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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는 플레이어-262화 (262/381)

262화

자이언트 푸드우드를 도둑맞았다!

천상의 맛을 내는 열매를 더 이상 못 먹게 된다는 건 큰 문제였다. 그리고 그 이전에 자이언트 푸드우 드가 없으면 식량공급이 되지 못한 다.

뒤이어 도착한 레어가 이동식 침대 위에서 두꺼비처럼 부풀어 오른 눈 두덩을 끔뻑였다.

레어는 힘겹게 눈을 뜨며 느릿느릿 답답한 말투로 미디엄을 불렀다.

“미디엄? 아침밥? 아침밥이 먹고 싶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공략자들이

은혜의 나무를 흠쳐 가서 당장은 열 매를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소한 문제는 알아서 해결 해라? 그보다 아침밥을 가져오너 라',미디엄은 급격히 짜증이 치솟는 걸 느꼈다.

공략자 앞에선 한 마디도 못하는 주제에 자기 필요할 때만 명령질이 다.

저 느릿한 말투며 굼뜬 동작 하나 하나가 짜증났다.

더 짜증나는 건 주변에 있는 웨어 피그들도 멀뚱히 서서 미디엄만 보 고 있는 점이었다.

지배세력의 웨어피그 가운데 공략

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는 미 디엄밖에 없었다.

공략자들에게 자이언트 푸드우드를 돌려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자 또한 미디엄밖에 없었다.

한데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면서 도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꼴을 보라. 그러나 답답해도 어쩌겠나.

이 또한 창구 역할을 맡은 자의 숙명인 것을.

미디엄은 밥 달라고 징징거리는 레 어라도 달래고자 웨어피그들에게 명 령을 내려 두었다.

“반란세력 떨거지들이 가지고 있는 은혜의 나무를 확보해 놔라. 비상시 에는 그거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미디엄? 맛없는 푸드스톤은 싫 다? 우리 나무를 되찾아와라?”

이미 천상의 맛에 익숙해졌는데 지 옥의 맛을 지닌 열매가 입에 들어가 기나 하겠는가.

레어의 투정처럼 다른 웨어피그들 도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거렁뱅이들 음식은 싫습니다. 우 리 나무 되찾아 주십시오.”

“미디엄 님만 믿겠습니다. 배고프 니까 되도록 빨리 되찾으면 좋겠습 니다.”

빌어먹을 것들.

사태 해결을 위해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면서 입만 살아선!

후우,나라고 맛없는 푸드스톤을 먹고 싶겠냐고.

공략자 놈들이 원하는 건 하나겠 지.

은혜의 나무를 돌려받고 싶으면 반 란세력을 전멸시키라고 할 터.

기분 뭐 같군.

그딴 놈들 때문에 손에 피를 묻혀 야 한다니.

미디엄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간신 히 진정시키며 고개를 조아렸다.

“공략자들에게 직접 찾아가 협상을 해 보겠습니다. 금방 되찾을 수 있 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

난장이 하우스 2층에선 강현이 쪽 잠을 청하고 있었다.

강현의 머리 위로는 분홍빛 날개를 지닌 엄지 크기의 작달 만한 요정이 배회하는 중이었다.

이전에 불칸의 전설급 웨이브에서 얻었던 소환수인 팅커벨이었다.

팅커벨이 소환되어 있는 동안 잠을 자면 시간당 10만 CP씩 얻을 수 있 었다.

15억 CP를 가지고 있는 마당에

10만 CP가 무슨 대수냐고 의문을 느낄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하루에 5시간씩 잔다고 치 면 하루 50만 CP.

한 달이면 1, 500만 CP다.

공짜로 얻을 수 있는 CP치고는 많 은 편이다.

그 외에도 부가적인 효과가 하나 더 있다.

소환자가 자고 있는 동안엔 팅커벨 이 자동으로 경계태세에 들어간다. 경계태세에 들어간 팅커벨은 강현 에게 접근하는 모든 것을 배제하려 든다.

더불어 경계태세의 효과로 평소보 다 2배가량 스렛이 높아지는 대신 피아식별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점 을 유의하며 소환해야 한다.

강현이 수면을 취하고 있는데 1층 에서 김혜림이 강현을 불렀다.

“강현 씨! 강현 씨! 미디엄이 찾아 왔어요! 강현 씨!”

강현은 알람에 반응하듯 슬며시 눈 을 뜨며 허리를 돌렸다.

뿌드득!

굳어 있던 뼈마디가 시원하게 풀리 면서 잠이 확 달아났다.

날개를 퍼덕이며 머리 위를 배회하 던 팅커벨이 날개에서 반짝이는 가 루를 쏟아 냈다.

가루는 강현의 머리며 어깨에 내려 앉자 눈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팅커벨의 스킬 중 하나인 ‘노르 리 무브’였다.

진정 효과가 있는 스킬로 숙면에 도움을 주거나,막 일어나서 몽롱할 때 정신을 맑게 하는 용도로 사용하 고 있었다.

강현은 팅커벨을 소환석 상태로 되 돌리며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 내려가자 김혜림이 급히 출 근에 나서는 직장인을 챙기듯 과일 을 갈아서 만든 주스를 내밀었다.

“푸드스톤 중에서 야채맛 나는 걸 골라서 갈아 봤어요. 식사 대용으로 마셔요.”

“그러지. 미디엄은?”

“바깥에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자 이언트 푸드우드 건으로 협상을 하 자고 하네요. 저도 금방 준비해서 나갈게요.”

주스를 마시며 현관을 열자 찡그린

얼굴로 이마를 홈치고 있는 미디엄 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는 기껏해야 늦여름 수준이었 다.

그리 덥지도 않건만 땀을 삐질삐질 홀리고 있었다.

이쯤 되면 땀이라 쓰고 육수라 읽 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강현은 미디엄이 찾아온 용건을 알 면서도 능청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꼴을 보니 떡이나 돌리려고 온 건 아닌 것 같고. 용건부터 말해 보실 까?”

미디엄은 난장이 하우스 뒷마당에 떡하니 심어져 있는 자이언트 푸드 우드를 응시했다.

웨어피그들이 뭘 어떻게 할 수 있 냐는 듯 대놓고 심어 놨다.

웨어피그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 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광경이었다. 더욱 열 받는 건 그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디엄은 턱살을 푸둥거리며 거세 게 항의했다.

“용건이라니 잘도 그런 뻔뻔한 말 을! 은혜의 나무를 내놔라. 지금 당 장!”

“말을 함부로 하는군. 누가 들으면 우리가 훔쳐 간 줄 알겠어.”

“밤중에 몰래 나무를 파내 간 것이 홈쳐 간 게 아니면 뭐더냐!”

“조금 다르지. 밤에 가져가긴 했다

만 정면으로 당당히 가져왔지. 야식 먹으러 나온 웨어피그들이 편히 가 져가라고 먼저 물러서 주더군.”

“물러선 게 아니라 종족 특성 때문 에 겁먹은 것이잖나!”

“레벨이 높은 자가 자이언트 푸드 우드를 차지한다. 그게 피그숲의 룰 인 걸로 아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 는 건가?”

“그,그건……

미디엄의 말문이 막혔다.

완전히 패러독스에 갇혀 버렸다.

지배세력은 단순히 레벨이 더 높다 는 이유로 맛있는 열매를 독점해 왔 다.

지배세력이 레벨이 더 높기 때문에

자이언트 푸드우드를 차지했다면, 그보다 레벨이 더 높은 공략자들도 자이언트 푸드우드를 차지할 ‘권리’ 가 있을 터.

지배세력의 나무 소유권을 주장하 는 순간 강현 일행의 나무 소유권을 인정하는 게 되어 버린다.

소유권을 주장할수록 상대의 소유 권을 인정하게 되어 버린다니. 딜레마도 이런 딜레마가 없으리라. '제길,아픈 곳만 노리고 찌르는군. 저리 나오면 할 말이 없어. 결국 시 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건가.’ 처음에 우리가 차지했으니 우리 것 이다…… 라고 주장하는 방법도 있 긴 하다.

하지만 레벨이 높은 자가 자이언트 푸드우드를 차지한다는 규칙을 부정 하지 못하는 이상 다른 주장은 모조 리 변명에 불과하다.

미디엄은 말로는 도저히 우위를 점 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오냐,그렇게 나온다면 거래를 하 자꾸나. 네놈들이 원하는 건 반란세 력을 전멸시키는 거겠지? 바라는 대 로 전멸시켜 줄 테니 나무를 놔두고 썩 위층으로 올라가 버리거라.”

“누가 반란세력이 전멸하길 원한다 는 거지?”

“그럼 우리 지배세력을 굶겨 죽일 생각인가? 우리가 아무리 입이 짧다 지만 죽을 때가 되어서도 편식을 할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일세.”

“말투가 공격적이군.”

“신경을 예민하게 만든 건 자네일 세.”

“한쪽 진영의 전멸을 요구할 생각 은 없어. 단지 게임을 하나 제안할 까 해서 말이지.”

“게임?”

강현은 몸을 비스듬히 돌리며 뒷마 당을 향해 검지를 튕겼다.

따악!

손가락 튕기는 소리를 신호 삼아 뒷마당에서 니아와 라이가 걸어 나 왔다.

니아와 라이의 등에는 대량의 푸드 스톤이 담긴 궤짝이 매달려 있었다.

흡사 밧줄로 칭칭 동여 놓은 과일 트럭과 같은 모양새였다.

궤짝에 담긴 푸드스톤의 양은 어림 짐작으로 봐도 1천 개는 될 법했다. 강현은 궤짝을 가리키며 게임을 제 안했다.

“하루에 한 번씩 1천 개의 푸드스 톤을 피그숲 어딘가에 숨겨 두겠어. 너희는 숨겨 둔 푸드스톤을 찾기만 하면 돼.”

“식량으로 보물찾기 게임을 하자 고? 지금 장난하나? 이 따위 게임 을 해서 서로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 는 게냐?”

“하기 싫다면 강요하진 않겠어.”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상황

이 아니다.

자이언트 푸드우드가 강현의 손에 넘어간 이상 식량을 얻으려면 숨겨 놓은 푸드스톤을 찾아야만 한다. 당장 징징거리고 있는 레어와 지배 세력의 웨어피그들을 달래기 위해서 라도 응할 수밖에 없었다.

미디엄은 편두통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검지로 미간을 꾸욱 눌렀다.

“이쪽에서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칩 세. 근데 1천 개는 너무 적네. 우리 가 하루에 푸드스톤을 몇 개나 소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나? 3천 개 일세. 1천 개로는 한 끼 식사하면 끝이란 말일세.”

“그럴 것 같더군.”

“식사량을 3분의 1로 줄이면 체중 이 급격하게 줄어든다네.”

“거짓말이군.”

“뭐?”

“귀찮아서 움직이지도 않는데 급격 하게 줄어들 리가 없지. 안 그래?”

“끄응.”

미디엄으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이었다.

조금이라도 상황을 호전시켜 보려 고 온갖 화술을 다 동원해 보고 있 는데 씨알도 안 먹힌다.

공략자란 족속들은 모두가 이렇게 숨이 꽉꽉 죄이는 화법을 구사하는 거야?

강현은 답답해하는 미디엄에게 그

나마 숨통이 트일 만한 이야기를 전 해 주었다.

“무조건 1천 개만 공급하겠다는 게 아냐. 그쪽에게도 기회를 주겠어.”

“기회?”

“여기 적어 뒀으니까 찬찬히 둘러 보도록.”

강현이 책상 크기만 한 판자를 가 져다가 미디엄에게 건넸다.

미디엄이 받은 판자에는 메뉴판처 럼 물건과 가격이 적혀 있었다.

[푸드스톤 타이쿤 뽑기 가격 : 1회 당 200만 CP]

-당사자에게 푸드스톤 1개 지급

-당사자에게 푸드스톤 2개 지급

-당사자에게 푸드스톤 3개 지급

-당일 푸드스톤 공급 횟수 1회 증 가

-당일 푸드스톤을 숨겨 둔 위치 제공 1회

-1 시간 동안 푸드스톤 마음껏 수 확하기

-2시간 동안 푸드스톤 마음껏 수 확하기

-자이언트 푸드우드 획득

당사자에게 푸드스톤 지급은 해당 제비를 뽑은 자에게 추가로 푸드스 톤을 지급한다는 뜻일 거고,숨겨 둔 위치 제공은 숨겨 둔 위치를 알 려 준다는 걸 거고,마음껏 수확하기는 해당 시간 동안 푸드우드에서 푸드스톤을 수확할 수 있게 해 준다 는 말일 거다.

가장 흥미로운 항목은 자이언트 푸 드우드 획득 항목이었다.

미디엄은 자이언트 푸드우드 획득 이란 문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 다.

“자이언트 푸드우드 획득이라는 건 이걸 뽑으면 자이언트 푸드우드를 준다는 뜻인가?”

“물론. 아무런 에누리 없이 바로 넘기도록 하지.”

그러면서 강현은 현관 앞에 놔두었 던 커다란 나무 상자를 들고 왔다. 나무 상자 안에는 나뭇잎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미디엄은 나뭇잎의 숫자에 놀라 입 을 쩌억 벌렸다.

“설마 이 나뭇잎이 뽑기 대용이라 고 말하진 않겠지?”

“나뭇잎마다 메뉴판에 있던 항목들 을 일일이 다 적어 놓았지.”

“독한 놈.”

“광은 없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자이 언트 푸드우드 획득 제비를 아예 안 적었을 수도 있잖나. 만약을 위해서 라도 제비를 일일이 확인해야겠네.”

“확인하는 동안 표시를 남겨 두려 고? 이쪽도 그쪽을 신용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야. 여기 담긴 천 장 중에 한 장은 자이언트 푸드우드 획득 제비니까 힘내서 뽑아 보도록.”

“한 장? 기회 한 번에 200만 CP 나 쳐 받으면서 천 장 중에 한 장 만 섞어 놨다고?”

웨어피그가 CP를 얻을 일이 어디 있겠나.

CP를 마련하려면 가지고 있는 스 텟을 팔아야 한다.

스렛 3포인트를 팔면 180만 CP. 어정쩡한 가격이다.

고작 20만 CP를 더 채우기 위해서 4포인트를 팔아야 한다.

더구나 확률은 고작 0.1 퍼센트.

1회 도전하는 걸로 턱도 없다.

미디엄은 어떻게든 1회 도전에

120만 CP까진 깎고 싶었다.

“그쪽이 CP를 벌어들이고 싶어 하 는 건 알겠네. 하지만 1회 도전에 200만 CP는 너무 비싸군.”

흥정에 나서려는 미디엄을 강현은 단 한 마디로 흔들어 버렸다.

“10회치를 한꺼번에 구입하면 1,500만 CP로 할인해 주지. 25퍼센 트 할인이면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 아닌가?”

25퍼센트 할인?

그거 괜찮은데?

어차피 한번에 될 것 같지는 않고, 한꺼번에 구입할까?

어느새 미디엄의 머릿속에선 확률 같은 건 날아가 버리고 할인 받으면 이득이 아닌가 하는 생각만 남게 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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