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사제들이 마녀에게 정신이 팔려 있 는 동안,강현은 군단의 서 효과로 김혜림이 있는 곳에 이동해 있었다. 간발의 차였다.
바오가 땅속으로 사라졌을 즈음에 김혜림과 루나,지트가 7층 통로에 들어섰었다.
그야말로 마녀가 죽기 직전에 출구 를 통과한 꼴이라 볼 수 있었다.
김혜림은 강현의 드림윙에 놀라 하 마터면 나선계단 아래로 구를 뻔했 다.
“우왓! 아휴,놀래라. 갑자기 웬 드 림윙이래.”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일단 위 로 뛰어.”
강현이 넘어지려던 김혜림의 손을 잡아 똑바로 세워 주곤 바쁘게 계단 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달음에 두세 계단씩 성큼성큼 을 라가는 것만 봐도 급한 일이 생겼음 을 알 수 있었다.
김혜림과 루나,지트는 강현을 따 라 나선계단 위로 뛰었다.
김혜림은 가뿐하게 강현의 곁에 따 라붙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잡귀들이 따라붙었어.”
“잡귀?”
“리빙 고스트를 익힌 세븐즈교 사
제들.”
“리빙 고스트가 뭔데요?”
“그런 게 있어. 벽을 마음대로 통 과할 수 있는 스킬이라서 놔두면 계 속 따라붙을 거야. 그러니까 녀석들 이 7층에 있을 때 한꺼번에 초기화 시켜야 해.”
유체화 상태에선 모든 공격이 관통 한다곤 하나 초기화까진 피할 수 없 을 거다.
조금이라도 세븐즈교 사제들의 발 을 묶기 위해 마녀를 지키려는 움직 임을 펼쳤었다.
사제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7층을 초기화시켜야 한다.
부지런하게 달음박질을 박차다 보
니 금세 7층 토템이 있는 곳에 도 착했다.
강현이 7층 토템에 스탬프를 넣고 있는데 루나가 강현의 로브 자락을 잡아당겼다.
“라이는 또 그거야?”
“그래,또 그거야.”
강현 다음으로 김혜림이 토템에 스 탬프 카드를 넣으며 고개를 갸웃거 렸다.
“그거가 뭔데요?”
“낙오.”
“죽는 역할에 낙오라……. 라이가 고생이 많네요. 차라리 죽을 때마다 강해지는 종족이었다면 좋았을 텐 데.”
“죽는 게 취미인 애한테 그런 능력 까지 붙으면 신이 아주 큰 실수를 한 거지.”
“히든 스킬 쪽은 어땠어요?”
강현은 쿨하게 손가락으로 동그라 미를 그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 다.
먼저 스탬프를 받았으니 지체할 이 유가 없었다.
김혜림과 루나가 스탬프를 받는 동 안 강현은 먼저 8층에 들어서서 7 층을 초기화시켰다.
7층이 초기화되었다는 증거로 강현 의 손에 라이의 소환석이 되돌아왔 다.
7층에 남아 있던 세븐즈 교 사제
들도 전멸을 면치 못했을 거다. 그러나 아직 공략은 끝나지 않았 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본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간 신화급 웨이브에서 거쳐 온 모든 층은 마지막 8층을 지키는 통 과점에 불과했다.
8층을 공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여태까지의 고생이 재평가될 것이다.
강현 일행은 여전히 성공과 실패의 천칭 사이에 놓여 있다.
8층에 들어서자 눅눅한 공기와 짙 은 구름이 낀 흐린 하늘,푹신한 황 금빛 잔디가 깔린 평야가 나타났다.
강현은 잔디를 밟다가 밟은 느낌이 까슬까슬하다는 것을 느꼈다.
‘잔디가 아냐. 이건…… 발광이끼?’ 자세히 살펴보니 잔디가 아니라 발 광이 끼였다.
평원 전체가 발광이끼로 이루어져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발광이끼로 이루어진 평원 따위는 놀라운 축에도 못 끼었다. 평원 곳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존 재들.
저 멀리 있는 존재들을 둘러보고 있자니 압박감으로 인해 오장육부가 죄여 오는 듯했다.
“괜히 세븐즈 교에서 신처럼 모시 는 게 아니군. 공략하기 쉽지 않겠어.”
뒤이어 김혜림과 루나가 산뜻한 발 걸음으로 8층에 들어서다가 우뚝 걸 음을 멈췄다.
두 여자도 마찬가지로 8층에 있는 존재들을 보곤 얼굴이 굳어 버렸다. 김혜림은 필사의 각오를 다진 듯한 얼굴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강현 씨,제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거 아니죠?”
“안타깝게도 네 시력은 멀쩡해.”
“우리 공략 끝나면 결혼해요. 저만 한 상대면 그럴 자격이 있을 것 같 아요.”
“쓸데없이 깃발 세우지 마. 재수 없어져.”
8층에 있는 건 다섯 그루의 나무 몬스터 였다.
다섯 그루 중 네 그루는 패러사이 트
한 그루는 세계수를 연상케 하는 수십 미터 높이의 거목이었다.
수십 미터 높이의 거목이 그랜드 우드라는 건 눈여겨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높다란 거목의 나무기둥 중간지점 에는 사람의 얼굴과도 같은 이목구 비가 달려 있었다.
나무의 크기가 크기인지라 눈은 운 동회 때나 쓰는 큰 공처럼 커다랬으 며,코는 피노키오의 것처럼 기다랗 되 그 길이가 수 미터에 달했고,양옆으로 뻗어 있는 나뭇가지 팔은 한 번 휘두르면 싸리비마냥 평원의 절 반을 쓸어 버릴 듯했다.
그랜드 우드는 공략자가 들어온 것 을 감지하곤 커다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강현 일행을 오시했다.
“신화급의 끝자락에 도전하려는 아 이들아. 세계의 의지가 나를 무어라 명명했는지 아느냐? 하늘 아래 가장 위대한 나무란 뜻에서 그랜드 우드 란 이름을 붙였느니라! 속이는 것밖 에 할 줄 모르는 알량한 종족 주제 에 이 위대한 존재를 공략하러 오다 니 우습기 짝이 없구나!”
그랜드 우드의 목소리가 시간차를 두고 퍼지면서 가지각색의 음색을 내었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말하는 것뿐인 데도 한 편의 오케스트라를 듣는 듯 했다.
장엄한 풍채와 위압감 넘치는 목소 리만으로 공략 의지가 날아갈 것만 같았다.
김혜림과 루나,지트가 저도 모르 게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오로지 강현만이 아무렇지도 않게 김혜림에게 손을 뻗어 평상시처럼 행동했다.
“빙백검. 그리고 몽환검도.”
김혜림은 기세가 다소 흐트러져 있 다가 강현의 말 한 마디에 냉정을 되찾았다.
상대가 수십 미터 높이를 자랑하는 거목에,중간보스급 몬스터 4마리를 거느리고 있으면 어떤가.
이쪽엔 최강현이 있다.
무엇보다 여기까지 왔는데 더 이상 뭐가 두렵겠는가.
뒤로 물러서 잠깐의 안식과 죽음을 안을 바엔 앞으로 나아가 위험과 승 리를 안겠다.
강현은 김혜림이 내미는 빙백검과 몽환검을 받아 두 자루의 검을 양손 에 쥐었다.
비늘로 이루어진 푸른 검신이 금색 오러를 두르며 강현의 투지를 대변 했다.
“8층 공략법은 나무표지판을 보지
않아도 알겠군. 말하는 나무광대를 베는 게 공략일 테지.”
“크하하하! 이곳에 도달한 놈답게 주둥아리 놀리는 거 하나는 봐 줄 만하구나. 그간 관찰한 바 네놈의 특기가 계책에 있음을 모를 성싶더 냐?”
“알면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힘의 차이를 실감하게 해 줘야겠 구나. 내 앞에서 너희가 얼마나 하 찮은 존재인지 느껴 보거라.”
그랜드 우드는 두 손을 모아 손망 치를 만들었다.
수십 미터 높이에서 굵직한 나뭇가 지끼리 겹치니 그 그림자가 평원을 가로질러 강현 일행의 머리 위까지 뻗어 나왔다.
그랜드 우드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 하려는 작정인지 손망치를 힘껏 아 래로 내리쳤다.
손망치의 크기가 어찌나 큰지 뛰어 서는 도저히 피할 규모가 아니었다. 강현은 빙백검으로 몽환검의 아래 를 받쳐 십자 모양으로 교차했다. 그러곤 두 검에 엘레멘탈 웨펀 화 속성을 부여하고,몽환검의 효과인 환영검을 소환했으며,환영검을 쏘 아 올림과 동시에 마나폭검을 전개 했다.
“하앗!”
마나파편이 일자 모양으로 가지런 하게 정렬되며 그랜드 우드의 손망치에 틀어박혔다.
파파파파팟!
커다란 파공음과 함께 그랜드 우드 의 손목 부분에 큼지막한 검흔이 생 겨났다.
공격력을 올릴 수 있는 모든 스킬 과 보구를 총동원한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나폭검은 그 랜드 우드의 손목을 절반가량 파고 드는 것에서 그쳤다.
절반가량 검흔을 남긴 걸론 그랜드 우드의 공격을 제지할 수 없었다. 강현은 검흔에 환영검을 쑤셔 넣어 그랜드 우드의 손목을 마저 잘라 내 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뒤늦게 전열을 정비한
김혜림과 루나가 지원사격에 나섰 다.
김혜림은 활시위에 대지의 화살을 여럿 소환하여 쏘아 올렸고,루나는 썬더 크래쉬를 시전하여 그랜드 우 드의 손목을 지졌다.
강현이 만든 검흔에 두 여자의 화 력이 작렬하면서 그랜드 마운틴의 손목이 절단되었다.
쿠구구구!
비스듬하게 잘린 손목이 아래로 미 끄러지면서 절단면끼리 마찰을 일으 켰다.
크기가 크다 보니 손목이 잘리면서 생긴 마찰음이 마치 기암절벽에서 바위가 떨어져 구르는 듯한 소리처럼 들렸다.
강현은 김혜림과 루나,지트를 향 해 니아의 소환석을 던졌다.
“김혜림! 애들 태워서 위로 올라 가!”
김혜림과 루나,지트는 빛을 내뿜 고 있는 니아의 소환석 위로 몸을 날렸다.
이윽고 니아의 소환석에서 빛이 걷 히면서 니아가 소환되었다.
미리 뛴 덕에 자로 잰 듯 적절한 순간에 세 사람이 니아의 등에 올라 탈 수 있었다.
니아는 갑자기 등 위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중량감에 몸을 휘청이다가 금세 균형을 잡곤 위로 날아올랐다.
강현도 마찬가지로 드림윙을 펼쳐 재빠르게 자리를 떴다.
강현과 니아가 지면을 스치듯 날개 를 펼쳐 측면으로 빠져나오자 원래 서 있던 자리에 그랜드 우드의 손이 떨어졌다.
쿠우우응!
산사태를 방불케 하는 무지막지한 굉음이 귓가를 강타했다.
떨어진 그랜드 우드의 팔이 평원의 발광이끼를 한껏 헤집은 탓에,발광 이끼 조각이 분수처럼 사방으로 튀 었다.
김혜림은 니아를 몰아 강현의 옆에 바짝 붙으며 공략 가능성을 논했다.
“무적 관통 가호가 빛을 발하고 있
네요. 화력은 충분할 것 같아요.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다고요,강현 씨.”
“그래,할 수 있어. 실수하지만 않 으면 가능해.”
“강현 씨가 마나폭검으로 검흔을 남기세요. 그럼 저와 루나가 화력을 쏟아 부을게요.”
첫 경합에서 명백한 이득을 취했 다.
그랜드 우드는 손을 잃었고,강현 일행은 누구 하나 다친 곳 없이 무 사했다.
극심한 마나소모가 있었지만 마나 포션이나 회복 보구로 보충하면 될 일이었다.
공격과 회피.
가장 기본적인 방식을 한 치의 실 수도 없이 계속하다 보면 언젠간 그 랜드 우드가 쓰러지리라.
그러나 이어지는 그랜드 우드의 행 동이 강현 일행의 기대를 깨부쉈다. 평원을 이루고 있는 발광이끼들이 일제히 빛을 뿜기 시작했다.
그런가 싶더니,그랜드 우드의 나 무밑동 아래에서부터 빛무리가 올라 오면서 그랜드 우드의 전신을 감쌌 다.
그랜드 우드의 뿌리가 발광이끼의 양분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잘려 나갔던 그 랜드 우드의 손이 순식간에 돋아나며 원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그랜드 우드는 재생된 손가락을 괴 기스럽게 꿈틀거리며 이죽이죽 웃었 다.
“나의 기념할 만한 첫 손님이니 특 별히 한 가지 가르쳐 주마. 너희는 발광이끼의 역할이 무어라고 생각하 느냐?”
강현 일행은 그랜드 우드를 중심으 로 원을 그리듯 날며 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기념할 만한 첫 손님이라 정보를 준다라.
얕보는 건가…….
얕보고도 남을 만큼 격차가 벌어져 있다는 걸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기에 더더욱 기분이 좋지 않다.
강현은 감정을 수면 밑에 가라앉히 며 이성을 우선시했다.
“어두운 동굴 안을 밝히고 치유능 력을 가진 식물.”
그랜드 우드는 헛소리라도 들은 양 강현의 면전에 대고 비웃음을 터뜨 렸다.
“크하하하! 무지하구나! 세계의 의 지가 웨이브를 만들어 낸 지 수십 년이 지났건만 인간은 아직도 눈앞 의 것만 보고 있구나.”
“그 외에 뭐가 있단 거지?”
“발광이끼는 말이다,던전이나 웨 이브 내에서 발생한 생명 에너지를 흡수해서 내게 전송하는 전송체다.
너희들이 몬스터를 죽이고,몬스터 에게 죽는 모든 행위가 내게 무한한 재생력을 제공해 주는 밑거름에 불 과하단 거지. 이제 네놈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존재에게 덤볐는지 알겠 느냐?”
발광이끼는 던전에서 조명이나 밝 혀 주려고 자라나는 식물이 아니었 다.
던전이나 웨이브에서 생명체가 죽 을 때마다 생겨나는 생명 에너지를 흡수하여 그랜드 우드에게 전송하는 전송체였던 것이다.
발광이끼는 이곳 그랜드 우드의 영 역에 있는 발광이끼에 생명 에너지 를 전송할 수 있고,그랜드 우드는 다칠 때마다 발광이끼에 담긴 생명 에너지를 흡수하여 재생할 수 있다. 카니발과 다섯 개의 하위차원에 존 재하는 수많은 던전과 웨이브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와 인간이 죽어 나가고 있다.
각 던전에서 생겨난 생명에너지의 양은 거의 무한에 가까울 터.
고로 그랜드 우드는 무한한 재생력 을 가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발광이끼를 상처에 붙였을 때 상처 가 치료되는 건 포션 효과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발광이끼가 머금은 생명에너지를 나눠 받았기 때문이었 던 것이다.
이토록 거대하고 강력한데다,아직
패러사이트들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잠시 보였던 희망은 온데간데없고 절망이 가득 들어찼다.
이걸 공략하라고 만든 건가.
이딴 걸 만들어 낸 세계의 의지에 게 클레임이라도 걸고 싶은 심정이 다.
그러나 왜일까.
이리도 절망적인 상황이건만 강현 은 되려 의욕이 불타올랐다.
절대로 안 될 것 같은 일에 도전 할 때.
나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시시하지 않은 존재라서 고맙군. 공략하는 보람이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