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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는 플레이어-252화 (252/381)

252화

레온의 등에 올라탄 카심이 짙은 갈색 눈동자로 사이젠을 응시했다. 줄곧 카심을 옆에서 떠받들던 사이 젠이지만 여전히 그의 시선에는 익 숙해지지가 않았다.

카심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칼을 댄 듯 살을 저미는 듯한 감각이 올 라왔다.

공기가 수축하듯 긴장감으로 꽉 찬 분위기 속에서 카심이 입을 열었다.

“화려한 퍼레이드는 좋아하지 않는 다고 했을 텐데 그새 잊었나 보군.”

수려한 외견과 커뮤니티가 가진 이 미지 때문에 수장인 카심 또한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알려져 있 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카심은 권위적이되 능력을 우선시 하며,아끼지 않되 낭비 없는 효율 을 지향하고,매정하되 불필요한 살 상은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즉 장로회가 카심의 기분을 누그러 뜨리기 위해 준비한 퍼레이드는 역 효과만 낸 셈이었다.

사이젠은 오뚜기라도 된 것처럼 허 리를 굽실거리며 변명을 늘어놓았 다.

“남서부 지방을 통째로 시찰하는 대규모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셨으니 그에 걸맞는 퍼레이드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바빌론 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 이니 시민들의 성의를 기쁘게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말 하나로 지역장들을 옭아매던 사 이젠답게 예상외의 상황에서도 달변 을 펼쳤다.

단 한 마디로 화려한 퍼레이드를 장로회의 의향이 아닌 시민들의 의 향인 것처럼 둔갑시켰다.

시민들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카심 의 성격상 시민에 의한 퍼레이드는 기쁘기 그지없을 터.

그런데 카심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 한 반응을 보였다.

“으음,고작 시찰을 다녀온 것 정

도로 자발적으로 나섰다 이 말인 가.”

“석연치 않은 점이라도 있으십니 까?”

“사이젠,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발생한 것 같 더군.”

“벌써 소문이 퍼진 모양이군요. 안 타깝게도 세이아나 지역장이 수배범 인 최강현과 결탁하고 있다는 사실 이 밝혀졌습니다. 묘안을 부려 세이 아나를 체포하는 데까진 성공했습니 다만,리군혁도 한패였던지라 세이 아나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리군혁 외 11명의 배신자를 적발하여 처단 하는 데까진 성공했으나 세이아나의 행방은 아직까지도 묘연한 상황입니 다.”

사이젠 본인이 생각해도 절묘한 조 치였다.

세이아나의 체포와 탈옥,리군혁의 죽음 등 진실과 거짓을 적절히 섞여 서 제3의 사건을 만들어 냈다.

한 손으로 수십 개의 구멍을 막을 순 없는 노릇이다.

내부에 배신자가 포진되어 있었다 면 장로회라 한들 모든 사태를 원만 하게 수습하긴 어렵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장로회는 능력 이상의 성과를 냈다고 어필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카심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반응을 내비쳤다.

“두 지역장을 상대한 것치곤 의외 의 결과로군.”

“수령님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인 공을 알아주십시 오,”

“보고를 들으면 명확해지겠지.”

“네? 보고라 하심은?”

“코반. 보고해라.”

환영 행렬 뒷자리로 밀려나 얼굴조 차 안 보이는 자리에 있던 코반이 카심의 부름을 받았다.

코반은 오밀조밀 모여 있던 장로들 을 어깨로 강하게 밀어 헤치며 카심 의 앞에 도달했다.

사이젠과 장로들은 카심이 코반을

지목한 걸 두고 의아함을 감추지 못 했다.

장로회에서 코반은 그리 눈에 띄는 편이 아닌데다 카심과의 친분은 전 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코반은 뭇사람들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며 철두철미하게 있는 사실 그대로 보고를 올렸다.

“장로회에선 세이아나를 미끼 삼아 최강현을 유인하려 했으나 실패했습 니다. 이후 인질로서 가치가 없어진 세이아나를 처형하려고 했지만 그마 저도 실패하며 그녀를 놓쳤고,리군 혁은 장로회의 손이 아닌 세이아나 에 의해 죽었습니다.”

사이젠이며 장로들의 낯빛이 흙빛

으로 물들었다.

사이젠이 그토록 숨기고자 했던 사 실을 상세히 보고하고 있었다. 세이아나 탈옥 건은 사이젠만이 아 니라 장로회 전체의 책임이다.

장로회 소속인 코반이 사실대로 보 고할 이유가 전혀 없다.

장로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눈만 끔뻑거렸다. 그 와중에 사이젠만이 늦게나마 모 든 현황을 파악하곤 입술을 곱씹었 다.

'완전히 당했어! 카심이 이런 능구 렁이 같은 작전을 쓸 줄이야. 아까 솔직하게 말하라고 한 건 마지막 기 회였던 거였나!’

코반은 카심이 장로회에 심어 놓은 내부 감찰반이었던 것이다.

카심은 이미 코반을 통해 장로회의 상황을 낱낱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모른 척했다.

사이젠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 해서.

코반이 언급했던 솔직하게 말하는 게 어떻냐는 말도 카심에 지시에 의 한 것이었으리라.

마지막의 마지막에 솔직하게 말하 면 그나마 처벌을 완화시켜 줄 생각 이었을 거다.

그러나 사실을 깨달았다곤 하나 상 황은 이미 엎질러진 물과 다를 바 없었다.

사이젠은 엎질러진 물이라도 주워 담아 보고자 필사적으로 자기변호에 나섰다.

“기,기다려 보십시오! 코반이 뭔 가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리군혁 이 배신자였다는 건 명백한 사실입 니다. 그리고……

“리군혁 외에 다른 배신자가 있다 고 했었지. 코반,실상은 어떻지?”

“최악의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성과를 올렸다고 주장하기 위해 일부러 몇몇 경비대원들에게 누명을 씌웠습니다.”

“그렇다는군. 더 할 말 있나,사이 젠?”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수렁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코반이 장로회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보아 온 이상 무슨 말을 하든 소용없었다.

아까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사실 대로 말하지 않은 것이 심히 후회된다.

아마 카심은 예전부터 장로회를 정 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을 거다. 어쩌면 이번 지방 시찰도 장로회의 속내를 들추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 지 않았을까 싶었다.

카심이 작정하고 나섰다면 사이젠 이 그 어떠한 말을 한다 해도 꿈쩍 하지 않을 거다.

사이젠은 떨리는 손으로 가슴팍에 달아 두었던 커뮤니티 배지를 떼어 냈다.

“자진사퇴로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 다.”

사이젠으로선 너무나도 힘든 결정 이었다.

부와 명예,권력을 한꺼번에 거머 렬 수 있는 자리이지 않은가.

스스로 직위를 내려놓은 것만으로 도 책임을 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심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실망이군,사이젠. 고민 끝에 선택 한 것이 도망이라니. 자네에게 남은 일말의 미련도 지워 버리는 대답이군.”

“무,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끝까지 사과 한 마디 꺼내지 않는 군.”

카심은 손에 그랜드 건틀릿을 둘러 아래로 내리쳤다.

클로처럼 날카롭게 다듬어진 그랜 드 건틀릿은 선명한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매서운 공격을 앞두고 사이젠의 머 리 위에 육각형 모양의 조각으로 이 루어진 방어막이 둘러졌다.

사이젠의 방어 스킬인 ‘이지스’의 효과였다.

통상적으로 실드는 실드 스렛의 2,

3배 정도 되는 효율을 내는데,이지

스를 익히면 효율이 5배까지 올라갔 다.

게다가 스킬 소유자에게 위험이 닥 치면 자동으로 실드를 두르는 기능 이 있으며,한번에 부서지지 않으면 실드량이 초기화되는데다 입은 데미 지를 반사데미지 형태로 반사시키는 기능까지 있었다.

자신의 몸 보전을 중요시 하는 사 이젠인 만큼 실드 스렛을 대폭 올려 두었었다.

사이젠이 보유한 실드 스텟은 무려

3, 000에 달한다.

이지스에 의해 5배의 효율을 내고 있으니 무려 15, 000 수치의 공격을 단번에 가해야 이지스를 부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카심의 그랜드 건틀릿은 아주 손쉽게 이지스를 박 살냈다.

과자작!

파도가 들이닥친 모래성도 이보다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다.

이지스가 뚫리면서 그랜드 건틀릿 이 사이젠의 몸을 세로로 양단했다. 카심은 무너지는 사이젠의 시신에 서 시선을 떼며 강경한 투로 말했 다.

“더 이상 장로회를 신용할 수가 없 군. 장로회에는 기존의 입법 권한과 예산 검토 권한만 남기고 다른 모든 권한은 신설 예정인 어드민에 일임하겠다. 불만 있는 자는 내일 있을 정기 회의에서 정식 안건으로 이의 제기를 하도록. 이상.”

기존에 커뮤니티 내의 모든 인사 행정을 다루고,큼직한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온갖 대소사를 주도했던 장로회다.

한데 입법 권한과 예산 검토 권한 만 남긴다는 건 입법부로서의 기능 만 남긴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장로들 입장에선 가진 권한이 절반 이상 줄어드는 게 달갑지만은 않았 다.

허나 어쩌겠는가.

카심이 과감하게 사이젠을 처벌하 면서 그의 죽음을 일벌백계 삼아 장로회를 향해 본보기를 보였다. 이의제기를 했다간 사이젠과 똑같 은 절차를 밟게 될 거다.

장로들은 카심의 복귀와 더불어 커 뮤니티 내외로 피바람이 닥칠 것을 예감하며 몸서리를 쳤다.

*

커뮤니티 본부 안에 조성된 대나무 숲 안.

대나무숲 안쪽에는 작은 연못과 수 수한 외견의 전원주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카심의 거처였다.

커뮤니티 우두머리의 거처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경비원 한 명 없 었으며,함정 보구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자신보다 약한 자들에게 보호 받아 야 할 이유가 없으며,누가 침입한 들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자신 감의 발로였다.

카심은 거처에 들어서자마자 코반 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장로회의 반응은 어떻더냐?”

“사이젠의 죽음이 충격적이었는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습 니다. 내일 이의제기는 없을 듯합니 다.”

“법률 쪽 능력은 확실한 친구였는

데 말이지. 안타깝게 됐군.”

“장로회 회장 자리란 성배를 과하 게 들이켰습니다. 취한 자에게 방향 키를 맡길 순 없는 노릇이지요.”

“신설할 어드민의 지휘권은 자네에 게 주겠네. 날 실망시키지 말게나.”

“뼈가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수령님을 위해 몸을 바치겠습니다.”

“그 말이 말에서 그치지 않길 바라 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을 말해 보게.”

코반은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놓치 지 않고 미리 준비한 서류를 한 장 씩 넘기기 시작했다.

“먼저 고급 인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합니다. 사이젠이 획책하고 있었던 하위차원 정복 계획을 시행하 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웨이브 봉인석을 이용하자는 계획 이었던가?”

“네,그 부분은 세부 계획을 다시 검토하여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최강현이란 작자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듣자 하니 상당히 위험 한 인물인 것 같던데.”

“그자는 더 이상 일개 수배범으로 봐선 안 됩니다.”

“허면 무엇으로 봐야하나?”

“일인군단라는 말로도 부족하겠지 요. 그는 일개 세력으로 봐야 합니 다. 지금 신화급 웨이브를 공략 중 이라고 하는데 공략에 성공하든,실패해서 탈출하든 그 작자와는 우호 적인 관계를 맺는 게 좋습니다.”

“그 정도인가?”

“여태까지 경과를 보건데 굳이 건 드려서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 다는 게 저의 개인적인 소견입니 다.”

“기회가 되면 한번 만나 보고 싶 군.”

“그리고 이건 리군혁의 방을 뒤지 다가 나온 물건들입니다.”

코반은 깔끔하게 정리한 서류를 카 심 앞에 내놓았다.

서류엔 리군혁이 세븐즈 교라는 단 체에서 파견된 밀정이었다는 증거와 세이아나를 미끼 삼아 강현을 끌어들여 장로회를 정리하고자 했던 계 획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카심은 세븐즈 교란 이름을 확인하 곤 금시초문인 양 의문을 드러냈다.

“세븐즈 교? 해상 카르텔이나 언더 그라운드 같은 부류인가 보지?”

“제3세력치고는 규모가 상당한 것 같습니다. 지역장을 밀정으로 심은 데다 커뮤니티를 겨냥한 작전까지 펼치는 걸로 봐선 위험도는 혁명군 보다 세 단계 이상 높다고 봐야겠지 요.”

“놈들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게. 놈들의 아지트가 밝혀지는 순간 바 로 척살대를 파견하도록 하지.”

“그러면 좋겠지만 지역장이 과반수

이상 공석인 만큼 견제만 하는 게 옳지 않나 싶습니다.”

“지역장 후보라면 이미 엄선해서 골라 왔네.”

카심이 서류를 놓으며 진득하니 한 마디 옮조렸다.

“다들 죽은 고메즈에 뒤지지 않는 재목들이 지.”

*

웨이브 바깥에서 풍운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강현 일행의 신화급 웨이 브 공략은 계속되고 있었다.

강현 일행은 그랜드 우드의 영역 3층을 지나 4층으로 이동했다.

샤일록을 통해서 4층에 중간 보스 가 있다는 걸 전해 들었다.

4층으로 올라가는 나선 계단에서 스탬프를 받고 4층에 들어섰다.

마나기류를 통해 들어선 그랜드 우 드의 영역 4층은 운동장만 한 크기 의 아담한 숲이었다.

면적이 워낙 좁다 보니 숲이라 하 기도 민망했다.

숲보다는 소나무 농장에 가깝지 않 을까 싶다.

강현 일행이 4층에 입장하자 소나 무 숲 안쪽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세 사람을 친절하게 안내했다.

“여기까지 공략자가 온 것도 오랜 만이군. 차분하게 나무표지판을 읽고 내가 있는 곳까지 오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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