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지미는 시커멓게 꿈틀거리는 화염 을 굉장히 불길하게 여겼다.
지 이 불길함은? 막아서 될 일 이 아니야. 피해야 해!’
마법진의 흑염이 지미가 타고 있던 데릭로우스를 집어삼키며 지미에게 뻗어 왔다.
지미는 데릭로우스를 발판 삼아 위 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소환석 하나 를 새로이 꺼내서 위로 던졌다.
“카멜 버드!”
소환석에서 황소만 한 몸집을 자랑 하는 거대 제비 한 마리가 소환되었 다.
카모플라쥬를 쓸 수 있는 레벨 70 짜리 몬스터로 보통은 정찰용으로 쓰는 소환수였다.
지미는 카멜 버드를 부려 흑염이 닿지 않은 상공으로 올라갔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지상은 그야말 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조직원들도 함정 보구를 감지하곤 실드를 끌어 올리긴 했었다.
그러나 실드를 끌어온 건 악수 중 의 악수였다.
흑염은 조직원들의 실드를 장작 삼 아 옮겨 붙어선 활활 타올랐고,실 드가 걷히면서 살 타는 냄새와 조직 원들의 비명이 계곡을 어지럽혔다.
“으악! 뜨거워! 누가 나 좀 도와
줘! 살이 타들어 가고 있어!”
“하,함부로 접근하지 마라! 실드 까지 태우는 불꽃이다! 이미 불붙은 놈들은 버려!”
“버리지 마. 제발 버리지 마,이것 들아! 살려 달라고!”
불이 붙은 조직원들이 도와 달라며 같은 조직원들에게 애원하듯 손을 뻗었다.
그나마 불이 붙지 않은 조직원들은 자신의 실드에 흑염이 옮겨 붙을까 싶어 뒷걸음쳤다.
불이 붙은 자들이 감염원이라도 되 는 양 질색을 하며 멀리하기 바빴 다.
지미는 안전한 상공에서 손으로 두
뺨을 치며 냉정을 되찾으려 애썼다. 찰싹! 찰싹!
“제기랄,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 침착하자. 검은 불꽃이 솟기 전에 마법진이 발동했었어. 설치형 함정 보구나 원격 조종형 보구인가? 누가 감히 이따위 짓을 벌인 거지?”
실드까지 태워 버리는 고급 함정 보구를 그냥 심어 뒀을 리 없다.
필시 커뮤니티에서 신화급 웨이브 를 봉인하려는 걸 알아차리곤 그를 막기 위해 일부러 심어 둔 걸 거다. 혁명군이 무너지고,세이아나마저 사형이 확정된 마당에 누가 커뮤니 티를 막아설 수 있겠는가.
현재 커뮤니티의 걸림돌이 될 만한
인물이라면 딱 한 놈밖에 없다.
‘최강현인가. 놈이 내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설치형 함정 보구를 깔아 둔 걸지도.’
생각을 하던 차에 지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그것만큼은 아냐. 놈은 신화 급 웨이브 안에 있잖아. 어떻게 알 고 놈이 미리 함정 보구를 깔아 두 겠어? 함정 보구를 설치한 건 최강 현이 아냐.’
최강현은 신화급 웨이브를 공략하 는 중이라 하지 않았던가.
지미가 여기 오고 있다는 걸 알기 는커녕 세이아나의 사형이 확정된 것조차 모르고 있을 거다.
확신컨대 함정 보구를 깔아 둔 건 최강현이 아니다.
그럼 누구지?
최강현이 아니라면 누구냐고!
생각할수록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 다.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건 어 쩔 수 없다.
범인 추리는 나중에 하고 당장은 사태부터 수습하는 수밖에.
지미는 계곡 위를 빙글빙글 선회하 며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리 형제! 불이 붙은 자들을 계곡 안쪽으로 밀어내라!”
리 형제라 불린 대만계 이세계인 형제가 죄수를 가둔 감옥수레 사이에서 뛰어올랐다.
곡예단 출신답게 쑥대밭이 된 진형 을 공중제비로 뛰어넘으며 전방에 섰다.
리 형제는 중화풍으로 닿은 머리를 흔들며 묵주를 왼손에 걸쳤다.
쌍둥이 형제 중에서 동생 쪽이 형 의 의견을 물었다.
“형님,오랜만의 전투가 아군을 밀 어내는 게 될 줄 몰랐수다.”
“그러게 말이다,아우야. 오늘 찻잎 이 자꾸 가라앉는 게 이럴 것 같긴 하더구나.”
“계절은 뭘로 하는 게 좋겠수?”
“불을 밀어내야 하니 겨울로 가자 꾸나.”
리 형제는 왼손으론 빠르게 묵주알 을 굴리면서,오른손을 흑염에 불타 고 있는 조직원들을 향해 뻗었다. 묵주알을 일정 개수 이상 돌리자, 투명했던 묵주알의 색이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더불어 리 형제의 오른손에서 각각 푸른 연기가 흘러나오더니 곧 새의 형상을 이루었다.
연기로 이루어진 새가 날개를 퍼덕 이자 강한 냉풍이 쏟아져 나왔다.
리 형제의 무기인 연기 염주의 효 과였다.
염주는 네 가지 종류의 바람을 내 뿜는데 그중에서 겨울의 북풍은 마 나동결 효과가 있었다.
겨울의 북풍을 쐰 조직원들은 마나 동결에 빠져 마나를 쓸 수 없었고, 강풍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뒤로 밀 려났다.
몸이 타오르는 와중에 그들에게 강 풍을 버텨 내며 균형을 지킬 재간은 없었다.
밀려난 자들이 뒷걸음질 치며 계곡 안쪽의 바닥을 딛자 또 다른 함정 보구가 발동했다.
과앙! 과과과광! 콰콰과!
바닥을 산성늪으로 만드는 함정부 터 환각을 일으키는 함정,덫에 걸 린 이를 제물 삼아 소환되는 몬스터 소환형 함정까지.
8성급 병력 정도는 단숨에 잡아먹
을 수 있을 수준의 함정이 한꺼번에 발동했다.
흑염 함정만 있을 거라 생각하고 무심코 들어갔었다면 전원 몰살당했 을 거다.
화살받이로 던져진 조직원들이 갖 가지 함정 속에서 처참하게 분쇄되 었다.
동료의 죽음을 두고 살아남은 이들 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불이 붙은 게 내가 아니라 다행이야. 조금만 늦었으면 내가 저 꼴이 될 뻔했군.’
‘으으,끔찍하기도 해라. 후방에 선 덕분에 살았구만.’
방금까지 동료였던 자들에 대한 동
정은 조금도 없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죽은 게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기 바빴다.
카멜 버드를 몰며 공중에 머물러 있던 지미는 함정의 개수에서 제3의 세력이 있음을 감지했다.
‘최강현에겐 저만한 함정 보구를 조달할 능력이 없어. 설사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올지,안 올지 모 르는데 미리 심어 둘 생각을 할까? 확실하지도 않는 것에 대비한다고 저만한 양의 함정 보구를 준비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낭비야. 분명 다른 누군가가 심어 둔 게 확실해.’ 추가로 더 함정이 있을 수도 있었 다.
상황이 이리된 이상 조심해서 움직 여야 한다.
지미는 파우치 덮개를 열었다.
파우치 안쪽에는 십수 개의 소환석 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미의 주무기는 소환수다.
가지고 있는 스킬의 대다수도 소환 수의 능력을 끌어 올리는 것들이었 다.
다만 전투를 소환수에게 맡기고 본 인은 뒤에 서 있다 보니 안 좋은 소리가 들리기 마련이었다.
일각에선 소환수를 주무기로 삼는 지미를 두고 ‘날로 먹는 지역장’이 라며 비꼬기도 했다.
지미는 소환석 중에서 영구 소환석
이 박혀 있는 소환석 2개를 골라 아래로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소환석이 빛을 머금 으며 머리 없는 늑대와 핏빛 슬라임 이 소환되었다.
“가라! 듀라한 울프! 블러드 슬라 임! 몸을 아끼지 말고 함정을 들춰 내라!”
“아우우울!”
레벨 160의 듀라한 울프와 레벨 180의 블러드 슬라임이 계곡 안으 로 뛰어 들어갔다.
듀라한 울프와 블러드 슬라임이 발 을 디딜 때마다 쉴 새 없이 함정이 발동했다.
이미 발동한 함정만으로도 학을 뗄
지경인데 아직도 함정이 남아 있다 니.
그래도 소환수를 지뢰제거반 삼아 투입했으니 길을 여는 건 문제가 없 을 거다.
지미를 비롯한 조직원들은 긴장을 풀고 함정이 모두 제거되길 기다렸 다.
그러던 차에 지미가 문득 자신이 그늘 아래에 있음을 자각했다.
“음? 웬 그늘이지?”
오늘은 특히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다.
상공을 비행하는 지미에게 그늘을 드리울 만한 물체가 있을 리 없다. 지미는 의문을 표하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지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카멜 버 드보다 10배는 큰 몸집의 와이번이 날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평범한 와이번이 아니라 머 리가 10개 달린 와이번이었다.
와이번의 목에서 뻗어 나와 제각기 꿈틀거리고 있는 10개의 머리를 본 순간.
지미는 믿을 수 없다는 양 입을 쩌억 벌리며 간신히 말을 쥐어짜 냈 다.
“와,와이번 로드!”
기본적으로 드래곤 계열의 몬스터
들은 에이션트 드래곤-드래곤 아족 의 로드-서번트■-해출링-드래고나-와이번-드레이크 등으로 강함의 서 열이 나뉘어져 있다.
드래곤 아족이라는 건 서번트,와 이번,드레이크,드래고나 등의 태초 의 드래곤들이 타 종족과 교미하며 생겨난 혼혈들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면서 따로 분리된 종족들이 다.
기본적으로 드레이크는 와이번보다 약하고,와이번은 드래고나보다 약 하다는 식으로 강함의 서열이 나뉘 어져 있다.
다만 각 드래곤 아족의 로드에 해 당하는 자들은 서열과 상관없이 모두 에이션트 드래곤 다음 가는 무력 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갑자기 지미의 머리 위로 레벨 300짜리 몬스터가 등장 한 셈이다.
와이번 로드의 등 위에서 누군가의 딱딱한 말투가 들려왔다.
“둥개 버려라.”
와이번 로드에게 주인이 있어?
와이번 로드가 소환수라는 말이 된 다.
레벨 300짜리 소환수라니 들어 본 적도 없다.
지미가 놀라든,말든 와이번 로드 는 10개의 머리를 아래로 굽혔다. 와이번 로드의 머리들이 굶주린 맹수들처럼 포악한 이빨을 드러내며 카멜 버드를 물어뜯었다.
“캬악!”
“키 아아악!”
“키아악!”
지미는 카멜 버드의 등에서 뛰어내 리며 간신히 와이번 로드의 먹이가 되는 걸 면했다.
지미가 떨어지는 와중에도 카멜 버 드는 독사 무리에 떨어진 아기새마 냥 무참하게 뜯어 먹혔다.
뼈까지 씹어 먹은 탓에 그 소리가 잔혹한 기음을 내며 지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흩날리는 카멜 버드의 푸른 깃털이 팔랑거리며 씁쓸한 최후를 대변했다.
지미는 추락하는 몸을 받치기 위해 또 다른 소환석을 아래로 던졌다. 땅에 떨어진 소환석에서 레벨 120 짜리 몬스터인 다크 라를레시아가 소환되어 푹신한 꽃잎으로 지미를 받아 냈다.
그사이 와이번 로드가 계곡 절벽 위에 착지했다.
와이번 로드의 등에는 붉은색 의복 차림에 고깔 마스크를 낀 자가 서 있었다.
지미는 폐를 짜내듯 소리를 내어 와이번 로드의 등 위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커뮤니티의 지역장 지미라고 한
다! 그쪽 소속을 밝히고 통보 없이 공격을 날린 것을 사죄해라!”
그 때 와이번 로드의 등에 서 있 는 자가 오른팔을 번쩍 들었다.
그의 동작을 신호 삼아 계곡 양쪽 절벽 위에서 고깔 마스크를 착용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함정은 어디까지나 맛보기에 불과 할 뿐,메인 디시는 절벽 위의 매복 이었던 것이다.
지미가 카멜 버드로 날아올랐을 때 절벽 위도 샅샅이 살폈건만 매복의 흔적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육안으로는 쉬이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해 왔다는 증 거였다.
와이번 로드에 올라탄 자가 지미를 내려다보며 말을 꺼냈다.
“날로 먹는 지역장. 멍청한 별명이 라 생각했는데 실제 본인은 별명보 다 더 멍청하군.”
상대의 도발은 지미를 발끈하게 하 기에 충분했다.
지미의 앞에서 날로 먹는다는 발언 은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금기를 건드린 놈을 어찌 가만두 라.
지미는 가진 소환석을 모두 꺼내어 소환수를 소환했다.
지미의 눈앞에 평균레벨 150수준 의 소환수들이 위풍당당하게 늘어섰 다.
“어디서 굴러먹던 나부랭이인진 몰 라도 소환수 하나 믿고 깝죽거리는 꼴이 눈꼴 시리구나. 커뮤니티 지역 장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 주마.”
지미가 소환수를 총동원하면서 조 직원들의 사기도 올라갔다.
상대는 기껏해야 고레벨 소환수 한 마리에 여태까지 숨어서 상황을 지 켜보던 겁쟁이들이다.
뿐만 아니라 얼굴을 들키기 무서워 괴상한 마스크까지 쓴 작자들 아닌 가.
겉보기엔 산적 떼랑 별반 다를 것 도 없었다.
커뮤니티 조직원들은 무기에 마나
를 부여하며 어깨에 잔뜩 힘을 주었 다.
“지미 지역장님을 따라라!”
“산골 도적 떼들이 커뮤니티 무서
운 줄 모르는구나!”
“남김없이 도륙해 버리자!”
하늘을 찌를듯 사기가 오른 조직원
들을 앞두고 와이번 로드 주인의 대 응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와이번 로드의 주인은 양옆으로 소 환석을 뿌리며 비웃음 섞인 한 마디 를 날렸다.
“누가 한 마리만 있다고 했지?”
와이번 로드의 양옆으로 몬스터 세 마리가 더 소환되었다.
헤드 스콜피온,자이언트 테러버드,
데스 오드.
평균레벨 300의 소환수들이 절벽 위에 정렬하며 압도적인 위용을 자 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