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281화 (281/381)

281 화

관문을 모두 닫아 놓은 쉘터 안에 서 해일이 발생했다.

해일의 높이를 가늠컨대 어림잡아 도 7미터는 될 법했다.

어지간한 건물 3층 높이 수준이었 다.

길이 또한 8성급 쉘터의 중심부를 덮치고도 남을 만큼 기다랬다. 북쪽에서 시작된 해일은 보리 벌판 을 휩쓸며 시가지를 향해 밀려들어 왔다.

해일을 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 았다.

외벽과 내벽에서 소환하여 집결시

킨 10미터 거구의 거인 몬스터에 올라타면 해결될 일이다.

해일과 부딪쳤을 때의 충격은 엘레 멘탈 실드 수 속성으로 무효화시키 면 된다.

뭐 물에 잠겼을 때의 호흡곤란까지 는 해결하지 못하지만,수 속성 공 격에 의한 충격이나 동결 효과에는 면역이니 거인의 어깨에만 올라타면 해일을 피할 수 있을 거다.

제례미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급히 소리잔을 꺼내 긴급지시를 내렸다.

“월터에 남아 있는 전 조직원에게 전한다! 북쪽에서 해일이 몰려오고 있으니 가까운 거인 몬스터의 어깨 에 올라타라! 조류 동물화를 가지고 오기로 한 자들은 30초 내로 내가 있는 곳에 오고!”

시가지 곳곳에서 조직원들이 부산 하게 움직였다.

조직원들은 가까운 곳에 있는 재난 대피소로 향하는 피난민들처럼 앞다 투어 거인 몬스터의 손에 올라타 어 깨 위로 이동했다.

제례미는 거인 몬스터와 멀리 떨어 져 있어서 거인 몬스터의 어깨 위로 피난하는 건 무리였다.

때문에 말단 조직원들이 조류 동물 화를 들고 오길 애타게 기다렸다. 해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조급해 졌다.

“빨리! 빨리! 빨리! 이것들아 빨리

들고 오라고!”

해일이 시가지 어귀에 다다랐을 무 렵.

골목에서 말단 조직원들이 삼삼오 오 60인치짜리 거대 그림을 하나씩 짊어지고 왔다.

“지역장님! 가져왔습니다!”

“액자가 위로 향하도록 들어! 그림 부분이 위로 향하게 하라고 둔한 것 들아!”

다급한 나머지 말단 조직원들은 손 을 바들바들 떨면서 어렵사리 액자 앞면이 위로 향하게 들었다.

“위로 들었습니다! 지역장님! 시간 이 얼마 없습니다! 빨리 소환하셔야 합니다!”

“아가리 닥쳐라! 네놈들이 헛소리 를 지껄일 때마다 집중력이 흐트러 진단 말이다!”

제례미는 말단 조직원들을 다그치 며 아트 서번트를 발동했다.

사정거리 내에서 제례미가 소환할 수 있는 아트 서번트의 위치가 감지 되면서 시전 준비 단계에 들어섰다. 감지된 그림 중에서 당장 코앞에 있는 조류 동물화를 아트 몬스터로 구현화시 켰다.

액자에서 사람 몸집만 한 새 몬스 터가 튀어나와선 날개를 퍼덕였다. 새 몬스터 한 마리당 2? 3명은 족 히 탈 수 있을 듯했다.

쏴아아아아!

제례미는 살벌하기 짝이 없는 물소 리가 양쪽 귀를 때리기 시작하는 것 을 느끼며 부랴부랴 새 몬스터 위에 올라탔다.

그러곤 자신이 탄 새 몬스터에는 그 누구도 태우지 않고 혼자 먼저 공중을 향해 날아올랐다.

다른 조직원들이라고 다를 게 없었 다.

먼저 새 몬스터에 올라탄 자들은 다른 동료들이 태울 시간이 없다고 판단하고 저희들끼리만 먼저 날아올 탔다.

“올라가! 올라가라고! 눈이 없어? 해일 오는 거 안 보이냐고!”

“지금 안 날아오르면 우리도 같이

휘말려 버려! 살 사람은 살아야 할 거 아냐!”

“탑승 못한 사람은 어쩔 수 없어! 본인이 늦은 걸 탓하라고 해!”

새 몬스터에 올라타려고 준비하던 조직원들은 새 몬스터의 날갯짓에 따귀를 얻어맞으며 뒤로 밀려났다. 동시에 날아오르는 새 몬스터를 나 라 잃은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기분?

한 마디로 엿 같다.

아주 그냥 주먹만 한 큰 엿을 입 에 넣은 둣 어이가 없어 욕지거리조 차 안 나온다.

새 몬스터에 올라탄 자들은 허망한

눈으로 자신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전’ 동료들을 외면하며 공중으로 올라갔다.

제례미를 필두로 새 몬스터에 올라 탄 자들이 날아오르자마자 해일이 시가지를 덮쳤다.

과과과과과광!

위력적인 해일은 천둥과 같은 소리 를 낸다 했던가.

짠 내 나는 바닷물이 시가지를 휩 쓸며 건물 벽을 무너뜨리고 도로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제례미는 상공에서 시가지가 참담 한 모습으로 변하는 걸 지켜만 봐야 했다.

이를 두고 재앙이 아니면 뭐라 할

수 있을까.

불현듯 벳로의 말이 귓가에 맴돈 다.

강현을 태풍에 비유했던가.

그의 비유는 옳았다.

인간의 형태를 띤 재앙이란 게 실 존할 줄이야.

시가지에 배치해 둔 액자는 바닷물 에 휩쓸려 엉망이 되었고,각종 함 정 보구가 멀쩡히 제자리에 남아 있 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제례미가 본인 스스로의 안전을 위 해 조성한 예술의 요새는 역으로 그 를 가둔 감옥이 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퇴각 명령을 내리고 도 망갈까?

그럴 순 없다.

목숨을 부지한들 나중에 본부에 가 서 무슨 말을 하라는 건가.

지령을 무시하고 오기를 부리다가 ‘쉘터 하나를 말아먹었습니다’라고 보고하면 본부에서 ‘그래,살아 돌 아와서 다행이구나’ 하고 두 팔 벌 려 환영해 줄 줄 아는가.

지역장 직위 박탈은 말할 것도 없 고,목숨이라도 부지할까 의문이다. 맞서 싸우든,물러나든 궁지에 몰 리는 건 마찬가지라면 싸워야 한다.

내가 싸지른 오물이니 내가 치울 수밖에 없다.

제례미는 멀리서 빛의 날개를 펼쳐 접근해 오고 있는 강현을 목격하곤 재빨리 머리를 쥐어짰다.

'어떻게 해야 하지? 뭘 어떻게 하 면 놈을 쓰러뜨릴 수 있지? 놈의 공격은 내 실드를 상회하고,내 공 격은 놈의 실드를 뚫지 못했어. 놈 보다 앞서는 점이라면 머릿수밖에 없는데……

그러나 머릿수를 채워 줄 아트 몬 스터 소환용 액자는 물에 휩쓸려 캔 버스가 흐물흐물해지면서 그림이 망 가졌다.

그나마 있는 거라곤 시가지 길바닥 이나 무너지지 않은 벽에 남아 있는 그림이 전부였다.

대략 200점 남은 그림으로 강현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새 몬스터의 등 위에서 신경질적으 로 손톱을 깨물다 보니 깨진 손톱에 서 흘러나온 피가 입가를 타고 흘렀 다.

제례미는 간신히 한 가지 꾀를 떠 올리곤 소리잔에 입을 대며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지금부터 쉘터를 팔겠다. 스텟을 올려 아트 몬스터의 최대 소환수와 공격력을 강화할 테니 그에 맞춰 총 공세를 펼쳐라.”

*

강현은 드림윙으로,김혜림과 루나 는 니아에 올라타 쉘터를 횡단하는 중이었다.

쉘터 관문을 열기 위해선 쉘터 주 인을 쳐야 한다.

엔티티엔의 주인은 제례미이니 그 를 양단해야만 나갈 수 있다.

시가지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새 형태의 아트 몬스터들 중 하나에 제 레미가 올라타 있을 것으로 여겨진 다.

아래에선 해일에 휩쓸린 보리가 홈 뻑 젖어선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쓸려 나간 보리밭과 흙탕물 범벅이 된 시가지 어귀의 풍경만으로도 해 일 스킬의 위력을 실감하기엔 충분 했다.

“위력 하난 무시무시하군.”

김혜림도 루나가 만들어 낸 진풍경 을 감상하며 공감을 표했다.

“신화급 웨이브로 가장 혜택을 본 건 루나인 것 같은데요?”

“그만큼 후폭풍이 심하다는 게 문 제긴 하다만.”

니아의 등 위에선 루나가 새하얗게 불태운 것처럼 기진맥진해선 김혜림 의 등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신화급 웨이브 공략 직후,루나는 모비딕 스태프의 효과를 이용해 가 지고 있던 스킬 중 하나인 ‘윈드 스 톰’을 해일 스킬로 바꿨었다.

해일 스킬의 효과는 공격 스텟에 비례하여 거대한 해일을 소환하는 대신,사용 직후에 약 몇 분간 ‘쇠약 상태’에 빠지는 페널티가 존재했 다.

쇠약 상태에 빠지면 피로감 때문에 몸을 움직이기 힘들고,집중력이 흐 트러져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다. 체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쇠약 상태 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빠르다고 한 다.

실제로 해일 스킬을 시전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인지라,해일의 위력과 해일 스킬의 페널티를 보는 것도 처 음이었다.

루나처럼 작은 몸집의 소녀가 몸이 튼튼해 봤자 얼마나 튼튼하겠는가. 쇠약 상태에 빠진 루나는 영혼이 빠져나간 빈껍데기처럼 김혜림의 등에 얹히듯 기대어 있었다.

그를 본 강현은 해일 스킬의 활용 법을 한 마디로 일축했다.

“꼭 필요할 때만 시전하게 해야겠 군.”

“낙서투성이 도시는 둘째치고 보리 밭까지 휘말린 건 찍끔 아쉽네요. 카니발 보릿고개는 장난 아니라던 데.”

“그래서 북부 중간쯤에서 해일을 쓰게 한 거야. 쓸려 나간 보리밭 다 합쳐 봤자 전체 농경지 10분의 1도 안 돼.”

“후후.”

“왜 웃어?”

“시민들 배려해 준 거예요? 있는

듯 없는 듯 인정받지 않으려고 하는 그 배려가 좋다니까요.”

“해일의 사정거리를 늘리기 위해서 최대한 시가지에 가깝게 시전하라고 했을 뿐이야.”

“인정 받으려고 애쓰지 않는 점도 좋아요.”

“좋다 좋다 잘도 말하는군.”

“후후,매일한다고 해서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닌 건 알죠? 어쨌든 집중하죠. 신입 지역장이 뭔가 하려 는 것 같네요.”

“저쪽에서 할 수 있는 거라 해 봤 자 도망치는 거랑 죽기 살기로 덤비 는 것밖에 없겠지.”

제례미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은 한

정되어 있다.

도망을 치거나,죽기 살기로 덤비 거나.

어느 쪽이든 제례미에게 승산은 없 다.

그런데 예상 외로 제례미는 뒤를 생각하지 않는 과감한 모습을 선보 였다.

제례미가 눈을 감고 뭐라 중얼거리 나 싶더니 쉘터를 이루고 있던 벽이 무너져 내렸다.

와르르르!

쉘터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는 건 쉘터를 팔았다는 뜻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작자라도 월터를 팔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쉘터를 팔면 쉘터 구입가의 절반밖 에 못 받는다.

세이아나가 쉘터를 팔았을 때 33 억 CP를 받았다 했으니,제례미 또 한 33억 CP를 돌려받았을 터이다. 강현은 제례미의 의도를 단박에 파 악했다.

“33억 CP를 전부 스렛에 투자할 셈이군.”

“절대 해선 안 되는 행위라는 걸 알고서 한 걸까요?”

“글쎄. 한쪽에만 치우치다 보면 멍 청해지는 법이지.”

강현이 왜 제례미를 치려고 하는 가.

쉘터에 갇혔으니까 쉘터 주인을 처 리해서 관문을 열려는 것뿐이다. 까놓고 말해서 쉘터가 없는데 굳이 제례미를 칠 이유가 있긴 한가.

33억 CP로 다시 쉘터를 재건해 봤 자 6성 쉘터에 그친다.

8성 쉘터에 비해 3분의 1밖에 안 되는 면적이다.

농업 지대를 포기하거나 주거 지역 을 포기하거나 해야 한다.

식량 문제가 되든 주거 문제가 되 든,수만 명이 굶주리거나 수만 명 이 노숙자가 된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지역장으로서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을 범한 셈이다.

강현은 몸을 비스듬히 기울여서 공

중 U턴을 펼쳤다.

“북쪽으로 선회하자고. 알아서 길

을 열어 줬는데 일부러 가서 싸워 줄 이유가 없지.”

“그래도 괜찮아요? 후환을 남기는 거 같아서 껍찝한데.”

“김혜림.”

“김혜림.”

“너 풀 네임 계속 불리고 싶어서 일부러 대답 안 하지? 까불다 맞는 다.”

“듣고 있어요. 말씀하세요.”

“상처 입은 적은 그대로 적 품에 안겨 주는 게 이득일 때도 있는 법이야.”

“부상자 한 명이면 적군 3명을 무 력화시키는 효과가 있단 말이죠?”

“그걸 알고 있다니 의외군.”

“제가 연합 기사단 소속으로 내전 치렀다는 걸 잊으시면 곤란하죠.”

강현 일행은 제례미와 싸워 주지 않고 뚫린 길을 통해 북쪽으로 방향 을 틀었다.

커뮤니티가 수령의 명령을 어긴 제 레미를 가만히 놔두면 수령의 권위 가 떨어질 거고,제례미를 처벌하면 수령이 직접 고른 지역장이 멍청하 다는 걸 입증한 것이니 마찬가지로 수령의 권위가 떨어진다.

어느 쪽이든 수령이 바보 되는 건

마찬가지다.

사실상 제례미의 지령을 무시한 판 단이 커뮤니티 수령의 권위에 영향 을 미치게 된 셈이었다.

수령이 기껏 장로회를 개편하여 커 뮤니티를 바로 세우려고 했던 걸 제 레미 혼자 망친 거라 보면 된다. 강현 일행은 제례미의 어리석음에 미소 지으며 가던 길 그대로 나아갔 다.

갑자기 방향을 튼 강현 일행을 두 고 제례미는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 음을 깨달았다.

아차! 놈들에게 빠져나갈 길을 열 어 주다니!

망할 것들!

난 네놈들과 일전을 벌이려고 부하 들 희생에 쉘터까지 팔았다고!

쉘터 판 돈을 고스란히 투자하여 쉘터 재건에 나선다 한들 난민들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치 체스에서 룩을 먹으려다 나이 트를 먹힌 둣,장기에서 차를 먹으 려다 포를 먹힌 것처럼 어처구니없 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본부에 대체 뭐라고 변명해야 한단 말인가!

강현을 쫓아간다 한들 그림 없이 놈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멀어지는 강현을 두고 제례미는 목 청이 터져라 울분을 토해 냈다.

“야이,개자식아! 네놈이 그러고도 사람이더냐! 가지 말고 나와 싸우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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