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사람들은 각각 다른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속이 빈 호박을 인형탈 삼아 쓴 자,붕대를 온몸에 칭칭 감은 자, 머리 양쪽에 모형 못을 달아 놓은 자 등등...
거기에 하나같이 키가 작았으며 입 으로는 요상한 주문을 외쳐 댔다.
“트릭 오어 트릿!”
목소리로 추측컨대 쉘터 내의 꼬마 들인 것 같았다.
특이한 차림에,손에는 바구니를 들고 기대하는 눈빛으로 지트를 올 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뭔가 달라고 하는 것만 은 알겠다.
그런데 트릭 오어 트릿이라니……. 이곳에서만 통하는 암호일지도. 멀뚱멀뚱 지트를 보고 있던 아이들 이 오른손으론 바구니를,왼손으론 붉은 액체가 묻은 막대를 들며 말했 다.
“과자냐! 장난이냐! 골라라!”
“어마어마하게 무시무시한 장난이
니까 순순히 과자를 내놓는 게 좋 다!”
“과자! 과자!”
지트는 영문을 알 수 없어 헬멧을 긁적거렸다.
“여러분,한밤중에 돌아다니시면
부모님이 걱정하실 겁니다. 장난은 좋지 않으니 귀가하십시오.”
너무 진지한 반응인지라 아이들 사 이에 맴돌던 열기가 한순간에 식어 버렸다.
아이들은 들었던 두 손을 내리며 정중한 투로 말했다.
“할로윈이에요,아저씨.”
“할로윈이 뭡니까?”
“아! 알았다! 기사 분장했으니까 기사처럼 행동하는 걸 거야!”
“이건 기사 분장이 아니라……
“맞아! 기사 분장이 아니고서야 저 런 이상한 갑옷 입고 다닐 리가 없 어!”
“이,이상한 갑옷? 제 갑옷이 이상 합니까?”
보다 못한 김혜림이 밀대를 벽에 걸쳐 두며 현관문으로 나갔다. 김혜림은 현관문 문틀에 어깨를 기 대곤 여유롭게 팔짱을 꼈다.
“요괴 꼬마들,장난 쳐도 좋아.”
이제야 할로윈을 아는 자가 나왔다 는 게 기쁜지 아이들이 다시 할로윈 분위기로 되돌아갔다.
“정말 장난칠 거야!”
“당하고 나면 과자를 줄 걸 그랬다 고 후회할걸?”
“으히 히 히 히 ?”
유령 흉내를 내며 붉은 액체가 묻 은 막대를 드는 아이들이었다.
붉은 액체는 염료 같은 걸 묶게 풀어서 막대에 묻힌 것으로 보였다. 과자를 주지 않으면 현관문에 낙서 를 하는 게 이곳의 로컬 룰인 것 같았다.
아이들은 장난보다는 과자를 원하 는지 주춤거리면서 귀여운 협박을 계속했다.
“현관문에 낙서할…… 거예요. 진 짜라구요.”
“유령 그림 그리면 밤중에 유령이 자기 집인 줄 알고 온댔어요,누나! 무섭죠? 무섭죠?”
“정말 과자 없어요?”
김혜림은 과자 받고 싶어서 안절부 절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막간을 이용해 아이들을 골려 주고 있는 것이었다.
강현 씨가 항상 사람 골리는 걸 즐기는 이유가 있었네.
아휴,귀여워.
김혜림은 적당히 아이들을 상대해 주다가 팔짱을 풀며 말했다.
“알았어. 과자 줄게. 집에 과자가 있는지 보고 올 테니까 모두 장난치 지 말고 착하게 있으렴.”
“네에?!”
“히히,과자다.”
김혜림이 안으로 들어가면서 현관 문에는 도로 지트 혼자 남게 되었 다.
지트는 자기도 안에 들어가야 하 나,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어색하게 서 있었다.
그러자 아이들 뒤에 서 있던 발레 나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지트에 게 말을 걸었다.
“할로윈을 모른다니 별일이네. 그 쪽은 할로윈을 치르지 않는 나라에 살았나 봐? 분장은 애인이 시켜서 한 거지? 취향 참 별나네. 입힐 거 면 폼 나는 갑옷 좀 입히지.”
아무래도 강현이 분장한 거라고 착 각하고 있는 듯하다.
주군으로 알고 있다는 건 주군과 비견된 정도로 늠름하다는 건가.
아니 아니,그럴 리가 없지.
나 같은 건 주군의 발끝에도 미치 지 못해.
지트에게 있어선 강현으로 오해 받 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느껴질 따름 이었다.
“주군이 아니라 주군의 소환수입니 다. 저지먼트의 중간과 끝을 따서 지트란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편한 대로 불러 주십시오.”
“소환수였어? 인간이라 해도 믿겠 어. 계승자답게 특이한 소환수를 데 리고 다니네. 데릭로우스는 기껏해 야 가축 수준인데,달라도 너무 다 르다 얘.”
“근데 할로윈이 뭡니까?”
“이런저런 유래가 있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애들 과자 받는 날이야. 일 종의 명절 비슷한 거지.”
“그랬었군요. 밤늦게 아이들이 돌 아다니길래 걱정했습니다.”
“하하하,우리 쉘터는 다른 쉘터보 다 길에 돌부리가 많긴 하지.”
지트는 범죄 여부를 말한 것이나, 발레나는 어두운 밤길 때문에 위험 하다는 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만큼 쉘터 내의 범죄율이 0에 수렴한다는 뜻이리라.
잠시 후 김혜림이 과자를 들고 나 와서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동시에 던전 공략을 하느라 지쳐서 자고 있던 루나가 과자 소리에 반응 하여 바깥으로 나왔다.
분명 기절하듯 잠에 빠졌었는데 과 자란 말에 잠이 확 쨌는지 어느새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하고 있었다.
“언니! 과자 줘? 과자 어디 있어?”
“할로윈이라고 알아?”
“그거 과자 이름이야?”
김혜림은 할로윈을 어떻게 설명할 까 고민하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 다.
“잠깐 기다려. 좋은 걸 줄게.”
김혜림이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세 이아나의 옷장에서 마녀 모자와 망 토를 가져왔다.
세이아나 본인 말로는 만약(?)을 대비한 여러 타입의 의상을 가지고 있는데,쓰고 싶으면(?) 마음대로 쓰라 했었다.
가져온 마녀 모자와 망토를 루나에 게 입히자 즉석에서 마녀 분장이 되 었다.
김혜림은 손을 탁탁 털며 만족스러 워 했다.
“세이아나 분장 완성! 이제부터 루 나는 세이아나 언니처럼 흉내 내면 돼. 다른 아이들이랑 돌아다니면서 트릭 오어 트릿이라고 말하면 과자 를 줄 거야.”
“내가 엄마,내가 엄마……
한참을 중얼거리던 루나가 눈을 번 쩍 뜨며 빙의라도 한 듯 세이아나를 따라 했다.
얼굴엔 매혹적인 미소를,말투는
상대방의 심기를 자극하는 말투를 썼다.
“웃는 꼴이 딱 시장판 광대랑 비숫 한걸? 내가 장난을 치면 뒷감당이 안 될 텐데 바로 사탕을 내놓는 게 어때? 꿀 들어간 사탕이 아니면 앞 으로는 광대처럼 웃는 것조차 못하 게 될 거야.”
애들은 금방 흡수한다더니 세이아 나의 말투를 아주 쏙 빼닮아 있었 다.
욕 한 마디 안 섞고 강력한 정신 공격을 할 수 있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일 거다.
루나는 세이아나의 탈을 벗고 평소
처럼 배시시 웃었다.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 내 봤는데 어때?”
“……루나야.”
“응?”
“흉내는 겉모습만 하는 걸로 하자. 알겠지?”
“알겠어!”
김혜림은 발레나에게 양해를 구하 여 루나도 할로윈 무리에 편승시켰 다.
루나가 손을 흔들며 힘차게 떠났 고,김혜림과 지트는 왁자지껄 떠들 며 움직이는 아이들을 부드러이 지 켜 보았다.
멀어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그윽
하게 보던 지트가 자신의 투구를 지 그시 눌렀다.
“밤에도 아이들이 돌아다닐 수 있 는 곳이야말로 낙원이다. 그 말이 어울리는 곳이군요.”
호박향을 흠뻑 묻힌 얼굴로 즐거이 웃으며,열띤 웃음소리는 찬바람조 차 스스로를 부끄러이 여기게 하여 쉘터를 지나치게 만든다.
집집마다 마당에 포도주를 담은 오 크통이 쌓여 있고,벌써부터 싹을 띄운 겨우살이는 이곳이 겨울에도 푸르를 것을 암시하고 있다.
정말이지 좋은 곳이다.
카니발의 쉘터란 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김혜림은 어깨에 걸친 스톨을 여미 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던 일 마저 하자. 보구에 감정 서를 붙이려다가 말았었지?”
“깜빡할 뻔했군요.”
“겉보기엔 마법석이란 소켓 생성기 같던걸. 어디에 붙이는 마법석인지 는 감정서로 확인해 보자. 직접 붙 여 봐.”
“네.”
지트는 김혜림에게서 감정서를 받 아 보구에 붙여 보았다.
하나는 소켓 생성기였고,또 다른 하나는 마법석이었다.
[광대유령의 소을]
등급 : S
타입 : 마법석
특성 : 유령왕국을 떠돌던 광대유 령의 장난기가 뭉쳐서 만들어진 마 법석. 검에만 부착이 가능하다. 소을 을 장착한 검으로 상대의 무기 및 방어구를 가격하면 일정 시간 동안 서로 스킬이 뒤죽박죽 바뀐다.
검에 부착할 수 있는 마법석으로 부딪칠 때마다 일정 시간 동안 서로 의 스킬이 뒤바뀐다고 한다. 김혜림은 감정서에 뜬 문구를 읽곤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양날의 검 같은 마법석이네. 지트 너 스킬 가진 거 있어?”
“가속이라는 s급 스킬이 하나 있습 니다.”
“스킬이 하나뿐이라면 사용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넌 뺏길 게 없는 데 상대방 건 마음껏 빼앗을 수 있 잖아.”
“흠,싸움 중에 뺏은 스킬을 확인 할 틈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럼 상대방이 스킬을 못 쓰게 차 단한다고 생각하고 써.”
“오호라,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군 요. 조언 감사드립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전리품 확인을 마친 김혜림과 지트 는 개인정비를 하며 다음 던전 공략 을 대비하였다.
나중에 루나가 바구니 가득 과자를 받아 와선 밤에 몰래 먹다가 김혜림 에게 들켜서 새로 양치질을 한 것 빼곤 그런대로 평화로운 밤이었다.
*
강현 일행이 흩어져서 던전 순회를 시작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여전히 강현은 SSS랭크 던전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김혜림과 루나도 이번에 들어간 SS랭크 던전에서 사흘째 나오지 않 았고,지트만이 매일매일 S랭크 던 전과 쉘터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밤이 찾아오면서 날이 어두워졌다.
그랜드 마운틴 쉘터는 사방의 관문 을 굳게 걸어 잠그고 외벽 위의 종 루에 조직원들을 배치했다.
조직원이라곤 해도 커뮤니티의 조 직원이라기보단, 그랜드 마운틴의 자경단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겉으로만 커뮤니티에 속해 있을 뿐 이지 사실상 평범한 마을이니 말이 다.
야간 경비를 서는 조직원들은 늘어 져라 하품을 해 댔다.
“흐암?! 요즘 근무 로테이션이 너 무 빡세졌어. 추수철이라 낮에도 제 대로 쉬질 못한다니까.”
“불평하지 마. 인원이 줄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세이아나 님도 거 의 쉬지 못하고 바로 본부로 떠나셨 으니 남은 우리가 잘해야지.”
“이런 산골짜기에 올 사람이 있겠 어? 내가 여기서 지내게 된 이후로 침입자 같은 건 한 명도 없었다고.”
“그런 방심이…… 크헉!”
하품을 하며 한눈을 팔던 조직원은 동료의 신음 소리에 얼른 고개를 돌 렸다.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던 동료의 상 반신이 사라졌고,남은 하반신에선 피가 철철 흘러넘쳤다.
위급함을 느낀 조직원이 단검으로 종루에 묶어 놓은 밧줄을 끊었다. 그와 함께 밧줄에 묶여 있던 통나무가 떨어지면서 종을 강하게 두드 렸다.
데엥! 데엥!
종을 울린 것이 조직원의 마지막 행동이 되었다.
밧줄을 끊는 순간,창 한 자루가 날아들어 조직원의 몸을 꿰뚫었기 에.
외벽 아래의 어두운 나무그늘 속.
일련의 무장 집단이 모습을 드러냈 다.
집단의 선두에는 니케가 서 있었 다.
니케는 보구의 능력으로 창을 회수 하며 얼음장 같은 표정을 지었다.
“더러운 커뮤니티 놈들의 지부다. 최강현은 물론이고 쉘터 안의 그 누 구도 살려 두지 말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