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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는 플레이어-224화 (224/381)

224화

요들숲에 외부인 삼인조가 들어온 이후로 좋은 일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특히 흑발 사내는 시건방지다 못해 꼴도 보기 싫을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어떻게든 쫓아내고 싶었 는데 스스로 알아서 뒈져 주었으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랴.

허나 죽었다는 말만 듣고 기뻐하긴 이르다.

데일리는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간신히 참으며 최대한 냉정하게 대 응하려 했다.

“놈은 보통 실력자가 아닌데 어쩌

다 죽었느냐? 좀 더 자세히 말해 봐라.”

“항아리를 채우려고 물을 뜨러 갔 는데 숲 북쪽의 절벽 쪽에서 큰 소 리가 나더군요. 뭔가 싶어 달려가니 절벽이 크게 무너져 있고,놈의 여 자는 바위를 치우려고 안간힘을 쓰 면서 도와 달라고 사정하더군요.”

“놈이 무너진 바위 아래에 깔렸단 말이냐?”

“바위 사이에 놈의 팔과 다리가 삐 져나와 있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즉사했는지 팔다리가 축 늘어졌더군요. 2층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봉 변을 당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안내해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야겠다.”

세상일이란 정말이지 한 치 앞도 모르는 법이다.

예기치 않게 짜증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고,예기치 않게 짜증나는 일이 해결되기도 하니 말이다.

하루 사이에 전자와 후자를 모두 겪었다.

오늘같이 굴곡 있는 하루를 멋지게 마무리하려면 적의 시체를 눈에 담 는 것보다 좋은 게 있겠는가.

데일리는 잠옷에서 사제복으로 옷 을 갈아입고는 절벽이 무너졌다는 곳으로 서둘러 발을 옮겼다.

*

요들숲 북쪽에 자리 잡은 높은 절 벽지대.

절벽지대 위에는 마르지 않는 샘이 있었고,그곳에서 홀러나온 물이 숲 전체를 적신다.

절벽 끄트머리는 숲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서,올라가기만 하면 숲 전경 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잘만 하면 규칙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나무 위를 정 탐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절벽은 온통 발광이끼로 뒤 덮여 있어 심히 미끄러운데다,언제 어느 곳이 부서질지 모르는 연약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바람만 불어도 심심찮게 낙석이 발 생하기에 절벽 아래에는 항상 부서 진 바위의 잔해가 쌓여 있다.

그래서 요들들은 절벽을 두고 바위 들이 눕는 곳이라 하여 록 베드라 부르곤 한다.

데일리 일행이 절벽에 도착하자 먼 저 온 요들들이 바위를 걷어 내고 있었다.

데일리는 작업 중인 요들 사이에서 팡을 발견하곤 그에게 다가갔다.

“팡,이번에 들어온 자가 절벽을 오르다가 떨어졌다지?”

“데일리도 왔구나. 절벽을 오르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걸 깜빡했어. 나쁜 녀석 같진 않았는데 안타깝게 되 어 버렸네. 최소한 시신이라도 찾아 주려고 모두가 나서 주고 있어.”

“딱딱한 녀석이었으니 돌무덤도 어 울릴 것 같은데 가만히 놔두지그 래?”

“데일리!”

“너무 뭐라 하지 말라고. 내가 평 소에는 안 이런 거 알잖아?”

바위 철거 현장 옆에선 동양 여자 와 은발 소녀가 눈가를 훔치며 흐느 끼고 있었다.

슬퍼하는 모양새로 보건데 동료 이 상의 관계였던 듯했다.

세븐즈 교 사제들은 경각심을 가지 며 의견을 내놓았다.

“남아 있는 여자 둘은 어떻게 할까 요?”

“사내가 삼인조의 중심이었는데 놈 이 사라졌으니 공략할 생각이 사라 졌을 겁니다. 해독 포션 몇 개 쥐여 주고 탈출구로 내보내죠.”

탈출구로 내보내자는 의견으로 통 일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데일리는 섣불리 결정을 내 리지 않았다.

데일리의 눈이 나침반을 잃은 여행 자마냥 망연자실한 꼴의 두 여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어쩌면 이 두 여자는 세븐즈 교 사제들에게 있어 많은 문제를 해결 해 줄지도 몰랐다.

데일리는 대기하란 제스처를 취하 며 홀로 두 여자에게 접근했다. 그 러곤 울고 있는 두 여자의 앞에서 조용히 손수건을 내밀었다.

“유감스럽다는 말밖에 할 수 없군. 하다못해 눈물이라도 닦게나.”

두 여자는 젖은 눈가를 세우며 경 계하는 눈빛을 띠었다.

낮 동안 그리 대립을 했지 않은가. 이제 와서 친절하게 군다고 잠자코 호의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두 여자 중에서 흑발의 미인이 손 등으로 데일리의 손을 매섭게 후려 쳤다.

그로 인해 데일리가 쥐고 있던 손 수건이 떨어졌고,데일리의 손등에는 벌건 자국이 생겨났다.

짜악!

“함부로 접근하지 마세요.”

데일리는 아려 오는 손등을 가볍게

털어 내고 손수건을 주워 들었다.

“서로 첫 인상이 좋지 않았다는 건

인정하네. 하지만 우리도 우리의 교 리를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었네.”

“변명을 하려고 말을 걸었나요?”

“자네들의 구심점이던 자가 죽었으

니 공략을 재개할 순 없겠지. 만약 공략 포기를 결심했다면 우리 숙소 중앙에 간이 예배당을 찾아오게나. 웨이브에서 나갈 수 있게 도와주 지.”

“당신네들의 말은 신뢰할 수 없어

요. 무슨 속셈이죠?”

“단순하게 생각하게. 자네들이 공 략을 포기하면 우리가 자네들을 해 칠 이유가 없네. 거기에 스스로 나 갈 마음을 먹어 주면 우리로선 설득 하느라 힘 빼지 않아도 되니 서로에 게 좋은 셈이지. 당장 대답을 들려 달라고는 하지 않겠네. 천천히 지내 면서 마음을 추스른 후에 대답을 들 려주게나.”

데일리는 부드러운 손길로 흑발 여 자의 손에 손수건을 쥐여 주며 물러 났다. 그리고 세븐즈 교 사제들에게 새로이 지시를 내렸다.

“무기를 꺼내라. 스킬로 바위를 들 춰서 시신 수습을 돕는다. 2급 사제의 권한으로 지시하는 것이니 의문 은 일체 허락지 않겠다.”

사제들로선 의문투성 이 였다.

갑자기 여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더니, 그토록 으르렁댔던 상대의 시신 수습을 손수 도와주자고 한다. 허나 2급 사제의 권한까지 들먹이 며 내린 명령이다 보니 따를 수밖에 없다.

사제들이 스킬을 쓰자 무거운 바윗 덩이가 금세 훌쩍훌쩍 하나씩 걷혀 나갔다.

바위 아래에 깔려 있던 흑발 사내 의 시체가 드러나기까지 얼마 걸리 지 않았다.

흑발 사내의 시체는 바위에 정통으

로 깔렸는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압축기에 들어간 토마토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깔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 은데 피의 색깔이 눈에 띄게 변색되 어 있었고,피가 급속도로 빠져나간 탓인지 살점이 보통의 경우보다 훨 씬 퍼석퍼석하게 메말라 있었다. 요들들은 시체를 수습하여 땅에 묻 어 주었다.

두 여자와 요들들이 약식으로 장례 를 치러 주는 동안 세본즈 교 사제 들은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 도착한 사제들이 뒤늦게 데 일리의 의중을 물었다.

“교단 사람도 아닌 자들에게 친절

을 베풀 이유가 있었습니까?”

“베풀 이유라면 자네들도 들었을 텐데? 그녀들에게 말한 그대로일 세.”

“설사 그녀들이 정말 공략을 포기 한다 해도 당장 내보낼 순 없습니 다. 그녀들에게 줄 해독 포션을 구 하려면 바깥에서 공수해 와야 합니 다.”

“내가 노리는 게 그걸세.”

“무슨 말씀이신지?”

“두뇌에도 지방은 붙는 법이지. 가 끔은 머리를 굴리도록 하게. 교단의 규율 3장 6조를 옮어 보게.”

“3장이라면 결혼의 규칙이었지요. 그중에서 6조라면 교단 밖의 여자를 탐하지 말라. 사제는 사제끼리,남편 도 아내도 없이,모든 아이는 교단 의 아이란 문구였던 걸로 기억합니 다.”

“기억력까지 녹슬진 않았군. 슬슬 제1신화급 웨이브 내에도 여사제가 있어야 할 것 같지 않나?”

세븐즈 교는 기본적으로 교단 외의 사람과 결혼 및 연애를 금지하고 있 다.

대신 교단 내에선 다처다부제,공 동 양육이 기본 교리로서 버젓이 시 행되고 있다.

시름에 잠긴 두 여자가 탈출하고 싶어졌을 때,핑계를 대어 차일피일 미루면서 조금씩 교단의 품으로 끌어들일 생각이다.

그러면 욕구를 참지 못하고 요들을 건드리던 사고와 부족한 인원문제가 모조리 해결된다.

데일리의 의도를 알게 된 사제들은 히죽히죽 끈적한 웃음을 홀렸다. 데일리는 아공간 주머니의 끈을 강 하게 죄며 말했다.

“간만에 포교활동이나 하자꾸나. 모두 무기를 넣고 성서를 들어라.”

*

요들숲 위로 첫 번째 달이 지고, 두 번째 달이 떠올랐다.

비라도 오려는 건지 하늘엔 먹구름

이 끼었고 강한 바람이 들이닥쳐 나 뭇가지를 흔들어 댔다.

나뭇가지에 맺힌 열매가 바닥에 떨 어지면서 토실토실한 과실이 뭉그러 졌다.

밤중에 멍이 든 과실을 밟으며 이 동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요들 들이었다.

요들들은 강현을 묻은 장소로 향하 며 투덜거림과 낄낄거리길 반복했 다.

“까망까망도 참 바보 같은 짓을 했 네. 죽을 거면 곱게 죽지. 뭉개져서 죽어 버리면 맛이 떨어지잖아.”

“그럼 네 몫까지 내가 먹어도 돼?”

“당연히 안 되지 바보야. 구역질나

는 과일을 먹을 바엔 뭉개진 고기를 먹는 게 나아.”

“오늘 너무 과식하는 것 같아. 며 칠만 있다가 죽어 주지. 놔두자니 썩어서 못 먹을 거고,먹자니 과식 이고.”

재잘거리면서 이동하다 보니 금세 록 베드 절벽 앞에 도착했다.

절벽 아래에 겹겹이 쌓여 있는 바 위 앞에 나무를 엮어서 만든 십자 모양의 묘비가 있었다.

시체는 묘비 아래에 묻어 두었다. 요들들은 땅을 파서 시체를 꺼냈 다. 그러곤 평소처럼 요들의 숫자만 큼 잘라다가 각각 나누어 가졌다. 배분을 마친 요들들은 각자의 보금자리로 되돌아가서 식사를 시작했 다.

나무구멍 안에서 살점을 크게 베어 문 팡이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인 상을 찌푸렸다.

‘이 고기 너무 질기네. 맛도 이상 하고. 근육이 많아서 그런 거려나.’

너무 질겨서 한참을 씹어서야 겨우 삼킬 수 있었다.

하도 씹어 댄 탓에 턱이 아려 왔 다.

그래도 아까운 고기를 남길 수야 있겠는가.

팡을 포함한 모든 요들들은 오기로 라도 고기를 씹어 삼켰다.

식사가 끝날 즈음.

뼈다귀를 치우기 위해 움직이려던 팡이 몸에 이상함을 느꼈다.

별안간 손발이 저린가 싶더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턱이 아파 신경 못 쓰고 있었는데 어느새 몸이 마비되고 있는 게 아닌 가.

“아아아,이상해. 몸이 안 움직여.”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건 팡뿐만이 아니었다.

나무구멍에 있는 모든 요들들이 몸 이 마비되어 구멍 안에서 쓰러지고 있었다.

요들 중 몇몇은 발작을 일으키며 기절했다.

원인이라면 달리 생각할 것도 없

다.

방금 먹은 고기에 뭔가 문제가 있 던 것이다.

팡은 영 좋지 않은 것을 다량으로 섭취했음을 직감했다.

마비증세 속에서 심장박동이 빨라 지면서 호흡이 가빠 오기 시작했다.

“허억허억,누,누가 고기에 장난을 쳐 놓았……

모든 요들이 마비와 발작증세로 고 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팡이 들어가 있는 나무구멍에 누군 가가 머리를 불쏙 들이밀었다.

나무 위로 올라온 자의 얼굴을 본 팡이 믿을 수 없다는 양 눈을 휘둥 그레 떴다.

첫 번째 밤 때 죽었을 터인 강현 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게 아닌 가.

“허어억! 죽은 사람이 어째서…… 여기에 시체도 있는……

팡이 뭐라고 떠듬거리든,강현은 구멍 안으로 손을 뻗어 팡의 주머니 에서 레드카드를 뽑아냈다.

다른 나무에서도 김혜림과 루나, 지트가 오르내리면서 모든 레드카드 를 회수 중이었다.

강현은 레드카드에 감정서를 붙여 정확한 사용법을 알아냈다.

레드카드의 정식 명칭은 ‘요들의 축객령’이었으며 S급 보구이고,요 들숲에서만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강현이 감정서를 확인할 동안 팡은 여전히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얼굴 근육마저 마비되어 표 정조차 지을 수 없는 거겠지. 독버섯으로 간을 친 더미를 꾸역꾸 역 삼켰으니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 일 수 없을 거다.

강현은 팡의 얼굴에 대고 요들의 축객령을 발동하며 말했다.

“내 요리가 남지 않은 건 처음이 군. 디저트도 준비되어 있으니 남김 없이 즐기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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