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275화 (275/381)

275화

성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리리였 다.

라파엘라가 지미를 처치하고 혁명 군 포로들을 확보하여 세븐즈 교 대 신전에 돌아왔다.

혁명군 포로들은 세븐즈 교가 자신 들을 구조해 준 줄 알고 아무런 의 심 없이 세븐즈 교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 들어갔다.

그 숙소가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 는 실험체 수용소란 것도 모르고.

수없이 많은 혁명군이 마법석 이식 수술의 부작용으로 죽어 가는 가운 데 리리만이 무사했다.

세본즈 교로선 리리의 존재를 매우 반겼다.

마법석 이식을 받고도 살아 있는데 다,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서 다루기 쉬울 거라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생각 이상으로 리리와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선과 악,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 하는데다 타인의 의도를 하나도 받 아들이지 못한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정도가 아 니라,자아 형성 단계에 머물러 있 었다.

즉 겉보기에만 성인이지,알맹이는 갓난아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랬던 리리가 세븐즈 교에 와서 처음으로 사람다운 말을 꺼냈다.

리리와 함께 있던 세븐즈 교 사제 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들었어? 말을 했어. 성녀께서 말 을 하셨다고.”

“뭐라고 하신 거지?”

“오빠라고 하셨어. 저기 있는 말단

사제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넋이 나간 얼굴로 최진철에게서 시 선을 떼지 못하는 리리였다.

리리와 함께 걷고 있던 라파엘라가 비대칭으로 다듬은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며 5급 사제들을 불렀다.

“성녀님의 말문이 트이다니 이거

참 흥미롭군. 성녀께 오빠가 있었는 지 확인해 봐라.”

“그거라면 제가 알고 있습니다. 리 군혁 1급 사제가 커뮤니티 장로회를 정리하려고 했던 프로젝트 기억나십 니까?”

“아? 그 돼지를 숭배하는 나라에 서 넘어온 쓰레기?”

“저…… 대신전 안입니다. 말씀하 실 때 필터를 거쳐서……

“그래서 성녀님의 오빠와 저 말단 사제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냐?”

“리군혁 1급 사제가 작전 중에 혁 명군 리더인 니케를 이용했었습니 다. 성녀께선 니케의 여동생이었고 요. 인상이 닮아서 성녀님이 착각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원탁의 방에 가서 회의시간을 미 뤄 달라고 전해.”

“네? 그랬다간 부교주들이 노발대 발하실 텐데요.”

“어쩌면 저 말단 사제가 성녀를 조 종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어. 그리 전하면 부교주들도 납득할 거 야.”

“전달하긴 하겠습니다만 나중에 따 로 호출 받아도 전 모릅니다.”

“거참 말 많네. 빨리 가라고.”

5급 사제를 먼저 올려 보낸 라파 엘라는 얼굴에 가식적인 다정함을 덧씌우며 리리에게 말을 걸었다.

“성녀님,저자에게 무슨 볼일이라

도 있으신지요?”

“오.. 빠...

“오빠가 맞습니까?”

“오.. 빠..

아무것도 바라지 않던 여자가 갈망 하듯 말단 사제에게 다가가려 하고 있다.

소중한 것이 있는 자는 삶의 활력 을 얻는 대신 소중한 것 자체가 약 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착각에 의한 것이라지만 리리는 말 단 사제를 소중한 사람을 인식했고, 세본즈 교로선 조종하기 힘들었던 리리를 조종할 유일한 수단을 발견 한 걸지도 몰랐다.

라파엘라는 빗질을 하고 있던 말단

사제를 불렀다.

“거기 자네. 이리 와 보게.”

“부르셨습니까?”

“이름이 뭔가?”

“최진철이라 불러 주십시오.”

“이제부터 자네는 니케일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성녀께서 자네를 죽은 오빠로 착 각하고 계신 듯하네. 마음고생이 심 하셔서 기댈 곳이 없는 분이시니 자 네가 버팀목이 되어 주게나.”

“버팀목이라뇨? 갑자기 그리 말씀 하셔도 저로선 뭐가 뭔지……

라파엘라는 최진철의 귀에 대고 가 식 섞인 다정한 목소리 대신 원래 목소리를 내었다.

“자네. 언제까지고 말단 사제로 만 족할 생각은 아니겠지? 성녀의 오빠 노릇만으로도 지금보다 나은 위치에 있을 거라 보장하지. 자네가 현명한 사람이길 바라겠네.”

성직자라 자처하는 자의 말치고는 혼탁함이 가득한 권유였다.

최진철로선 그리 달갑지 않았다.

라파엘라가 호의를 가지고 제안을 한 것 같진 않다.

말투 속에서 다른 꿍꿍이가 느껴진 다.

척하면 척이라고 라파엘라에게서 동류의 분위기가 풍긴다.

척 봐도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 버 릴 타입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안다 해도 최진 철에겐 달리 선택지가 없다.

라파엘라의 말마따나 언제까지고 말단 사제로 지낼 수만은 없는 노릇 이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단을 얻으려 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처지가 아니 다.

최진철은 마음을 굳게 먹으며 대답 을 내놓았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라파엘라는 허리를 펴며 최진철에 게서 얼굴을 떨어뜨렸다. 그러곤 가 식적인 표정으로 다독이듯 최진철의 어깨를 두드리고 뒤돌아섰다.

“성녀님께선 여러모로 생활에 불편 함을 겪고 있으니 옆에서 잘 보살펴 줬으면 하군. ‘오빠’로서 말이야. 아, 내가 불필요한 말을 했군. 오빠가 여동생을 잘 보살펴 주는 건 당연한 건데 말이지.”

라파엘라가 웃으면서 내뱉는 모든 단어 하나하나에서 무언의 압박이 전해져 왔다.

오빠 역할을 톡톡히 해내라고 강조 함과 동시에,당연한 일조차 못한다 면 그에 따른 처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최진철은 디벨롭 밑에서 일할 때 익혔던 연기 실력을 최대한 발휘했 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리리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성녀…… 아니,리리.”

리리는 입을 뻐끔거리며 조심스럽 게 최진철에게 다가와선 떨리는 손 으로 최진철의 얼굴을 매만졌다. 최진철의 모습을 오감에 새겨 넣으 려는 건지 한참을 만지고 바라보았 다.

이윽고 리리는 그리움에 사무친 듯 최진철을 와락 끌어안았다.

“으어어…… 으어……

오빠라고 말했던 건 우연이었던 건 지,다시 벙어리처럼 더듬거리는 리 리였다.

허나 리리의 손이 최진철의 등 쪽

옷자락을 과악 움켜쥐고 있는 것에 서 그녀가 감정에 북받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애틋한 나머지 보고 있던 사제들마저 감정적인 기분에 빠졌 다.

그 와중에 라파엘라만이 3급 여사 제인 클로이를 불러다 조용히 귓속 말을 속삭였다.

“클로이,최진철…… 아니,니케라 하지. 니케에게 리리의 수발을 들게 직위를 조정해 둬. 숙소도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옮기고.”

“여사제들 숙소에 남자가 드나들면 반발이 심할 거예요.”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해결하지. 여하튼 니케와 리리가 친밀하게 지 낼 수 있게 조치를 취해.”

“알고 계실지 모르겠는데 저자는 한때 커뮤니티의 조직원이었어요. 실험체로 잡혀 왔다가 스텟을 모두 팔고 엎드려 빌어서 겨우 말단 사제 가 된 자이기도 하고요. 저런 자에 게 성녀님의 수발을 들게 하면 문제 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너도 같이 리리 옆에서 수발을 들도록. 내가 무슨 말을 하 는지 알아들었겠지?”

“감시 역할이군요. 이해했습니다. 분부대로 이행하죠.”

클로이는 알아들었다는 양 고개를

끄덕이며 행동에 나섰다.

그녀는 리리와 최진철에게 자리를 옮길 것을 권했다.

“성녀님이 이리 기뻐하시는 건 처 음 보네요. 어떤가요? 이왕 이리 된 거 자리를 옮겨서 좀 더 말씀 나누 시는게?”

최진철은 기분이 떨떠름했다.

클로이의 가슴팍에 달린 세븐즈 교 의 문양 밑에 로마자로 ‘DI’ 문양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그녀가 3급 사제임을 알리는 표식 이었다.

최진철의 경우 가장 낮은 등급인

7급 사제다.

원래라면 3급 사제를 감히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그런데 리리의 오빠 역할을 떠맡은 순간부터 대우가 달라졌다.

속아선 안 된다.

리리를 조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오빠 역할을 맡긴 걸 거다.

잠자코 이용당하기만 할 수야 없 다.

버려지는 건 사절이다.

버려질 바엔 버리는 쪽이 되겠다.

더럽고 치사하단 평가가 뒤따른다 할지라도 말이다.

최진철은 클로이의 제안을 받아들 여 리리와 티타임을 가지기로 했다. 그 뒤엔 클로이의 안내를 받아 리 리가 머무는 여사제들의 숙소로 이동했다.

‘하늘이 날 위해 성녀란 동아줄을 내려보냈어. 간신히 손에 들어온 동 아줄을 놓칠 수야 없지. 성녀를 이 용해서 다시 위로 올라갈 방법을 찾 아야 해.’

클로이를 따라가며 꺼졌던 야심을 다시 불태우는 최진철이었다.

*

대신전 안의 고위사제들 전용 회의 실인 원탁의 방.

10인용 원탁을 중심으로 열 명의 고위사제들이 앉아 있었다.

부교주인 데메트리란 이름의 늙은

노인이 검지 손톱으로 원탁을 빠르 게 두드렸다.

톡톡톡톡.

신경질적인 손버릇과 함께 데메트 리가 입을 열었다.

“요컨대 최진철이란 말단 사제를 이용해서 성녀를 컨트롤하자는 건 가?”

라파엘라는 원탁의 가장자리에 컵 을 아슬아슬하게 올려놓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장난이었다.

라파엘라로선 또 그걸 즐기는 성격 이었고 말이다.

고위사제들이 따가운 눈총을 보냈 지만,고래 심줄 같은 신경줄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꿈쩍도 않는 라파엘 라였다.

라파엘라는 능청스럽게 고개를 찬 찬히 위아래로 흔들었다.

“네,제대로 이해해서 다행이군요.”

“그따위 농담 따먹기나 하려고 회 의를 3시간이나 늦추자고 한 건 가?”

“회의 전에 클로이에게서 보고를 받고 왔습니다. 성녀는 최진철을 철 썩같이 니케라고 믿고 있다더군요. 지금 와서 다시 떼어 놓고 싶다면 직접 명령을 내리십시오. 쿡쿡쿡,성 가 폭주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지금 웃음이 나오나? 하다못해 의 견이라도 미리 묻고 일을 벌여야 할 거 아닌가!”

“미리 말했으면 허락해 주셨을까 요?”

“자네는 예나 지금이나 도무지 변 할 기미가 안 보이는군. 항상 그런 식이지. 이제 성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교단 내에서 라파엘라가 유능한 건 모두가 아는 바였다.

다만 가끔씩 제멋대로 일을 벌이는 게 문제였다.

그나마 능력이라도 있으니까 묵과 하고 있는 거지,그게 아니라면 한 참 전에 내팽개쳤을 거다.

데메트리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썩은 표정을 지었다.

“병기 하나 만들려다가 아주 골칫 덩이를 떠안게 되었어. 병기로서 제 대로 기능조차 못하는 걸 어디다 써 먹는다고.”

“그래서 조종키를 달아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최진철…… 니케는 훌륭한 조종키가 되어 줄 겁니다.”

“말단 사제에게 교단 최강의 병기 를 맡기자? 대체 어느 집단에서 그 따위 미친 짓을 하던가?”

“니케는 리리를 조종하고,우리는 니케를 조종하면 될 일이지요. 그거 있지 않습니까,그거.”

“뭘 말하고 싶은 건가.”

“예전에 리군혁이 커뮤니티에서 빼 돌려서 보내 줬던 독충 있잖습니까.

그거 심어 두죠.”

암수 한 쌍의 독충인 제노스의 독 충.

한 마리가 죽으면 남은 한 마리가 폭발하기에 협박용으로 심어 두기에 안성맞춤인 물건이다.

데메트리는 완전히 납득하기엔 모 자라다는 듯 또 다른 문제점을 거론 했다.

“그럼 남자인 건 어떻게 해결할 텐 가? 정신상태는 개판이지만 일단은 성녀란 직책을 달아 두었네. 그 작 자가 혈기를 못 참고 성녀에게 손을 대기라도 했다간 일이 복잡해지네. 성녀에게 자신이 무엇을 당하는지 분간할 분별력이 있다고 보나?”

리리가 활약할수록 세븐즈 교의 위 상이 높아질 거다.

그래서 일부러 상징성이 짙은 간판 을 달아 주었다.

기본적으로 혼인을 허용하고 있는 교단이지만 성녀만은 예외로 두고 있었다.

성녀라는 간판이 순수와 순결,순 백의 이미지를 담고 있기에 결코 얼 룩져서는 안 되었다.

다른 고위사제들도 데메트리의 말 에 공감하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나도 데미트리 부교주님의 말에 동의하네. 감시역을 붙이는 것만으 론 사고를 예방하기 어렵네.”

“게다가 여사제들 숙소에 남자가

드나드는 것 자체가 풍기를 흐리는 일일세. 교단에서 짝을 지어 주기 전까진 순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규 칙을 잊은 건 아니겠지? 한 번이라 도 예외가 발생하면 일이 귀찮아지 네.”

라파엘라는 쏟아지는 반박 속에서 태연하게 어깨를 으쏙였다.

“왜들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데 말입니다.”

“간단한 해결책? 어디 한번 들어나 보지. 말해 보게.”

라파엘라가 손을 가로로 긋는 시늉 을 하며 즐거운 투로 한 마디 날렸 다.

“그곳을 제거해 버리면 될 일 아닙 니까. 싹뚝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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