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246화 (246/381)

246화

처음부터 잘못 생각했었다.

웨이브 주민은 웨이브에서 살기 위 해 존재하는 자들이다.

본분을 잊고 공략에 가담하려 했으 니 그에 상응하는 상처를 입을 수밖 에.

강현 일행도 웨이브 주민은 웨이브 주민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다.

약간의 단서만으로 모든 걸 꿰뚫어 보는 안목을 지닌 자다.

파로스가 깨달은 사실쯤이야 한참 전에 알고 있었을 거다.

자신이 공략에 적합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데려왔다.

처음부터 동료로 받아들일 생각 따

윈 없었던 것이다.

공략에 필요할지도 모르니 데려왔 을 뿐이었다.

파로스는 생각했다.

작디작은 스프링필드가 문 엘프에 게 있어 최고의 안식처이자,최상의 낙원이라고.

파로스는 의욕을 잃은 허망한 모습 으로 목걸이형 CP교환기를 내밀었 다.

“내 동족들을 살릴 수 있는 거지?

3층에 있는 아인족이라 했잖아. 살 릴 수 있다고 해 줘.”

샤일록이 보기에도 파로스의 정신

상태는 매우 위험해 보였다.

‘어째서 문 엘프가 인간 놈들이랑 같이 있나 싶었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리는군. 일족이 전멸했던 거였나. 거기다 인간 놈들에게까지 버려졌으 니 미쳐 버릴 만도 하지.’

샤일록의 눈엔 측은하긴커녕 우습 게 보일 따름이었다.

미쳐 버려서 계산이 안 되는 사람 만큼 뜯어먹기 쉬운 봉도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문 엘프이지 않은 가.

부활 항목은 문 엘프족에게 사기를 치기 위해 만들어진 항목이었다.

문 엘프 일족이 절반 이상 몰살당 한 상황에서 문 엘프가 3-2층에 도착했다치자.

대부분의 문 엘프는 부활 항목을 구매하기 마련이다.

3-2층의 규칙상 샤일록은 손님이 구매한 상품을 무조건 시행해야 한 다.

개중 부활 항목의 경우,샤일록이 구매자에게 위탁 받아 부활 대상을 지정한다.

즉 구매자가 A를 살려 달라고 말 하면,샤일록이 A를 부활 대상으로 지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3-2층에서 3-1 층으로 내 려가는 길은 없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샤일록이 3-1 층에 있는 문 엘프를

부활시키지 않고,3-2층의 우드맨을 대신 부활시켜도 확인할 방도가 없 다는 거다.

샤일록이 파로스가 지불한 부활 항 목을 우드맨 부활로 이용할 경우. 공략자들의 공략 시간이 길어지고, 따라서 무적 관통 버프나 방어구 무 적 가호를 더 구매해야 한다.

문 엘프가 절반 이상 죽었을 때 문 엘프를 동반하면,그만큼 공략 난이도가 어려워지는 구조였던 거 다.

샤일록은 겉으론 흔쾌히 주문을 받 은 척했다.

“이거 이거,손님이셨구먼. 날강도 놈들이랑 같이 다니길래 과민반응을 해 버렸군. 미안하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부활 항목을 구매할 수 있는 건지,없는 건지 말해.”

“물론 할 수 있다네. 내 몸 중앙에 있는 원형 마법진에 CP교환기를 대 고 15억 CP를 지불하게나. 300명 전원 살리면 되나?”

“15억에 1, 000천만 더 얹을 테니 까 3-1 층으로 가는 방법도 알려 줘.”

“미안하네만 거기까진 나도 모르겠 군.”

“아…… 그럼 동족들만이라도 부활 시켜 줘.”

파로스가 샤일록의 몸에 새겨진 원

형 마법진에 15억 CP를 지불했다. 목걸이형 CP교환기에 달린 모조 보석이 옅은 빛을 머금었다.

그에 따라 샤일록의 입가에 기다란 웃음기가 깃들었다.

다른 판매품과 달리 부활 항목은 두고두고 쓸 수 있다.

우드맨들이 죽을 때마다 조금씩 부 활을 사용하여 우드맨들을 살릴 것 이다.

‘날강도 놈들이 가지고 있는 도끼 는 내구도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 어. 낄낄,우드맨을 사냥하다가 도끼 를 전부 소모하면 나한테서 무적 관 통 능력을 구매할 수밖에 없을 테 지. 놈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표정이 볼만하겠군.’

울며 겨자 먹기로 5천만 CP를 지 불하는 강현의 모습을 상상하니 저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헌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 다.

파로스의 CP교환기가 작동했건만, 정작 샤일록에게는 한 푼도 들어오 지 않았다.

샤일록이 기둥 윗동아리를 갸웃거 리며 말했다.

“한 푼도 안 들어오는데 CP교환기 제대로 설정한 거 맞나?”

파로스는 CP교환기를 들어 남은 잔액을 확인시켜 주었다.

CP교환기의 보석 부분에 0이란 숫

자가 표기되었다.

“확실히 지불했어. 내 동족들을 살 려 내.”

“이봐,외팔이 문 엘프. 내가 CP를 받고도 안 받았다고 내빼는 걸로 보 이나? 판매 목록의 물건은 CP를 받 으면 무조건 시행하게 되어 있어. 알겠나?”

“살려 내. 살려 내 달라고.”

“이거 가만 보니 수작을 부렸구만. 처음부터 CP가 없는 CP교환기로 지불한 척하고 억지를 부릴 셈이었 군. 날강도들에게 못된 것만 배웠구 나. 저리 썩 꺼져라,사기꾼 놈아!”

“지불했는데 왜 살려 주지 않는 거 야? 너도 똑같아. 인간 놈들이랑 똑같이 날 이용하려고만 해.”

파로스가 샤일록의 나무기둥을 손 톱으로 긁으며 원한을 쏟아 냈다. 손톱이 부러지고,손가락에 피가 줄줄 흘러도 멈추지 않았다.

3-1 층에 있을 때부터 조금씩 정신 붕괴의 조짐을 보였던 파로스다. 한쪽 팔을 잃고,공략자들에게까지 버림을 받은 데다,동족을 살리지 못하는 것까지 악재가 계속 겹쳐 쌓 여 있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폭발 해 버렸다.

지금의 파로스는 정신적으로 완전 히 무너져서 무엇을 원망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샤일록이 보기에는 그 모습이 괴기

스럽기 짝이 없었다.

갑자기 정체불명의 커다란 벌레가 얼굴에 붙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징그러우면서도 무서운 감정이 샤 일록을 공격적으로 만들었다.

“재,재수 없게 들러붙지 말고 꺼 져!”

샤일록이 나뭇가지 팔을 마주 잡아 손망치를 만들고서는 파로스를 내리 찍었다.

부응! 과직!

샤일록의 마주 잡은 손망치에 파로 스가 깔리면서 뼈마디 뭉개지는 소 리가 울려 퍼졌다.

샤일록은 손을 얼어붙은 폭포에 문 질러 묻은 살점과 핏물을 닦아 냈다.

물이 아닌 얼음에 손을 문지른 터 라 완전히 씻기지 않고,약간의 살 점과 핏물이 손에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아주 소량이라도 씹껍하 기 그지없다.

샤일록은 뭉개진 파로스의 시체를 보며 오만상을 썼다.

“에이씨,짜증나게. 별 같잖은 놈 때문에 손만 더러워졌네.”

남은 핏물을 닦느라고 주변의 수풀 을 휴지 삼아 손을 비볐다.

그런데 연신 투덜거리던 샤일록은 별안간 눈앞의 공간이 비틀리는 것 을 목격할 수 있었다.

비틀린 공간이 벌어지더니 시커먼

아공간이 열렸다.

위이이엉!

아공간 사이로 굵직한 나뭇가지 한 가닥이 뻗어 나왔다.

나뭇가지의 굵기는 파로스의 몸통 만 했고,무수히 많은 가시가 돋아 나 있었다.

샤일록은 나뭇가지의 주인을 알아 차리곤 황급히 예를 갖췄다.

“아,아래층 구간엔 어인 일이십니 까,패러사이트 님.”

그랜드 우드의 영역 하단부를 관장 하는 중간 보스.

그게 바로 패러사이트란 존재였다.

그랜드 우드가 제1신화급 웨이브의 지배자라면, 패러사이트는 그랜드우드의 명을 받고 배치된 관리자라 할 수 있었다.

아공간 안쪽에 자리 잡은 어둠 너 머에서,모기 앵앵거리는 둣 가느다 란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재미있는 소재가 있더군. 조금만 참견하도록 하지.]

“차,참견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이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랜드 우드님 의 것입니다.”

패러사이트의 가지가 길게 뻗어 나 가며 파로스의 시체를 찔렀다.

푸욱!

관통한 부위를 중심으로 녹색빛이 뿜어져 나와 스멀스멀 파로스의 몸을 잠식했다.

녹색빛이 강해지면서 파로스의 몸 에 나무뿌리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무뿌리는 파로스의 시체를 비료 삼아 자라나며 파로스의 시체를 뒤 덮었다.

이내 곧 파로스의 시체는 파로스의 외견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무인간으 로 바뀌어 있었다.

패러사이트의 능력 중 하나인 ‘잠 식 나무’의 효과였다.

겉보기에는 우드맨과 비슷해 보이 나 성질은 완전히 달랐다.

잠식 나무에 의해 잠식당한 시체는 ‘레귤러’란 존재가 된다.

레귤러는 패러사이트의 선택을 받

은 자들이다.

잠식 나무에 의해 레귤러가 된 자 들은 무조건 패러사이트에게 맹목적 인 충성을 바친다.

그 대신 생전의 능력을 그대로 유 지한 채로 ‘무적 관통 능력’과 ‘무적 능력’을 가진 나무 괴물이 되어 버 린다.

샤일록은 패러사이트가 벌써부터 레귤러를 투입한 것에 놀람을 감추 지 못했다.

“패러사이트 님. 3층에 레귤러를 투입하시는 건 너무 이른 게 아니신 지……

[감히 내 판단에 이견을 제기하는 것이냐?]

“아,아닙니다. 저 따위가 어찌 그 런 발칙한 상상을 하겠습니까. 제가 우문을 던진 것이니 가볍게 비웃고 말아 주십시오.”

샤일록은 혹여나 패러사이트가 노 하여 자신을 벌할까 싶어 입에 수액 을 바르며 온갖 아첨을 늘어놓았다. 다행히 레귤러 생성을 마친 패러사 이트는 나뭇가지를 도로 아공간으로 집어넣었다.

동시에 아공간이 닫히면서 패러사 이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오로지 파로스의 시체를 레귤러로 만들 목적으로 들렀던 듯했다. 샤일록은 아공간이 닫힌 후에도 한 참 동안 침묵하다가 겨우 숨을 토해냈다.

“푸하! 심장 터지는 줄 알았구먼. 갑자기 패러사이트 님이 방문할 줄 누가 알았겠어?”

그야말로 다이아가 관장하는 곳에 별이 불시 시찰로 나타난 꼴이다. 심장이 멎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 이다.

샤일록은 놀란 나머지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놀란 가슴이 진정될 무렵.

파로스가 변하여 탄생한 레귤러가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원래는 3-2층에 존재하지 않았어 야 할 레귤러였다.

레귤러는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

며 일어나더니 샤일록을 바라보았 다.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던 샤일 록은 아랫것 대하듯 고압적인 태도 를 취했다.

“뭘 그리 보고 있나? 가서 공략자 들이나 처리하게.”

레귤러가 된 파로스는 깊게 파인 시커먼 눈구멍으로 샤일록을 주시했 다. 그러곤 샤일록을 향해 원망 섞 인 말을 쏟아 냈다.

“살려 내지 않았어. CP를 지불했 는데 어째서 살려 주지 않은 거야? 동족만 살려 주면 되는 거였는데. CP를 줬으니까 살려 줘야 하는 건 데.”

샤일록은 깜짝 놀라 헛숨을 들이킬 뻔했다.

레귤러는 기본적으로 웨이브 내의 아인족을 우군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어이된 일인지 파로스가 샤 일록에게 원망을 쏟아 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전의 증오가 너무 큰 나머지 원 념이 그대로 레귤러에 남아 통제가 안 되는 레귤러로 탄생한 모양이었 다.

깊게 파인 눈을 희번뜩이며 한 걸 음씩 샤일록 쪽으로 다가온다. 샤일록은 강한 불안감을 느끼며 파 로스를 밀쳐 내려 했다.

“내게 무슨 짓을 할 생각인가? 패

러사이트 님을 위해 공략자들이나 처리하란 말일세! 이리로 오지 말고 폭포 위로 가게!”

“살려 주지 않았어. 지불했는데.”

“지불하지 않았대도! 헛소리 좀 작 작하게!”

파로스는 샤일록의 앞에 우뚝 멈춰 서며 섬껏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살려 주지 않으면 필요 없어.”

푸욱!

파로스의 오른손에 보라색 기운이 부여되었다.

문 엘프왕의 웨이브 3층 한정 스 킬인 ‘드레인’이었다.

상대의 몸에 손을 박아 넣고 생명 력을 흡수하는 스킬로서,상대방의 ‘스텟’을 고스란히 빼앗는 기술이었 다.

레귤러가 되면서 무적 관통 능력을 지니게 된 파로스다.

때문에 샤일록에게 드레인을 가하 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샤일록은 파로스의 손이 파고든 부 위를 중심으로 서서히 기력을 빼앗 겨 갔다.

아프로 스타일처럼 풍성하던 나뭇 잎은 순식간에 메마른 낙엽이 되었 고,나뭇가지며 나무기둥은 수분이 없는 고목마냥 쭈글쭈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샤일록은 드레인 스킬에 당하면서 뒤늦게 패러사이트의 진의를 깨달았다.

“패러……. 사이트 님……. 설마 드 레인이 3층 한정 기술이라서 여기서 문 엘프왕을……. 그럼 전 버려 진……

샤일록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의 움직임이 몇었다.

파로스가 샤일록의 몸통에서 손을 빼내자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죽은 건 아니었다.

단지 생명력을 모두 빼앗겨 가사 상태에 빠졌을 뿐.

파로스는 샤일록의 생명력으로는 부족한지 허기를 호소하며 폭포 위 로 올라갔다.

파로스가 떠난 직후,쪼그라든 샤

일록의 몸통 중앙에서 반지형 CP교 환기 하나가 맥없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

강현 일행이 3-2층에 온 지도 만 하루가 지났다.

적당한 장소에 난장이 하우스를 깔 아 하룻밤을 보낸 강현은 새벽이 되 자마자 칼같이 기상했다.

강현은 1층으로 내려가 침대 위에 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김혜림과 루 나를 지나쳤다. 그러곤 1층 땅바닥 에 꽂아 놓은 빙백검을 빼냈다.

빙백검에 담은 마나를 거두어 검집

에 넣고 있는데,뒤에서 김혜림이 눈을 비비며 앙탈 섞인 목소리를 홀 렸다.

“으으으응! 에어컨 끄지 마요. 아 직 덥단 말이에요.”

강현은 빙백검에 마나를 담아 도로 바닥에 꽂으며 한심하단 투로 말했 다.

“주변 순찰 다녀오지. 돌아올 때까 지 세수나 해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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