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278화 (278/381)

278화

커뮤니티 엔티티엔 지부에는 미술 가를 위한 갤러리가 따로 지어져 있 었다.

갤러리는 매월 1일마다 갤러리 내 의 모든 작품을 갈아치운다.

갤러리에서 퇴출된 작품은 모두 지 역장 제례미의 손으로 들어간다. 미술가들은 전시된 작품이 제례미 의 손에 들어간다 한들 아무런 불만 도 품지 않았다.

카니발의 특성상 미술가로 먹고 사 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원래 세계에서 미술가로 살았던 자 들은 이세계로 오면서 꿈을 접고 미술도구 대신 무기를 들었다.

그런데 제례미가 미술가 지원 정책 을 펼치면서 접었던 꿈을 다시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달리 다른 곳에 가서 팔 수도 없 는 작품을 제례미가 가져가서 고이 보관해 주겠다는데 누가 불만을 품 겠는가.

감사하면 감사했지 불만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A부스 동물화는 포장하지 말고 바로 쌓아서 지역장실로 옮기십시 오. B부스 인물화 쪽은 포장해서 북 부 창고, 남부 창고에 반씩 옮겨 주 시고요.”

“벳로,D부스에 걸어 둘 그림은

길이 막혀서 늦게 도착한다는군. 난 미리 전해 뒀어. 나중에 와서 왜 늦 냐고 따지지 마.”

“가서 조금만 서둘러 달라고 해 주 십시오. 조금 있으면 지역장님이 점 검하러 오시니 그 전에 작업을 마쳐 야 합니다.”

오늘은 1일이었기에 갤러리 내부는 모든 작품을 갈아치우느라 바빴다. 지난달에 걸어 두었던 그림을 모두 내리고,공모전을 통해 뽑은 작품들 로 빈자리를 대체했다.

갤러리에 걸린 작품은 심사를 통해 매달 말일 순위를 정해서 1등,2등, 3등은 따로 포상금을 내렸다. 포상금을 받을 수 있는데다 카니발대륙에서 유일하게 미술가가 명예를 느낄 수 있는 공모전인지라,매달 수많은 미술가들이 작품을 등록했 다.

공모전에서 탈락한 작품 또한 제례 미의 손으로 들어갔다.

갤러리 내의 작품 교체 작업이 끝 나 갈 무렵.

금발에 기름을 발라 뒤로 넘긴 올 백 스타일의 젊은 백인이 갤러리 안 으로 들어왔다.

작품 교체 작업을 지휘하던 벳로가 그를 발견하곤 깍듯이 허리를 굽혔 다.

“오셨습니까,제례미 지역장님. 방 금 막 교체 작업이 끝났습니다.”

“이번 달 작품 수질은 어떻지?”

“썩 좋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

다. 미술가 숫자는 늘어났는데 대충 그려 놓고 예술이라 우기는 작자들 이 많아서 문제입니다. 무상 급식과 주택 임대를 노리고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신청을 넣는 자들이 급증했 습니다.”

“정리가 필요하겠군.”

“얼토당토않은 작품을 만드는 자들

은 기만자로 감옥에 집어넣도록 하 겠습니다. 안 그래도 SSS랭크 웨이 브 공략 때 쓸 죄수가 부족했는데 기만자들로 충당하면 되겠군요.”

“그거 좋군. 자잘한 부분은 알아서 조정해서 시행하도록. 그보다 안으로 안내해라. 이번 달 갤러리 작품 들을 찬찬히 둘러보고 싶으니.”

“네,A부스부터 찬찬히 둘러보시지 요.”

벳로는 마무리 작업 중이던 말단 조직원들에게 눈치를 주어 물러나게 했다.

말단 조직원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A부스에는 제례미와 벳로만이 남았 다.

제례미는 뒷짐을 지고 부스를 돌다 가 대뜸 그림과 상관없는 주제를 꺼 냈다.

“벳로,쉘터 안에 최강현이 들어왔 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부스를 돌던 벳로가 약 5초 후에 늦은 반응을 내비쳤다.

“최강현이라고요? 그는 신화급 웨 이브에 들어가 있던 거 아니었습니 까?”

“공략에 성공한 거겠지.”

“허…… 참……. 여태껏 누구도 공 략하지 못했던 그곳을 정말로 공략 해 내다니. 본부에서 괜히 수배령을 철회한 게 아니었군요.”

“요점은 내가 그를 지부로 초대해 야 하느냐,말아야 하느냐는 거지.”

“반드시 초대해야 합니다. 본부에 서 내려온 지령에 따르면 최강현을 발견한 자 적대시하지 말되,카심 수령님과의 만남을 주선하라고 하였습니다.”

카심과의 만남을 주선하라.

이 지령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컸 다.

커뮤니티가 강현과의 묵은 은원을 백지화시키고,강현과 우호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거다.

제례미는 강현에 대한 본부의 대응 이 마음에 안 들었다.

“왜 다들 놈을 두려워하는지 모르 겠군.”

벳로는 제례미의 반응을 심상치 않 게 여겼다.

신입 지역장의 치기 어린 발언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발언이 었다.

고메즈 밑에서 일할 때,고메즈가 강현을 어떤 식으로 취급했는지 봐 왔던 벳로다.

당시의 고메즈도 최강현을 한껏 무 시하며 그를 추격했고,불칸으로 떠 난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벳로는 제례미가 같은 전철을 밟을 까 봐 걱정이 되었다.

“이전 지역장이셨던 고메즈 님도 녀석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뜨셨 다는 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젠 신화급 웨이브를 공략했으니 예전보 다 훨씬 강해졌겠지요.”

“고메즈가 못 이겼으니 나도 못 당 할 거다?”

“노려보신다 한들 해야 할 말은 해

야겠습니다. 이건 최강현을 두려워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제례미 지역 장님을 위해서 하는 말임을 알아 주 십시오. 최강현은 안 건드리는 게 상책입니다. 태풍이 온다고 태풍과 싸우려는 자는 없지 않습니까?”

“자네 논리대로라면 태풍이 집을 부숴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되겠군.”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자라면 집 이 부서지지 않게 적절한 조치를 취 하고 지나가길 기다리겠지요.”

“내가 비정상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들려온 일화 중 사실만 추려도 충 분히 수령님에 비견될 수준은 됩니다. 일화가 전부 사실은 아닐지라도 그에겐 수많은 일을 겪고도 살아남 았다는 경험이 있습니다.”

일개 디스트로이에 불과한 벳로가 지역장과 언쟁을 벌이는 건 부나방 이 불에 뛰어드는 짓이나 마찬가지 였다.

그러나 지역장의 일을 돕고,필요 할 때 필요한 조언을 해 주는 게 을바른 부하의 역할이다.

성심성의껏 내놓은 조언이 지역장 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라도 말이다. 제례미로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 을 수밖에 없었다.

카니발 대륙 남부의 지부장으로 지 내다가 카심의 눈에 들어 지역장으로 발탁되었다.

전설급 웨이브 공략에 3번가량 참 여했으니 경험이 적은 편도 아니다. 그런 자신에게,강현이 고메즈를 처치할 정도의 인물이니까 괜히 건 드리지 않는 게 좋다?

이래서야 마치 내가 고메즈보다 못 하다는 말처럼 들리지 않은가.

이 내가 소멸 부여 스킬 하나로 먹고살던 인간보다 못하다고?

제례미는 벳로의 진심 어린 충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모욕 으로 받아들였다.

“벳로. 고메즈 같은 미친놈을 섬기 다 보니까 내가 물러 보이나 보지? 한 번만 더 날 무시하면 죽여 버릴테다.”

“본부의 지령에 합당한 이유가 있 음을 알려드렸을 뿐입니다. 카심 수 령님과 자리를 가지도록 권유해야 합니다. 고메즈만 봐도 본부의 지령 을 어기던 지역장의 말로가 어떤지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젠장,지역장이 된 나조차도 그분 을 뵐 기회를 잡기 힘들 건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본부의 지령입니다.”

“알겠다. 알았으니 녀석을 데려와 라. 만약에 놈이 초대를 거부하면 당장 내게 보고하도록.”

“본부의 지령에 따르면 초대를 거 부한다 하더라도 자극하지 말고

“알겠으니까 다녀오란 말 안 들리 나?”

짜증이 극에 달했는지 눈을 부릅뜨 며 벳로를 노려보는 제례미였다. 자극하지 말아야 할 건 강현만이 아니었다.

제례미 역시 고메즈 못지않게 한 성질 하는 인물인지라 너무 자극해 서 좋을 건 없었다.

벳로는 일이 최대한 원만하게 해결 되길 바라며 강현을 찾아갈 준비에 나섰다.

*

예술의 거리 입구에선 막 김혜림의 팔뚝에 고양이 문양 페인팅이 그려 진 참이었다.

도중에 김혜림이 주문을 바꿔서 도 안에 있는 캐릭터형 고양이가 아닌, 포트레이트식으로 실제 고양이처럼 그리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재미 삼아 칠하는 간단 한 캐릭터 페인팅이 아니라 헤나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다.

그만큼 작업시간도 오래 소요되었 고 말이다.

김혜림은 거울에 자신의 팔뚝을 비 추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봐요. 생각보다 엄청 잘됐어 요. 어때요? 이거 보니까 해 보고 싶지 않아요?”

강현으로선 쇼핑에 따라나선 남자 마냥 지루함에 잠겨 있었다.

처음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는 점과 관심도 없는데 관심을 강요 하는 점,충분히 다 된 것 같은데도 계속 이모저모 따진다는 점.

강현은 이제 그만 가자라고 말하는 대신 최대한 현명한 답변을 내놓았 다.

“막상 보니까 생각보다 괜찮군.”

“그쵸? 강현 씨도 해요.”

“근데 배고프지 않아? 간식이라도 먹으면서 생각하자고. 저쪽에 크레 이프를 팔던데.”

“그러고 보니 저도 배고프네요. 벌

써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나?”

남자들이여 잊지 마라.

쇼핑에 따라나서면 최소 2시간은 소득 없이 끌려다녀야 할 거다. 적절한 시기에 스위트 타임을 제시 한다면 단숨에 그녀들이 현명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거다.

만약 그녀가 오늘 꼭 옷을 사야 한다며 스위트 타임 이후에 다시 레 이디스 코너로 향할지라도 실망하지 마라.

당신 역시 당분의 힘으로 조금은 버틸 수 있을 거다. 길어 봤자 1시 간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빨리 돌아가지 못한다면 조금이라

도 편히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것만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니.

강현이 크레이프를 지목한 가장 큰 이유는 루나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이기도 했다.

화가의 앞자리에 앉으려던 루나는 크레이프란 말에 귀를 종긋 세우며 벌떡 일어났다.

“나도 크레이프!”

“루나 거 끝나면 바로 먹으러 가 자.”

“페인팅 안 해도 돼! 크레이프!”

루나가 아무리 페인팅에 관심을 가 지기 시작했다지만 어찌 당분을 이 길쏘냐.

김혜림은 크레이프에 열광하는 루 나를 진정시키며 화가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죄송해요. 애가 보채서 가 봐야 할 것 같네요.”

“하하하,아닙니다. 저도 간만에 유 쾌한 분들을 쾌서 즐거웠습니다. 좋 은 여행되십시오. 그리고 혹시 괜찮 으시다면 관문 안에 있는 후기 작성 란에 푸모란 화가 덕에 또 찾아을 것 같다고 평을 남겨 주시면 감사하 겠습니다.”

미술가를 지원해 주는 도시라지만 실적이 없는 미술가까지 지원해 줄 리 없다.

관광객 유치에 일조한 미술가는 실

적을 인정받아 지원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모양이다.

후기라는 수고를 들여야 하는 걸 감안하면 100퍼센트 무료는 아니었 던 셈이다.

강현 일행은 간단하게 요기라도 할 겸 크래이프를 파는 노점상으로 향 했다.

노점상으로 가는 길에 김혜림이 팔 꿈치로 강현의 옆구리를 톡톡 건드 렸다.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요. 처음부 터 루나를 노리고 한 말이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지루했 죠?”

“전혀. 2시간 정도 더 있어도 됐다 만.”

“후후,다음엔 옷 고를 때 강현 씨 를 데려가야겠네요.”

“내 요리를 시식해 주면 동참하도 록 하지.”

“먹고 배탈 나서 드러누우면 못 가 니까 하는 말이죠? 하여간 못됐어.”

“크레이프나 빨리 골라.”

강현 일행은 크레이프 노점상에서 각자 딸기,초코,바나나 정석 3대 장을 주문했다.

노점상 앞에서 크레이프 반죽 굽는 걸 구경하고 있는데,저 멀리서 응 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웅성거림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데릭로우스를 타고 있는 조 직원이 20명가량 다가오고 있었다. 데릭로우스 탑승이 허락된 조직원 이라면 디스트로이밖에 더 있겠는 가.

디스트로이의 이동방향 연장선엔 강현 일행이 서 있는 장소가 포함되 어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강현 일행을 노 리고 다가오는 것이었다.

김혜림과 루나는 단숨에 관광 분위 기를 접으며 경계에 나섰다.

그러나 디스트로이들은 50미터 거 리를 두고 데릭로우스를 소환석 상 태로 되돌리며 걸어서 다가왔다. 강현은 싸울 의사가 없다는 뜻을 전하기 위한 연출임을 알아차렸다.

“싸우러 온 게 아닌가 보군. 내가 가서 얘기해 보지.”

강현은 최소한(?)의 대비책으로 무 적을 끌어올려 두며 디스트로이 무 리에게로 다가갔다.

강현과 디스트로이 무리의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다가 2미터가량 거리 를 두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튼 건 디스트 로이 쪽이었다.

“엔티티엔 지부 소속이자 제례미 지역장님 휘하의 벳로라고 합니다. 최강현 씨,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 니 동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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