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가이아 대륙에 있어야 할 사람을 카니발에서 만날 줄이야.
하위차원에서 카니발로 올라오기 위해선 차원의 경계를 넘어야 한다. 차원의 경계는 전적으로 커뮤니티 가 관리하고 있다.
분명 커뮤니티의 차원 관리자를 통 해서 카니발 대륙에 넘어왔을 거다. 다만 어떤 경위로 넘어왔을지 짐작 조차 안 간다.
빅터가 카니발에 있다는 것도 놀랍 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 던전 레이드 선수로 뛰고 있다는 것 또한 놀람기 그지없었다.
빅터의 이름에 반응한 건 강현만이 아니었다.
김혜림도 뒤를 돌아보더니 혈영구 슬에 비친 빅터의 모습을 목격했다.
“어라? 빅터잖아요. 빅터 맞죠? 제 가 잘못 보고 있는 거 아니죠?”
“우리가 아는 그 빅터 맞아. 너 이 쪽으로 올 때 한창 내전 중이라 했 었지?”
“네,황제파랑 공작파랑 아주 박 터지게 싸우고 있었죠.”
“내전이 끝나면서 벤젠 기사단도 해체된 건가.”
“그럴 리가요. 1,2년 정도로 끝날 전쟁이 아니었는걸요. 억측을 하는 것보단 만나서 직접 확인하는 게 좋겠어요.”
사무실 문을 열던 세이아나가 갑자 기 멈춰 선 강현과 김혜림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 있어?”
“잠깐 아는 사람이 얼굴이 보여서 말이지.”
“그래? 가이아 대륙에서 지낼 때 알던 사람이야?”
“내가 맡고 있던 기사단 소속이었 어. 얼굴 못 본 지 꽤 됐는데 여기 서 보게 되는군.”
“인사 나눌 거면 나중에 보면 돼. 던전 레이스 끝나면 다들 여기로 돌 아오거든.”
“그러지. 근데 윤중 아저씨는 어디
있지?”
“그 아저씨? 아저씨는…… 아,마 침 저기 나오네.”
세이아나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혈 영구슬 중 하나를 지목했다.
지목한 혈영구슬 주위에는 던전 레 이스 관전용 혈영구슬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빅터가 치른 던전 레이스는 세미 레이스에 불과했고,사람이 많이 몰 려 있는 쪽은 메인 레이스였다. 사람이 많이 몰려 있다는 건 가장 인기가 많은 공략대란 의미이기도 했다.
세이아나가 지목한 혈영구슬에는 김윤중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것도 어떤 중년 여성과 훈훈하게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말이다. 김혜림은 혈영구슬에 비치는 김윤 중의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뿜고 말았다.
“푸을! 아버지? 정말? 저 여자는 누구? 뭐야? 엥?”
당황한 탓에 혀가 꼬여 말을 제대 로 잇지 못하는 김혜림이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혈영구슬에 비치는 건 예전의 어두 침침하고 덥수룩한 느낌의 김윤중이 아니었다.
길이도 안 맞추고 대충대충 잘라서 뻗쳐 있던 머리는 깔끔하게 정돈하 여 옆으로 넘겼고,덥수룩했던 턱수염은 닻 모양으로 다듬었으며,허를 하게 헤졌던 옷은 핏을 살린 회색 체크무늬 여행복과 바바리풍의 로브 차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삶의 고단함에 찌든 중년 남성에서 댄디한 아저씨가 되었다.
확실히 본바탕은 나쁘지 않은 편이 었지만,꾸미고 나니 중년미가 아주 철철 넘쳤다.
남자는 나이가 드는 게 아니라 멋 이 든다 했던가.
김혜림은 역변한 아비의 모습이 익 숙지 않아 혼란스러워했다.
“우리 아버지가 원래 꾸미던 사람 이었나? 분명 경호원 시절에 저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냐,그땐 수염 같은 거 안 길렀었어. 게다가 여 자까지? 누구지?”
세이아나는 허둥지둥대는 김혜림이 귀여운 나머지 호쾌하게 어깨동무를 걸었다.
“후후,어떻게 된 건지 가르쳐 줄 까?”
“나중에 직접 물어볼게요.”
“그것도 나쁘지 않지. 들어가자. 오 너 녀석만 오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 가자.”
오너의 사무실로 들어간 강현 일행 은 냉기 스킬로 차갑게 식힌 호사스 런 과일 주스를 마시며 오너를 기다 렸다.
W분쯤 기다리자 말끔하게 차려입
은 20대 중반의 젊은 동양인이 안 으로 들어왔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동글동글한 얼 굴형을 가진 호감형 인상의 사내였 다.
사내는 태평하게 앉아 있는 세이아 나를 보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 었다.
“하아,누님. 저 VIP접대 중인데 꼭 부르셔야 했습니까?”
“VIP접대는 개뿔. 돈 많이 번 놈한 테 돈 회수하려고 일대일 도박하는 게 접대야? 헛소리 말고 인사나 해. 여기가 최강현,저기 재는 김혜림, 여기 나랑 닮은 애가 루나야.”
“안녕하십니까. 황재욱입니다.”
“최강현입니다.”
“어휴,말씀 편하게 하십시오,형 님.”
“초면에 바로 말 놓는 건 삼가는 편이라서.”
“평소에 형님 소문 무지막지하게 들었습니다. 만나 뵙게 된 것만으로 도 영광인 걸요. 편하게 대해 주시 는 게 저도 대하기 편할 것 같습니 다.”
“그럼 그러지.”
“누님. 저도 앉아도 되겠습니까?”
“앉아. 그래야 얘기를 시작하든가, 말든가 하지.”
“네,감사합니다.”
황재욱은 빈자리를 찾아 다소곳이
앉았다.
자기 사무실에서 허락 받고 착석하 는 그의 모습에서 세이아나와 황재 욱의 상하관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올 사람도 다 왔겠다 세이아나가 운을 띄우며 본론을 꺼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커뮤니 티에서 하위차원 정복계획을 실행했 어.”
“저…… 누님? 저번에도 말씀드렸 지만 여길 피난처로 쓰시는 건 괜찮 은데 커뮤니티 심기 건드리는 일에 선 빼 주셨으면 좋겠거든요?”
세이아나는 눈썹을 썰룩이며 황재 욱의 머리에 냅다 꿀밤을 먹였다.
따악!
“아욱! 아야야, 왜 때리고 그러십 니까?”
“야,너 이 도박장 공간 누구한테 제공 받았어?”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뭐?”
“당연히 누님 덕분이죠!”
“도박장 이만큼 키울 수 있었던 건
누구 덕이지?”
“누님 덕분입니다!”
“그럼 입 다물고 협력해.”
“하아,내 팔자야. 겨우 기 좀 펴
고 사나 싶더니 이게 웬 트러블이 람.”
“죽을래?”
세이아나가 재차 주먹을 쥐자 황재
욱이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너무너무 돕고 싶습니다! 뭐든 시 켜만 주십시오!”
“하여간 꼭 주먹을 쥐어야 말을 들 어요. 한 번만 더 말 끊으면 스태프 로 얻어맞을 줄 알아.”
“아이고,그거만큼은 봐주십쇼. 명 색이 오너인데 몽둥이찜질 당하면 아랫것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말 끊지 말라고 했지?”
“합! 허가 떨어질 때까지 합죽이 하겠습니다.”
“하던 말 계속할게. 커뮤니티에서 정복계획이라고 이름을 붙이긴 했어 도 이건 명백히 사기행위야.”
세이아나는 아공간 목걸이에서 서
류 한 뭉치를 꺼내어 강현에게 넘겼 다.
“커뮤니티에서 입수한 회의록의 사 본이야. 20페이지 3번째 줄부터 자 세히 읽어 봐.”
서류를 넘겨 지정한 페이지에 이르 니 줄을 그어 놓은 문단이 있었다.
읽기 편하라고 세심하게 미리 표시 를 해 준 것이었다.
줄을 그은 부분의 내용은 이랬다.
[고로 인재 충당을 위해서 하위차 원 정복계획을 시행하기로 결정했으 며 그 개요는 다음과 같다.
1. 하위차원에 대량의 웨이브 봉인 석을 풀어 동시다발적으로 웨이브를 소환한다.
2. 다수의 웨이브 등장으로 하위차 원이 혼란에 빠졌을 때 커뮤니티의 8성급 쉘터 수준의 병력을 파견한 다.
3. 파견 병력은 영웅으로 추앙받을 때까지 웨이브 공략 혹은 지급된 소 멸석으로 웨이브를 제거한다.
4. 파견 병력의 명성이 신적인 영 역에 이르렸을 때 커뮤니티의 존재 를 밝혀 하위차원의 이세계인들을 선동 및 세뇌하여 카니발로 이끈다.
본 계획의 주 목표는 하위차원의 이세계인들에게 커뮤니티에 대한 존 경심을 심어서 이용하는 것이므로 철저히 영웅 연기를 할 자가 필요하다.
파견 리더로서 지역장급에 명령 을 충실히 이행하는 자가 적합할 터 이니 적임자를 선별하는 즉시 계획 을 실행한다.
첫 타깃으론 가이아 대륙의 빌로스 제국을 목표로 한다. 빌로스 제국을 제압하면 공국까지 그 여파가 미칠 터이며 마침 내전으 로 혼란을 겪고 있으니 계획을 실행 하기 좋을 것으로 판단된다.]
정복계획이라더니 총공세를 펼쳐 전쟁으로 하위차원을 점령하는 게 아니었다.
대량의 웨이브를 풀어 일부러 하위 차원에 혼란을 조장해 놓고,저희들 이 직접 병력을 파견하여 짜고 치는 식으로 영웅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사심을 빼고 판단하자면 굉장히 훌 륭한 계획이다.
힘으로 굴복시키려면 시간이 많이 드는 데다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 성이 높다.
인공적으로 영웅을 만들어 커뮤니 티를 신격화시킨 다음에 카니발로 이끌면 수많은 이들이 마음으로부터 커뮤니티를 따를 거다.
웨이브 봉인석이 대량으로 필요하 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적은 인원으 로도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이다. 강현은 김혜림에게도 서류를 읽게 하곤 계획 저지를 위한 방책을 논했 다.
“세이아나,웨이브 봉인석 운반책 에 대해 알아본다고 했었지? 운반책 이 곧 인공 영웅이 될 파견 리더라 고 보면 되나?”
“그 말대로야. 비용이 좀 들긴 했 는데 알아보니까 새로 지역장으로 선임된 로산이란 자더라고. 인도 출 신 이세계인에 대륙 남쪽에서 지부 장을 지냈다나 봐. 능력까진 알아내 지 못했어.”
“새로 선임된 자라면 제례미랑 비 숫한 수준이겠군.”
“너희 오면서 제례미랑 붙었었지? 어땠어?”
“고메즈 정도까진 아니더군.”
“그 미치광이는 논외로 쳐야지. 그
작자 없어졌다고 대륙 방방곡곡에서 난리 난 것만 봐도 알잖아?”
“로산이 가이아 대륙에 웨이브 봉 인석을 풀기 전에 놈을 쳐야겠군.”
“너희 기다리는 동안 로산은 벌써 가이아 대륙으로 내려갔어.”
“지금 우리가 차원의 경계로 향한 다 하더라도 늦겠군.”
“아직 늦은 건 아냐. 놈들의 목적 은 가이아 대륙에서도 빌로스 제국 에 집중적으로 웨이브 봉인석을 푸 는 거거든. 우리가 바로 빌로스 제 국에 가면 놈들보다 앞서서 진을 칠 수 있어.”
하위차원으로 내려가는 방법은 차 원의 경계를 통과하는 것뿐이라고 알고 있다.
강현은 세이아나의 말 속에서 다른 길이 존재한다는 뉘앙스를 느꼈다.
“바로 빌로스 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다른 곳 놔두고 일부러 언더그라 운드에 온 이유가 뭐겠어? 여기에 길이 있으니까 온 거지. 그치,재욱 아?”
진지한 얘기를 따라잡지 못해 머리 에서 김을 내뿜고 있던 황재욱이었 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 가만히 있 자.
그는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지목된 탓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저요? 뭐요? 왜요?”
“너 얘기 안 듣고 있었지? 이걸 그냥 확!”
“듣고 있었습니다. 듣고 있었고말 고요. 빌로스 제국으로 바로 가는 길 맞죠?”
“잘 찍었네. 연필 잘 굴려서 산 줄 알아.”
“누님은 왜 자꾸 절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까?”
“알면 뺀질거리지 말고 똑 부러지 게 움직여.”
황재욱은 더 이야기하다간 자기만 손해란 걸 알기에 급히 화제를 바꾸 었다.
“하던 얘기나 마저 하죠. 언더그라
운드에 있는 지하던전 중에서 하위 차원으로 바로 연결되는 차원의 경 계가 하나 있긴 합니다. 커뮤니티에 서도 모르는데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길이죠. 근데 저희 쪽에 있는 길은 내려갈 순 있어도 올라오는 기능은 없습니 다.”
“하위차원으로 내려가는 것만 가능 한 일방통행 도로란 거군.”
“비유하자면 그리되겠죠. 내려가는 위치까지 지정할 수 있어서 원하는 지역에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는 것처 럼 들린다만.”
“좋은 조건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
련이잖습니까. 통과하는데 한 사람 당 2억 CP가 듭니다.”
앞서 가이아 대륙으로 간 로산이란 자는 크레인 공국 북부에 있는 로드 의 협곡에 도착했을 거다.
크레인 공국 북부에서 빌로스 제국 까지 족히 몇 주는 걸린다.
반면 강현 일행은 바로 빌로스 제 국으로 갈 수 있다.
몇 주씩이나 걸리는 이동시간을 단 축한 셈이니 앞서 도착하여 작전을 짤 시간은 충분하다.
“한 사람당 2억 CP면 소수 정예로 내려가야겠군. 나와 김혜림,루나, 너. 이렇게 네 명이서 내려가지. 그 래도 8억 CP인가.”
“나한테 쉘터 판 돈이 있으니까 그 걸로 통행료 지불하면 돼.”
“CP라면 충분히 있어.”
CP7]- 모자라서 곤란할 일은 없다. 신화급 웨이브에서 얻은 35억 CP 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