러운지 아시지 않습니까?”

1만의 공작군이 크레인 공국에 들 어온 이후로 그들을 막기 위해 많은 병력을 투입했다.

그러나 크레인 군은 연전연패 중이 었다.

가장 큰 이유론 마나마스터의 머릿 수 차이를 꼽을 수 있었다.

강현 사태,김혜림 사태,궐기 사 건.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크레인 공국 에 남은 마나마스터는 한 명도 남지 않았다.

그나마 뒤늦게 공국 내에서 마나마 스터 한 명이 탄생하긴 했는데 그 한 명마저도 전투 중에 사망했다. 그를 죽인 상대는 악명 높은 흑마법사 엘딘이었다.

죽은 자의 시체로 언데드 군단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진 자였다.

데이낙스 백작은 엘딘이 있기에 버 티기 작전이 무의미함을 피력했다.

“지금이야 보급로를 확보하려고 국 지전을 벌이고 있다만 엘딘이 본격 적으로 진격해 오면 어떻게 막을 건 가? 이곳 슈러프론 협곡이 뚫리면 놈은 강을 거슬러 공국 수도까지 진 격할 걸세. 겨울이 아니라,가을이 가기도 전에 왕궁이 점령당할 수도 있단 말일세.”

“브리튼 교의 사제들이 도착하면 백마법으로 어떻게든 될 겁니다.”

“자네는 이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

든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말하는 건 가?”

“무책임하게 들리실지도 모르겠지 만 정말로 방법이 없습니다. 브리튼 교 사제들도 백마법으로 막을 수 있 을지,없을지 모르겠다고 하니 최악 의 경우에는……

“왕궁을 버리고 전하를 피신시켜야 한다?”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입니다.”

회의용 대형 천막 안에 있던 십수 명의 귀족과 기사들이 동시에 한숨 을 내쉬었다.

크레인 공국 남부 지방의 귀족들이 공작파에 넘어가 반기를 든 것이 뼈 아프게 작용하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남부 지방에서 가장 얕보이던 자가 갑자기 나라의 중추에 우뚝 섰으니 시샘할 수밖에.

거기에 엘딘이 적절하게 남부 지방 의 귀족들을 찾아가 전후에 적절한 포상을 약속하면서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남부 지방의 별거 아닌 몰락 가문 의 남작도 궐기를 일으켰는데 나라 고 못 일으킬쏘냐……! 하는 심보에 서 비롯된 일이었다.

데이낙스 백작은 땅이 꺼져라 한숨 을 쉬며 회의를 파했다.

“브리튼 교 사제들의 백마법에 기 대를 거는 수밖에 없군. 최대한 브리튼 교 사제들이 빨리 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해 두게. 오늘 회의는 이 걸로 마무리하도록 하지.”

회의가 끝나면서 귀족은 귀족용 막 사로,기사는 기사용 막사로 이동했 다.

귀족용 막사로 복귀한 데이낙스 백 작은 개인실에 들어서며 담배 파이 프를 입에 물었다.

이놈의 담배는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가 없다.

커다란 포부를 안고 궐기를 일으켜 이 나라를 바꾸고자 했지만 내전의 여파에 휘말려 벌써 몰락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데이낙스 백작을 두고 ‘여태까지 잘만 돌아가던 나라를 괜 히 들쑤셔 망조가 들게 한 얼간이’ 라 부른다.

데이낙스 백작은 파이프에 담뱃가 루를 채워 넣으며 한시도 쉬지 않고 해결책 모색에 열중했다.

“차라리 선수를 쳐서 일부러 협곡 의 길을 열어 주고 빌로스 제국으로 진격을 해? 아냐,천공섬에도 공작 군이 포진해 있어. 공왕 전하를 피 신시킨다고 치면……

“고민이 많으신가 봅니다.”

“시국이 시국인데 걱정이 많을 수 밖에 없……. 응?”

성냥에 불을 붙이려던 데이낙스 백 작이 뒤늦게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방에 들어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 무도 없었다.

그럼 방금 등 뒤에서 날아든 질문 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적군? 아군? 그것도 아니면 제3 자?

데이낙스 백작은 침착하게 성냥에 불을 붙였다.

작은 성냥이 어두운 방 안을 일부 나마 환하게 밝혔다.

더불어 데이낙스 백작의 시선이 책 상 위에 놓인 거울로 향했다.

성냥 불빛이 닿자 거울에 자신의 뒤편이 비쳤다.

데이낙스 백작은 거울에 비친 자의

얼굴을 보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허어? 어? 어?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나?”

몇 년 전에 한 번 본 게 전부인 사람이다.

다시 말해 단 한 번 봤음에도 불 구하고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잊을 수가 없지.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부터 저온의 공기가 감도는 차가운 인상, 무뚝뚝한 말투까지.

데이낙스 백작은 넋 놓고 강현을 바라보다가 성냥불이 손에 닿아 호 들갑을 떨었다.

“앗 뜻뜨! 후우후우,어후 뜨거워 라. 최강현,정말 최강현 본인 맞는 가?”

“오랜만인데도 기억하고 계시는군 요.”

“내 어찌 자네를 잊겠나. 허……. 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 겠구먼. 대체 여태까지 뭘 하면서 지냈나? 에르델 황녀님은 자네가 복 귀한 걸 알고 계시나? 혹시 에르델 황녀님이 보내서 왔나?”

“진정하십시오.”

“자네가 사라지고 나서 제국 전역 이 들썩거렸다네. 자네를 찾겠다고 나선 김혜림 경도 감감무소식이라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습니다. 미 리 당부 드리는데 다른 사람에겐 제 가 돌아왔다고 알리지 마십시오.”

실종되었던 강현이 무사함을 알곤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데이 낙스 백작이었다.

헌데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말 에 표정을 달리하며 진지함을 갖췄 다.

“에르델 황녀님은 자네가 돌아왔다 는 걸 모르나?”

“모릅니다.”

“에르델 황녀님께도 알리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겐가?”

“자세히는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빌 로스 제국,나아가 가이아 대륙의 안위가 걸린 일이라는 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가이아 대륙의 안위라……. 갑자 기 대형 스케일로 나와 버리니 내 모자란 머리로는 따라가기 힘들구 먼. 이전에 말했던 조직이라는 곳과 관련이 있는 건가?”

“이전에 말씀드린 조직은 실제 조 직의 꼬리 부분에 불과했습니다. 디 벨롭보다 아득히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이 가이아 대륙에서 모종의 계 락을 펼치려 하니 사전에 저지해야 합니다.”

“혹시 자네의 복귀 소식이 알려지 면 그들이 숨어 버릴까 봐 정체를 숨겨 달라는 건가?”

“네.”

“디벨롭보다 아득히 윗선인데도 자 네를 두려워하나? 자네는 항상 자네 의 적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구먼.”

“어쩌다 보니 그리되더군요.”

“자네가 뭔가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건 알겠네. 그렇지만 너무 갑작스러 운 얘기라서 그런지 와 닿? 지가 않는 군. 조금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지 않겠나? 자네가 어떻게 지냈는 지,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조금 정도는 얘기해 줄 수 있지 않 은가.”

다짜고짜 찾아와서 아무 얘기도 안 해 주고 협조해 달라고 하면 따를 사람이 몇이나 될까.

최소한의 설명은 해 줘야 협조하는 입장에서도 마음 편히 협조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협조를 얻으려면 어느 정도는 설명 을 해 줘야 하기에 흔쾌히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카니발 같은 상위차원 이야기는 말 해 봐야 이해도 못할뿐더러 사설만 길어지기에 생략했다.

강현은 데이낙스 백작이 이해하기 쉽게 현 상황을 세 줄 요약하여 알 려 주었다.

1. 커뮤니티는 디벨롭의 조직의 상 부이며,그들이 웨이브 봉인석을 가 이아 대륙에 풀려고 한다.

2. 봉인석은 크레인 공국에서 빌로

스 제국으로 운반하는 중이다.

3. 데이낙스 백작이 지닌 공국 내 의 영향력으로 그들을 찾아 줬으면 한다.

설명을 들은 데이낙스 백작은 그제 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상황은 이해했네. 로드의 협곡에 서 나온 자들이라면 목격 정보가 아 주 적진 않을 테지.”

“바로 움직여주실수 있겠습니 까?”

“마음 같아선 자네의 일을 우선시 하고 싶네만 상황이 녹록치 않아서 말일세. 자네는 모를 테지. 자네가 떠난 후에 공작파에서 마나마스터급 의 인물 3명을 새로이 거머쥐었다네.”

“혜림이에게 들어 알고 있습니다.”

“혜림 양이랑 만났나? 아? ,그래 서 둘 다 감감무소식이었던 거구먼. 아무튼 엘딘이란 흑마법사가 언제 이곳 협곡을 공격해 올지 몰라서 자 리를 뜰 수가 없네. 마음 같아선 자 네의 힘을 빌리고 싶지만,정체가 알려지면 안 된다고 하니 그건 무리 일 테고.”

강현에게 협조하려면 상당수의 병 력을 수색작전으로 돌려야 하는데 한 명이 아쉬운 마당인지라 쉽지가 않다.

허나 수백 개의 웨이브 봉인석이 풀어졌을 경우의 파급력을 생각하면 강현에게 협조하긴 해야 한다.

데이낙스 백작은 쉽사리 결정을 내 리지 못했다.

데이낙스 백작의 고민거리를 두고 강현은 매우 쉽게 해결책을 제시했 다.

“요는 엘딘만 정리하면 된다는 거 군요.”

“자네가 힘을 보태 준다면 더할 나 위 없이 든든하다만 정체가 알려지 면 안 되지 않나? 엘딘도 마나마스 터급일세. 자네의 실력은 인정하지 만 엘딘을 조용히 제압하는 건 무리 일 걸세.”

강현은 검지로 경쾌하게 검갑을 튕 기며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무리일지 아닐지는 기다려 보시면 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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