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277화 (277/381)

277화

신화급 웨이브 공략을 마친 강현 일행은 앤트 평원이 있는 대륙 북서 부로 향했다.

이동수단으론 육로가 아닌 상공 쪽 을 택했다.

강현은 드림 윙으로,김혜림과 루 나는 니아를 타고 이동하면서 커뮤 니티와 접촉할 확률을 최대한 줄이 고 이동시간을 단축시켰다.

커뮤니티가 세본즈 교를 적으로 상 정하면서 강현을 논외로 둘 가능성 이 높긴 하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커뮤니티에게 있어 강현이 현상수배범인 건 변함없다.

귀찮은 일은 사전에 방지해 두는 게 낫다.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은 지 어언 보름째.

강현 일행은 식량 확보를 위해 아 무 쉘터나 들어가야 할 처지에 놓였 다.

때마침 강현 일행의 이동경로에 쉘 터 하나가 나타났다.

신기한 건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가 진 쉘터라는 점이었다.

강현 일행은 쉘터에서 얼마간 떨어 진 지점에 착지하며 멀리서 쉘터를 살폈다.

강현은 쉘터 벽면을 뚫어져라 살펴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걸 그리도록 지시한 게 누군진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 어. 굉장한 악취미야.”

“전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해요. 밋밋한 쉘터보단 나은 걸요.”

쉘터 외벽 전면에 거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벽화로 말할 것 같으면 올백머리를 한 백인이 검지로 서쪽을 가리키며 활짝 웃고 있고,백인 뒤에서 수많 은 사람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장면이 미국식 코믹북 스 타일로 그려져 있었다.

그림의 백인이 서쪽을 가리키는 걸 로 보아 석양을 가리키며 달려가는 8, 90년대식 문제아 갱생 영화의 한 장면을 따온 듯했다.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악 취미임을 누차 강조했다.

“희망과 협동을 강조하는 벽화라 니. 커뮤니티 같은 조직이 내세울 수 있는 덕목은 아니지.”

“그리 각주를 달아 주니까 달리 보 이기도 하네요. 그거 알아요? 예술 부문은 다른 사람의 설명에 따라 주 관적인 해석이 확 달라진데요.”

“어렵게 말할 거 없어. 첫 댓글의 중요성이란 편리한 말이 있으니까.”

“벽화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 두 고 안에 들어가는 게 어때요? 여긴 검문소도 없어 보이는걸요.”

“그러지.”

쉘터의 관문은 오는 자 막지 않고, 가는 자 붙잡지 않는다는 둣 검문소 없이 활짝 열려 있었다.

관문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쉘터 안 으로 입장하는 중이었다.

강현 일행은 인파에 섞여 쉘터 안 으로 들어갔다.

쉘터 안은 그야말로 별세계였다.

쉘터 외곽의 보리밭 사이로 돌을 채워 넣어 닦은 너른 길이 뻗어 있 었는데 길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었 다.

길바닥에 그려진 그림은 거북이 그 림이 었다.

걷는 이로 하여금 냇가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그린 그림인 듯했다.

강현은 루나가 폴짝폴짝 뛰며 거북 이 그림 위만 골라 밟는 걸 보곤 말을 걸었다.

“뭐해?”

“거북이만 밟고 있어. 거북이 아닌 곳 밟으면 물에 빠져. 오빠도 빨리 거북이 밟아.”

“난 이미 늦은 것 같군. 구조선을 띄워 줘.”

“5초까진 괜찮아. 지금 거북이 밟 으면 빠진 거 무효.”

“저기서부턴 거북이가 없는데 어떻 게 할래?”

“정말? 아,정말이네. 하아,어쩔

수 없지. 오빠 등에 업혀 가는 수밖 에 없겠어.”

“업어 달라는 말을 고급스럽게도 설계해서 말하는군. 오늘은 걸어. 너 요즘 계속 니아 타고 다녔으니까.”

“히잉

걷다 보니 길 위의 거북이 그림이 끊겼다.

거북이 그림이 끊긴 지점 너머부턴 시가지 였다.

사람이 많이 오다니는 시가지의 길 바닥엔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았다.

대신 건물 벽이며 표지판 등 갖가 지 구조물마다 그림이 그려져 있었 다.

예술도 적당히 가미되어야 아름다

운 법이다.

예술로 무차별 범벅이 된 도시를 걷고 있자니 광란의 도시 속에 있는 것 같아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김혜림은 어지러워 눈이 핑핑 도는 지 눈꺼풀을 수차례 깜빡이며 입을 열었다.

“아까 나름대로 괜찮다고 한 말 취 소할게요. 여기가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주정뱅이나 상의를 흔들면서 꽃밭을 뛰어다니는 사람일 거예요. 뭐하러 월터를 이리 난잡하 게 꾸민 걸까요?”

“이곳을 담당하고 있는 커뮤니티 지부장이 색맹일지도 모르지.”

강현은 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대형

게시판 앞에서 멈춰 섰다.

대형 게시판 위에는 ‘엔티티엔 쉘 터 공지게시판’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게시판에 달린 수많은 게시물 중에 서 가장 큰 종이에 이리 적혀 있었 다.

[엔티티엔 쉘터는 미술가를 환영합 니다. 엔티티엔에 있는 모든 건물 외벽과 길바닥,표지판 뒷면은 예술 가의 캔버스이니 마음껏 당신의 상 상력을 표현해 보십시오. 커뮤니티 엔티티엔 지부에선 엔티티엔에서 활 동하고자 하는 모든 미술가를 지원 하고 있습니다. 미술가 여러분은 언제든지 지부 문을 두드리십시오.

-커뮤니티 북서부 지역장 제례미]

김혜림은 강현을 따라 게시판을 훑 다가 지역장이란 단어를 목격했다.

“지역장? 여기 지역장 직할 쉘터였 나 봐요. 제례미란 이름 들어 본 적 있어요?”

“전혀. 고메즈의 후임으로 새로 부 임한 지역장인가 보군.”

“난잡한 도시에 지역장 직할 쉘터. 오래 있을 이유가 없네요. 귀찮아지 기 전에 식량 사서 나가죠.”

“잠깐.”

강현은 김혜림을 불러 세우며 게시 판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보고 있는 건 게시판 구석에 자리 잡은 현상수배범 코너였다.

수배서를 일일이 훑어보던 중 강현 이 말했다.

“내 수배서를 됐군.”

“어디요? 음…… 어라? 정말이네. 원래 제일 큰 종이로 맨 위에 붙여 놨었는데 여긴 없네요.”

“여기뿐만 아니라 아예 수배령을 철회한 거겠지.”

“커뮤니티가 강현 씨를 적으로 돌 리는 걸 기피하고 있다고 보면 되 죠?”

“대신 못 보던 공지가 생겨났군.”

게시판에는 ‘세븐즈 교와 관련된 정보를 아는 자는 즉시 관할 지부로 신고바람. 신고자에겐 합당한 포상 금을 지급’이란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커뮤니티가 대대적으로 세븐즈 교 소탕에 나섰다는 걸 의미하는 공지 였다.

대부분이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 다.

허나 커뮤니티가 강현을 적으로 돌 리지 않으려 한다 해서 커뮤니티에 대한 경계를 풀어도 된다는 건 아니 다.

수배령을 철회한 건 세븐즈 교와 강현을 동시에 상대하지 않기 위함 이지,강현을 아군으로 인식했다는 뜻이 아니다.

커뮤니티와 강현이 잠재적 적대관 계에 놓여 있다는 건 변함없다. 강현은 게시판에서 눈을 떼며 시장 을 찾아 두리번거 렸다.

“수배령이 철회됐다고 해서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지. 식 량만 사서 바로 나가자고.”

“이럴 줄 알았으면 웨이브 6층에서 천상의 푸드스톤을 왕창 챙겨 둘 걸 그랬어요. 그랬으면 귀찮게 식량 안 사도 되고,요리도 안 해도 되잖아 요.”

“한 달치를 챙겼었지. 그리고 우린 보름 만에 다 먹었고.”

“더 챙기지 않은 게 아쉬워서 하는 말이죠,뭐.”

“별로.”

“강현 씨는 안 아쉬워요?”

“너무 많이 챙기면 네 요리를 먹을 수 없으니까.”

저기요,강현 씨.

항상 왜 직접 궁술을 익히지 않았 냐고 물을 때마다 하는 말 있잖아 요. 궁술 배울 시간에 검을 만지는 게 더 낫다고.

가끔씩 무심하게 심장 저격하는 거 보면 재능은 충분한 것 같아요. 김혜림은 무심결에 싱글벙글 웃으 며 강현과 팔짱을 꼈다.

“후후,오늘 저녁은 강현 씨가 좋 아하는 찌개 요리로 할까요?”

“엉겨 붙지 마. 귀찮아.”

“그리 말하는 것치곤 안 밀쳐 내고 가만히 있네요?”

“무거워서 못 떨쳐 내겠군. 하긴 푸드스톤을 그리 먹어 댔으니.”

“우씨,예쁜 말 좀 하나 싶으면 바 로 이런다니까.”

오른쪽에서 김혜림이 팔짱을 끼는 동안 어느새 루나는 강현의 왼손을 잡아 왼쪽 포지션을 맡고 있었다. 하도 풀어 줬더니 이젠 떨어지라는 말이 씨알도 안 먹힌다.

강현은 코로 긴 숨을 내쉬며 양쪽 에 두 여자를 단 채로 시장에 들어 갔다.

시내에 자리 잡은 시장 골목엔 노

점상이 즐비했다.

김혜림은 노점상 앞마다 써 붙여 놓은 물건 가격표를 확인하곤 학을 뗐다.

“양배추가 포기당 15.000CP? 달걀 한 판에 18, 000CP? 와,비싸도 너 무 비싸네.”

김혜림의 말을 들은 노점상이 웃으 면서 친절하게 사정을 설명해 주었 다.

“하하하,아가씨 엔티티엔엔 처음 인가 보구먼. 여기선 이게 정상가라 네.”

“껍,카니발 물가가 비싼 건 알지 만 그렇다 해도 여긴 다른 곳의 3 배나 비싼 걸요. 아까 외곽 지역 지나오면서 보니까 농업 구역이 작은 편도 아니던데.”

“아가씨 말이 틀린 건 아닌데 우리 도 어쩔 수 없다네. 새 지역장이 오 면서 미술가 지원 정책이람시며 괴 상한 정책을 시행하면서 세금을 높 이더군. 내가 보기엔 낙서쟁이 지원 정책 같다만 덕분에 우리만 죽어나 고 있지.”

엔티티엔에 있는 미술가들은 쉘터 어느 곳이든 한 달에 두 작품 이상 그려 내면 한 달 치 식량과 임대 주택 무료 이용,소정의 포상금을 받는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생산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 자들에게 의식주를 모두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 그 돈은 어디서 나오겠는가. 커뮤니티 엔티티엔 지부의 예산. 다시 말해 엔티티엔 쉘터에 사는 주민들의 세금을 미술가들에게 퍼붓 고 있는 것이었다.

새로 뽑힌 지역장들도 이전 지역장 들과 똑같은 기준으로 선발된 걸지 도 모른다.

일정 이상의 무력과 연줄.

그것밖에 더 있겠나.

물가가 비싸지만 당장 사나흘간 먹 을 식량이 필요했기에 여기서 구입 을 해야 했다.

CP야 썩어날 정도로 많고,김혜림 도 세금폭탄 때문에 물가가 비싼 것까지 흥정하려 들진 않았기에 식량 매입 과정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 다.

약 1시간 후.

강현 일행은 식량 매입을 마치고 시장에서 나왔다.

쉘터 북문으로 나가기 위해 걷고 있는데 캔버스와 캔버스 받침대가 주욱 늘어서 있는 거리에 들어서게 되었다.

캔버스 받침대마다 개성적인 외견 과 복장을 하고 있는 자들이 앉아선 붓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현 일행이 거리를 걷고 있는데 캔버스 용지를 갈아 끼우던 화가가 호객하는 손짓을 보내왔다.

“거기 여행자 분들. 무료로 바디 페인팅을 해 드리고 있는데 어떠십 니까? 오붓하게 가족끼리 페인팅 받 고 엔티티엔 관광하면 추억에도 남 을 겁니다.”

공짜라는 말에 김혜림이 눈빛을 반 짝이며 강현의 팔을 붙잡았다.

“공짜래요. 하고 가지 않을래요?”

“난 사양하겠어. 몸에 치덕치덕 바 르거나 뭔가 새기거나 하는 건 별로 라서.”

“그래요? 끄음,아쉽다. 한 번쯤은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데……

“정 하고 싶으면 받아. 네가 하는 것까진 막지 않을 테니까.”

“정말요? 루나는 어쩔래?”

루나는 시장에서 산 꿀사탕을 오물 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해 볼래. 근데 바디 페인팅 이 뭐야?”

“몸에 예쁜 그림 같은 거 그리는 거야.”

“아? 얼굴에 뭔가 덕지덕지 발라 서 사기 치는 거?”

“그건 화장이지. 조금 달라. 해 보 면 알 거야.”

“응!”

김혜림과 루나는 바디 페인팅을 해 주는 화가에게로 갔다.

“저희 둘이 받을 건데 괜찮나요?”

“하하,물론이죠. 한 분씩 해 드려야 하니까,먼저 하실 분부터 앉으 세요.”

“루나부터 할래?”

“언니가 하는 거 먼저 보고.”

“그럼 언니부터 해야겠다.”

화가는 오른손으론 물통에 담아 둔 붓을 꺼냈고,왼손으론 파레트에 검 지를 끼워 넣어 위로 들었다.

“어디에 해 드릴까요? 얼굴? 손 등? 팔뚝?”

“큼지막하게 하려면 넓은 부위가 좋죠?”

“그러려면 팔뚝에 해야 하는데 아 가씨는 로브를 입고 계셔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상관 없으면 해 드리고요.”

“팔뚝에 해 주세요. 그림도 정할 수 있나요?”

“여기 미리 그려 둔 도안이 있으니 까 여기서 골라서 선택하시면 됩니 다.”

“으음,이걸로 할게요. 고양이 캐릭 터.”

“이거 말씀하시는 거죠? 보통 여성 분들은 고양이나 나비를 많이 선택 하시더라고요. 로브는 잠깐 벗어 주 시겠어요? 물감 묻으면 빨 때 손이 많이 가거든요.”

“여기 의자에 걸쳐 둬도 되죠?”

“네. 한 5분에서 10분 정도 걸립니 다. 조금 차가울 거예요.”

김혜림은 로브를 벗어 의자에 걸치

곤 소매를 걷어 다부진 팔뚝을 드러 냈다.

화가가 김혜림의 팔목을 잡아 받침 대에 걸치곤 팔뚝 위에 붓질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선 루나가 신기하다는 눈빛으 로 구경을 하며 태평한 분위기를 자 아냈다.

강현은 두 여자가 관광 기분을 내 며 좋아라 하는 것을 보며 느긋하게 기다려 주었다.

신화급 웨이브에서 그리 고생을 했 는데도 불평 한 마디 없이 바로 북 서쪽으로 향하는 고된 길을 따라와 주었다.

잠깐 관광 기분 좀 내 보겠다는데

그것까지 막을 수야 있겠는가. 강현은 숨 돌리는 셈치고 팔짱을 끼며 가로수에 몸을 기댔다.

*

강현 일행이 있는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

말단 조직원 두 명이 화가들에게서 걷은 그림 한 뭉텅이를 들고 가고 있었다.

바쁘게 걷던 차에 조직원 한 명이 예술가 거리 입구 부근을 보곤 표정 을 달리했다.

“야,나 저 여자 알아.”

“어떤 여자? 네가 어제 빛의 속도

로 차였던 여자?”

“그거 말고 임마.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밤에 이불 찼구만 시도 때도 없이 꺼내고 있어. 저기 보라고.”

“누굴 말하는…… 야,큰일 났다. 저 여자 고메즈 지역장님 밑에 디스 트로이로 들어왔던 그 여자잖아.”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나중에 최강현 여자라고 밝혀졌던 그 여자 맞지?”

고메즈의 밑에 있던 조직원들은 제 레미가 새로 부임하면서 전부 제례 미 휘하의 조직으로 재편성되었다. 고로 고메즈가 마지막 원정을 떠나 기 직전에 파란을 일으키며 디스트 로이가 된 김혜림을 모를 리가 없었다.

사실은 김혜림이 강현의 여자였다 는 것까지 밝혀지면서 커뮤니티 내 에선 김혜림 또한 요주의 인물이 되 었다.

말단 조직원들은 혹여나 주변에 강 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본 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저 여자가 있다는 건 최강현도 함 께 있다는 거 아닐까?”

“어떻게 해? 제례미 지역장님한테 보고해,말아?”

“이 바보천지야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보고해야지.”

말단 조직원들은 부리나케 뛰며 엔 티티엔 지부로 달려갔다.

제례미에게 강현이 왔음을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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