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데엥! 데엥!
위험을 알리는 종소리가 쉘터 안 가득 울려 퍼졌다.
그랜드 마운틴 쉘터 안에 비상이 걸렸다.
종소리를 들은 조직원들은 허겁지 겁 무기를 쥐어 들고 집 밖으로 뛰 쳐나왔다.
“어느 관문에서 종을 울린 거야? 무슨 일인지 확인해 봐!”
“신원불명의 적이 침입했다! 일반 인부터 대피시켜! 허둥대지 말고 훈 련대로 움직여!”
“쳇,하필이면 세이아나님이 없을
때 이런 일이……
그랜드 마운틴 쉘터는 기본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자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어력만큼은 여느 10성급 못지않았다.
거기에는 세이아나라는 무시무시한 화력을 가진 포대와 그녀가 키운 정 예 디스트로이,세이아나가 설치한 각종 함정들이 바탕으로 깔려 있던 덕분이다.
하지만 현재 세이아나는 부재중이 며,디스트로이는 지난 임무 중에 대부분 전사했다.
때문에 지금 남은 방어시설이라고 는 세이아나가 설치해 둔 함정밖에 없었다.
쉘터 내의 수비대장인 애덤스는 조 직원들을 정렬시키며 대응에 나섰 다.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서쪽 관문 이 뚫렸다. 적의 신원,목적이 불분 명한 이상 전원 사살을 목표로 움직 인다. 산성늪을 발동해라.”
“네! 들었느냐? 산성늪 함정 코어 에 마나를 불어넣어라!”
“나머지는 만약을 대비해서 2차 방 어선을 구축하고,주민들은 남문을 통해서 쉘터 바깥으로 피난시켜라! 시간이 촉박하다! 서둘러 움직여!”
조직원이 일제히 흩어지면서 부산 하게 움직였다.
그중 한 명이 애덤스에게 다가와선 넌지시 의견을 내었다.
“상황이 상황이니 그분들께 도움을 청해야 하지 않을까요? 분명 큰 전 력이 될 겁니다.”
조직원이 말하는 그분들이라는 게 강현 일행을 말하는 것임은 말할 것 도 없었다.
조직원들은 강현 일행의 정체를 모 른다.
그저 세이아나의 손님이라는 것만 알 뿐.
하나 어느 정도 실력인지는 모르 나,SS랭크 던전을 1? 2명이서 어렵 지 않게 공략하는 걸로 보아 상당한 실력자인 건 예상하고 있었다.
애덤스는 고민하는 기색 한 점 내 비치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
“주민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겠지. 어느 던전으로 갔는지 알고 있느냐?”
“김혜림이라는 분이 만약 부를 일 이 있으면 세이아나님 집에 있는 약 도를 보고 찾아와 달라 했습니다.”
“거기까지 염두에 둬 주셨군. 1~2 명만 빠져서 그분들께 도움을 청하 게.”
“신속하게 다녀오겠습니다!”
?
그랜드 마운틴 쉘터에 혁명군이 입
성하였다.
니케는 쉘터 외곽지역을 관통해 중 심부로 향하며 주요사항을 재확인했 다.
“세이아나가 부재중인 건 확실한 사실이겠지?”
줄곧 그랜드 마운틴 쉘터를 정찰해 온 혁명군 단원들이 확신에 찬 목소 리로 대답했다.
“커뮤니티 본부의 부름을 받고 떠 난 걸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커뮤니 티에 심어 놓은 우리 밀정들에게서 도 세이아나가 본부로 이동 중이란 보고가 왔으니 확실합니다. 안심하 고 최강현을 치시지요.”
“안심? 내가 세이아나의 부재를 노
리고 온 것처럼 들리는군.”
니케는 심기가 불편한 양 살벌한 시선으로 단원을 노려보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해지 게 만드는 시선이었다.
흉흉하기 짝이 없는 니케의 반응에 단원이 몸서리를 치며 어깨를 움츠 렸다.
“제,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습니 까?”
“그년이 있었다면 같이 척살했을 거다. 지금의 내겐 그만한 힘이 있 단 말이다.”
“무,물론입니다. 니케 수장의 능력 을 의심한 게 아닙니다. 믿어 주십 시오.”
“세이아나도 척살 대상이라는 걸 잊지 마라.”
선두에서 니케가 살기를 피워 올리 는 동안 후방에선 김윤중이 경계심 을 드세우고 있었다.
김윤중은 텅 빈 전답과 뻥 뚫린 오솔길을 번갈아 살피며 의구심을 느꼈다.
‘너무 조용해. 적들도 종소리를 통 해서 침입을 알아차렸을 거야. 설마 도망간 건가.’
이쯤 되니 아예 월터를 버리고 피 난을 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었다.
쉘터를 빼앗긴다 하더라도 쉘터 주 인이 살아 있는 이상 쉘터는 언제든지 개인마켓에 되팔 수 있다.
가격은 구매했던 가격의 8할만 돌 려받지만 말이다.
하지만 고작 종소리가 울린 것만으 로 쉘터를 포기할까?
적의 안마당인 만큼 무엇이 준비되 어 있을지 알 수 없다.
시작의 불씨가 당겨질 때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좁은 오솔길을 지나면서 2열 종대 로 이동하던 중 선두 집단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어어어! 느,늪이다! 적의 함정 보구가 발동했다!”
“끄아악! 보통 늪이 아니야! 으아 아아! 녹아내린다! 사,살려 줘!”
어느새 선두집단 쪽 땅바닥이 질척 질척한 늪지대로 바뀌어 있었다. 늪지대는 점점 그 크기를 키우더니 순식간에 혁명군 단원들의 발밑으로 확장되었다.
후방에 있던 자들을 재빨리 몸을 뒤로 물려서 빠지는 걸 면했지만, 전방에 있던 자들은 꼼짝 없이 늪에 갇히고 말았다.
김윤중은 최후방에 있었기에 늪이 닿지 않는 곳까지 물러날 수 있었 다.
‘매복이 아니라 함정 보구를 설치 해 뒀던 거였나. 게다가 이 냄새 는…… 산성 계열의 늪이다!’ 늪지대에 발이 빠진 자들로부터 썩은 계란 냄새가 풍겨 왔다.
평범한 늪이 아니라 산성늪이었던
것이다.
늪의 흡입력 또한 대단하여 발목만 잠겼음에도 삽시간에 무릎까지 빨려 들어갔다.
선두집단의 비명 소리가 경각심을 일깨워 준 덕에 남은 인원들은 실드 를 끌어올려 몸이 녹는 걸 미연에 방지했다.
김윤중은 산성늪의 확장이 멈춘 걸 확인하곤 수습에 나섰다.
“침착하게 대응해라! 실드만 유지 하면 산성액에 녹을 일은 없다! 그 보다 늪에 빠진 것을 노리고 적의 공격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쪽에 주의해라!”
이동스킬이 있는 자는 이동스킬로 빠져나왔으나,이동스킬이 없는 자 는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갔 다.
산성늪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실드 에 데미지가 계속 누적된다.
게다가 김윤중의 예상대로 오솔길 의 양옆으로 자라나 있는 수풀 뒤편 에서 화살이 쏟아져 나왔다.
찰나라 할 수 있는 짧은 순간에도 김윤중은 화살 끝에 달려 있는 화살 촉의 형태를 확인했다.
화살에는 화살촉 대신 얇은 천이 북채마냥 감싸져 있었다.
김윤중은 공격용으로 쏜 화살이 아
님을 알아차리곤 다급하게 외쳤다.
“화살 끝에 뭔가 매달려 있다! 막 지 말고 피해!”
그러나 늪에 다리가 파묻힌 자들이 화살을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혁명군 단원들은 무기를 휘두르거 나,방어 스킬로 화살을 막아 내고 자 했다.
허나 단원들에게 닿기도 전에 화살 끝에 묶어 놓은 천이 풀리면서 안에 있는 내용물이 퍼져 나왔다.
내용물은 하얀 가루였다.
가루가 단원들의 몸에 내려앉더니 단원들의 실드가 저절로 풀려 버렸 다.
“당했다! 실드 파괴 효과를 지닌
가루야!”
실드가 풀리면서 산성늪이 늪에 빠 진 단원들의 몸을 녹여 내기 시작했 다.
지금이라도 구조작업에 착수한다면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7? 8할 정도 는 구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니케는 구조가 아닌 공격을 택했다.
“매복한 적을 쳐라! 내가 오른쪽을 맡을 테니,너희는 왼쪽을 맡도록!”
늪에 빠지지 않은 단원들은 늪에 빠진 동료들을 힐끗 보았다.
늪에 빠진 동료들이 도움을 바라며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명령이 떨어진 이상 따를 수밖에 없다.
단원들은 도움을 바라는 동료들로 부터 등을 돌리며 수풀 너머로 뛰어 들었다.
그사이 니케는 창을 높이 치켜 올 렸다.
“인첸트 브레스.”
스킬 시동어를 옮자 붉은 기운이 니케의 창을 휘감았다.
니케는 오솔길 오른쪽 수풀 너머를 향해 창을 힘껏 던졌다.
창은 맹렬히 회전하며 수풀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잠시 후,한참 떨어진 곳에서 거대 한 불길이 솟구쳤다.
화르륵!
불길은 뭉게구름처럼 확산되며 드 넓은 능선 일대를 집어삼켰다. 치솟는 불길과 흩날리는 잿가루. 오솔길 오른편에 매복한 자들의 생 사는 확인할 것도 없었다.
니케가 쓴 스킬은 ‘인첸트 브레스’ 라는 전설급 스킬이었다.
창에 냉기 브레스,화염 브레스, 포이즌 브레스,애시드 브레스 중 하나를 부여하면,창이 격돌한 지점 에 해당 브레스와 동일한 공격이 발 현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인첸트 브레스의 위력은 부여한 마 나량에 비례하여 강해지며,마나량 에 따라 최소 드레이크급 브레스부 터 최대 드래곤급 브레스의 위력을 구현할 수 있다.
니케로 말하자면 드래곤급은 못 되 더라도 바로 아래 등급인 서번트급 브레스까진 구현할 수 있었다.
잠시 후,오솔길 왼쪽으로 갔던 단 원들이 피 묻은 무기를 쥔 채로 되 돌아왔다.
“매복해 있던 조직원 10명을 전부 척살했습니다.”
매복 병력을 정리하는데 1분조차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곧 매복한 조직원들의 실력 이 그리 대단치 않다는 걸 의미한 다.
그러나 매복을 정리하는 동안 산성 늪에 빠져 있던 자들은 녹아내려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김윤중만이 한 명을 잡아당 겨 구출하긴 했지만 하반신이 녹아 내린 후인지라 살지 못하고 절명하 고 말았다.
니케는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들이 었던 것처럼 죽은 자들에게 관심조 차 주지 않았다.
“함정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주의 해서 이동해라.”
김윤중은 절명한 단원의 상반신을 공허하게 내려다보았다.
“니케,왜 그랬나?”
“뭘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전부는 아니더라도 7? 8할은 살릴 수 있었네.”
“이만한 함정도 못 빠져나오는 자 라면 필요 없다고 판단했을 뿐입니 다.”
“그런 문제가 아니잖나.”
니케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니케는 김윤중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지 경고하듯 말했다.
“제가 아저씨께 예의를 갖추는 건 혁명군 창단멤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나오면 더 이상 예를 갖추기 힘들 것 같군요.”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안 든다고 말씀하십시오.”
“……아닐세. 수장은 자네이니 자 네의 의중을 따라야겠지.”
마지못해 한 대답이라는 느낌이 강 하게 풍기는 대답이었다.
김윤중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혁명군의 목적이 변질되고 있음을.
커뮤니티의 통치에 대항한다는 것 에서, 단순히 커뮤니티를 증오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어느 누구 하나 목적이 변질된 것에 의구심을 가지 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외곽지역을 지나쳐 쉘터 중심부로 가는 동안 김윤중은 가슴을 짓누르 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쉘터 내에 발생한 화재가 바람을 타고 옮겨 붙어 산불로 번졌다. 생나무가 대량으로 타오르면서 쉘 터에 잿빛 연기가 가득 들어찼다.
잇따라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선 조직원들이 바리게이트를 치고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애덤스는 마을의 빈집 위에 달려 있는 닭 모양 풍향계로 바람의 방향 을 가늠했다.
‘바람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부는 군. 산불이 마을까지 닿겠어. 마음 같아선 화재 진압을 우선시하고 싶 지만……
화재 진압을 하러 가기에는 침입자 의 존재감이 너무 컸다.
방금 오솔길이 있는 능선에서 거대 한 화염 공격이 작렬한 걸 똑똑히 목격했다.
침입자 중에 무지막지한 화력을 발 휘할 수 있는 실력자가 있다는 걸 안 이상 등을 돌릴 순 없었다. 화재지점에서 퍼져 나온 연기 때문 에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다. 그때 애덤스는 뿌연 연기 사이로 푸른빛이 번쩍이는 걸 목격했다. 푸른빛은 순식간에 가까워지더니 바리게이트 앞까지 당도했다.
마나로 이루어진…… 창?
적의 공격이다!
애덤스는 바리게이트 사이사이에 끼워 둔 로즈마리 로자리오를 덥석움켜잡았다.
“적은 이미 코앞까지 당도했다! 즉 시 로즈마리 로자리오를 발동시켜 라!”
로즈마리 로자리오는 반사실드를 펼치는 능력을 가진 보구다.
다수의 보구에 마나가 부여되면서 전방 가득 반사실드가 펼쳐졌다. 쇄도하던 푸른빛의 창이 반사실드 에 부딪쳤다.
쩌저적!
반사데미지가 방출되긴 했으나 연 기 때문에 적에게까지 도달했는지 알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푸른빛의 창이 반사실 드에 막히긴커녕 섬뜩한 냉기를 풀풀 날리더니 반사실드를 부숴 버렸 다.
맥없이 걷힌 반사실드 사이로 푸른 빛의 창이 파고들어 땅바닥에 틀어 박혔다.
푸른빛의 창은 강한 빛을 발하며 사방으로 냉기를 방출했다.
바리게이트 안쪽이 삽시간에 빙하 기라도 도래한 듯 서리와 얼음으로 뒤덮였다.
쩌저저적!
조직원들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얼 음상이 되었고,그나마 애덤스만이 서리에 몸이 뒤덮인 채로 바들바들 떨며 간신히 정신을 유지했다.
“허어어어.”
쪼그라든 폐부에서 겨우겨우 찬 숨 이 새어 나온다.
주변이 온통 불바다이건만 몸이 얼 어 움직일 수가 없다니.
온냉의 대비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장 속에서 침입자 무리가 바리게 이트로 접근해 왔다.
푸른빛의 창을 던진 자,니케는 애 덤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바리 게이트 안쪽을 살펴보았다.
“최강현은 없는 건가.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강현이 쉘터 안에 있다면 종소리를 듣고 방어선을 지휘하고 있지 않을 까 싶었다.
예상과 달리 강현은 코빼기도 보이
지 않았지만 말이다.
니케는 뒤늦게 애덤스에게 창끝을 겨누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최강현이 이곳에 있다고 들었다. 놈은 어디 있나?”
“모?"… 모른……
순간 니케가 얼어붙은 채로 널브러 져 있는 조직원을 강하게 짓밟았다.
퍼석!
조직원의 머리가 얼린 사과처럼 처 참하게 박살났다.
거기에 이물질이라도 묻은 것처럼 신발을 바닥에 비벼 밑창을 닦는 니 케 였다.
길을 걷다가 생각 없이 빙판을 밟 아 부수듯 간결하고도 무감각한 몸짓이었다.
니케는 또 다른 조직원의 머리 위 에 발을 올리며 아까와 같은 질문을 날렸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아 줬으 면 하군. 한 번만 더 묻지. 최강현 은 어디 있나?”
애덤스는 추위에 입이 얼어붙은 걸 가장하며 말을 하지 않았다.
외부인이라곤 해도 세이아나의 소 중한 손님이다.
목이 떨어진다 한들 팔아넘길 생각 은 없다.
그때 능선 너머를 살펴보러 간 이 들이 돌아오면서 니케에게 중대한 사실을 보고했다.
“10? 20명쯤 되는 무리가 남쪽 관 문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까요?”
애덤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쉘터 안의 주민들은 진작에 피신시 켰다.
설마 발레나와 고아원의 아이들인 가?
고아원은 높은 지대에 있어서 소식 을 늦게 접했을 수도 있다.
니케는 애덤스의 표정이 바뀌는 걸 보곤 건들거리듯 창끝을 흔들었다.
“저들의 목숨을 팔도록 하지. 최강 현의 위치에 대한 정보라면 얼추 가 격이 맞을 것 같다만?”
“흐으으,아이…… 건들…… 무
관……
“내가 원하는 대답과는 거리가 멀 군.”
니케가 당장이라도 부하들에게 추 격명령을 내릴 태세를 취했다. 세이아나의 손님을 팔아넘길 순 없 다.
하지만 고집을 피우다간 아이들이 죽는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 죽어야 한단 말인가.
세이아나와의 의리이냐,아이들의 목숨이냐.
애덤스는 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말 을 내뱉었다.
“능선 위…… 나무집에 약도……
최강현이 들어간 던전 위치를……
뻣속까지 냉기가 스며들어 더 이상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니케도 그걸 감안하고 애덤스가 내
뱉은 단어만으로 내용을 유추했다.
“능선 위에 있는 집 안에 놈이 들
어간 던전의 위치를 표시한 약도가 있다? 그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애덤스는 눈을 질끈 감으며 질문에 대한 긍정과 자신이 느낀 굴욕감을 동시에 자아냈다.
그것만으로도 애덤스의 정보가 거 짓이 아님을 알기에는 충분했다.
니케는 이제 볼일은 없다는 양 창 에 마나를 부여했다.
“그리 말할 것을,시간낭비하게 만
드는군.”
창이 애덤스의 머리를 꿰뚫으면서 그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퍼석!
어느덧 불길이 능선 위로 번지고 있었다.
애덤스가 말한 집이 불에 타 버리 기 전에 단서를 찾으러 가야 한다. 아무래도 발길을 재촉해야 할 것 같다.
니케는 이동하기 앞서 단원 몇몇을 불러다 명령을 내렸다.
“너희는 도망가고 있는 벌레들을 남김없이 사살해라. 이미 도망친 놈 들도 추격해서 절대로 다른 곳에 도 움을 청하는 일이 없게 만들어야 한다. 알겠나?”
강현을 추격하는 도중에 다른 지부 에서 원군이 오면 귀찮아지지 않겠 는가.
기껏 열기가 올랐는데 찬물을 끼얹 게 할 수는 없다.
귀찮은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조직원,일반인 가릴 것 없이 모두 쓸어버리라는 명령이었다.
혁명군 단원들은 명령에 따랐다. 움직이는 단원들의 모습에선 더 이 상 혁명군 정신이라곤 보이지 않았 다.
*
S랭크 던전 공략을 마치고 쉘터로 돌아오던 지트는 쉘터 내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를 목격했다.
단순한 산불이라 하기에는 인위적 인 느낌이 강하다.
아니나 다를까,쉘터 남쪽 관문으 로 들어서자마자 피신 중이던 발레 나와 아이들과 맞닥뜨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쉘터 내에 침입자가 들어왔어! 쉘 터 안쪽은 지금 불바다에 전쟁통이 된 지 오래야!”
“다른 분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주 군께선? 혜림 양과 루나 양은 돌아 오셨습니까?”
“확인할 겨를은 없었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아.”
“알겠습니다. 얼른 피신하시지요.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적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쉘터 내 수비대의 상황이 어떤지 알지 못 하는 상황에서 불바다 속으로 들어 가는 건 자살행위다.
지트는 아이들의 피신을 도운 후 강현이나 김혜림을 찾아가 그들의 지시를 받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걸음을 채 옮기기도 전에 남쪽 관문에서 무장 괴한들이 튀어 나왔다.
그들은 시커떻게 그을린 몰골로 누 런 이를 드러내며 살기를 풍겼다.
“아이와 여자인가. 뭐 원망하진 마
라. 모든 게 대의를 위한 것이니.”
무엇을 위한 대의인지는 모르나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괴한들이 발레나와 아이들을 죽이 는데 있어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 는 쓰레기들이라는 것.
지트는 물러나려던 걸음을 우뚝 멈 추며 포이즌 소드를 뽑았다.
스릉!
날카롭게 벼린 검날이 검집과 맞닿 으며 청량한 마찰음을 내었다. 마찰음의 여운이 간드러지게 퍼짐 과 동시에 지트가 입을 열었다.
“발레나,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가 십시오.”
“그쪽은 어쩌고?”
“여기 있는 짐승들에게 도리를 가 르쳐 주고 따라가겠습니다.”
발레나는 무운을 빌 듯 입술을 꾸 욱 깨물며 아이들과 걸음을 재촉했 다.
도망치는 아이들을 보고 괴한들이 추격에 나서려 했으나 지트가 검을 옆으로 뻗어 길목을 막았다.
되다만 기사라는 오명을 쓴 자여. 포악한 불길로 약자들이 일군 땅을 태우고,어린 젖살에 피눈물이 흐르 게 하려는 자가 앞에 있다.
여기서 등을 돌리는 자가 어찌 진 정한 기사도를 갈망하리오.
지트는 마스크 헬를 사이로 유백색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지나가고 싶은 자는 지나가라. 대 신 통행료는 너희들의 목으로 지불 해야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