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힘 조절이 안 되긴 했다만 결과적 으로는 간수들을 일거에 정리하는데 성공했다.
길은 열렸지만 느긋하게 있을 시간 은 없었다.
여기가 아마 지하 2층일 테니 파 이어볼 작렬하는 소리가 지상까지 전해졌을 거다.
중범죄자용 지하감옥이 어디에 위 치해 있었더라?
아,그래그래 본부 부지 북서쪽 구 석에 있었었지.
내 아공간 목걸이는 1급 보관창고 에 있을 테니까 본부 부지 남동쪽까지 대각선으로 가로질러서 가야 되 네.
졸지에 에단 헌트 역할을 맡게 됐 구만.
“아공간 목걸이 회수,장로회 봉인 석 계획 파악,탈출. 할 게 많네,할 게 많아.”
성공 가능성이 바늘구멍만큼 좁다.
그렇다고 무서워서 꽁무니 내빼는 건 적성이 맞지 않는다.
커뮤니티에서 VIP 룸까지 내주며 극진한 대접을 해 줬는데 조금은 보 답(?)을 해 주고 가야 하지 않겠나.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선 다수 의 무리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 다.
“방금 건 무슨 소리냐!”
“중범죄자용 지하감옥에서 발생한 소리입니다!”
“거기엔 세이아나만 갇혀 있지 않 느냐! 망할! 문제가 생겼다면 그년 의 탈옥밖에 없다! 상부에 이 일을 알리고 감옥 주변의 모든 길을 봉쇄 해!”
“상대는 은발의 마녀라 불리던 그 세이아나다! 섣불리 들어가지 말고 포위망을 강화하는 것에 집중해라!”
위에선 폭발음만으로도 세이아나의 탈옥을 짐작하고 대응을 펼치고 있 었다.
본부의 경비대는 섣불리 지하감옥 으로 내려오지 않고 지상에서 포위망을 형상하는 중인 것 같았다. 그들이 잡아야 하는 자는 지역장 중 화력으로서 으뜸으로 평가 받는 세이아나다.
좁은 지형에서 차례차례 화력 스킬 의 먹잇감이 될 바엔 실력자들이 도 착하길 기다리는 게 나았다.
‘오올? ,나쁘지 않은 대응인걸? 그 런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정면으 로 나가 줄 생각은 없는데 말이야.’ 세이아나는 복도 모퉁이로 향했다. 모퉁이 오른쪽으로 가면 계단으로 가는 통로가,왼쪽으로 가면 창고가 나온다.
기억이 맞다면 지하 2층은 중범죄 자용 감옥,지하 1증은 간수 사무실,1층은 본부 경비대 사무실 순으 로 이어져 있을 거다.
모든 층이 계단 통로 맞은편은 대 개 창고로 쓰고 있다.
즉 천장을 뚫으면 바로 위층 창고 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세이아나는 지하 2층 창고로 들어 가서 천장을 향해 비스듬히 손을 뻗 었다.
“애시드 필러!”
세이아나의 손에서 산성액이 소방 호스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물대포 마냥 강하게 쏟아져 나왔다.
산성액은 돌로 이루어진 천장을 녹 이면서 지하 1층으로 통하는 구멍을 만들었다.
세이아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뚫 린 구멍에 손을 조준하며 재차 애시 드 필러를 쏘았다.
애시드 필러가 절묘하게 천장 구멍 을 통과하여 지하 1층 창고의 천장 마저 뚫어냈다.
구멍 사이로 지상 1층의 창고 풍 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구멍에서 다량의 산성액이 뚝뚝 떨 어지며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소리를 냈다.
구멍 안은 산성액투성이라 실드 없 이는 통과하기 힘들었다.
파이어볼의 여파 때문에 실드를 모 두 깎아 먹은 세이아나로선 당장 구멍을 통해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바깥의 경비대는 세이아나 의 실드가 남아 있는지 소모되었는 지 알지 못한다.
누가 봐도 구멍을 통해 나간 것처 럼 보일 거다.
“이렇게 해 두면 시간 벌기 정도는 되겠지. 이제 탈출구를 뚫어 볼까 나.”
세이아나는 손을 탁탁 털며 감옥 복도로 되돌아갔다.
불길이 가라앉은 복도에는 시커떻 게 탄 간수들의 시체가 그득했다. 간수들의 시체를 뛰어넘어 지하감 옥 가장 안쪽에 있는 감방으로 들어 갔다.
창고에 뚫은 구멍은 어디까지나 시 간벌이용이고 이번에 뚫을 구멍이 진짜 탈출구였다.
“애시드 필러.”
세이아나가 바닥을 향해 손을 뻗으 며 산성액을 쏟아 냈다.
애시드 필러의 산성액이 한 점에 집중되어 바닥에 깊은 구멍을 냈다. 구멍 아래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 려왔다.
커뮤니티 본부를 관통하는 거대한 하수도였다.
구멍을 통해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올라왔다.
그도 그럴게 커뮤니티 전체의 온갖 배수구를 통해 흘러든 물을 바깥으로 배출하는 통로다.
냄새가 안 날 수가 없다.
세이아나는 구멍으로 뛰어들려다가 코를 잡으며 몸서리를 쳤다.
“으에엑,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최소한의 대비는 하고 들어가든가 해야지.”
그녀는 바쁘게 복도를 지나쳐 창고 로 가선 죄수복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열었다.
몸에는 죄수복을 몇 겹이나 껴입 고,손과 발에는 죄수복을 찢어서 만든 천을 칭칭 감았다.
그 결과 몸은 눈사람처럼 빵빵해졌 으며,손과 발은 호빵 머리를 가진 인간의 것처럼 동글동글했다.
마무리로 천을 길고 동그랗게 말아 코까지 완벽하게 막았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세이아나는 하 수구로 향하는 구멍으로 뛰어들었 다.
*
본부 경비대 대장 가르시아는 위화 감을 느끼고 있었다.
“폭발음이 발생한지 30분이 지났 어. 지금쯤이면 고개를 내밀 법도 하건만.”
지하 2층에서 발생한 폭발음과 연 기,연락을 했건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소리잔,고스텟 실력자가 쓴 파이어볼이라는 스킬분석관의 말. 모든 정황이 세이아나의 탈옥을 가 리키고 있다.
헌데도 세이아나가 감옥 바깥으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지하 1층에 스킬 봉인 저주를 거 는 함정을 설치했고,지상에는 본부 경비대를 총동원하여 포위망을 형성 하고 있다.
세이아나가 보구를 전부 갖추고 있 다 하더라도 뚫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견고한 포위망이었다.
그런데 정작 검거 대상인 세이아나 가 감옥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가르시아로선 골머리를 싸멜 수밖 에 없었다.
“타이밍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 군. 부관,상부의 대답은 돌아왔 나?”
“소식을 듣고 급히 복귀 중이시라 합니다. 발견 즉시 무조건 사살하되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이라고 하십니 다.”
오늘 아침에 지미가 혁명군 포로들 을 데리고 그랜드 마운틴으로 떠났 다.
혁명군 포로의 숫자가 많다 보니 그에 비례하여 관리하는 병력도 많 이 필요했다.
장로회에서 지미에게 상당수의 병 력을 붙여 주면서 본부 내의 병력이 3분의 1가량 줄어들었다.
거기에 지미를 배웅한다고 장로회 와 군혁 등의 상층부 사람들이 쉘터 외곽으로 나가 있던 참이었다.
한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본부가 무주공산에 가까운 상태가 되자마자 지하감옥에서 사고가 터지고 말았 다.
부관이 회중시계를 꺼내어 폭발음 발생시점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 지 체크했다.
“대장님,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건 세이아나입니다. 그녀도 그걸 알 텐 데 가만히 있는 건 이상합니다.”
“정찰대로부터의 보고는?”
“정찰 스킬을 쓰고 있긴 한데 연기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아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건 세이아나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지 않는다 는 건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리 라.
이쪽에서 먼저 돌입해야 하나?
가르시아는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끙끙 앓았다.
그런데 건물 뒷마당에서 포위망을 이루고 있던 또 다른 부관이 달려와 선 급하게 보고를 올렸다.
“대장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더냐?”
“뒷문을 통해 하멜론의 쥐를 들여 보낸 결과 창고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구멍은 지하감옥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계단이 아니라 천장에 구멍을 뚫 어서 탈출했다 이 말이냐!”
“뒷마당은 인원부족으로 포위망 형 성이 늦었습니다. 간발의 차로 세이 아나를 보지 못한 게 아닐까 싶습니 다.”
“본부 북쪽 출구는? 거기서도 보지 못했…… 젠장,봤다면 벌써 보고가 들어왔겠지. 뒷마당으로 빠져나와서 바로 담을 넘었다고 볼 수밖에.”
가르시아로선 미치고 팔짝 될 노릇 이었다.
세이아나가 탈출한 것도 모르고 빈 감방을 향해 독기를 품고 있었던 꼴이 잖은가.
탈옥을 저지하기는커녕 엉뚱한 곳 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장로회가 돌아오면 무조건 가르시 아를 탓할 거다.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라고 한 건 자기들이면서 말이다.
독박을 쓰는 것을 면하기 위해서라 도 반드시 세이아나를 척살해야 한 다.
가르시아는 부관들을 향해 성질을 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뭣들 하고 있나! 당장 병력을 재 정비해서 추격에 나서지 않고!”
“아,네! 알겠습니다!”
“포위망을 풀어라! 전 병력을 10인
1조로 재편성해서 북문 너머로 향한 다! 비행 스킬을 가진 자들은 당장 날아올라서 세이아나의 행방을 쫓아 라!”
*
커뮤니티 본부의 경비대가 북문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을 무렵.
세이아나는 하수도를 거슬러 올라 가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멈춰 섰다.
‘이쯤에서 나가면 본부 남동쪽 정 원이려나.’
미로 같은 하수도를 감만으로 거슬 러 왔기에 어림짐작으로 탈출 지점 을 예상해야 했다.
본부 부지 내에는 맨홀 뚜껑이 존 재하지 않기에 직접 통로를 만들어 야 했다.
세이아나는 천장을 향해 비스듬히 손을 대며 애시드 필러를 시전했다. 산성액이 곧게 뻗어 나가며 지상으 로 통하는 통로가 생겨났다. 배수로를 지나오는 동안 실드가 회 복되었기에 실드를 끌어올려 비스듬 히 뚫린 통로를 기어 나갔다. 지상으로 나오자 각진 형태로 다듬 은 정원수가 눈에 들어왔다.
목표한 대로 본부 남동쪽의 정원으 로 빠져나온 것이었다.
세이아나는 겹겹이 걸치고 있던 천 뭉치며,죄수복을 벗어서 정원수 수풀 사이에 깊숙이 구겨 넣었다.
죄수복을 빵빵하게 겹쳐 있은 덕에 가장 안쪽의 옷은 말끔했다.
그러나 오물만 안 묻었다 뿐이지 냄새는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도 스며들어 있었다.
“아흐,냄새야. 이건 향수를 버킷으 로 갖다 부어도 안 지워지겠는걸.”
세이아나는 손으로 코 주변에 부채 질을 하며 정원수 너머를 응시했다. 정원수 하나를 두고 바로 건너편에 벽돌로 지은 건물이 한 채 있었다. 본부로 들어오는 귀중품 및 각종 기밀 서류를 관리하는 보관소였다. 보관소를 지키고 있는 조직원은 2 명이 전부였다.
‘조직원을 처리하는 건 쉬운데 그 다음 단계가 성가시단 말이지.’ 보관소에 있는 물건은 단계별로 열 람 방식이 다르다.
3급 보관물은 일반 공개,2급 보관 물은 사물함 보관,1급 보관물은 봉 인의 썰로 봉인되어 있다.
정상적인 절차로 1급 보관물을 열 려면 장로회의 인장이 찍힌 허가증 을 가지고 가서,개봉의 썰을 지급 받아 열람해야 한다.
물론 세이아나는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보관소 규정상 감당하지 못할 습 격을 받을 경우엔 개봉의 썰을 파괴 하도록 되어 있어. 들키지 않고 개봉의 썰을 손에 넣어야 해. 한순간 만이라도 보관소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만 있으면 좋을 텐데.’
고민하던 차에 하수도에서 물 흐르 는 소리가 거세게 들려왔다.
괄괄괄괄!
밑에 있는 하수도는 보관소와 이어 져 있다.
보관소에서 물을 많이 쓸 일이 있 을까?
아! 딱 한 가지 물을 많이 쓸 일이 있긴 하다.
바로 대청소할 때다.
대청소날에는 싫어도 물을 많이 쓰 게 된다.
‘내가 여기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물이 별로 안 흘렀었는데 이상하네. 아? ,내 탈옥 때문에 경계령이 떨어 졌다가 방금 풀린 거구나. 대청소를 중단했다가 지금 재개한 건가 보 네.’
보관소 대청소인 걸 알자마자 정수 리를 강타하듯 계략이 번뜩였다. 어렵지 않게 보관소 사무직 및 경 비원들의 주의를 돌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계략이었다.
세이아나는 간만에 관능적인 미소 를 띠며 하수도 구멍에 손을 대었 다.
“후후,나도 아직 머리에 녹이 낄 나이는 아닌가 보네.”
세이아나의 손에서 소형 스노우맨 이 소환되어 구멍 아래로 떨어졌다. 세이아나는 마나가 전부 소비될 때 까지 소형 스노우맨 계속 소환하여 하수도를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