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잘게 쪼개진 마나 파편이 전방위를 점유하며 우박처럼 쏟아졌다.
강현의 스렛을 모방했으니 마나 파 편에 관통 스텟의 효과가 담겨 있을 터.
실드를 끌어올려도 소용없다.
피할까? 한데 어디로? 피한다면 피할 수는 있을까?
피하려면 드림 윙으로 위로 날아오 르는 수밖에 없다.
강현은 드림 윙을 펼칠까 하다가 일행을 불러 모았다.
“내 뒤로 모여!”
강한 외침과 함께 강현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롱의 허물로 만든 갑 옷 조각을 꺼냈다.
토르족과 싸울 때 대부분의 갑옷을 두 동강 냈었다.
지금 꺼낸 갑옷 조각은 그나마 형 태가 온전한 갑옷이었다.
세로 기장이 짧고,가로 기장이 넓 어 인간이 걸치기엔 부적합하지만 비상시에 방패 대용으로 쓰기에는 안성맞춤인 크기였다.
강현은 갑옷 조각을 방패 삼아 자 세를 낮췄다.
뒤이어 김혜림과 루나가 참호 속에 뛰어드는 것마냥 미끄러지듯 강현의 등 뒤에 바짝 붙었다.
강현이 지시를 내리고,외침의 여
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모든 대비 가 이루어졌다.
한 명만 빼고 말이다.
파로스는 뭘 해야 할지 몰라 영거 주춤 단검만 쥐고 있다가 강현의 말 을 듣지 못했다.
뒤늦게 강현 일행이 갑옷 조각 뒤 에 있는 걸 보곤 허겁지겁 달려와 갑옷 조각 뒤로 몸을 날렸다.
“이런 제길!”
잘게 쪼개진 마나 파편은 메뚜기 떼처럼 스치는 모든 것을 갉아먹으 며 지나갔다.
파로스가 아슬아슬하게 방패 뒤로 몸을 들였다.
갑옷 조각에 부딪친 마나 파편은
무적 능력에 막혀 사라졌다.
파팟! 파파파! 파파팟!
마나 파편이 지나간 자리는 폭풍우 라도 들이닥친 양 쑥대밭이 되었다. 한 고비 넘기긴 했다만 느긋하게 있을 시간은 없었다.
우드맨 4명이 검에 그랜드 소드를 부여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양날 도끼만 쓰면 모를까 검까지 사용하게 된 마당에 당장 저들을 쓰 러뜨리는 건 무리였다.
‘좀 더 준비를 갖추고 공략해야겠 어.’
강현이 갑옷 조각을 들며 일어서는 데 별안간 등 뒤에서 파로스가 비명 을 질렀다.
“으아아아! 내 팔! 팔이 없어! 팔 이 없다고요! 으어어영! 저 좀…… 끄옥! 어떻게 좀 해 주세요!”
뒤를 보니 파로스가 왼쪽 어깨를 부여잡고 오열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그의 왼쪽 어깨 아래로는 원래 자 리 잡고 있어야 할 왼팔이 사라지고 없었다.
뒤늦게 갑옷 조각 뒤에 숨었지만 완전히 몸을 감추지 못하고 왼팔이 마나 파편에 노출되고 만 것이었다. 강현은 갑옷 조각을 든 채로 우드 맨과 대치하며 김혜림에게 뒤를 맡 겼다.
“당장 상황을 타개하긴 어려워. 내 가 시간을 끌 테니 루나와 그 녀석 데리고 먼저 물러나.”
김혜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켈피 소 환석으로 켈피를 소환했다. 그러곤 파로스와 루나를 먼저 태우고 자신 역시 켈피의 등에 훌쩍 뛰어올라 폭 포 아래를 향해 달렸다.
그사이 우드맨들은 강현의 지척까 지 다다라 있었다.
우드맨들이 검을 교대로 휘두르며 쉴 틈 없이 강현을 꿰뚫고자 했다. 강현은 갑옷 조각을 방패삼아 우드 맨의 검을 흘려 냈다.
투응! 투우응!
갑옷 조각에 가미된 무적 능력 덕 에 무리 없이 검을 흘려 낼 수 있 었다.
방어 일변도의 전투가 계속되는 와 중에 강현이 눈에 이채를 발하며 우 드맨들을 관찰했다.
우드맨들에게 인간 수준의 지능이 있다면 한두 마리는 따로 빠져서 김 혜림을 쫓을 거다.
드림 윙을 사용한다면 켈피를 타고 있는 김혜림을 따라잡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드맨들을 강 현을 찌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 다.
‘인간 수준의 지능은 없는 것 같 군. 가까이에 있는 적을 우선적으로 공격하는 거겠지.’
혼자 남은 김에 최대한 정보를 뽑 아 보고자 했다.
여태까지 알아낸 건 공략자가 무리 를 이루고 있으면 가장 강한 자를 모방한다는 것과 가장 가까운 공략 자부터 공격한다는 점뿐이다.
강현은 우드맨들의 공격을 흘려 내 면서 석화의 마안을 사용했다.
지능이 부족하다면 석화의 마안에 대처하는 법을 모를 수도 있었다. 석화의 마안이 시전되면서 강현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석화의 마안은 저주 계통이니까 무 적 능력이 있더라도 먹혀들 거다. 허나 우드맨들은 강현의 눈동자 색 이 변할 걸 보곤 칼같이 시선을 아 래로 내렸다.
지능은 없어도 위험을 감지하는 본
능은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야성은 있되,지성은 없는 꼴이 군.’
우드맨의 특징과 3-2층의 특징.
파로스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점.
몇 안 되는 정보가 맞물리면서 머 릿속에 계책의 조각이 쏙쏙 들어와 큰 그림이 되었다.
‘잘만 하면 부활을 유리한 쪽으로 이용할 수 있겠군. 김혜림한테 불평 등 조약이 있으니까 그걸 사용하 면……;지금쯤이면 김혜림이 폭포 아래에 도착했을 거다.
강현은 갑옷 조각으로 우드맨의 검 을 밀어내며 군단의 서 효과를 발동했다.
강현의 신형이 사라지면서 김혜림 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김혜림은 파로스의 왼팔 단면에 포 션을 부어 주고 있었다.
파로스가 반쯤 정신이 나가서 몸을 들썩이는 탓에 팔다리를 과악 누른 채로 포션을 부어야만 했다.
“허억허억! 저 괜찮은 거죠? 괜찮 다고 말해 주세요.”
“괜찮아요. 포션을 부었으니까 금 방 아물 거예요.”
“괜찮다고요? 팔이 없어졌는데 어 떻게 괜찮냐고요!”
패닉에 빠진 파로스는 매우 불안정
안 상태였다.
팔을 잃었다는 사실과 최대치에 달 한 고통이 그의 정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종국에 가서는 김혜림에게 욕지거 리까지 내뱉기 시작했다.
강현은 김혜림의 팔뚝을 툭툭 치며 고갯짓을 했다.
“내가 맡지.”
“어쩌게요?”
“보고나 있어.”
김혜림이 파로스에게서 떨어지며 강현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파로스의 상처는 벌써 아물었고 통 증은 한참 전에 가셨을 터였다. 한데도 죽을상을 하며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강현은 파로스의 멱살을 쥐어 잡아 바위에 그의 몸을 밀어붙이곤 주먹 을 말아 쥐었다.
“머리 식히고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뭐,뭐라고요?”
퍼억!
강현의 주먹이 파로스의 명치를 아 래에서 위로 밀어 올리듯 강하게 후 려 쳤다.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파로스가 짜 내듯 숨을 토해 냈다.
“우욱!”
파로스의 명치에 꽂힌 강현의 주먹 에는 마나유저 중급 수준의 마나가 둘러져 있었다.
적절한 타격과 함께 파로스의 눈이 뒤집혔다.
강현은 멱살을 놓아 파로스가 쓰러 지게 놔두며 손을 탁탁 털었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군.”
“소리가 장난 아니던데 죽은 건 아 니죠?”
“기절만 시켰어. 정신 나간 녀석에 겐 이게 즉효약이야.”
“보기보다 멘탈이 너무 약해요. 정 말로 동족을 몰살시킨 게 맞을까 요?”
“벤 경험은 있어도 베인 경험은 없 는 거겠지.”
생애 첫 부상이 팔을 잃은 거라면
정신이 나갈 법도 하다.
그러나 파로스의 반응을 이해하긴 해도 동정할 생각은 없다.
본인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었 다면 애초에 팔을 잃을 일도 없었 다.
기량이 부족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정서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하다. 공략에 방해가 되면 방해가 됐지, 도움이 될 요소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강현은 기절한 파로스의 옷 뒷자락 을 잡아끌어선 계곡물에 빠뜨렸다. 첨벙!
물속에서 파로스가 허우적거리며 소리쳤다.
“어푸어푸! 살려 주세요! 물에 빠 졌어요,도와주세요!”
“얕은 물이다. 일어나.”
“어? 어라? 빠진 게 아니었잖아.”
“제정신을 찾은 것 같으니 단도직 입적으로 묻지. 우린 휴식 없이 공 략을 재개할 거다. 계속 따라올 건 가?”
파로스는 멍하게 있다가 허전한 왼 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왼팔을 잃을 때에 목격했던 압도적 인 순간이 떠오르면서 공포심이 되 살아났다.
솟구치는 공포감에 파로스가 남은 오른팔로 몸을 감싸며 바들바들 떨 었다.
공략을 너무 얕봤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이자들은 절망적인 상황을 겪고도 왜 이리 태연하지?
항상 겪는 일이라서?
웨이브 공략에 비하면 문 엘프족의 전투는 어린애 장난 수준이었다. 나무 뒤에 숨어 다른 이의 등을 향해 단검이나 획획 던지던 전투.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치졸한 장 난에 불과했다.
‘경지가 달라도 너무 달라.’
파로스는 자신이 얼마나 웨이브 공 락을 얕봤는지,자신의 그릇이 얼마 나 작은지 자각하며 고개를 떨꿨다. 또다시 혼자 남아야 한다.
그나마 나은 점이라면 3-2층엔 샤 일록이라는 말 상대라도 있다는 점 일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 도 팔 하나를 잃은 게 너무 아까웠 다.
파로스의 심정은 앵앵거리는 목소 리란 형태로 반영되었다.
“공략 같은 것에 발을 들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전 못합니다. 탈출이 고 뭐고 그 전에 죽을 것 같은데 따라갈 생각이 들겠습니까? 포기할 테니 여러분끼리 가십시오.”
강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파 로스의 판단을 존중해 주었다.
“올바른 판단이군.”
“비꼬는 겁니까?”
“전혀. 기분 나빴다면 사과를 겸해 서 선물을 하나 주지.”
강현이 김혜림을 향해 손바닥이 위 로 가도록 손을 내밀었다.
“불평등 조약 있지?”
“불평등 조약요? 잠시만요. 여기 있어요.”
불평등 조약.
그랜드 마운틴 쉘터 근처의 던전을 사냥할 때 얻었던 보구다.
불평등 조약 적용 대상은 스텟 구 입 비용이 2배로 늘어난다.
강현은 김혜림에게서 불평등 조약 양피지를 받아선 파로스에게 건넸 다.
“스렛 구입 비용을 2배로 늘려 주 는 보구다. 개인마켓 정돈 이용할 줄 알겠지?”
“이걸로 뭘 어쩌라는 겁니까?”
“샤일록의 말 못 들었나? 부활을 구입하면 3층에 있는 아인족을 되살 릴 수 있어. 거기엔 문 엘프도 포함 될 테지.”
“제 스텟을 팔아서 동족을 살리라 는 뜻입니까? 그거랑 스텟 구입 비 용을 늘리는 보구랑 무슨 상관이 있 는지?”
“스텟 거래는 구입 가격이 늘어나 면 판매 가격도 늘어나. 판매 가격 이 2배로 뛰면 네 얼마 안 되는 스 텟으로도 일족 전원을 살릴 수 있을 테지.”
파로스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파로스의 총 스텟량은 1,500가량 된다.
스렛포인트 1당 60만 CP로 팔 수 있던 것을,120만 CP로 팔게 되면 최대 18억 CP까지 얻을 수 있다. 살려야 할 문 엘프의 숫자가 300 명이니까 15억 CP를 쓰면 모두를 살릴 수 있다.
그러나 파로스는 불평등 조약을 잡 으려다 말고 손을 오므렸다.
그들을 살린다고 해서 자신이 3-1 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건 아니었 다.
설사 3-1 층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동족들이 자신을 용서해 줄지 의문 이었다.
파로스는 또다시 우물쭈물하며 쉽 사리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강현은 파로스의 발치에 불평등 조 약을 떨어뜨리며 나직이 말했다.
“차분히 고민해 보고 결정하도록. 우린 갈 길이 바빠서 이만.”
고개를 떨군 채로 보구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파로스였다.
강현 일행은 파로스를 등지며 빠르 게 그에게서 멀어졌다.
급류가 쏟아지는 계곡을 거슬러 올 라가 파로스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즈음.
김혜림이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
가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말을 꺼냈 다.
“이번에는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 는지 도통 모르겠네요. 무슨 작전인 지 알려 주세요.”
강현은 그 어느 때보다 경쾌하게 검갑을 튕기며 입을 열었다.
“15억짜리 대박 사업을 구상하는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