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218화 (218/381)

218화

침대에 몸을 파묻고 자던 중 창문 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떴 다.

창문 너머에선 솜사탕을 뜯어 던진 듯한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눈이었다.

강현은 이불을 걷어 내며 난장이 하우스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의 벽난로 앞에선 일찍 일어난 김혜림이 책을 읽고 있었다. 김혜림은 삐걱대는 계단 소리를 듣 곤 책갈피를 끼우며 책을 덮었다.

“일찍 일어났네요. 잘 잤어요?”

“그럭저럭. 너도 일찍 일어났군.”

“눈이 창문 때리는 소리에 놀라서 깼어요. 우유 한 잔 마실래요?”

“우유 남은 게 있나?”

“딱 한 잔 분량 남았어요. 거기 앉 아 있으세요.”

김혜림은 아공간 반지에서 보존마 법이 걸린 보관용기를 꺼냈다. 평상시에는 김치숙성용 보관용기지 만 지금은 쉘터에서 받은 우유를 담 아 놓는 용도로 쓰고 있었다. 김혜림은 컵에 우유를 부어선 벽난 로 앞의 거치대에 잔을 올려 두었 다.

우유가 데워지는 동안 강현은 김혜 림이 읽던 책을 슬쩍 보았다.

책 표지에 가이아 대륙 공용어로 ‘바람이 없는 황야’란 제목이 적혀 있었다.

강현은 무두질을 한 가죽 표지를 손바닥으로 쓸며 입을 열었다.

“웬 책?”

김혜림은 우유 표면이 얇게 응고되 는 것을 지켜보다가 설탕 한 스푼을 넣고 수저로 휘휘 저었다. 그리고 강현에게 우유잔을 주면서 책을 챙 겼다.

“연합 기사단 시절에 샹데르에서 산 헌 책이에요. 유명한 음유시인이 쓴 소설인데 생각보다 재밌더라고 요.”

“무슨 내용인데?”

“썩어 버린 황궁에 엄청난 책사가 나타나서 황궁을 정리하고 황제를 돕는다는 내용이에요. 묘사가 세세 한 게 직접 겪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져서 읽을수록 빠져들더라고 요.”

“나중에 읽어 봐야겠군.”

“의외네요.”

“뭐가?”

“강현 씨는 소설 쪽보다 실용서를 더 좋아할 줄 알았거든요. 그 왜 저 랑 둘이서 다닐 때 틈만 나면 몬스 터 도감이나 빌로스 제국 귀족 수록 서 같은 걸 읽었었잖아요.”

“음식과 책은 편식하지 않는 편이 야. 음? 밑에 한 권 더 있군. 여자들의 바이블,너도 될 수 있다 여 우?”

“꺄악! 그건 보지 마요!”

요란한 와중에도 루나는 쩔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동면이라도 취하듯 침대 위에서 도 롱이벌레처럼 이불을 돌돌 만 채로 자는 중이었다.

안 깨우면 하루 종일 잘 태세다.

강현은 루나를 보다가 창문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창문 너머 저 멀리 계곡 사이로 금색 웨이브 보석의 끄트머리가 얼 핏 드러나 있었다.

“사고만 없으면 오늘 안에 도착하 겠군.”

“눈보라가 그친 다음에 출발하죠. 얼마나 더 올지 모르겠네요. 빨리 그쳐야 할 텐데.”

“아까보다 눈발이 약해졌어. 이 상 태면 오전 중에는 그치겠지. 잠깐 집 주변 둘러보고 올 테니까 루나 깨워 둬.”

“조심해서 다녀와요.”

로브를 단단히 여미며 현관문을 열 자 찬바람이 이때다 싶어 매몰차게 집 안으로 파고들었다.

덕분에 흔들어 깨우지 않고도 루나 가 꼼지락거리며 일어났다.

강현이 문을 닫고 바깥으로 나오자 난장이 하우스 지붕에 쌓인 눈이 덩 어리져서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눈이 계속 홀러내리는 걸로 봐선 눈의 무게 때문에 지붕이 무너지는 경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 다.

처마 밑에서 빠져나와서 바닥에 발 을 디뎠는데 다리가 쑤욱 빠져들어 갔다.

두 발을 모두 딛자 눈이 허리까지 올라왔다.

‘내가 허리까지 잠기면 루나는 목 까지 잠기겠군. 능선은 제왕의 화염 검으로 눈을 녹이면서 이동하고, 계 곡은 하늘계단을 깔고 이동하는 게 가장 안전하겠군.’

능선은 제왕의 화염검으로 눈을 녹 이면서 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지 계곡의 바위지대를 지날 때 눈을 녹이면 물기 때문에 바위가 미 끄러워진다.

눈 덮인 바위지대는 어디에 어느 정도 크기의 바위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한 번 미끄러지면 치명적인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능선은 제왕의 화염검,계곡은 하 늘계단.

이게 가장 안전하다.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눈이 그쳐 있었다.

눈구름이 물러나는 것을 눈으로 쫓 던 중.

강현의 시선이 웨이브 보석이 있는 계곡 근처에 머물렀다.

강현은 눈에 힘을 주며 계곡을 자 세히 보았다.

계곡 사이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올 라오고 있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불은 아냐. 우 리 말고도 다른 누군가가 있는 건 가. 커뮤니티가 벌써 도착했을 린 없고……

지금으로선 누가 있는 건지 짐작조 차 가지 않는다.

누군가 있다는 걸 안 이상 주의하 면서 이동할 필요가 있다.

강현은 난장이 하우스로 되돌아와 서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 이후에 곧바로 난장이 하우스 를 회수하여 신화급 웨이브로 향했다.

이동할 땐 강현,루나, 김혜림 순 으로 일직선 대형을 이루어 움직였 다.

선두에선 강현이 제왕의 화염검을 소환하여 눈을 녹이며 길을 만들었 고,그 뒤를 루나와 김혜림이 뒤따 르며 각자 측면과 후방을 경계했다. 굽이굽이 이어진 능선을 걷던 중 김혜림이 입을 열었다.

“신화급 웨이브 근처에 사람이 있 단 게 정말이에요?”

“연기가 피어올랐어. 눈이 그친 직 후라 시야가 좋지 않았는데도 꽤 선 명하게 보였지.”

“누가 노숙하느라 피운 모닥불은

아니라는 뜻이군요.”

“최소한 중형급 크기의 벽난로에서 불을 때운 걸 거야.”

“최소 열 명 이상의 사람이 집을 짓고 살고 있다고 봐야겠네요. 누굴 까요? 커뮤니티는 신화급 웨이브에 서 손 땐 지 오래라고 들었는데 말 이죠. 커뮤니티가 아니라면……

“정보가 부족할 땐 성급하게 결정 을 내리지마. 성급한 결정은 잘못된 판단보다 더 질이 나빠.”

“제가 어젯밤에 난장이 하우스 2층 에 올라갔다가 혼난 것처럼요?”

“그래.”

강현 일행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신화급 웨이브가 있는 계곡으로 들어갔다.

계곡은 높은 절벽이 부채처럼 겹쳐 져 있고,거센 물줄기가 급류를 이 루고 있어서 이동에 주의를 기울여 야 했다.

계곡에서부턴 김혜림이 하늘계단을 눈 위에 차례차례 소환하여 안전한 길을 만들었다.

계곡 안쪽으로 얼마쯤 걸어 들어가 자 신화급 웨이브 보석의 전신이 모 습을 드러냈다.

크기는 SSS랭크 웨이브 보석과 비 숫한 정도로,전설급 웨이브보다 작 은 편에 속했다.

다만 거대한 물체가 황금빛으로 빛 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략자에게 위압감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신화급 웨이브 보석 앞에는 작은 목조 건물이 있었다.

건물 앞에선 붉은색 상하의 일체형 의복을 입은 자들이 눈을 치우는 중 이었다.

더불어 목조 건물의 정문 옆에 문 양이 새겨진 깃발이 펄럭이는 게 보 였다.

깃발에는 원형 테두리 안에 붉은색 ‘s’자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테두리가 원형인 것만 제외하면 거 의 지구에 떨어진 어느 크립톤 성인 의 마크와 비슷했다.

'적어도 커뮤니티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군.’

커뮤니티의 문양은 원형 테두리에 ‘C’가 그려져 있다.

형태는 비슷하지만 색깔과 글자가 완전히 다르다.

강현 일행은 물가의 어느 커다란 바위를 엄폐물 삼아 몸을 감추곤 회 의를 벌였다.

“강현 씨,드자 문양을 쓰는 세력이 있단 건 처음 알았는데 강현 씨는 알고 있었어요?”

“나도 처음이야. 카니발 대륙에 있 는 세력은 커뮤니티와 혁명군뿐인 줄 알았는데 다른 세력도 있나 보 군.”

“예전에 엄마가 카니발 대륙에 별 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고 했었어.

저기 있는 빨간 옷 사람들이 별의별 사람들인가 봐.”

“어떤 자들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 겠군.”

“정보를 캐낼 사람 한 명만 남기고 정리하죠. 카모를라쥬를 쓸게요.”

“정보가 부족할 땐 성급하게 결정 을 내리지 말라고 했지 않나?”

세간의 눈을 피해서 몰래 웨이브 보석 앞에 사는 사람들이 정상적이 라고 보진 않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이상 섣불 리 건드리는 건 좋지 않다.

몇 명이나 있는지,무력 수준은 어 떻게 되는지,어떤 목적으로 오지에 들어와 사는 건지.

의문을 전부 해결하는 건 무리더라 도 최소한의 정보 정도는 끌어내 봐 야 하지 않겠나.

강현은 혼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선발대로 저쪽과 접촉해 보 도록 하지. 문제가 생길 기미가 보 이면 그때 가서 엄호해.”

저쪽에서 우호적으로 나올지 적대 적으로 나올지,만약 적대적으로 나 온다면 눈에 보이는 사람들 외에 여 력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쪽도 여력을 남겨 둔 채로 접촉하는 게 정석 중의 정석이 다.

강현은 검집을 묶고 있는 가죽끈을 강하게 죄며 바위 옆으로 빠져나갔다.

신화급 웨이브 보석에 가까이 가자 눈을 치우고 있던 자들이 삽질을 멈 추며 강현을 경계했다.

“웬 놈이냐!”

“함정 보구가 발동하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눈 때문 에 침입자를 감지하지 못한 건가.”

“그래서 얼른 눈을 치워야 된다고 했잖아.”

“침입자 앞이다! 다들 입 다물고 집중해라! 어이,네놈! 어디의 누구 인지 밝혀라!”

강현은 능청스럽게 순진한 모험가 인 양 연기를 펼쳤다.

“저…… 어디에 몸을 담그고 있는

건 아니고 신화급 웨이브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사람입니 다만……

제3자가 보기에는 순도 100퍼센트 멍청이로 보일 법한 언행이었다. 빨간 의복의 사내들은 너무 순해 빠진 모습을 보곤 맥이 빠져 저희들 끼리 낄낄대기 시작했다.

“푸하하! 혼자서 신화급 웨이브에 도전하러 왔다고? 웃기는 놈이구 만.”

“젊은 친구. 무용담을 만들 장소를 잘못 골랐군. 길을 잘못 들어도 한 참 잘못 들었네.”

비웃음 소리가 계곡의 절벽을 반사 벽 삼아 메아리쳤다.

마치 비웃음 소리로 된 방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강현은 왜 비웃는지 모르겠다는 양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왜들 그리 웃으십니까? 이래 봬도 혼자서 SS랭크 던전을 클리어한 적 이 있습니다. 신화급 웨이브라고 못 할 것 같습니까?”

“골목대장이 골목 하나 평정한 것 가지고 본인 실력이 전국구라 착각 하는 꼴이군.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에서 자네보다 약한 자는 없을걸 세.”

“그럼 당신들 공략 파티에 절 끼워 주십시오. 전력은 많을수록 좋지 않습니까.”

“우리가 공략이나 하려고 여기 있 는 것 같나?”

“공략이 아니면 무엇 때문에 여기 계신 겁니까?”

질문 자체가 금기를 건드린 것마냥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빨간 의복의 사내들이 삽을 놓고 각각 아공간 보구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뿐만 아니라 눈구멍이 뚫린 고깔 모양의 복면을 꺼내서 머리에 덮어 썼다.

각자의 무기마다 마나마스터의 상 징인 마나 웨펀이 부여되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기대하기 어려

울 것 같았다.

‘이들이 떳떳한 이유로 여기 있는 게 아니라는 것 하나는 분명해졌 군.’

눈앞에 적들을 앞두고 강현의 눈동 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계곡 곳곳의 숨겨진 공간들에 다른 매복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였 다.

적들에게서 연락을 취하는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고,숨겨져 있는 병력 이 따로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내들은 강현이 주변을 살피면서 가만히 있는 것을 겁을 먹어 굳어 버린 것이라고 판단했다.

“원망하지 말거라. 우리도 목격자

는 제거하란 명령을 따라야 하는 입 장이란다.”

“호기심이 명을 재촉한 꼴이로군. 탓하려면 주제 파악을 못한 너 자신 을 탓하거라.”

훈련이 되어 있는 양 일사불란하게 포위망을 형성하며 접근하고 있었 다.

죄여 오는 포위망 속에서 강현은 빙백검을 뽑아 그랜드 소드를 부여 했다.

검 주위에 둘러진 누런 그랜드 오 러를 본 사내들이 입을 쩌억 벌렸 다.

“그,그랜드 오러! 그랜드 마스터 였어!”

“이놈! 순진한 척 연기를 한 것이 었구나! 도대체 네놈은 누구냐!”

“신화급 웨이브를 공략하러 온 사 람.”

“크옥,감히 말장난 따윌! 얕보는 게냐!”

강현은 빙백검으로 넓은 호를 그리 며 무뚝뚝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그럼 그쪽을 염라에게 발송해 줄 사람이라 해 두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