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6층은 웨어피그의 숲이었다.
웨어피그 숲은 상반된 두 갈래 모 습으로 나뉘어 있었다.
풍성한 숲은 부유한 지배 세력을, 비쩍 마른 숲은 가난한 반란세력을 상징하고 있었다.
두 세력의 숫자는 반란세력이 3배 가량 많았다.
대신 레벨이 각각 120과 60으로 2 배나 차이 나고 있었다.
레벨 120과 60이면 오우거와 고블 린 정도의 차이라 보면 되었다.
인구수 3배 정도는 가볍게 극복하 고도 남을 레벨 차다.
표지판에 따르면 둘 중 한 곳을 선택하여 전멸시켜야 한다.
강현은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 다.
“어느 쪽이든 전멸시키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아. 문제는……
“웨어피그를 처리할 때마다 발생하 는 페널티가 문제죠.”
“맞아. 웨어피그 한 명당 모든 스 렛이 1씩 감소하는 페널티가 뼈아프 지.”
“모든 스텟이면 공격,실드,회피, 마나,회복 전부 1씩 깎인다는 소리 겠죠?”
“모든 스렛이라 했으니까 그리 봐 야겠지.”
“사실상 웨어피그 1명 처치할 때마 다 총 스렛이 5씩 감소하는 셈이네 요. 1명에 5씩 감소한다치면 10명에 50, 100명이면 500……. 숫자가 적 은 지배 세력을 친다고 가정해도 총 스텟량 5, 000이 감소하는데요?”
총 스텟량 5, 000 감소면 지역장급 도 개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양 이다.
어지간한 공략자들은 페널티를 감 수할 수 없다.
공략자가 직접 웨어피그를 처리하 라고 만든 구조가 아니다.
강현은 6층의 나무표지판에서 공략 요점을 끄집어냈다.
“두 진영의 분쟁을 부추겨서 웨어
피그끼리 죽이게 하라는 거군.”
“또 성가신 예감이 드네요.”
“감이 오지?”
“네. 어차피 반란이 일어났으면 가 만히 놔둬도 서로 싸우기 마련이잖 아요. 가만히 놔두면 해결되도록 짜 놓았을 린 없을 테고 반드시 공략자 엿 먹이는 구조로 되어 있겠죠.”
“여기서 왈가왈부해 봤자 답은 안 나와. 들어가서 좀 더 살펴보면 알 겠지.”
강현은 망설이지 않고 고목숲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 뒤를 김혜림과 루나가 따랐다. 고목숲 안은 땅이 푸석푸석하고 바 람이 들지 않고 공기가 갇혀 있어,숲 자체가 죽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숲 안을 걷고 있는데 비쩍 마른 고목 곳곳에서 다수의 기척이 느껴 졌다.
자세히 살펴보니 고목 뒤편마다 두 툼한 살집을 지닌 170? 180cm 신장 의 존재들이 숨어 있었다.
피부는 홍조가 오른 듯 분홍색에 가까운 색을 띠고 있었고,좌우로 두툼하게 살집이 올라 있는데다,복 스러운 돼지코와 투욱 튀어나온 돼 지입,용수철 모양으로 뱅뱅 꼬인 돼지꼬리를 지닌 자들이었다.
웨어피그란 명칭답게 돼지와 인간 을 섞어 둔 반인반수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겉모습은 서유기에 나오는 돼지인 간과 매우 흡사했다.
웨어피그들은 강현 일행을 경계하 듯 고목 뒤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김혜림은 웨어피그들의 시선 속에 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엄청 경계하네요. 저희가 반란세 력을 택했다는 걸 모르는 걸까요?”
“경계하는 거랑은 조금 느낌이 다 른 것 같은데.”
경계하고 있다기엔 너무 움직임이 소극적이다.
강현 일행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웨어피그를 표적 삼아 다가갔다.
경계하고 있다면 소속과 이름 정도 는 물어보거나,뒤로 물러나기라도 할 텐데 고목 뒤에 숨어선 꼼짝도 않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자 덩치가 산만 한 웨어피그 한 명이 고목을 붙들고 바 들바들 떨고 있었다.
강현은 웨어피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웨어피그는 경기를 일으키듯 요란 하게 몸을 들썩이며 바닥에 납작 엎 드렸다.
“자,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죽이지 말아 주세요!”
“아직 아무것도 안 했다만.”
“고,공략자 분들 아니세요?”
“맞아.”
“히익! 죄송합니다! 역시 죽이지 말아 주세요! 눈에 띄는 곳에 있어 서 죄송합니다! 살려 주세요!”
웨어피그도 공략자의 목적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강현 일행이 반란세력 쪽에 찾아온 것을 반란세력을 전멸시키러 온 거 라 착각하곤 지레 겁을 먹은 것이었 다.
강현이 일어나라고 할수록 웨어피 그는 살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다른 웨어피그들도 겁쟁이인 건 마 찬가지 였다.
동료가 겁에 질려 죽이지 말아 달 라고 말하고 있다면 진위 여부라도 파악하려 해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몸이 다 가려지지도 않는 고목 뒤에 숨어서 떨고만 있었다.
덩치 값을 못한다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자들이 있을까.
보다 못한 김혜림이 검지로 강현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강현 씨가 너무 무서운 인상이라 서 겁먹은 것 같네요. 제가 말 걸어 볼게요.”
“인상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일단 맡겨나 봐요. 제가 어디 가
서 나쁜 인상이란 소리 듣는 거 봤 어요?”
김혜림은 고양이마냥 입꼬리를 말 아 올리며 웃는 상을 만들었다.
살면서 웃는 인상 좋다는 말을 들 었으면 들었지,인상 나쁘단 소리는 못 들어 봤다.
해칠 의도가 없다는 걸 분명하게 표현하면 웨어피그도 안심하고 대화 에 응해 줄 거다.
“저……
“히이익! 오,오지 마세요!”
웨어피그는 김혜림이 말을 걸기도 전에 기겁하며 뒤로 굴렀다.
강현 때보다 더 격한 반응이었다.
김혜림은 어이가 없어 웃는 얼굴 그대로 표정이 굳었다.
어라? 방금 얼굴만 보고 기겁한 거 맞죠?
이거 생각 이상으로 상처 받네요.
저기요. 자꾸 해치지 말라고 하는 데 어디 한 번 누가 가해자인지 논 해 볼래요?
자신만만하게 나섰는데 제대로 카 운터를 맞은 김혜림이었다.
거기에 강현이 무뚝뚝하게 결정타 를 날렸다.
“적어도 난 말이라도 끝까지 했 지.”
“참 위로가 되는 말이네요. 그나저 나 이래선 정보 수집이 안 돼요. 간 파 능력 쪽은 어때요? 이 사람들 진심으로 살려 달라고 하고 있는 거 예요?”
“노이즈는 섞이지 않았어.”
겁먹은 척하면서 사람을 속이려는
것일 수도 있으나,웨어피그의 말에 노이즈는 섞이지 않았다.
뻣속까지 겁으로 이루어져 있는 진 성 겁쟁이였다.
이래선 정보 수집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원활한 정보 수집을 위해서라도 말 이 통하는 자를 찾든지,지배 세력 쪽으로 가닥을 잡든지 해야 했다. 다행히 숲 안쪽에서 또 다른 웨어 피그들이 찾아왔다.
십수 명의 웨어피그들은 소란을 감 지하고 찾아왔다가 강현 일행을 보 곤 움찔거렸다.
“무슨 일이……. 허격! 고,공략자 들이다!”
“리,리더! 공략자들이야! 공략자들 이라고!”
리더라 불린 웨어피그는 2미터가 넘는 거구에 살집이 아닌 근육으로 이루어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웨어피그가 분홍빛의 집돼지 라면,반란세력 리더는 검붉색의 멧 돼지라 할 수 있었다.
멋으로 리더 자리에 올라 있는 건 아닌지 반란세력 리더만큼은 강현 일행을 보고도 떨지 않았다.
“반란세력의 리더 웰던이다. 그대 들이 이곳에 온 목적을 물어도 되겠 나?”
강현은 바닥을 뒹굴고 있는 웨어피 그를 지나치며 웰던에게 접근했다.
“이제 막 숲에 들어서서 아는 게 없어서 둘러보고 있던 참이다. 대화 에 응해 줬으면 하군.”
“공략자는 우릴 말살시키려는 자들 인 걸로 알고 있다.”
“어느 쪽을 말살시킬지는 사정을 알아보고 정해도 늦지 않을 일이지. 협조적으로 나올수록 유리할 거야.”
“협박인가?”
“여기 주민들 상태로 봐선 우리가 걷기만 해도 협박이 될 것 같다만.”
“하아,그리 말하면 할 말이 없군. 보다시피 협박당할 기개조차 없는 자들뿐이라서 말일세.”
“대화 요청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 군.”
“따라오게. 자네들도 페널티가 있 으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거라고 믿겠네.”
*
강현 일행은 웰던을 따라 고목숲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한참을 걷자 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웨어피그 부락이 나타났다.
강현 일행이 들어서자 부락 전체가 크게 들썩였다.
웨어피그들은 재앙이라도 들이닥친 양 반응했다.
아낙네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부리 나케 움집에 들어갔으며,장정들은 지진이라도 발생한 것처럼 납작 엎 드려선 팔로 머리를 감쌌다.
경외의 대상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썩 유쾌하진 않았다.
겁에 질린 군중을 보고 기뻐하는 건 고대의 폭군 정도가 아닐까 싶 다.
왕의 행차이니라! 머리가 높다! 아이러니한 건 이들이 지배 세력에 대항하는 반란세력이라는 점이다. 지배 세력에 반하기 위해 뭉쳤으면 서 하는 짓은 지배당하는 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
부락 안을 걸어 도착한 곳은 웰던 의 집이었다.
나뭇가지와 진흙을 발라 세운 움집
안.
모래를 깔아 놓은 화로를 사이에 두고 강현 일행과 웰던이 마주 앉았 다.
웰던은 천장에 매달아 두었던 나무 상자에서 감자처럼 생긴 열매를 꺼 내서 강현에게 건넸다.
“식전이라면 감자맛 푸드스톤 하나 씩 들게. 대접할 게 이런 것밖에 없 지만 사정이 사정이다 보니 이해해 주게.”
강현이 알던 푸드스톤과는 많이 달 탔다.
항상 주먹 크기의 푸드스톤만 봐 왔는데 웰던이 내어 준 푸드스톤은 겨우 알감자 수준이었다.
불에 살짝 그을려서 한 입 베어 먹어 봤는데 입 안 가득 쓴맛이 퍼 져 나갔다.
감기약을 물 없이 그냥 씹어 먹은 느낌이랄까.
쓴물을 한 방을 한 방을 떨어뜨려 빚어 낸 경단을 먹은 기분이었다. 김혜림과 루나는 먹자마자 오만상 을 찡그리며 푸드스톤 덩어리를 뱉 어 냈다.
강현도 인상을 찌푸리지만 않았을 뿐 덩어리를 삼키지 않고 조용히 뱉 었다.
“막 시집 온 며느리도 집 나가게 할 맛이군.”
웰던은 쓴맛에 익숙한 듯 푸드스톤
을 베어 물며 우적우적 씹었다.
“피그숲 서쪽은 저주 받은 땅일세. 서쪽 땅의 양분을 빨아먹은 나무는 말라비틀어지고,이리 맛없는 열매 만 맺히게 되지. 식량을 자이언트 푸드우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로선 항상 쓰디쓴 열매만 먹고 있는 실정 일세.”
“자이언트 푸드우드?”
“매일매일 푸드스톤이 수천 개씩 열리는 나무라네. 은혜의 나무라 부 르기도 하지. 피그숲 서쪽에 한 그 루,동쪽에 한 그루씩 있다네.”
“지배세력의 자이언트 푸드우드에 선 맛있는 푸드스톤이 열리고 있겠 군.”
“맞네. 숲 동쪽은 축복받은 땅이라 모든 나무가 항상 생기가 넘치고, 맛있는 열매만 맺힌다네. 먹어 본 적은 없네만 숲 동쪽의 자이언트 푸 드우드에서 나오는 푸드스톤은 한 입만 먹어도 천상에 있는 기분이 드 는 맛이라더군. 지배세력은 맛있는 열매가 맺히는 나무를 차지하곤 우 리에겐 일절 내주지 않고 있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서 반란 이라……
“다른 종족은 이해하지 못할 걸세. 체중이 100kg 밑으로 떨어지면 죽 는 몸뚱이로 태어난 입장에서 맛없 는 것만 먹으며 생명을 유지해야 하 는 기분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나.”
웨어피그가 체중 100kg 이하로 떨 어지면 죽는 종족인 줄은 몰랐다. 말라붙은 숲에서 살면서 왜들 그리 살이 꼈나 싶었는데 그 의문이 해결 되었다.
살기 위해선 뭐든 먹어야 하는데, 먹을 게 지독하게도 맛없는 스톤푸 드밖에 없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들에 비하면 군만두만 먹고 사는 건 불행한 축에도 못 드리라.
웰던의 고충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간다.
허나 다른 반란세력 웨어피그들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과 다르게 다른 웨어피그들은
생활을 개선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없어 보이더군.”
“하아,웨어피그란 종족은 말일세. 상대가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강하면 지독한 겁쟁이로 돌변한다네. 이루 말하자면 종족 특성인 셈이지.”
“조금이라도 레벨이 높으면 겁을 먹는다?”
“조금이라도 총 스렛량이 높은 상 대를 만나면 몸이 저절로 떨리고 머 릿속이 새하얗게 물든다네.”
“당신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어디에나 특이 케이스는 있는 법 일세. 그래서 어떻게든 혁명을 성공 시켜 보려고는 하는데 진전이 생기 지 않는구먼. 뭐 자네들 입장에선 페널티를 감안하면 숫자가 많은 우 리보단 지배 세력을 적으로 두는 게 나을 테지.”
웰던의 말에서 일말의 기대감이 묻 어 나왔다.
대화의 마지막에 페널티를 언급한 게 그 증거였다.
말속에 반란세력에 가담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반영되어 있었다.
강자 앞에서 비굴해지는 웨어피그 의 특성상 지배세력도 공략자 앞에 서 벌벌 떨 거다.
어차피 한쪽 진영을 몰살시켜야 한 다면 반란세력이 아닌 지배세력을 쳐 줬으면 했다.
간절한 웰던과 다르게 강현은 복덕
방에 들른 것처럼 느긋하기만 했다.
“지배세력도 둘러보고 결정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