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혁명군 아지트에 31명의 인원이 귀환했다.
출발할 땐 30명이었지만 1명이 추 가된 것이다.
아지트에 있던 혁명군 단원들은 하 나같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귀환자들의 선두에,분명 죽은 줄 알았던 자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니케! 살아 있었구나!”
“모두들 이리 나와 봐! 니케가 살 아서 돌아왔어!”
“진짜야? 망자의 섬에서 살아 나왔 다고?”
석 달 동안 니케의 모습은 상당히
변해 있었다.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드리워질 정 도로 자랐으며,수염은 덥수룩하게 길렀고,장난기가 어려 있던 눈매는 매섭게 다듬어져 있었다.
제대로 먹질 못했는지 볼은 움푹 파였고,눈가 밑에 짙은 다크써클이 드리워져 있는데다,살이 빠진 탓에 전체적으로 몸집이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찢어진 옷 사이로 탄탄한 근육과 핏물 엉킨 피부가 엿보였다. 탄소가 열과 압력을 받으면 다이아 몬드가 되듯,니케의 모습은 담금질 을 거친 후의 모습이라 봐도 무방했 다.
니케는 아지트 내에 북적거리는 사 람들을 둘러보곤 첫 마디를 꺼냈다.
“사람이 많이 늘었군요.”
말투는 예전과 다를 게 없었지만 풍겨 나오는 분위기가 달랐다.
망자의 섬에서 살아남았다는 달성 감과 강해졌다는 자부심이 그를 소 년에서 남자로 만들어 주었다.
김윤중은 니케가 부재중이었을 때 있었던 일은 간략하게 브리핑해 주 었다.
“그간 혁명군 인원은 2배로 늘었 네. 그중 절반이 대륙에 퍼져서 활 동 중이고,자금확보 구조를 사냥에 서 상납금 납부 형식으로 바꾸었네. 원하는 자들만 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단원들이 많은 양 의 CP를 보내고 있네.”
“명령체계는 어떻게 구성했습니까?”
“석 달 전에 자네가 요청한 대로 대장 자리는 비워 뒀네. 그동안 혁 명군의 모든 사안은 창립 멤버들의 의견을 모아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통해 결정했다네.”
“세세한 부분은 나중에 듣겠습니 다.”
니케는 모여든 단원들을 계속 둘러 보았다.
몇 번이나 고개를 두리번거려도 찾 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나의 동생 리리는 어디 있는가. 복귀 소식을 들었다면 맨발로 뛰어 나왔을 터.
리리를 찾아 눈을 깜빡이고 있던 차에 김윤중이 니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김윤중은 유감을 표하듯 안타까움 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리리는 집에 있네. 지금 보러 가 겠나?”
김윤중의 말투로 보건데 리리에게 무슨 일이 있는 듯했다.
보러 가기 전에 각오를 구하는 말 투였다.
니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김 윤중을 따라 나섰다.
아지트 내부에 들어찬 숲을 가로지 르다 보니 작은 오두막집이 나왔다.
오두막집 앞에는 나무를 십자 모양 으로 엮어서 만든 묘비가 박혀 있었 다.
그것도 2개나.
하나는 죽은 줄리안의 것,또 다른 하나는 니케가 죽었으리라고 생각하 고 만든 것이리라.
오두막집 마당 구석에 심은 단풍나 무 아래에 검은 원피스를 입은 리리 가 있었다.
리리는 흔들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단풍나무를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니케는 조용히 걸음을 옮기며 리리 의 이름을 불렀다.
“리리.”
리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니
케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곤 처음 보는 사람인 양 무관심하게 고개를 올려 다시 단풍나무를 올려다보았 다.
붉게 물든 단풍잎 하나가 요람의 흔들림과 똑닮은 곡선을 그리며 아 래로 떨어졌다.
리리는 떨어지는 단풍잎을 향해 손 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어어…… 어어어어……
리리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니케의 발걸음이 멎었다.
내 동생이 어째서 입을 뻐끔거리며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는 건 가.
마치 벙어리마냥.
설마…… 아닐 거다.
그럴 리가 없다.
김윤중은 중절모를 벗어 가슴에 붙 이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자네가 사라진 후에 그녀는 모든 것을 놓아 버렸네. 자네와 줄리안에 대한 기억이며……
“말하는 법까지 놓아 버렸습니까?”
“미안하네.”
아비가 죽고,유일한 혈육인 오빠 마저 제 발로 사지에 뛰어들었다, 슬퍼서…… 너무 슬퍼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으리라.
그녀의 하루가 얼마나 길었을지, 베개는 또 얼마나 적셨을지,가슴속 에 박힌 두 개의 못은 얼마나 아팠을지.
하지만 니케로선 가야만 했다.
줄리안의 죽음이라는 분기점에서 멈춰 설 순 없었기에.
자신의 시곗바늘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서라도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니케는 말없이 리리를 안아 주었 다.
눈물은 홀리지 않았다.
이미 동생이 내 몫까지 모두 흘렸 을 거다.
다음에 눈물을 흘릴 때는 리리가 스스로 검은 상복을 벗고 웃을 때이 리라.
니케는 리리에게서 몸을 떼며 조곤
조곤 말을 꺼냈다.
“최강현은 어떻게 됐습니까?”
“전설급 웨이브를 노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네. 세이아나가 전설급 웨이 브롤 공략하고 있다 하니 같이 있는 게 아닐까 싶네.”
“세이아나의 위치를 추적하면 놈의 정확한 위치를 잡을 수 있겠군요.”
“최강현을 칠 생각인가?”
“말릴 생각이십니까?”
“그 이전의 문제일세. 놈을 처단하
기 위해선 혁명군을 움직여야 하지. 아직 혁명군은 자네를 수장으로 인 정하지 않았네.”
“실력을 증명하라는 거군요.”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진 말게. 응
당 치러야 할 절차이니.”
“알고 있습니다. 공과 사는 구별해 야지요.”
망자의 섬에서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는 그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짐작할 수 없다.
한 단체의 수장이 되는 것인 만큼 모두가 납득할 만한 실력을 보여 주 어야만 한다.
혁명군이 원하는 건 줄리안의 아들 이 수장 자리를 이어받는 것이 아니 다.
실력자 니케가 수장 자리를 이어받 길 원한다.
이후에 김윤중이 혁명군 단원들을 쉘터 바깥에 집합시켰다.
김윤중은 단원들을 정렬시키곤 니 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니케,이제 우리를 납득시켜 보 게.”
단원들의 시선 속에서 니케가 한 일이라곤 단 한 동작뿐이었다.
맞은편 산봉우리를 향해 창 한 자 루를 던진 것.
단지 그게 전부였다.
니케의 동작이 끝났을 때.
모든 혁명군 단원들은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니케에게 예를 갖췄 다.
“니케 수장. 명령을 내려 주십시 오.”
니케는 고요한 적의를 표출하며 혁
명군 수장으로 첫 명령을 내렸다.
“이제부터 혁명군은 커뮤니티에 혼 을 판 최강현을 최우선 제거대상으 로 삼는다.”
니케의 어깨너머에는 투창의 위력 에 의해 소멸된 산봉우리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
혁명군 아지트 내의 버려진 우물 가.
아무도 찾지 않는 음습한 우물 옆 에 혁명군 단원 몇 명이 모였다.
고메즈가 심어 놓은 커뮤니티의 밀 정들이 었다.
밀정들은 고민에 빠졌다.
설마 니케가 살아 돌아올 줄은 몰 탔기 때문이었다.
“예정이 틀어졌어. 우리 원래 계획 은 남은 혁명군을 한데 몰아서 고메 즈 지역장님이 한꺼번에 소탕하게 하는 거였잖아.”
복수에 미친 탓에 커뮤니티 본부와 척을 진 고메즈다.
그래서 복수가 끝난 후 혁명군을 이용해 공적을 세울 예정이었다.
밀정들이 혁명군을 장악하여 모든 혁명군을 한데 모으고,그 뒤에 고 메즈가 몰살시킨다는 계획이었다. 혁명군 토벌 정도 되는 공적이면 커뮤니티 본부에서도 고메즈에 대한 처벌을 철회할 것이 분명했다.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다 여겼는데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고메즈가 사망했다는 것.
니케가 상상 이상으로 강해졌다는 것.
“지금의 니케는 완전히 딴사람이 야. 망자의 섬에서 석 달간 지낸 게 사람을 그리 변하게 할 줄 누가 알 았겠어?”
“과정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니케가 지역장급으로 성장했다는 거 지. 보고를 올려야 해.”
“누구에게 올리려고? 불칸의 전설 급 웨이브를 염탐하던 자들에게서 연락이 도착했어. 전설급 웨이브는 공략되었고,생존자 중에 고메즈 지 역장님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었잖 아. 세이아나와 최강현에게 당한 게 틀림없어.”
혁명군에서도 불칸의 전설급 웨이 브는 중요한 관찰 대상이었다.
커뮤니티에서 얼마나 많은 병력을 투자했는지,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 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정찰대를 보 내 놨었다.
공략이 끝났는데 살아남은 자는 세 이아나 일행뿐이라 했었다.
그게 고메즈의 사망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밀정들은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 다.
“지미 지역장님께 붙을 수밖에 없 어. 마침 본부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니 종이 전서구를 보내자고.”
“어디까지 말할 건데?”
“전부 말해야지. 니케에 대한 것과 세이아나 지역장의 배신 사실. 최강 현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까지 전 부 ”
앞으로 밀정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 는지 지시를 받기 위해서라도 새로 운 직속상관을 찾아야만 했다.
밀정들은 지미의 밑으로 기어들어 가기로 마음먹으며 종이 전서구를 띄웠다.
*
카니발 대륙 동쪽에는 대륙 최대 규모인 13성급 쉘터가 있다.
쉘터의 이름은 바빌론이며 커뮤니 티 본부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빌론.
이름만 들어도 불길하지 않은가.
먼 옛날,하늘에 닿겠다며 탑을 쌓 다가 천벌을 받은 자들의 일화가 담 긴 이름이다.
적어도 현재에 이르러선 결코 좋은 의미로 쓰이진 않는다.
재밌는 건 커뮤니티 수령이 직접 자신의 쉘터 이름을 바빌론이라고 지었다는 점이다.
본인은 먼 옛날 탑을 쌓다가 천벌 을 받은 자들과는 다르다고,실제로 신이 되어 보이겠다는 포부를 담아 과감히 바빌론이란 이름을 붙였다. 바빌론 중심에 위치한 커뮤니티 본 부 안에선 노인들이 모여들고 있었 다.
장로회 회관 안에 20인의 장로가 둘러앉아 회의를 시작했다.
상석에 앉은 60대 초반의 동양인 노인이 노기를 띤 목소리로 운을 띄 웠다.
“전설급 웨이브를 공략하라고 보냈 던 자들이 돌아와서 이리 보고하더 군. 고메즈가 켄야를 죽였다고.”
노인은 장로회 회장으로 하시모토사이젠이란 자였다.
켄야란 하시모토 켄야로 7인의 지 역장 중 한 명이자,사이젠의 늦둥 이 아들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같은 조직원이 아들을 죽였다.
그것도 느지막이 본 외아들을!
사이젠의 붉게 충혈된 눈과,핏줄 이 돋아난 손등만 봐도 그의 분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장로들은 고개를 숙이며 잠깐의 묵 념으로 사이젠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했다. 그러곤 하나둘씩 고개를 들 며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고메즈는 예전부터 통제가 되지 않았었지. 명분이 필요했는데 이참에 처리해 버리세.”
“이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아니지,카니발 대륙에 있는 자들 중에서 고메즈를 죽이지 않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여태껏 명분이 없어서 못 죽인 게 아니잖 나.”
“녀석을 처리하려면 막대한 병력과 시간이 들 걸세. 안 그래도 인재 부 족인 마당에 아군을 처단하자고 제 살을 깎을 필요가 있을까?”
커뮤니티는 명실상부 카니발 대륙 최강의 집단이다.
하지만 실제로 커뮤니티가 관리할 수 있는 지역은 대륙 전체의 2할도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인재 부족에 시달리고 있 는 탓에 손을 놓은 지역이 많다. 장로회로선 카니발뿐만 아니라 하 위차원까지 전부 지배하고 싶지만, 인재 부족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 었다.
막상 하위차원과 전쟁을 벌이면 안 그래도 부족한 실력자들이 대거 빠 져나가면서 카니발 대륙의 쉘터가 엉망진창이 될 거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디벨롭을 통하여 시험 적으로 이세계인 우월주의를 이용해 보는 방법도 써 봤지만 수포로 돌아 갔다.
이러한 실정이다 보니 고메즈를 처
단해야 하나,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장로들의 고민이 수렁 속에 녹아들 고 있는 와중에 기둥 뒤에서 누군가 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메즈는 죽었다는군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기둥 뒤에서 호리호리한 몸집의 흑인 사내가 걸 어 나왔다.
7인의 지역장 중 한 명인 지미였 다.
장로들에게 있어 장로회 회관은 무 척 성스러운 장소였다.
지역장이라 할지라도 허가 없이 들 어올 순 없다.
고로 불쾌함을 드러내는 건 당연지
사였다.
“지미 지역장. 언제부터 장로회 회 관이 자네 집 안마당이 됐지? 들어 올 땐 허가부터 받아야 할 텐데?”
“이거 참 제가 지고하신 분들께 죽 을죄를 지었군요. 노크부터 다시 시 작할까요?”
“그게 반성하는 자의 말투인……
“다들 조용히 하게!”
사이젠의 일갈에 장로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장로회 내에서 사이젠의 명령은 절 대적이다.
지미는 시장통처럼 난잡하던 장내 가 한순간에 조용해지는 것을 보곤 익살스레 손뻑을 쳤다.
짝,짝,짝.
“과연 사이젠 회장님이시군요. 제 가 매우 중요한 보고를 했는데도 들 으신 건 회장님뿐입니다.”
“입에 발린 말은 집어치워라. 그보 다 고메즈가 죽었다는 게 사실이더 냐?”
“고메즈가 혁명군에 심어 놓은 밀 정들이 혁명군의 눈과 입을 통해 불 칸의 상황을 알아냈습니다. 불칸의 전설급 웨이브는 공략되었고,살아 남은 자는 세이아나 일행뿐이라는군 요.”
“세이아나가 고메즈를 처리했다? 상성상 가능할 리 없다. 날 우롱할 셈이냐.”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세이아나 옆에 누가 붙어 있는지 들 으신다면 납득하실 겁니다.”
“누가 붙어 있느냐?”
“최강현이란 이름 석 자를 기억하 고 계십니까?”
사이젠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어찌 모를 리가 있겠는가.
카니발 대륙에서 유일하게 고메즈 를 물 먹인 자다.
최강현과 세이아나가 합심하여 고 메즈를 상대했다면,고메즈가 죽은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은 간다.
허나 어째서 세이아나와 최강현이 함께하고 있단 말인가.
지미는 오늘 아침 전해 받은 종이 전서구를 펼치며 한 마디 덧붙였다.
“세이아나가 커뮤니티를 배신할 생 각을 하고 있다는군요. 처단이 필요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