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화
수십 개의 소형 스노우맨은 삽시간 에 하수도를 틀어막으며 눈의 벽을 만들었다.
더불어 소형 스노우맨들은 팔을 휘 둘러 하수도에 흐르는 물을 향해 눈 덩이를 던졌다.
스노우맨의 눈덩이에는 빙결 효과 가 있다.
눈덩이가 물에 닿을 때마다 구정물 이 차츰차츰 얼어 갔다.
쩌저적! 쩌저적!
얼음 위에 물이 끼얹어지고,그 물 이 다시 얼어붙으며 삽시간에 두꺼 운 얼음벽이 생겨났다.
물은 대량으로 흘러들어 오는데 하 수구가 막혀 봐라.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는가.
물이 넘쳐 올라오다 못해 역류하기 마련이다.
잠시 후 세이아나는 정원수를 엄폐 물 삼아 정원을 우회하여 보관소 측 면으로 갔다.
복도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1층은 벌써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 다.
보관소 소속 사람들은 물바다가 된 건물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곤 욕을 치르고 있었다.
“소장님 물이 안 빠져요!”
“화장실이랑 복도 배수구 박박 긁
어 봐!”
“그랬는데도 안 빠진다니까요!”
“야! 1층에서 물 안 빠진다고!”
“네? 물 안 내려간다고요? 더 흘 려 보낼까요?”
“어휴,저 화상들. 물소리 때문에 안 들리는 것 같으니까 자네가 직접 올라가서 계단에 물 흘려보내지 말 라고 전하게.”
“우리 선에서 해결 안 될 것 같은 데 업자 부르는 게……
“위에서 자꾸 물 흘려보내서 막힌 거 아닌가? 물만 안 흘려보내면 괜 잖을 것 같은데.”
구식 빌라에서 물청소를 하듯 위층 에서부터 차례차례 물청소를 하고,물을 아래로 흘려보내는 식으로 청 소를 하고 있었나 보다.
그 왜 집집마다 바스켓에 물을 담 아 바깥에 내놓으면 그 물로 위층에 서부터 청소를 하지 않는가.
물 소비량의 정점을 찍는 청소법이 다.
지하실이 없는 건물인지라 역류한 물이 1층에서 고이고 있다.
종국에는 보관소 1층 전체로 오물 섞인 구정물이 들어찼다.
소장은 역한 냄새 때문에 집게를 만든 손가락으로 코를 막으면서도 고집을 부렸다.
“왜 물이 안 빠지지?”
“저…… 소장님 이제는 업자 부르
시는 게……
“이거 한 군데만 뚫어선 안되겠구 만. 위 층 사람들 다 불러서 배수구 뚫게 하게.”
“구정물에 계속 발 담그시는 것도 힘드실 텐데 일단 나가시죠.”
“있어 보게. 내가 이쪽 방면에 대 해서 좀 아는 편이라니까.”
1층 사람들이 복장 터져 미치려고 할 때.
2층,3층에 있던 사람들은 계단을 내려오다가 1층의 상황을 목격했다. 배수구를 뚫어야 한다고 해서 내려 오긴 했다.
허나 오물이 떠다니는 구정물에 발 을 담그고 싶은 자가 어디 있겠나.
다들 2층에서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지만 하필 소장이 솔 선수범해서 물을 퍼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기관의 최 고 상사가 몸소 모범을 보이고 있 다.
아랫사람으로서 이보다 짜증나는 상황이 있으랴.
‘저기요? 소장님? 배수구 막혔으면 사람 부르죠? 우리 사무직인데 물 막힌 거까지 해결해야 합니까?’
‘소장님 뭘 모르시나본데 구정물에 발 담그고 있으면 피부병 생겨요. 그러니까 문 열고 알아서 물 빠질 때까지 가만 놔둡시다.’
‘아! 진짜 싫다. 나 피부 약한데 미
치겠네. 포션값 줄 것도 아니면서 소리만 더럽게 질러요.’
말로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짜 증 나는 상황 속에서 선택지는 하나 밖에 없었다.
상사가 안 되겠다고 깨닫기까지 지 시에 따르는 것.
오직 그것만이 사회생활 잘하는 방 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배수구를 뚫어 보 려고 온갖 지랄염병을 다 떨었는데 도 물이 빠지지 않았다.
소장 본인도 중간부터 아니다 싶었 지만 자존심 때문에 버티고 또 버티 다가 결국 지시를 철회했다.
“앞문,뒷문,옆문 다 열고 물이
빠져나가게 놔두게.”
“네.”
“그리고 시내에 나가서 업자 불러 오게나.”
“하아,아까 전부터 말했는데……
“응? 못 들었는데 뭐라고 했나?”
“아,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소장과 조직원들이 진이 빠진 몰골로 정문을 향해 나갔다.
동시에 세이아나가 움직였다. 세이아나는 서슴지 않고 열린 창문 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2층으로 향 했다.
본부에서 지낼 때 보관소를 심심찮 게 이용해 봤었다.
때문에 개봉의 썰이 소장실에 있다 는 것 정도는 훤히 꿰뚫고 있었다. 세이아나는 2층에 있는 소장실로 들어가기 전에 3층부터 들렀다.
3층으로 올라가니 보관실과 출입을 관리하는 창구나 나타났다.
창구에 놓인 마름모꼴 거치대 안에 보관물 반입 명단이 있는 게 보였 다.
세이아나는 명단을 펼쳐서 아공간 목걸이를 넣은 사물함 번호를 찾아 냈다.
“E3598, E3598, E3598.”
사물함 번호를 잊어버리지 않게 계 속 입으로 중얼거리며 2층의 소장실 로 갔다.
소장실 안에는 4개의 캐비닛이 있 었는데 그중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캐비닛을 열었다.
캐비닛 안에는 수십 개의 개봉의 씰이 하나하나 갈고리에 깊숙이 걸 려 있었다.
원래 개봉의 썰은 같은 고유번호를 지닌 봉인의 썰이라면 몇 번을 사용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커뮤니티 본부에선 같은 고 유번호의 개봉의 썰과 봉인의 썰 수 십 쌍을 마련하여 따로따로 사물함 을 봉해 놓았다.
개봉의 썰 하나로 모든 사물함을 여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세이아나는 캐비닛에 손을 넣기 전에 손가락을 겹쳐서 뼈마디를 풀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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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r=「!
“좋아,세이아나. 여기서 실수하면 안 돼. 한 방에 끝내자.”
소장실의 캐비닛은 평범한 캐비닛 이 아니라 ‘까탈스런 수전노의 보관 함’이란 보구였다.
캐비닛 주인 이외에 다른 자가 캐 비닛의 물건에 손을 대면,캐비닛 속의 모든 물건을 캐비닛 주인에게 로 전송하는 효과가 있었다.
원래라면 보관소 소장만이 개봉의 썰을 꺼낼 수 있지만 한 가지 편법 이 존재했다.
손을 넣고 캐비닛 안의 물건을 재
빠르게 빼내면 전송되기 전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캐비닛의 효과가 발동하여 물건이 전송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卜2초 내외.
갈고리에서 개봉의 썰 하나를 꺼내 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세이아나는 엄지와 검지를 벌려 집 게 모양으로 만들곤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그리고 숨을 멈추며 집중력 을 예리하게 다듬었다.
‘하나,둘,셋,지금!’
세이아나의 손가락이 갈고리에서 개봉의 썰을 매끄럽게 빼냈다. 기름칠이라도 한 듯 스무스한 움직 임이 었다.
개봉의 썰을 캐비닛 바깥으로 빼내 는 즉시 간발의 차로 캐비닛 안의 물건이 모두 사라졌다.
모조리 소장의 품으로 전송된 것이 었다.
단 하나,빼낸 개봉의 썰만은 여전 히 세이아나의 손에 남아 있었다. 캐비닛의 효과가 발동하자마자 열 린 창문을 통해 소장의 분노 어린 고함 소리가 전해져 왔다.
“캐비닛 보구가 발동했어! 캐비닛! 누군가 캐비닛에 손을 댔다!”
세이아나는 부리나케 3층 1급 보 관실로 뛰었다.
보관소에 남아 있는 경비원은 문제 가 되지 않는다.
다만 너무 시간을 지체하면 소식을 전해 들은 경비대가 방향을 틀어 본 부에 복귀할 거다.
탈것도 없는 마당에 추격전을 벌이 고 싶진 않다.
아공간 목걸이만 회수하고 바로 본 부를 빠져나가 재정비를 해야 한다. 강현에게로 되돌아갈지, 장로회의 봉인석 이용계획을 파헤칠지는 그 뒤에 정할 일이다.
1급 보관실 안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물함과 기밀정보가 담긴 서 류가 꽂힌 책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사물함에는 손잡이마다 봉인의 썰 이 붙어 있었으며,책장에는 봉인의 썰이 붙어 있는 서류봉투가 꽂혀 있었다.
세이아나는 사물함 사이로 들어가 서 사물함 문에 달린 번호표를 살폈 다.
E3596…… E3597…… E3598! 찾 았다!
E3598번 사물함에 대고 개봉의 썰 을 가져다 대자 봉인의 썰이 찢어지 면서 사물함 문이 열렸다.
사물함 안에는 오직 아공간 목걸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요 녀석. 너도 갇혀 있느라 지겨 웠지?”
아공간 목걸이를 목에 걸자 차갑게 식은 끈이 목덜미에 착 감기면서 충 실감을 더해 주었다.
아공간 목걸이 착용을 마치기 무섭 게 경비원 두 명이 보관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경비원들은 위협을 위해 마나 블레 이드가 깃든 검을 내밀다가 헛숨을 들이 켰다.
“본부의 경비대다! 저항할 생각은 마…… 허억! 세,세이아나? 탈옥해 서 바깥으로 나갔던 게……
죄수복과 은색 머리카락,매혹적인 외견.
모든 게 세이아나를 가리키는 지표 다.
북쪽 담벼락을 넘어 도주했다는 탈 옥범이 버젓이 보관소에서 나타난 것이다.
안 그래도 감당키 어려운 상대인데 아공간 목걸이까지 되찾았다.
게다가 보란 듯이 세이아나가 아공 간 목걸이에서 메모라이즈 스태프를 꺼내고 있다.
그 광경은 경비원들에게 있어 사신 이 낫을 뽑아 드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세이아나는 메모라이즈 스태프를 경비원에게 겨누며 짓궂게 웃었다.
“BANG,、,
스태프 끝에서 뻗어 나온 파이어볼 이 경비원에게 날아가 작렬했다.
퍼영!
파이어볼의 폭발에 휘말린 경비원 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일이었다.
그을린 시체 조각이 비산했고,1급 보관소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벽에 구멍이 뚫리고 책장이 도미노 처럼 쓰러지는 와중에도 봉인의 씰 이 부착된 사물함과 서류봉투는 무 사했다.
봉인의 썰이 부착된 물건은 무슨 일이 있어도 파손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이아나는 뚫린 구멍으로 나가려 다가 쓰러진 책장 앞에서 멈춰 섰 다.
책장 아래로 쏟아진 서류봉투에는
1급 회의록이라 적혀 있었다.
장로회 회의에서 매우 중요한 내용
이 오갔을 때 그날의 회의록은 1급 회의록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았 다.
수많은 1급 회의록 중 어느 하나 에 봉인석 작전과 관련된 정보가 담 겨 있을지도 몰랐다.
‘이 안에 찾던 정보가 있을지 도……. 근데 개봉의 썰 외에 봉인 의 썰을 풀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 야. 에잇,모르겠다. 밑져야 본전인 데 되는대로 챙겨 가 보자.’ 세이아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서류 봉투를 아공간 주머니에 쑤셔 넣었 다.
20? 30개쯤 되는 서류봉투를 챙기 고 난 후에야 벽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파이어볼의 여파로 생겨난 연기를 뚫고 나가자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 오며 3층 높이가 실감되었다.
세이아나는 추락하기 전에 스노우 맨을 소환했다.
“스노우맨!”
메모라이즈 스태프가 가리키는 지 점에서 수 미터 높이의 눈사람이 솟 아났다.
세이아나의 몸이 눈사람의 머리 위 에 파묻혔다.
눈사람의 머리 위에 대자로 사람 자국이 찍힘과 동시에 세이아나가 몸을 일으켰다.
일부러 담벼락 높이만 한 크기로
소환했기에 바로 앞에 본부 담벼락 윗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세이아나는 눈사람의 머리 위에서 담벼락 위로 발을 옮겼다.
“옷차!”
더불어 담벼락 바깥쪽에도 눈사람 을 소환하여 눈사람의 몸을 미끄럼 틀 삼아 본부에서 빠져나왔다.
본부 안쪽에선 성난 목소리가 연이 어 들려왔다.
“북쪽은 개뿔! 아직 본부에 남아 있잖아! 경비대 얼간이들은 어디까 지 간 거야!”
“아직 멀리 가진 못 했을 거다! 수 배령을 내려!”
“죄수복을 입고 시가지로 들어가진
않을 거다! 쉘터 관문을 모두 닫고 다리 밑과 하천,인적 드문 곳을 중 심으로 수색을 펼치라고 전해라!”
본부에서 나온 것까지는 좋은데 이 다음이 문제네.
관문을 닫아 버리면 나갈 수 없어.
최소한 옷이라도 갈아입을 수 있으 면 좋을 텐데,이 꼬락서니로 들어 갔다간 여러 의미에서 주목받겠지. 급한 대로 예전 지인이라도 찾아가 볼까?
믿을 만한 녀석들은 아니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어.
세이아나는 최대한 탈출 가능성이 높은 동선을 선택해서 움직이려 했 다.
헌데 맞은편 쓰레기장에서 어떤 중 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이아나 양! 여기일세! 이리로 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