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241화 (241/381)

241 화

모두를 죽였다는 말이 섬짓하게 다 가온다.

동족끼리 서로를 죽였다기보다 파 로스가 문 엘프를 몰살시킨 것처럼 들린다.

실제로 파로스가 모두 몰살시킨 걸 거다.

크리스털 클로버 쟁탈전이 벌어졌 다면 크리스털 클로버를 가진 자가 가장 먼저 제거당하기 마련이다. 크리스털 클로버 첫 발견자인 파로 스가 살아남았다는 건 한 번도 빼앗 긴 적이 없다는 것.

다시 말해 덤비는 족족 죽이고 죽

이다 보니 몰살에 이르렸다는 얘기 가 된다.

강현의 눈에는 파로스가 더 이상 동족을 잃은 비운의 주인공으로 비 치지 않았다.

왕이란 자리는 떠받들어 주는 자가 있어야 성립한다.

왕의 증표에 미쳐 왕 자리의 전제 조건마저 말살시켜 버린 자를 어찌 정상이라 할 수 있으랴.

‘동료로 받아들이는 건 무리겠군.’

동료로 받는 건 무리라 치더라도 다음 층으로 가려면 파로스가 필요 하다.

최대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이용 하고 위험한 기미가 보인다 싶으면 잘라 내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지인 것 같다.

강현은 파로스가 내미는 찻잔을 받 아 식히는 척하며 도로 내려놓았다.

“레벨과 보유 스킬은?”

“레벨은 150대 초반에,단검을 소 환하는 스킬을 이용한 근접전이 주 특기입니다.”

“약하군.”

“네? 제대로 못 들으신 것 같은데 제 레벨은……

“우리 중에 너보다 레벨이 낮은 사 람은 없어.”

“그럴 수가. 전 필요 없다고 말씀 하시는 겁니까?”

“불필요한 전력을 늘리는 건 좋아

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사정을 봐서 특별히 동행을 허락하지. 대신 발목 을 붙잡는다 싶으면 바로 퇴출하겠 어.”

“어떻게든 일인분 몫은 해야 된다 는 거군요. 조건부 동행. 그걸로 납 득하겠습니다.”

강현의 교묘한 화술이 빛을 발했 다.

받아 줄 이유가 없는데 일부러 받 아 준다는 인상을 주어 갑과 을의 입장을 명확히 그어 냈다.

뿐만 아니라,동료의 몫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한다는 빌미로 파로스의 전력도 대강 알아냈고,언 제든 내칠 수 있다는 조건까지 달아두었다.

이만하면 불평등 조약에 가깝다 할 수 있었다.

“그럼 다음 층으로 갈 방법을 찾아 야겠군. 어디 보자. 나무표지판에 뭐 라 적혀 있었지?”

“크리스털 네잎클로버를 찾아서 문 엘프에게 주면 길을 알려 줄 거라 적혀 있었지요.”

“뭔가 아는 거라도 있나?”

“전혀 모르겠습니다. 혼자 지내면 서 여러모로 알아보긴 했는데 도통 클로버의 활용법을 알 수가 없더군 요.”

나무표지판에는 공략자가 찾아서 줘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공략자가 찾아내는 것과 문 엘프가 찾아내는 것의 차이점이 뭘까.

모든 문 엘프에게 없으면서도,모 든 공략자가 가지고 있는 것.

바로 감정서의 유무 차이다.

강현은 감정서를 꺼내며 파로스에 게 손을 내밀었다.

“감정서를 붙이면 뭐라도 알 수 있 겠지. 이리 줘 봐.”

“여기 있습니다.”

감정서를 붙이자 크리스털 클로버 의 성능이 드러났다.

[크리스털 클로베

등급 : SSS

타입 : 영약

특성 : 크리스털 엘리게이터의 배 설물을 비료 삼아 자라난 네잎클로 버. 문 엘프 종족만이 섭취 가능하 며,크리스털 클로버를 섭취한 문 엘프는 문 엘프왕으로 각성한다.

문 엘프왕은 모든 스텟이 기존의 2배로 증가하며 문 엘프의 기본 스킬인 ‘무지개 단검’이 ‘오로라 단검’으로 각성한다. 더불어 스프링 필드에 한 정 스킬인 ‘데어라이트’를 습득하게 된다(생으로 삼키면 목이 막힐 수도 있으니 3시간 동안 푹 달여서 먹는 것을 추천).

“달여서 먹으라는군.”

마침 화로 위에 주전자도 올려놨겠

다 바로 달이면 될 듯했다.

파로스는 크리스털 클로버를 돌려 받아선 주전자에 집어넣었다.

주전자 안에서 크리스털 클로버가 한껏 달아오르며 투명한 즙을 내놓 기 시작했다.

크리스털 클로버를 달이는 시간 동 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동행하기로 결정되었다곤 하나 만 난 지 3시간밖에 안 되는 사이다. 강현 일행은 각자 무기를 점검하거 나 간단한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 냈다.

“김혜림,그거 줘.”

“그거라면 기름 먹인 헝겊이요?”

“그래,그거.”

“언니 언니,나 그거 줘.”

“안 돼. 아직 간식 시간 멀었어.”

느긋한 강현 일행과 달리 파로스는 재학생 무리에 끼여 있는 복학생마 냥 어색함을 주체하지 못했다.

왠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 은데,막상 말을 꺼내자니 냉랭한 반응이 돌아올 것 같아서 쉬이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동료가 되었다고 바로 허물없이 구 는 건 버릇없는 것 같고,가만히 있 자니 붙임성 없는 녀석이라 생각될 것 같다.

파로스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하아,용건이 없으니까 말 꺼내기

가 힘들어지네. 언제 또 이런 기회

가 올지 몰라. 이 사람들을 놓치면 더 이상 바깥세상으로 나갈 기회가 없을 수도 있어. 친해질 수 있을 때 친해져야 하는데 어쩐다.’

혼자는 지긋지긋하다.

문 엘프족이 전멸하고 나서 줄곧 혼자였다.

그릇된 판단을 했다는 건 안다.

크리스털 클로버를 손에 넣은 날, 그 매력에 홀려도 단단히 홀렸다. 지금에 와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건 홀린 거였다.

파로스는 물론이고 모두가 크리스 털 클로버에 홀려 악귀로 변했다. 마지막 일인이 남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악몽의 밤이었다.

살기 위해선 죽여야 했다.

아니,살기 위해서라기보단 클로버 를 지키기 위해 죽였었지.

덤벼 오는 족족 죽였다.

그깟 왕의 징표가 뭐라고 친구를, 가족을,동족을 죽였던 건가.

왕이 되어 봤자 주변에 아무도 없 으면 의미가 없거늘.

후회가 물밀 듯이 몰려와 가슴을 저 몄다.

파로스는 수증기를 내뿜는 주전자 를 응시하며 긴 숨을 내쉬었다.

‘동족의 일은 잊자. 여기서 나가는 것에만 집중하자고. 할 수 있어,파 로스. 힘을 내.’

상념에 잠겨 있다 보니 마음이 차

분해지는 게 느껴졌다.

파로스는 마음을 다잡고 먼저 강현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들 일행의……. 아,이게 아니 지. 우리 파티의 최종 목표가 뭡니 까?”

“그랜드 우드를 공략하는 것.”

“아,어우,그거 참. 정말 좋군요.

탈출구로는 못 나가지만 출구로는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전례가 없어서 확신은 못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겠지.”

“바깥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글쎄. 네가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겠지.”

“아는 게 많진 않습니다. 인간이 많고,살기 힘든 곳이라는 것 정도 일까요.”

빗으로 루나의 머리를 빗어 주고 있던 김혜림이 신랄하게 한 마디 날 렸다.

“수식이 조금 부족하네요. 인간이 엄청 많고,머리가 나쁘면 살기 힘 든 곳이랍니다.”

“만약에 일이 잘 풀려서 바깥에 나 가게 되면 잘 지낼 수 있을까요? 인간들은 저……. 차별이 심하다고 알고 있어서……

“그리 자신감이 없어서 잘 지내겠 어요? 가진 게 없으면 자신감이라도 가져야죠. 그런데 여기 사는 아인족 들은 인간에 대한 지식이 전부 막연하네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되 대답은 하 지 않았다.

요들족도 토르족도 바깥세상에 대 해선 크게 관심을 띠지 않았었다.

각 층의 환경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맞춤형 낙원이기 때문이다.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곳이 있는 데 굳이 바깥세상에 관심을 가질 필 요가 있겠는가.

저희들만의 작은 세계에서 웨이브 에 의해 설정된 삶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

그게 바로 아인족인 듯하다.

아인족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목적 을 달성하려면 인간을 이용해야 하고,인간은 다음 층으로 가려면 아 인족을 이용해야 한다.

요들족과 토르족,문 엘프족의 경 우를 모두 겪고 나서야 아인족과 인 간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크 리스털 클로버를 달인 물이 완성되 었다.

파로스는 주전자의 물을 물컵에 옮 겨 담고 후후 불어 조금씩 달인 물 을 마셨다.

뜨거운 물을 식혀 가며 잔을 비운 결과.

돌연 파로스의 이마에 새겨진 초승 달 문신에서 은색 빛이 흘러나왔다.

은색 빛은 점점 더 진해지면서 보 름달 모양으로 차올랐다.

은색 빛무리가 사그라들었을 때.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보름달 문신 이 자리 잡고 있었다.

파로스는 눈을 감았다가 뜨며 충실 감과 열정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섭취하는 게 정답이었군요. 문 엘 프왕으로 각성했습니다.”

“다음 층으로 가는 길은 알겠고?”

“데어라이트라는 스킬로 길을 찾으 면 됩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출발할까요?”

듣자니 데어라이트란 스킬은 스프 링 필드에서만 사용 가능하고,문 엘프왕에게만 보이는 빛의 길이 생겨나선 다음 층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는 스킬이라고 한다.

크리스털 클로버를 달이는 동안 충 분히 쉬었기에 바로 넘어가도 상관 없었다.

파로스도 침대 밑에서 배낭 하나를 꺼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여행에 필 요한 물품을 미리 꾸려 둔 것이었 다.

강현은 파로스란 새로운 일행을 포 함한 채로 출발하고자 했다.

“볼일을 마쳤는데 머무를 이유가 없지. 바로 출발하자.”

“기다려요. 마스크헬름 좀 끼고요.”

“멋진 패션이 완성되겠군.”

“편한 게 먼저죠. 멋 챙기고 몸 아 프면 본말전도잖아요?”

“올바른 판단이야. 훌륭한 아줌마 가 되었군. 슈타인 백작가로 갈 때 꾸역꾸역 멋 부릴 때가 엊그제 같은 데 말이지.”

“그때 강현 씨가 에르델 황녀님 보 고 예쁜 열대어라 한 게 화근이었 죠. 지금 생각해 보면 일부러 놀리 는 거에 저 혼자 돌부리 차고 넘어 진 격이지만요.”

“요즘은 허둥거리는 맛이 덜 하긴 하지. 예전엔 날 따라오는 게 소원 이라면서……

“끄악! 흑역사 좀 그만 들춰요! 오 늘밤에 이불 차게 할 생각이에요?”

강현 일행은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서 파로스의 집을 나섰다.

파로스가 먼저 사다리를 타고 땅바 닥으로 내려가선 데어라이트 스킬을 발동했다.

스킬이 시전됨에 따라 오직 파로스 의 눈에만 보이는 빛의 길이 생성되 었다.

파로스는 춘추용으로 만든 얇은 로 브를 여미며 먼저 걸음을 뗐다.

“데어라이트 스킬을 발동했으니까 저만 따라오십시오.”

강현 일행은 파로스를 따라 스프링 필드 북쪽으로 이동했다.

숲 속으로 들어갈수록 아카시아 나 무와 벚꽃 나무가 빼곡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두 종류의 나무끼리 나뭇가지가 얽 혀 있어서 마치 흰색과 분홍색으로 된 모자이크 그림의 일부가 된 느낌 이었다.

얼마쯤 걷자 만개한 꽃나무 중에서 유일하게 꽃이 피지 않은 고목이 나 타났다.

파로스는 고목 앞에서 걸음을 멈추 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 빛의 길이 여기서 끊겼습니 다. 나무 뒤에 길이 있는 것도 아니 고……. 어떻게 된 건지 도통 알 수 가 없군요.”

“비켜‘”

신화급 웨이브의 문이 평범한 형태

를 띠고 있지 않다는 건 이미 겪은 바이다.

강현은 고목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샅샅이 살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고목에 불과했 다.

고목 위에도 아무것도 없는 건 마 찬가지 였다.

위로 솟은 부분에는 아무런 특이점 이 보이지 않았다.

위가 아니면 아래일 터.

강현은 빙백검을 뽑으며 일행들에 게 물러나란 손짓을 했다.

“물러나 봐.”

김혜림과 루나,파로스가 뒤로 물 러났다.

동시에 빙백검의 마나폭검이 고목 아래의 땅바닥을 향해 사출되었다. 파파팟!

마나 파편이 적중한 자리에서 흙자 갈이 사방으로 튀더니 땅바닥 아래 가 드러났다.

아니나 다를까,흙이 걷혀 나간 자 리에 문이 나타났다.

문고리를 위로 잡아당기자 문 안에 서 요동치는 마나기류와 조우할 수 있었다.

강현은 유려한 손놀림으로 빙백검 을 반 바퀴 돌려 절도 있게 검집 속으로 집어넣었다.

“여기 있군.”

특유의 무뚝뚝한 한 마디와 함께

강현이 마나기류 속으로 뛰어들었 다.

뒤이어 김혜림과 루나,파로스도 마나기류에 들어가며 다음 층으로 향했다.

네 사람이 문 안으로 들어간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열렸던 문이 도어클로저를 단 현관문마냥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투응!

그랜드 우드의 영역 3층 출구가 열렸다 닫혔을 때.

3층 입구 쪽에 있던 나무표지판의 문구가 바뀌었다.

[그랜드 우드의 영역 3-2층 공략 법]

[3-2층에 있는 나무상인에게 4층 으로 가는 법을 물어봐라(주의사항 : 3-1 층을 공략할 때 문 엘프가 절 반 이상 죽었다면 3-2층에 문 엘프 를 데려가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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