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장로회 회의가 끝나고 지미가 혁명 군 포로들을 이송하는 게 확정되었 다.
지미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마 냥 황급히 본부 내의 간부 숙소로 뛰어갔다.
간부 숙소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 한 방까지 가선 급하게 문을 두드렸 다.
탕! 탕! 탕!
“군혁! 안에 있어? 나야,지미. 급 하게 의논할 게 있어. 얼른 문 열 어.”
노크 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
에 문이 열리면서 군혁이 얼굴을 내 밀었다.
“너와 나 사이의 거래는 마무리된 걸로 안다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중요한 이야 기니까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군혁은 방 안을 힐끗 보더니 문을 좁히며 거절했다.
“방 안 꼴이 말이 아니라서 힘들 것 같군. 여기서 말해라.”
지미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아 무도 없음을 확인하곤 낮은 목소리 로 말했다.
“후우,방금 장로회에서 어떤 의제 가 오갔는 줄 알아? 최강현이 신화 급 웨이브를 공략하고 있으니 아예 신화급 웨이브를 봉인해 버리자고 결정했다고.”
“알고 있어. 자네가 인솔자로 지목 되었더군.”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빠르겠네. 난 장로회의 심부름꾼 처 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공적을 원 했던 거야. 근데 공적을 세운 지금 도 달라진 게 없어.”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봉인 임무가 취소되도록 꾀를 내 줘. 심부름꾼 노릇에는 진절머리가 난다고.”
“아까도 말했지만 자네와 나 사이 의 거래를 끝났어.”
“이거 왜 이래? 장로회에서 세이아
나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어. 웨이브 를 봉인해 버리면 최강현도 같이 봉 인되니까 더 이상 세이아나에겐 볼 일 없다 이거지. 자네의 계획이 수 포로 돌아갈 지경인데도 가만히 있 을 생각이야?”
강현이 세이아나를 구하러 오지 않 은 시점에서 군혁의 작전은 엉망이 되었다.
놈의 다음 행선지가 신화급 웨이브 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신화급 웨이브가 있는 오지에 들어 갔다면 세이아나가 붙잡혔다는 소식 을 전해 듣지 못했을 거다.
신화급 웨이브에 들어간 이상 강현 의 생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신화급 웨이브이 지 않은가.
신화급 웨이브를 확실하게 공략할 수단을 손에 넣었다는 소문이 있지 만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놈은 제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아 들어갔다.
곧 죽을 자를 뭐 하러 유인하겠나.
고로 인질 또한 필요 없다.
군혁에게 있어서 세이아나는 이용 가치가 떨어진 장기말에 불과했다. 군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작전의 끝 을 고했다.
“더 이상 작전을 지속할 이유가 없 어. 머리가 아프니 쉬게 놔두었으면 하는군.”
“군혁. 정말 이러기야?”
“나라고 속이 안 쓰린 줄 아나? 길게 보고 짜 온 판이 완전히 뭉개 졌어. 거기에 자네의 응석까지 받아 주라 이 말인가?”
“그,그건..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다. 멀리 가지 않도록 하지.”
말을 마친 군혁은 지미의 면전에 대고 문을 강하게 닫았다.
쾅!
문 너머에서 지미의 발소리가 멀어 지는 게 들려왔다.
군혁은 지미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 라진 걸 확인한 후에야 탁자 위의 촛불을 켰다.
탁자 위에는 방금까지 작성 중이던 서신이 놓여 있었다.
서신에는 이리 적혀 있었다.
[장로회 청소 작전 실패. 지역장 지미가 혁명군 포로들을 이끌고 제1 신화급 웨이브를 봉인하러 갈 예정. 다수의 실험체를 확보할 절호의 기 회. 신속히 병력을 파견하길 바람. 모든 것은 신을 위하여.]
*
“간수야! 간수야!”
중범죄자용 감옥 안에 울려 퍼지는 기운찬 목소리.
이쯤 되면 호출에 가깝다.
간수는 짜증 돋은 얼굴을 하며 세 이아나가 갇혀 있는 감옥으로 갔다. 세이아나가 갇힌 감옥은 철창만 달 려 있지,별천지나 다름없었다.
불 때 주지,특식 주지,심심하다 고 해서 책까지 빌려다 주지.
간수 입장에선 자신이 죄수를 감시 하러 온 건지,죄수 수발을 들러 온 건지 구별이 안 될 지경이었다. 간수가 도착하자 세이아나가 철창 사이로 다 읽은 책을 내밀었다.
“이거 다 읽었으니까 다른 거 가져 와. 화로의 숯도 갈아 주고.”
간수는 세이아나를 아니꼽게 노려 보다가 책을 발로 걷어찼다.
투퍽!
책이 세이아나의 손에서 벗어나며 감옥 복도를 뒹굴었다.
책을 걷어찬 여파가 손까지 전해져 왔다.
세이아나는 손을 좌우로 흔들며 핀 잔을 주듯 말했다.
“책을 막 다루는 걸 보니 지성인은 못 되겠네.”
“닥쳐라. 네년이 지금 어떤 처지인 지 알기나 하느냐?”
“피 뿌릴까 봐 무서워서 벌벌 떨더 니 뭘 먹고 이리 용감해졌대. 오즈 가 용기 솟는 샘물이라도 주든?”
“홍,상부에서 네년의 사형 날짜를 잡았다. 죽이기 전에 고문실로 가서 그간의 무례를 모두 청산할 터이니 각오해라.”
“어머나,우리 서방 낚는 건 포기 했나 봐?”
“곧 죽을 년에게 알려 줄 건 없다. 고문실로 들어가기 전에 후회나 실 컷 하고 있어라.”
간수는 떨어진 책을 주워서 가져갔 다.
뿐만 아니라 세이아나에게 열기를 제공하던 화로도 치웠다.
사형이 확정되었다는 건 사실인 듯 했다.
날 사형시킨다는 건 인질로서의 가 치가 없어졌다는 뜻이잖아.
최강현을 유인할 필요가 없어졌다
는 거네.
그 녀석은 내가 돌아오든 말든 신 화급 웨이브로 직행한다고 했었어.
커뮤니티 본부에서 녀석의 행선지 를 알아낸 걸까?
그런 거면 현이가 신화급 웨이브에 서 자멸해서 죽을 거라고 판단했거 나,아니면 확실하게 현이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걸 거야.
어느 쪽이든 내가 사형당하는 건 변함없어.
슬슬 빠져나가 볼까나.
세이아나는 침냥에 손을 깊숙이 집 어넣어 하얗고 기다란 물건을 꺼냈 다.
그동안 닭을 연발하며 얻어 낸 닭
요리에서 몰래 하나씩 빼낸 닭 뼈였 다.
줄곧 간수들의 눈을 피해 닭 뼈의 끄트머리를 날카롭게 갈아 왔었다. 닭을 조리하게 되면 닭 뼈의 강도 가 약해져서 피부를 파고들기도 전 에 부러지고 만다.
쓸 만한 강도를 지닌 닭 뼈를 손 에 넣기 위해 꾸역꾸역 닭요리만 계 속 주문했었다.
‘이걸 만들려고 닭을 몇 마리나 먹 었는지 원. 한동안 닭은 쳐다만 봐 도 신물 날 것 같네.’
닭 뼈를 숨기고 날을 갈길 반복한 결과,겨우 무기로 쓸 만한 뼈송곳 몇 개가 만들어졌다.
세이아나는 뼈송곳을 챙기며 그중 하나를 손에 쥐었다. 그러곤 봉인 수갑을 최대한 아래로 당겼다.
뼈송곳의 날카로운 부분이 드러난 왼쪽 손목에 박히면서 긴 상처를 내 기 시작했다.
푸숙!
*
중범죄자용 지하 감옥의 입구에선 두 명의 간수가 한창 포커에 열중하 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이 시간에 저 녁식사를 나르고 있었지만 오늘부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두 간수 중 한 명이 카드 한 장을 손패로 가져오며 코웃음을 쳤다.
“훗,망할 년의 사형 날짜가 정해 지니까 속이 다 시원하구만. 1만 받 고 1만 더.”
“윗대가리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랬 다 저랬다 하는 건지 모르겠네. 어 차피 사형 시킬 거 빨리 결정했으면 우리가 고생할 일도 없었잖아. 에이 씨,카드패 꼬라지하고는. 죽으련 다.”
“그나저나 갑자기 너무 조용하지 않아? 그년 성깔에 가만히 있을 리 가 없는데.”
“사형 확정된 것 때문에 충격 먹은 거겠지. 목이 날아간다는데 제깟 년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겠어?”
“됐고,쇠사슬 가져와. 슬슬 그년 묶어서 고문실에 처박아 둬야지.”
“야,너만 실컷 CP 먹고 째기 있 어?”
“교대시간 다 됐어. 일하자고 일.”
간수는 동료를 창고로 보내고 세이 아나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
기나긴 복도를 걸어 세이아나가 갇 힌 감방에 이르렸다.
그리고 고개를 내밀어 철창 안을 확인했는데,분위기가 심상치 않았 다.
세이아나가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더구나 그녀의 왼쪽 손목에 채워진
봉인 수갑 아래로 피가 흐르고 있었 다.
오른쪽 손에는 피가 묻은 뼈송곳이 쥐여져 있고 말이다.
간수는 자신의 이마를 철썩 두드리 며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에이씨,뒤지려면 사형장에서 뒤 질 것이지.”
언제든지 손목을 그을 수 있게 뼈 송곳을 준비해 뒀나 보다.
고문실에서 치욕을 당하느니 자결 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공개 처형을 시킬 자였다면 문제가 됐을 터이나 비공개 처형을 할 예정 이었으니 크게 문제될 건 없다.
감옥 안에서 자결하는 일이야 드문
일도 아니니 시말서까지 쓸 일은 아 니다.
단지 감옥 안에서 발생한 시체는 간수가 직접 처리해야 되기에 짜증 을 낸 거였다.
퇴근시간에 추가업무가 발생했는데 짜증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 가.
때마침 쇠사슬을 가지러 간 간수가 돌아왔다.
“어이,쇠사슬 가져왔어. 어이쿠야, 이건 또 뭐야. 이년 지 혼자 손목 그었어?”
“야,오늘 정시퇴근 하긴 글렀다. 가서 간수장님 불러와라.”
“이 빌어먹을 년은 죽을 때까지도
민폐 끼치는구만.”
잠시 후,감옥 안의 상황을 전달 받은 루텐하이저가 바쁜 걸음으로 철창 앞에 도착했다.
루텐하이저는 철창을 등진 채로 쓰 러져 있는 세이아나를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언제부터 저리 있었느냐?”
“발견한지 30분 됐고, 피가 마른 상태로 봐선 한두 시간쯤 전에 자결 을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결하 게 놔뒀다고 장로회에서 문책하는 건 아니겠지요?”
“비공개 처형할 년이 알아서 뒈져 줬는데 그걸 보고 뭐라 하겠느냐. 너희는 여기 있거라. 죽었어도 여전히 피에 맹독이 섞여 있을 테니 내 가 가서 확인하마.”
루텐하이저는 허리춤에 달고 있던 열쇠다발을 빼내어 문을 열었다. 그 러곤 쓰러져 있는 세이아나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겼다. 그녀의 죽음을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선 똑바로 뉘여 맥을 짚을 필요 가 있었다.
세이아나의 어깨를 당겨 똑바로 눕 히려던 순간.
죽은 줄 알았던 세이아나가 갑자기 팔을 휘둘렀다.
다른 준비동작은 일체 없었다.
그저 팔을 휘두른 게 전부였다. 하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처음부터 그녀의 손에는 뼈송곳이 라는 흉기가 쥐여져 있었기에.
덕분에 세이아나는 최단거리,최단 시간으로 공격을 행할 수 있었다.
뼈송곳이 루텐하이저의 목을 사정 없이 파고들었다.
푸욱!
루텐하이저는 대응태세조차 갖추지 못하고 속절없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세이아나는 루텐하이저의 뒤에서 그의 목에 팔을 둘러 강하게 죄였 다. 그러곤 두 번째 뼈송곳을 꺼내 어 한 번 더 루텐하이저의 목을 찔 렸다.
푸욱!
두 번째 뼈송곳이 목을 꿰뚫자 루 텐하이저의 몸이 추욱 늘어졌다. 수도 없이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 려 왔던 동작이다.
동작을 행함에 있어 군더더기는 없 었으며 루텐하이저의 숨통을 완전히 끊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수 초에 불과했다.
갑작스러운 사태는 간수들을 당황 시키고도 남았다.
“저,저 빌어먹을 년! 죽은 척을 하고 있었어!”
“간수장님이 죽었다! 사태가 더 심 각해지기 전에 저년을 제압해!”
간수들이 보구를 앞세우고 감옥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안 그래도 비좁은 문인데다 당황한 나머지 서로 들어오려다가 입구에서 몸이 뒤엉켰다.
그사이 세이아나는 루텐하이저의 허리춤에서 열쇠 다발과 부채 보구 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감옥 안으 로 들어오려는 간수들을 향해 부채 를 휘둘렀다.
스킬과 마나가 봉인되었긴 해도, 보구 발동 봉인까지 당한 건 아니 다.
접힌 부채에서 바람의 칼날이 뿜어 져 나오며 간수들에게 쇄도했다. 가장 먼저 좁은 문을 통과하려던 간수가 허겁지겁 실드를 끌어올렸다.
“어어어? 젠장할!”
바람의 칼날은 간수의 실드에 부딪 치며 찢어질 듯한 파공음을 냈다. 와지직!
놀란 간수가 뒷걸음질을 치면서 뒷 사람과 뒤엉켰다.
쿠당탕!
“미친놈아! 갑자기 뒷걸음질을 치 면 어쩌잔 거냐!”
“간수장님의 보구를 훔쳐 썼다고! 나보고 뒈지란 거야?”
“이 신조차도 딱히 여기는 저능아 놈들아! 실드 끌어올리고 차례차례 들어가란 말이야!”
간수들이 겨우 재정비를 했을 때.
감옥 안에선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 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땡그랑! 땡그랑!
떨어진 것은 세이아나의 팔목을 감 싸고 있던 봉인 수갑이었다.
세이아나는 수갑자국이 남은 손목 을 문질렀다.
와아,홀가분해라. 이제 좀 살 것 같네. 이제 수갑도 풀있겠다 나가 볼까나.
“겁먹지 말고 공격해! 오랫동안 마 나 동결 상태에 있었으니 당장은 마 나운용이 힘들 거다! 공격해!”
간수들이 무기를 들며 차례차례 감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당황하느라 시간을 잡아먹은 만큼
감방에 들어서자마자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세이아나는 달려드는 간수들을 향 해 손을 뻗으며 신랄하게 한 마디 날렸다.
“어머,내가 누군지 잊었나 보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이아나의 손 에서 파이어볼이 뻗어 나왔다.
퍼영!
파이어볼이 폭발하면서 감옥 안은 물론이고 철창 바깥까지 불길이 뻗 어 나가며 간수들을 집어삼켰다. 불길이 지하감옥 안을 가득 메우는 가운데 불길 속에서 세이아나가 걸 어 나왔다.
위력 조절이 안 된 탓에 세이아나
본인의 실드마저 걷혀 나가면서 죄 수복 끄트머리에 불이 붙었다. 세이아나는 옷깃을 강하게 털어 불 을 끈 후 멋쩍게 콧잔등을 긁적였 다.
“에구구,오랜만이라 힘 조절에 실 패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