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쏴아아!
마나기류를 통과하자 시원한 물소 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도착한 곳은 주변이 온통 절벽으로 이루어진 계곡이었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비라도 한바 탕 쏟아져 내렸는지 흙탕물이 급류 를 이루고 있었다.
공기는 습하여 눈썹과 머리카락을 눅눅하게 적셨고,급류 양옆에 쌓여 있는 바윗길에는 노란색 발광이끼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발광이끼를 발로 밟자 물이 한 움
큼 배어 나오며 신발 밑창에 물 자 국을 남겼다.
강현은 노란색 발광이끼를 채집하 며 현재의 상황에 의문을 느꼈다.
“나선 계단이 아니라 바로 다음 층 이 나왔어. 일이 꼬인 느낌이 드는 군.”
김혜림도 위화감을 느꼈는지 강현 의 말에 동의했다.
“나무표지판도 없어요. 4층으로 온 게 맞긴 할까요?”
파로스는 길을 안내한 자신에게 책 임을 물을까 싶어 얼른 스스로를 변 호했다.
“전 분명 데어라이트 스킬이 안내 한 길대로 왔습니다. 잘못된 길일리가 없습니다.”
“네가 잘못 안내했다는 뜻이 아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는 거 지.”
“강현 씨,3층 공략을 무사히 마쳤 다면 토템이 나왔을 거예요. 토템이 나오지 않았다는 건 3층 공략이 끝 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 까요?”
“하도 무난하게 공략하니까 그랜드 우드가 심술 나서 나선계단과 토템 을 치워 버린 것일 수도 있지.”
“지금 이 상황에 농담이 나와요?”
“마스크헬름부터 벗어. 목소리가 제임스 얼 존스처럼 됐어.”
“진짜요? 큼큼,아임 유어 파더.
비슷해요?”
“벗기나 해.”
해당 층을 공략했단 증거인 토템이 없고,다음 층 공략법을 알려 주는 나무표지판도 없다.
모든 정황이 아직 3층 공략이 끝 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 현상은 아무래도 2페이즈로 넘 어갔다고 보면 될 테지.”
“3층은 복층 구조였던 거네요.”
“그래서 나무표지판에 4층이 아니 라 다음 층이라 적혀 있었군.”
“근데 강현 씨,예전에 살로만 영 지에서 해와 달,별 공략했던 거 기 억해요?”
“이게 2페이즈라면 3층 나무표지
판 문구가 바뀌어 있다. 그 말을 하 려고?”
“확인하고 올까요?”
“돌아가는 문이 있다면 말이지.”
계곡 입구 그 어디에도 다시 내려 가는 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3-2층 어딘가에 3-1 층으로 내려 가는 문이 있다 한들 찾을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차라리 나무표지판에 의지하지 않 고 직접 탐색하여 공략방법을 찾는 게 더 빠를 거다.
강현은 가만히 서서 시간낭비를 하 는 것보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쪽 을 택했다.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뭐라
도 나오겠지.”
“그래야겠네요. 대형은 어떻게 짤 까요?”
“나와 파로스가 앞,너와 루나가 뒤. 2열 종대로 이동하는 걸로.”
“그러죠.”
나선계단과 토템,나무표지판이 없 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추론과 결 론이 튀어나왔다.
추론으로부터 결론에 이어지기까지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강현 일행식 회의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파로스로선 입만 뻐끔거릴 수 밖에 없었다.
파로스는 어안이 벙벙해져선 저도 모르게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인간들은 두뇌회전 속도가 장 난 아니게 빠르구나.”
강현과 김혜림이 특출나게 회전속 도가 빠른 거지만 파로스의 머릿속 에선 인간은 두뇌회전이 빠르다는 식으로 일반화가 이루어졌다.
강현의 결정에 따라 강현 일행은 2명씩 나란히 서서 계곡 안쪽으로 이동했다.
항상 취하던 1열 종대가 아닌 2열 종대를 취한 건 나름대로 생각이 있 어서다.
살로만 영지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현 상황을 분석한다면 문 엘프족 공 락이 1페이즈라 할 수 있다.
1페이즈의 요소는 2페이즈 공략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강현 일행이 안고 있는 1페 이즈 요소는 파로스밖에 없다.
파로스가 2페이즈 공략에 필요한 요소인지,2페이즈 공략에 방해되는 요소인지 모르는 이상 함께하되 최 대한 경계해야 한다.
2열 종대라면 강현이 옆에서 억제 력으로서 그를 제어할 수 있고,김 혜림과 루나가 등 뒤를 잡고 있기에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쉽다.
미끄러운 바윗길을 지나 계곡 안쪽 으로 계속 들어가다 보니 폭포가 나 타났다.
쿠르르르르!
강현 일행의 앞을 가로막은 건 나
이아가라를 연상케 하는 대형 폭포 였다.
떨어지는 물은 공중에서 비산하여 잘게 부서졌다가,또다시 비산하여 더 잘게 부서지길 반복했다.
한계까지 작아진 물방울은 수증기 처럼 피어올랐고,폭포 아래는 땅바 닥을 기는 구름이 생긴 양 희뿌연 물안개가 피어나고 있었다.
계곡 입구의 흙탕물은 비가 와서 생긴 게 아니었다.
상류에 웅장한 폭포가 있는데,폭 포에서 쏟아지는 물을 감당할 길목 이 좁다 보니 급류가 된 것이었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천둥 이 간극 없이 울려 퍼지는 꼴인지 라,바로 옆 사람의 말조차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강현은 어깨를 두드리는 감각을 느 끼곤 고개를 돌렸다.
뒤에선 김혜림이 강현을 향해 뭐라 고 외쳐 대고 있었다.
tt.! ..!!”
“잘 안 들리는군. 다시 말해 봐.”
“.. II .!!!”
“안 들려. 나중에 말해.”
목청이 터져라 외쳐 대던 김혜림은 힘에 부쳐 숨을 몰아쉬었다.
소음이 이리 심한데 목소리가 전해 질 리가 있나.
호통의 장인이라도 한 수 접을 소 음이었다.
하다 못한 김혜림이 손가락으로 앞 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것은 폭포 끄트머리 바로 옆에 자라나 있는 거목이었다.
거목의 기둥엔 뿌연 수증기 사이로 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이목구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평범한 나무가 아니라 나무의 형태 를 띤 몬스터나 아인족으로 추정된 다.
강현 일행이 나무가 있는 곳까지 다가가자 나무가 눈을 떴다.
나무는 강현 일행을 확인하곤 폭포 보다 더 광광 울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바깥세상에서 온 자들이여! 나는
나무상인 샤일록일세! 뭐든 대답해 줄 테니 묻고 싶은 게 있다면 묻게 나!”
뭐든 물어보란다.
샤일록이란 자가 3-2층 공략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강현은 목을 가다듬으며 목청을 한 껏 키워 질문을 날렸다.
“4층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알고 싶 다!”
“엥? 뭐라고?”
“4층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알고 싶 다고 했다!”
“안 들려! 아침밥 안 먹었나! 목소 리가 모깃소리 같구먼!”
폭포 때문에 확성기가 있어도 말을
전달하기 힘들 것 같다.
전성기의 머라이어 캐리가 와도 샤 일록에게 목소리를 전달하는 건 어 렵지 않을까 싶다.
샤일록를 베어서 옮기면 되지 않을 까 싶은 생각도 들긴 했는데,베었 다가 그가 죽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궁리한 끝에 묘책이 떠올랐다. 강현은 빙백검을 폭포가 떨어지고 있는 물속에 담그고 마나를 한껏 불 어 넣었다.
빙백검의 능력인 빙결 효과가 발휘 되면서 빙백검을 담근 지점을 중심 으로 물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강현은 서슴없이 가진 마나를 모두
쏟아 내는 것은 물론,마나 저장고 에 있는 마나까지 모두 사용했다. 마나가 보급될수록 빙백검의 냉기 능력이 강화되면서 폭포에서 떨어지 는 물까지 얼어붙었다.
폭포 전체를 얼리는데까진 이르지 못했고,대신 폭포의 절반가량이 겨 울의 폭포마냥 얼어붙어서 빙벽이 선 듯했다.
심장에 쌓인 마나와 보급 스렛에 의한 마나 저장고의 마나까지 다 소 모한 탓인지,가슴팍에 뻐근한 느낌 이 올라왔다.
강현은 리필 스렛의 효과로 심장의 마나만 미리 채워 두었다.
마나 저장고의 마나는 저절로 차오
르게 놔두거나,나중에 흡기 스렛을 활성화시켜서 다시 채우면 된다. 폭포의 절반이 얼어붙으면서 소음 이 대폭 줄어 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강현은 귓속의 멍멍함이 가시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샤일록,우린 4층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이제야 들리는구먼. 근데 어디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고?”
“4층으로 가는 길.”
“그거라면 알고 있긴 한데,맨 입 으론 알려 줄 수 없지.”
샤일록이 나뭇가지로 된 팔을 아래 로 굽히며 나뭇가지 끝을 동그랗게 말았다.
정보를 얻고 싶으면 돈을 내라는 뜻이었다.
나무상인이라는 소개를 괜히 붙인 아닌 모양이다.
강현은 CP교환기를 꺼내어 정보료 가 얼만지 물으려 했다.
그때 누군가가 강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뒤를 돌아보니 역전의 용사마냥 장 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혜림이 있 었다.
“흥정은 제가 할게요.”
김혜림에게 가격 흥정이란 전투나 마찬가지였다.
홍정에 돌입한 순간 김혜림은 한
자루의 명검이 된다.
가격 깎는 명검.
상대가 바가지란 모자를 쓰면 바로 목을 칠 기세였다.
김혜림은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샤일록을 노려보며 운을 띄웠다.
“정보료는 얼마죠?”
“2, 000만 CP만 내게.”
“헛소리를 재치 있게 하는 재주가 있네요. 2만 CPS 합의 보죠.”
“아가씨,세상에는 염치라는 말이 있네. 세상 어디의 누가 99.9퍼센트 할인을 하던가?”
“그럼 됐어요. 공략법은 직접 알아 보죠.”
“후회할 텐데? 정보를 얻고 공략하
는 것과 정보 없이 공략하는 건 천 지 차이지.”
“1만 CP. 그 이상은 못 내요.”
“잠깐! 아까보다 더 내려갔잖나!”
“시간 낭비 시켰으니까 그만큼 페 널티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정보 를 팔지,말지 빨리 정하세요. 10초 마다 100CP씩 내리겠어요.”
“어림없는 소리! 일부러 강압적으 로 말해도 소용없네. 장사꾼이 손해 보면서 장사하는 거 봤나?”
“손해란 건 원가가 들었을 때 나오 는 거 아닌가요? 시대가 어느 땐데 대동강 물을 팔려고 하나요.”
“대동강……. 뭐?”
“10초 지났네요. 9, 900CP,
“허어,참나 말이 안 통하는군.”
“9, 800CP.”
“옛다 인심 썼다. 1, 000만 CP에 가져가게.”
“9, 700CP.”
김혜림은 회중시계를 꺼내어 정확 히 10초마다 100CP씩 깎았다. 이제는 아예 샤일록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가격이 5, 000CP까지 떨어졌을 무 렵.
샤일록이 악을 쓰다가 제 풀에 지 쳐서 마지막 제안을 했다.
“최소한 1만 CP라도 챙겨 주게. 부탁일세. 가격 깎이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내 몸통이 깎여 나가는 것 같아서 괴로워 죽겠네.”
2, 000만 CP라는 말도 안 되는 가 격에서 1만 CP까지 떨어졌다. 이만하면 충분히 악질 바가지 상인 을 응징했다고 볼 수 있었다.
1만 CP면 강현 일행에겐 새 발의 피 정도밖에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러나…….
“4, 900CP.”
독하다 독해.
가격흥정계의 검은뿔버섯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결국 샤일록은 두 나뭇가지,두 나 뭇잎 다 들고 항복을 선언했다.
“졌네 졌어. 못 당하겠구먼. 항복일 세. 내 몸 기둥 중앙에 보면 원형 마법진이 있을 걸세. 거기에 CP교 환기를 대고 4, 900CP를 넘겨주게 나.”
김혜림은 강현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곤 의기양양하게 CP를 지불 했다.
CP를 넘겨받은 샤일록은 그새 몇 년은 더 늙은 양 고목처럼 찌글찌글 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폭포 위에 올라가면 우드맨들이 있을 걸세. 기본적으로 무적 능력을 두르고 있고,공략자의 스텟과 스킬, 무기를 일시적으로 복사하여 똑같이 구사한다네. 우드맨 100마리의 몸통 을 한데 모아 불태우면 문이 열릴 걸세.”
“딱 4, 900CP 값만 하는 정보네 요.”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네. 내가 왜 나무상인이겠나? 이곳 공략에 필 요한 가호를 팔고 있네. 아,이건 가격이 고정되어 있는 물건들이니까 흥정이 안 되네. 내가 가격을 올릴 수도,그쪽이 가격을 깎을 수도 없 는 것들일세.”
샤일록은 아프로 스타일처럼 풍성 하게 자라나 있는 나뭇잎 사이를 뒤 적여 나무판 하나를 꺼냈다.
나무판에는 샤일록이 파는 물건의 목록이 적혀 있었다.
[나무상인 샤일록의 판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