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고요한 숲,괴기스러운 광경, 예상 치 못한 발각 타이밍.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엔 충분했 다.
강현은 차분하게 있었지만 김혜림 은 놀란 나머지 몸을 크게 들썩였 다.
공포영화 관람 때 갑작스레 BGM 이 없어지면서 귀신의 얼굴이 클로 즈업 됐을 때의 반응이었다.
강현은 김혜림의 등 뒤로 팔을 두 르며 그녀의 팔뚝을 강하게 끌어당 겼다. 그러곤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작게 속삭였다.
“하늘 계단 소환 풀어.”
김혜림은 한순간에 놀란 가슴이 진 정되는 걸 느끼며 하늘 계단을 소환 해제했다.
하늘 계단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요들들이 도착했다.
요들들의 손마다 레드카드가 들려 있었다.
요들들은 반으로 자른 자동을 입가 에 문질러 핏자국과 피 냄새를 단번 에 지웠다.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웃 음기를 머금으며 눈을 희번뜩였다.
“팡,아무도 없는데 누가 보고 있 던 거 맞아?”
팡은 하늘계단이 있던 자리를 훑다 가 수풀 사이를 뒤지며 말했다.
“뭔가가 내 쪽을 향해 반짝였었어. 누군가 구멍 안을 들여다보려 한 거 라고.”
“데일리네 멍청이들은 아닐 거야. 개네들은 인간 주제에 우릴 지킨다 고 지껄이는 병신들이잖아.”
“이번에 새로 들어온 까망이랑 은 발 꼬맹이 쪽이겠군.”
“피둥피둥 살을 찌운 다음에 한 명 씩 잡아먹어야 제 맛인데 아깝네. 말라 죽으면 먹을 게 없어서 싫은 데.”
“나도나도. 말라붙은 고기는 썩은 고기보다 더 싫어.”
요들이 엉겁결에 내뱉은 말이 커다 란 단서로 다가왔다.
‘요들 놈들. 사람을 완전히 도시락 취급하고 있군.’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요들숲에 있는 모든 규칙과 수단들 은 인간을 취향대로 먹어 치우기 위 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요들의 축제는 공략자를 살찌우고, 술에 취하게 하여 이간질시키기 위 한 수단이었다.
전투금지 약정은 한꺼번에 공략자 가 죽으면 보관수단이 없어 시체가 썩어 버리니 한 사람씩 이간질시켜 죽이기 위해 만든 규칙이었다. 사생활 보호 규칙은 요들이 사실은 인육을 먹는 몬스터임을 들키지 않 기 위한 규칙이었고 말이다.
요들 입장에서는 만약 자신들의 정 체가 들킨다 하더라도 추방시키면 그만이었다.
추방당한 자는 숲에 들어서지 못하 고,탈출도 못하니 눈앞에 수많은 과일을 놔두고도 메말라 죽게 되는 구조인 것이었다.
한창 생각에 잠겨 있던 중 나무 너머로 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해. 아직 까망까망이 주변 에 있을 거야. 찾아서 당장 추방시 켜 버려.”
요들들은 일제히 나무 위로 올라가 선 높은 곳에서 주변을 살피기 시작 했다.
강현과 김혜림이 몸을 감추고 있는
나무 위에도 요들 한 마리가 올라섰 다.
바로 머리 위에서 요들이 레드카드 를 움켜쥔 채로 서 있다.
섣불리 공격해선 안 된다.
밤의 요들에겐 무적 능력이 걸려 있다.
낮이라 할지라도 공격은 무리일 거 다.
숫자가 얼마 안 된다면 모를까,숲 에 퍼져 있는 수십 마리의 요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한 마리라도 살아 있으면 레드카드 에 의해 추방당한다.
무력만 따지면 A랭크 수준밖에 안 되는데 레드카드란 요소가 거대한 장애물로 군림하고 있다.
강현과 김혜림의 머리 위에 있는 요들이 안력을 돋워 주위를 살폈다. 긴장감이 보이지 않는 끈이 되어 온몸을 죄였다.
카모를라쥬로 모습을 감추고 있다 지만,보이지 않을 뿐 몸이 사라진 건 아니다.
요들이 곁을 지나치면 몸이 부딪치 게 되어 있다.
요들은 나뭇가지 위에서 고개를 두 리번거리다가 다른 요들을 향해 외 쳤다.
“여기도 없어!”
“이상하네. 분명히 뭔가 반짝였는 데……
“반짝인 게 끝? 치자나무 나뭇잎이 반짝인 걸 잘못 본 거 아냐?”
“미안해,얘들아. 내가 잘못 본 것 같아.”
“하여튼 팡은 너무 예민하다니까. 인간 같은 멍청이들은 귀여운 척 몇 번 해 주면 끔뻑 속아 넘어간다고.”
“미안 미안. 과일 같은 쓰레기만 주워 먹었더니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나 봐.”
요들들은 팡이 착각한 걸로 결론을 내리고 돌아가려 했다.
그 순간 강현과 김혜림의 머리 위 나뭇가지에 서 있던 요들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요들의 발이 강현의 머리에 닿으려
던 찰나.
김혜림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강현을 끌어당겼다.
강현의 몸이 덩달아 끌려들면서 아 슬아슬하게 요들과 교차했다.
동시에 김혜림은 허공에 투명한 하 늘 계단 하나를 소환하여 그 위로 올라갔다.
강현 역시 즉시 몸을 날려 하늘 계단 위로 몸을 올렸다.
요들은 다른 요들과 합류하기 위해 움직였고,투명한 하늘 계단 아래를 지나갔다.
“가서 식사나 마저 하자.”
“그래그래,근데 이번에 온 까망까 망들은 어떻게 먹을 거야? 추방시켜서 아사시켜?”
“말려서 먹는 건 싫어. 살이 단단 해져서 턱 아파.”
“여자가 있으니까 늘 쓰던 방법은 쓰기 힘들겠네. 플랜F로 가자.”
“인간 여자로 인간들끼리 이간질시 키는 작전 말하는 거야?”
“잘 들어. 데일리네 남자랑 까망까 망네 여자랑 축제 때 술 먹여서 같 이 재워 버리자. 그럼 까망까망이 화나서 데일리네 사람 죽이겠지? 그 때 까망까망을 추방해 버리는 거 야.”
“그다음엔?”
“데일리도 화가 날 테니까 까망까 망 남자를 숲 밖에서 죽이겠지.”
“낄낄,그거 좋네. 성공하면 오랜만 에 포식할 수 있겠어.”
“킥킥킥,생각만 해도 신난다.”
사람을 이간질시키는 방법을 여러 개 준비해 뒀는지 어렵지 않게 작전 을 논하고 있었다.
이윽고 요들들이 자리를 뜨며 마을 로 돌아갔다.
강현과 김혜림은 참았던 숨을 조용 히 내쉬면서 난장이 하우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카모를라쥬는 난장이 하우스에 들 어가고 난 이후에 풀었다.
모습을 드러내자 집을 지키던 루나 가 환한 미소로 강현을 맞이했다.
“오빠 왔다! 어떻게 됐어?”
“필요한 정보는 다 모았어. 내가 없는 동안 별일 없었고?”
“소리잔으로 연락할 만한 일은 없 었어.”
만약을 대비해 소환해 두었던 지트 가 건틀릿을 가슴에 붙이며 예를 갖 췄다.
“주군,부재중에 주변 정찰에 나섰 지만 수상한 자는 보이지 않았습니 다.”
“밤에는 감시하지 않는 모양이군. 밤엔 감시할 필요가 없단 건가.”
밤에는 요들에게 무적이 걸린다. 강현 일행이 무슨 짓을 꾸미든 밤 에는 요들의 안전이 보장되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세븐즈 교 역시 목적이 공 략 방해에 있는 만큼 체력낭비를 하 면서까지 감시할 이유는 없다고 판 단했나 보다.
강현은 모두를 벽난로 앞에 모아 놓고 본격적으로 요들 공략 작전을 논하기 시작했다.
“요들이 사람 먹는 괴물이란 것까 지 알아냈어. 세븐즈 교처럼 백날 구슬려 봤자 요들이 레드카드를 넘 길 일은 없겠지.”
“근데 세븐즈 교 사제들은 요들이 자신들을 속이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걸까요? 꽤 오랫동안 이 안에 서 지냈으면 눈치챌 만도 할 텐데. 혹시 모른 척하고 있는 거려나.”
“모른 척이 아니라 정말로 모르는 걸 거야. 녀석들은 우리보다 훨씬 오랫동안 요들의 친절함을 맛봤어. 한 번 심어진 인상이라는 건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야.”
“거기에 애당초 공략에 목적을 두 지 않아서 더더욱 의심하지 않게 되 었군요.”
강현은 낮 동안 만들어 둔 요들숲 의 약도를 펼쳤다.
약도에는 숲 내의 큼직한 지형지물 과 요들의 마을 위치, 난장이 하우 스 위치,사제 숙소 위치가 표시되 어 있었다.
강현은 펜을 들어 사제 숙소에 역 삼각형 표시를 해 두었다.
“이 정도 간단한 함정도 모른다면 수준이야 뻔하지. 세본즈 교 사제들 은 위험순위 아래에 두자고.”
“그럼 최우선 과제는 요들을 어떻 게 공략하느냐는 거네요.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죠. 나무표지판 에는 1층에 사는 요들족에게서 2층 으로 가는 방법을 알아내라고 적혀 있었어요.”
“대강 예상은 하고 있어.”
“벌써 알아냈어요?”
“요들에게서 2층으로 가는 방법을 알아내려면 레드카드가 필요해.”
한가로이 손가락으로 펜을 돌리던 강현이 말을 멈추고 김혜림을 보았 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턱을 관 자세로 강현을 보고 있었다.
바라보는 눈빛이 무척 그윽하여 부 담스럽게 느껴졌다.
“김혜림.”
“왜요?”
“아니다. 신경 쓰지 마.”
“후후,하던 얘기 계속하셔요.”
“레드카드를 얻으려면 요들을 일제 히 쓰러뜨려야겠지. 죽이지 않는 선 에서 말이야.”
강현은 펜을 놓고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꺼낼 물건의 이미지를 그리자 손에 큼직한 물건이 잡혔다.
이내 곧 사람만 한 크기의 물체가 딸려 나왔다.
강현은 꺼낸 ‘물건’을 바닥에 놓으 며 말했다.
“이걸 이용하자고.”
김혜림과 루나는 꺼낸 물건의 외견 만으로도 강현이 무엇을 할지 짐작 할 수 있었다.
강현이 가이아 대륙을 떠날 때 김 혜림에게 주었던 물건이었다.
한동안 김혜림이 껴안는 베개 역할 을 했던 그 물건.
바로 강현의 모습을 띤 더미였다.
김혜림은 더미의 용도를 짐작하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이 훌륭한 물건을 소모해야 한다
니 아쉽네요.”
강현은 김혜림의 이마에 대고 검지 를 튕겼다.
따악!
“아얏.”
“쓸데없는 소리 말고 로브 걸쳐. 독버섯 채집하러 가야 하니까.”
“마비 효과가 있는 독버섯만 채집 할까요?”
“목록에 검은뿔버섯도 추가해 둬.”
“알겠어요.”
“다 구하면 내가 직접 조리하도록 하지.”
“뭐 남에게 먹일 음식이니까 상관 없겠죠. 편한 대로 하세요.”
작전을 위해선 더미에 가미할 독이
필요하다.
지트의 포이즌 소드에 깃든 독은 너무 강하기에 요들이 즉사할 가능 성이 높다.
요들숲에는 식용버섯을 비롯하여 독버섯도 상당수 자라나 있으니 독 버섯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
기껏해야 40? 50대 레벨의 요들에 게 독 면역 능력이 있을 턱이 있겠 나.
재료만 갖추면 바로 공략에 들어갈 거다.
이후에 강현과 김혜림은 밤의 요들 숲을 돌아다니며 독버섯을 채집했 다.
더미와 독버섯.
두 가지가 모두 갖추어졌을 때. 본격적으로 작전이 시작되었다.
*
요들숲 내에 위치한 세븐즈 교의 숙소 안.
데일리는 촛불로 밝힌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오늘 코숀의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요들뿐만 아니라 적이나 다름없는 자들 앞에서 추태를 드러냈는데 기 분이 좋을 리 없었다.
“후우우,적을 제압해도 모자랄 판 에 못난 꼴을 보이다니. 지금쯤 놈들이 비웃고 있을 생각을 하니 열 받아서 잠이 안 오는군.”
더욱 골치 아픈 건 사제의 숫자가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코숀이 죽으면서 웨이브 내의 병력 이 또다시 줄어든 데다,이번에 들 어온 작자들이 함정관리자까지 전부 베고 들어온 것 같다.
데일리는 깃펜을 들며 종이에 현재 상황과 병력지원요청 사유를 상세히 적었다.
작성한 서신은 독 면역 스킬이 있 는 사제에게 주었다.
“슈바르츠. 이 서신을 대신전에 전 달해 주게. 급한 일이니 서두르게 나.”
“알겠습니다.”
그랜드 우드의 영역에선 탈출하면 몸에 맹독이 흐르는 저주에 걸리게 된다.
신화급 웨이브에서 걸리는 저주는 풀 수 없기 때문에,독 면역 스킬이 나 보구를 지니고 있어야만 살 수 있다.
때문에 세븐즈교 사제들 중에서 독 면역 스킬이 있는 자가 연락책 역할 을 맡고 있었다.
슈바르츠라 불린 자가 서신을 아공 간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바깥으로 나갔다.
서신 발송을 마친 데일리는 사제복 을 벗으며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잠이 올지는 모르 겠지만 내일을 위해서라도 억지로 눈을 붙여야만 했다.
데일리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깥에서 사제 한 명 이 뛰어 들어왔다.
“데일리 사제! 낭보입니다!”
막 잠옷 단추를 잠그려던 데일리는 손을 멈추며 의문을 표했다.
“낭보가 들릴 건수가 없거늘 무슨 낭보가 있단 말이냐?”
“그 시건방진 동양인 놈이 사고로 죽었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