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 화
김혜림과 루나를 겨냥한 시커먼 불 꽃덩어리가 포물선을 그렸다.
흑염의 열기가 악의를 흩뿌리듯 궤 적마다 아지랑이를 흩날렸다.
루나는 흑염을 상쇄시키기 위해 다 수의 눈사람들을 소환했다.
“스노우맨! 스노우맨! 스노우맨!”
눈사람 10개를 단번에 소환하려다 보니 순식간에 마나가 바닥났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마나포 션을 마실 여유는 없었다.
현재 가진 걸로 해결을 봐야 하니 최대한 마나를 효율적으로 쪼개야만 했다.
루나는 적절한 마나운용으로 3미터 높이의 눈사람 10개를 소환했다. 헌데 마룡도 마냥 가만있지만은 않 았다.
마룡이 네 다리를 단단히 땅에 디 디며 몸을 반 바퀴 회전시켰다. 몸집이 크다 보니까 몸을 돌리는 것 자체가 흉악한 공격이 되었다. 꼬리로는 허공에 떠 있는 강현과 지트를,앞발의 발톱으론 눈사람을 훑었다.
꼬리 쪽이야 강현이 드림 윙을 펼 쳐 지트를 붙잡고 날아올라 피했지 만,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눈사람들 은 파도를 맞은 모래성처럼 바스러 졌다.
콰콰과! 콰아!
스노우 캐넌이 눈을 내뿜는 양 사 방으로 눈가루가 흩날렸다.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김혜림과 루 나의 모습이 드러났다.
흑염은 어느새 두 사람의 머리 위 까지 이르러 있었다.
급한 대로 강현이 드림 윙에 가속 도를 붙이며 군단의 서 효과를 쓰려 했다.
군단의 서로 이동하는 즉시 두 사 람을 붙잡으면 가속도를 살린 채로 날아오를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김혜림이 강하게 일갈을 내 지르며 강현의 행동을 막았다.
“오지 마요!”
자신이 가도 늦을 것을 염려하여 한 말이었다.
강현은 그리 판단했다.
허나 예상과 달리 김혜림은 아주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루나를 데리고 허물 밑으로 숨어든 것이다.
허물이 쭈글쭈글한 덕에 허물 아래 로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만한 공간 이 벌어져 있었다.
흑염은 누런 비늘 사이로 비치는 김혜림과 루나에게 곧장 떨어졌다. 마룡의 비늘이 가진 무적 효과는 흑염마저도 쉬이 물리쳤다.
김혜림의 기책은 거기서 끝나지 않 았다.
김혜림은 비늘 아래에서 루나를 향 해 한쪽 눈을 찡긋했다.
“루나. 눈사람 소환할 수 있지?”
루나는 남은 마나량을 체크하곤 고 개를 끄덕였다.
남은 마나가 얼마 없긴 해도 3미 터짜리 하나 정도는 소환할 양은 남 아 있었다.
“스노우맨!”
루나가 스킬 시동어를 영창하자 스 태프로 지목한 곳에서 눈덩이가 솟 아나더니 눈사람이 되었다.
허물 아래에서 솟아났기에 눈사람 의 크기만큼 허물이 위로 밀려났다. 눈사람이란 지지대가 세워지면서 허물이 천막처럼 볼록 솟았다.
김혜림은 얼른 머릿속으로 이미지 를 그리며 허물 아래 공간에 하늘계 단을 소환했다.
소환할 수 있는 최대치인 200개를 모두 소환하여 다닥다닥 붙였다. 색은 투명하게,각도는 45도로 비 스듬하게 기울였다.
소환이 끝나자 허물 아래에 대형 경사면이 생겨났다.
루나는 김혜림이 무엇을 하고자 하 는지 깨닫곤 눈사람이 스스로 넘어 지게 했다.
천막의 지지대가 쓰러지면 지지대 가 쓰러지는 방향으로 천막이 쏠린 다.
거기다가 쏠리는 방향에 경사면이
있다면?
경사면을 따라 주르륵 미끄러지지 않겠는가.
허물도 다를 바가 없었다.
허물은 눈사람이 쓰러지는 방향으 로 쏠리면서 김혜림이 만든 경사면 위로 미끄러졌다.
더하여 무게가 무겁다 보니 한번 경사면을 타기 시작하자 금방 관성 이 붙어 낭떠러지까지 주르륵 밀렸 다.
김혜림과 루나의 2인 3각이 척척 들어맞으면서 허물을 탈취하기 일보 직전까지 다다랐다.
한데 허물이 쓸려 나가며 김혜림과 루나가 허물 바깥으로 노출되었다.
마룡이 아가리를 크게 벌리며 한달 음에 김혜림과 루나를 삼키려 했다.
“크르르르!”
“강현 씨! 지금이에요!”
강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양 김혜 림과 루나의 뒤에서 나타났다. 강현은 김혜림과 루나의 겨드랑이 아래로 팔을 쑤욱 넣으며 두 사람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김혜림과 루나 도 강현을 부둥켜안으며 몸을 고정 시켰다.
동시에 강현이 날개를 움직여 옆으 로 빠져나왔다.
간발의 차로 마룡이 땅에 이빨을 박으며 흙을 씹었다.
허물은 낭떠러지 바깥으로 밀려나
서 리버스 마운틴 아래로 떨어진 지 오래였다.
허물이 지상으로 떨어진 이상 허물 확보는 완료된 셈이었다.
강현은 김혜림과 루나를 안은 채로 정상에서 벗어났고,지트는 마롱의 주의가 강현에게 쏠린 사이 통로를 통해 리버스 마운틴 내부로 들어갔 다.
강현 일행이 정상에서 벗어나자 마 룡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양 레어 앞으로 돌아가 몸을 둥글게 말았다. 강현은 드림 윙으로 리버스 마운틴 아래의 지상을 향해 비행하며 나직 이 중얼거렸다.
“무거워.”
김혜림이 짚이는 바가 있는 듯 움 찔거리면서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 았다.
“요,요즘 토르족한테 얻은 설탕으 로 사탕 같은 걸 만들어서…… 그렇 게 많이는 안 늘었어요!”
“루나도 많이 먹었어! 근데 사역마 라서 살 안 쪄! 헤헤헤.”
“재 보지는 않았지만 아직 40kg대 라고요. 아마도……
“시장 과배기라는 것도 만들어 먹 었어!”
“언니는 기초대사량이 높아서 그 정도론 살 안 찐단다.”
“오빠가 긴팔 아저씨 찾아갔을 때 파운드케이크도 만들었어! 1층에서 가져온 과일로 쟁도 만들었고…… 그리고 또,또 뭐 만들었더라?”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돼!”
강현이 토르족과 술잔을 나누며 정 보를 뽑아내는 동안 계속 간식거리 를 만들어 먹었나 보다.
평소에 관리란 관리는 다 하던 사 람이 요 근래 보름간 탄수화물 덩어 리를 섭취했는데 살이 안 찌면 이상 하다.
강현은 지상으로 내려가 바닥에 착 지하며 입을 열었다.
“너 바느질도 잘했었지?”
“네. 싸우다가 어디 찢어진 부분이
라도 있어요?”
“아니,너 바지 치수 늘릴 때 문제
는 없겠다 싶어서.”
“아! 정말!”
김혜림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볼을 부풀렸다.
강현은 김혜림의 허리에서 팔을 풀 며 검지로 그녀의 부푼 볼을 포옥 찔렀다. 그러곤 머쓱해하는 김혜림 을 뒤로하며 리버스 마운틴으로 들 어갔다.
*
“껄껄껄! 정말로 마롱의 허물을 구 했구만! 이거 참 대단한 친구들일 세! 자자,서 있지 말고 이리 오게 나. 오늘은 경사스러운 날이니 럼주창고를 동내 보세나!”
마롱의 허물을 확보했다는 소식에 모든 토르가 작업을 멈추고 모여들 었다.
쇳가루 묻은 손은 망치 대신 술잔 을 쥐었으며,땀이 흐르던 얼굴에는 웃음기가 흘러넘쳤다.
그들에게 있어 마롱이 얼마나 증오 스런 존재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 었다.
리버스 마운틴에 토르족 특유의 호 탕한 웃음소리와 밀가루 반죽 굽는 냄새가 그윽하게 퍼졌다.
특히 토르족이 내놓은 밀떡은 특산 물이라 칭해도 좋을 만큼 일품이었 다.
개인적으로 떡볶이 만들 때나 쓰는 밀떡을 생각했는데 그것보단 인도 음식인 난에 가까웠다.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을 대장간 불 길로 단숨에 굽고,토르족 비전의 진득한 시럽을 찍어서 먹는데 포근 포근한 식감과 과하지 않은 단맛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전문 인도 식당에서 만든 난을 조 청에 찍어 먹는 느낌이랄까.
시럽을 찍지 않으면 술안주로도 딱 이라서 금세 빈 럼주통과 빈 그릇이 탑처럼 쌓여 갔다.
강현은 토르족의 감사 및 축하 인 사를 받으며 술잔을 나누다가 김혜 림을 발견했다.
혹자가 말하길 식성을 음악으로 비 유하면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메탈 이라 했다.
김혜림의 경우 밀가루 음식도 좋아 하니 헤비메탈이라 할 수 있지 않겠 나.
술과 밀가루 음식을 모두 좋아하는 그녀가 음식과 술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강현은 김혜림에게 가서 말을 붙였 다.
“누가 보면 제사 지내는 줄 알겠 어.”
“강현 씨.”
“왜.”
“지금 심각한 고민 중이에요.”
“들어 주지. 말해 봐.”
“술 마시고 안주로 물만 마시면 살 안 찌겠죠?”
음식이냐,술이냐 고민한 끝에 술 을 선택한 거냐.
후우,내 주변엔 왜 이리 술을 좋 아하는 여자밖에 없는지 원.
내가 원인인가.
그것만은 절대 아니지.
속 썩일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 데 내가 원인일 리가 있나.
강현은 혼자서 도리도리 고개를 저 으며 김혜림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 드렸다.
“좀 더 먹어도 괜찮아.”
강현의 한 마디에 김혜림의 표정이 조명이라도 된 양 환히 밝아졌다.
“살이 좀 더 붙은 타입이 취향인 거죠?”
“전혀. 네 바지는 튼튼하니까 괜찮 다는 말이었다만.”
“아! 아! 아! 정! 말!”
김혜림이 자리를 박차며 리버스 마 운틴 아래로 내려가는 통로로 뛰어 갔다.
난장이 하우스로 돌아가서 쉬려는 모양이었다.
다이어트 자극이 필요할 때 적절히 자극을 주는 세심함.
무려 상대방이 입 밖으로 내기도 전에 예측해서 미리 자극을 가해 주었다.
절대로 나 때문에 술을 찾는 게 아니다.
아무리 봐도 천성적으로 술을 좋아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강현은 루나와 라이가 시럽통을 동 내고 있는 현장을 지나치며 모랄레 스에게로 갔다.
모랄레스는 벌써 럼주를 한 통 비 웠는지 코가 벌게진 채로 토르들과 농담을 나누고 있었다.
모랄레스는 강현이 다가온 것을 보 곤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하며 호탕 하게 웃었다.
“껄껄껄! 우리의 영웅께서 오셨구 만! 어떤가? 한 잔 하겠나? 시원하게 한 잔 말아 주겠네.”
“충분히 마셨어. 그보다 허물을 가 공하는 과정에 대해 못 들어서 말이 지.”
무적 능력이 남아 있는 허물이다.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잘라 낼 수조 차 없을 터.
허물을 구해야 한다는 선결과제를 해결했다.
그러니 다음 단계에 대해 들어야 하지 않겠나.
여태껏 토르족의 말 속에 노이즈는 섞이지 않았으니 정말로 허물을 가 공할 기술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다만 확신을 가지기 위해 허물 가 공법을 확인해 두고자 한다.
모랄레스는 닿은 수염이 출렁거릴 정도로 강하게 머리를 흔들며 웃었 다.
“허허허허! 우리의 기술력을 의심 하는 겐가? 염려 말게나. 우리 용광 로는 우드의 씨앗으로 만든 녀석이 라 무적 능력을 무시하고 녹여 버린 다네.”
“그리 좋은 용광로가 있었나?”
“허허허! 마음 같아선 용광로를 정 상까지 끌고 가서 마룡을 녹이고 싶 은데,안타깝게도 마룡 놈이 욕조로 착각하게 하기에는 너무 좁더군.”
“허물을 가공하는데 얼마나 걸리 지?”
“내일부터 하면 늦어도 이틀 안에
는 완성할 걸세. 더 빨리 완성해 줬 으면 하나? 그러려면 우린 취한 채 로 망치를 잡아야 할 걸세.”
“시간은 빠를수록 좋지만 완성도를 우선시 해 줬으면 좋겠군.”
“그럼그럼. 물건을 만들 때 설령설 렁 만들어서야 쓰나. 사용하는 사람 의 목숨이 걸린 물건인데 정성들여 만들어야지.”
물건을 대충 만들거나,기술력에 문제가 있는 등의 문제가 있어 보이 진 않았다.
직접 물건을 만들 만한 여건은 되 지 않으니 토르족이 물건을 만들 때 까지 기다려야 했다.
마룡과의 싸움에서 직접적인 타격
은 없었어도 상당한 심력 소모가 있 었기에 이틀의 휴식 시간은 적절하 다 볼 수 있었다.
강현은 적당히 술자리에 어울려 주 다가 난장이 하우스로 돌아갔다. 난장이 하우스 주변에서 김혜림이 땀을 흘리며 조깅 중이었기에 바깥 에 시원한 물병 하나를 놔두고 휴식 에 들어갔다.
*
다음 날,토르족은 대장간 작업을 일시에 중지하여 용광로를 식혔다. 작업에 필요하다던 이틀 중 하루는 용광로를 식히는데 소모했다.
본격적인 작업은 이틀 뒤에 시작되 었다.
토르족은 용광로를 리버스 마운틴 아래로 옮겨서 불을 때웠고,허물의 끄트머리부터 용광로에 집어넣어서 조금씩 허물을 녹여 냈다.
허물을 녹인 물이 파이프를 따라 홀러내렸다.
토르족은 그 물을 주형틀에 담아서 무기와 갑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난장이 하우스에서도 멀지 않은 곳 인지라 강현 일행도 작업장 근처에 서 작업 과정을 지켜보았다.
한창 작업이 진행되던 중 강현은 작업 결과물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 하곤 모랄레스에게 말을 걸었다.
“모랄레스,갑옷 사이즈가 토르족 사이즈밖에 없군.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