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화
강현 일행은 전설급 웨이브 공략을 마치자마자 난쟁이 하우스를 소환하 여 휴식을 취했다.
강현은 난쟁이 하우스가 담긴 유리 구슬을 꺼내어 마나를 불어넣은 후 바닥에 던졌다.
그러자 유리구슬이 깨지면서 난쟁 이 하우스가 급격히 커지더니 금세 멋들어진 오두막집이 되었다.
현관 앞에 처마 딸린 마루가 달린 유럽 시골풍의 오두막집이었다. 강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두막 집 마루로 들어서는 계단을 올랐다.
“현관 앞에 5개짜리 계단이라. 빌
로스 제국이었다면 5골드짜리 계단 세를 물있겠군.”
세이아나가 루나를 업은 채로 마루 에 올라서며 놀란 듯이 말했다.
“아직도 계단세가 있어? 그거 구시 대의 유물 아냐?”
김혜림이 세이아나를 따라 마루에 오르며 고개를 저었다.
“그거 폐지된 지 오래예요. 에르델 황녀님이 황궁의회 장악하면서 불필 요한 세금은 다 정리했거든요.”
“최강현,문 열어 줘. 루나부터 뉘 여야겠어. 침대가 있으면 좋겠는데.”
“들어가 보면 알겠지. 연다.”
강현은 오두막집 현관을 열고 안으 로 들어갔다.
난쟁이 하우스 안은 생각보다 넓었 다.
1층은 탁 트인 구조의 개방형 주 거공간이었고,2층으로 올라가기 위 한 사다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1층을 살펴보니 4개의 침대와 7인 용 테이블 및 의자,벽난로,부엌, 욕실,화장실,좁은 창고가 있는 것 이 보였다.
2층에는 3개의 침대와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작은 창문이 전부였 다.
침대는 총 7개,테이블도 7인용.
일곱 난장이를 모티브로 생성된 보 구라 최대 7명이 살 수 있도록 가 구가 배치되어 있는 듯하다.
강현은 2층 복층을 확인하고 1층 으로 내려가며 말했다.
“밑에 있는 침대 4개는 너희들이 쓰고,내가 위층을 쓰는 걸로 하지.”
세이아나는 루나를 1층의 침대 중 한 곳에 뉘이며 한숨 돌렸다.
“침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좋네. 요 즘 들어서 노숙할 때마다 뼈마디가 쑤시더라고.”
“나이가 들어서 그래.”
“아직 경로우대증을 가지고 다닐 나이는 아니거든?”
욕실을 살피러 갔던 엘리스가 들뜬 목소리로 세이아나를 불렀다.
“세이아나 지역장님! 욕실에 욕조 가 있습니다! 물은 벽난로에서 데워서 옮기면 될 것 같은데 바로 준비 할까요?”
“분해하지 않길 잘했네. 인간이 발 명한 최고의 문화생활시설까지 갖춘 집을 분해했다면 아까워서 후회했을 걸? 엘리스,물은 넉넉하게 데워 둬.”
“네!”
세이아나는 빈 침대에 걸터앉으며 강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치다. 강현은 벽에 등을 기대며 말을 꺼 냈다.
“뭐 할 말이라도 있나?”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시곗바늘이 오전 6시를 가리키려
면 멀었어. 그때까지 쉬고 나서 정 해도 늦지 않아.”
“어차피 목욕물이 데워질 때까진 깨어 있을 거잖아? 너라면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해 뒀을 거고.”
“한동안은 신화급 웨이브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겠지.”
“시기상조라 여겨서 말하지 않았었 는데 신화급 웨이브는 이미 나타나 있어.”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부터 카니발 대륙 곳곳에 자리 잡고 있던 웨이브 라 할 수 있겠지.”
“웨이브는 제한시간이 존재하는 걸 로 안다만.”
“적어도 신화급 웨이브는 아냐. 제 한시간이 없어. 그 점만 빼면 다른 웨이브와 다를 게 없지만 말이야.”
“커뮤니티에선 신화급 웨이브의 위 치를 아나?”
“당연히 알고말고. 신화급 웨이브 는 총 5개가 존재해. 현재까지는 2 개만 발견되었어. 참고로 신화급 웨 이브는 한 번도 공략에 성공해 본 적이 없어. 커뮤니티에서도 아예 방 치하고 있는 실정이지.”
세이아나가 시선을 허공에 두며 손 으로 넌지시 자신의 팔을 쓸어내렸 다.
풀리지 않는 저주 때문에 그녀의 몸에는 독이 흐르고 있다.
분명 신화급 웨이브를 공략하다가 풀 수 없는 저주에 걸렸다고 했었 다.
게드팅스의 뉴튼 때도 그랬듯 해 주가 불가능한 저주에 걸릴지도 모 르는 곳이 신화급 웨이브인 것 같았 다.
커뮤니티로선 지역장급을 투입하고 도 공략하지 못한 곳에 뜻을 둘 리 없었다.
세이아나는 단순히 정보나 알려 주 고자 신화급 웨이브를 언급한 게 아 니었다.
그 부분은 강현도 이미 감지한 바 였다.
강현은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
했다.
“내가 겁먹을 걸 염려해서 미리 얘 기하지 않았던 거군.”
“그 걱정은 지금도 마찬가지야.”
“어이,세이아나. 내가 세상이 초기 화될 날이 오지 않길 바라며 기도나 하고 있을 사람으로 보이나 보지?”
무덤덤한 말투 속에 불쾌함이 섞여 있었다.
세이아나의 걱정은 강현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나 다름없었다.
함께 다니며 그의 능력에 몇 번이 나 감탄했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의심이 남아 있던 모양이 다.
세이아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의 힘을 뻤다.
“미안. 내가 너무 생각이 많았나 봐.”
“나이가 많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지?”
“후후,이번 건 내가 잘못했으니까 달리 할 말이 없네. 마음이 풀릴 때 까지 할머니라고 부르도록 해. 경로 우대증 발급은 해 줄 거지?”
“농담은 여기까지만 해 두자고. 그 보다 신화급 웨이브를 공략하면 창 조급에 도달할 수 있는 건가?”
“맞아. 카니발 대륙 동쪽의 고대 유적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어. 신 화 속에 존재하는 다섯 마리의 신수 를 없애면 창조의 영역으로 가는 길이 나오리니…… 라는 문구였지.”
더하여 고대 유적에는 다섯 마리의 신수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 다섯 마리를 열거하자면……. 땅과 하늘을 잇는 생명의 나무,그 랜드우드.
생기 없는 무덤을 지배하는 사신들 의 수장,하이데스.
땅 속을 헤엄쳐 다니는 늪의 포식 자,어스메갈로돈.
욕망으로 가득 찬 정원인 로열가든 의 주인,바몬.
유대와 신뢰를 농락하는 축제의 주 도자,드링큰크라운.
각 신화급 웨이브는 공략에 실패하
여 탈출할 경우 풀리지 않는 저주에 걸린다고 한다.
세이아나의 경우 그랜드우드가 있 는 신화급 웨이브에 들어갔다가 몸 에 독이 흐르는 저주에 걸린 것이었 다.
신화급 웨이브 다섯 곳 중 두 곳 의 위치만 밝혀졌다면 먼저 그 두 곳부터 가야 한다.
강현은 세이아나가 공략하다가 퇴 각했다던 곳부터 알고자 했다.
“그랜드우드의 영역부터 가겠어. 어디에 있지?”
“거기라면 카니발 대륙 중부 지방 에 있어. 내 지부와 가까우니까 일 단 내 지부로 가자. 커뮤니티의 동향도 확인해야 하고,너도 신화급에 들어가기 전에 좀 더 스렛을 각성시 키고 들어가는 게 여러모로 유리할 거야.”
“어차피 가는 길목에 있으니 나쁘 지 않겠군. 여기서 네 지부까지의 거리는 어떻게 돼?”
“평범하게 이동하면 한 달 조금 안 돼서 도착할걸?”
“바쁠 거 없으니 느긋하게 가자 고.”
기나긴 논의 결과,다음 행선지가 정해졌다.
그랜드우드가 있는 신화급 웨이브 로 가기 위해 세이아나의 지부에 가 기로 했다.
논의가 끝남과 동시에 부엌에서 김 혜림이 살금살금 조용히 걸어 나왔 다.
그녀는 강현의 옆까지 다가와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강현 씨,강현 씨. 부엌 완전 대 박이에요. 조리 도구란 조리 도구는 다 있어요.”
“들뜬 건 알겠는데 속삭이면서 말 할 필요가 있어?”
“아이참,루나가 자잖아요.”
“그렇군. 피곤할 텐데 부엌은 내일 아침에 쓰지 그래?”
“제 몇 안 되는 즐거움인 걸요. 대 신 나쁘지 않다는 말 대신 맛있다고 해 주세요.”
“생각해 보지.”
“아싸,생각이라도 해 준다니 웬일 이래.”
김혜림은 즐거운 듯 깨금발을 뛰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세이아 나가 아련한 눈빛을 띠며 나지막이 말했다.
“재한테 잘해 줘. 좋은 아이잖아.”
“글쎄. 생각해 보지.”
너무 무신경한 대답이 아닌가 싶었 는데 강현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니 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강현의 눈길은 김혜림의 뒷모습에 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기에. 세이아나는 팔꿈치를 무릎에 기대고 턱을 괴며 피식 웃었다.
“후후,못 말리는 녀석이라니까.
*
카니발 대륙 서쪽 바다 위.
배 한 척이 돛을 펄럭이며 세차게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었다.
갑판 위에는 김윤중이 서 있었다. 목적지는 망자의 섬이다.
석 달 동안 수련하겠노라고 선언하 고 망자의 섬으로 들어간 니케를 데 리러 가는 중이었다.
함께 배에 탄 혁명군 단원들은 벌 써 포기한 기색이 다분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망자의 섬이야.
아직까지 살아 있을 리가 없잖아.”
“몬스터 뱃속에나 들어가야 니케와 재회할 수 있을걸? 그리고 재회와 동시에 위액에서 수영을 하게 되겠 지.”
“리리도 참 안됐어. 아비와 오빠를 둘 다 잃고 실성해 버렸으니.”
여기저기서 부정적인 소리만 자꾸 흘러나온다.
그러던 차에 갑판 앞쪽에서 김윤중 이 활을 꺼냈다.
“도착했다. 상륙 준비해.”
저 멀리 수평선 부근에서 작은 섬 이 나타났다.
배가 나아갈수록 섬의 풍경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섬 주변은 까마귀 떼가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었고,해변에 난파선 의 잔해가 수없이 널려 있어서 보기 만 해도 불길함이 물씬 풍겨 왔다.
저 죽음의 잔향이 가득한 곳에 들 어가고 싶은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혁명군 단원들은 난색을 띠며 김윤 중에게 말을 걸었다.
“윤중,분위기가 너무 안 좋은데 상륙을 재고해 보는 건 어떤가?”
다들 꺼리는 분위기였지만 김윤중 은 단호했다.
“세 달 뒤에 데리러 온다고 약속했 었지. 약속이란 건 지키라고 있는 것일 텐데?”
“솔직히 말해 보게. 니케가 살아
있을 거라 생각하나?”
“언제부터 혁명군이 겁쟁이들의 소 굴이 됐지? 죽은 줄리안이 땅속에서 통곡하겠군.”
“사람이 말을 해도 그딴 식으로밖 에 못 하…… 어억!”
쿠응!
갑판 위에서 의견이 분분하던 차에 선체가 크게 흔들렸다.
혁명군 단원들은 급하게 난간이며 돛대를 붙들었고,원인을 찾기 위해 난간 너머로 고개를 내민 자들이 다 급하게 위험을 알렸다.
“리,리바이어던이다!”
“갑판 위에 대형 갖춰! 배를 최우 선으로 지켜라!”
“젠장! 상어 간식이 될 줄 알았다 면 따라오지 않는 거였는데!”
리바이어던은 상어의 모습을 한 바 다몬스터로,크라켄보다 두 단계 위 의 무력을 자랑한다.
소형선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 대가 아니었다.
갑판이 패닉 상태에 빠진 와중에 김윤중만이 냉정하게 상황을 관찰했 다.
클로징 포션을 뿌렸으니 몬스터가 덤벼들 리 없다.
단순히 서로 지나가다가 부딪친 것 이리라.
김윤중은 난간 너머로 고개를 내밀 었다.
배 아래로 길이 10미터짜리 거대 상어가 지느러미를 내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리바이어던의 몸이 훌렁 뒤집히더니 허연 배가 드러났 다.
드러난 뱃가죽엔 누군가에게 당한 양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김윤중은 표정을 달리하며 언성을 높였다.
“진정해! 습격이 아니라 리바이어 던의 시체가 떠밀려 와서 부딪친 거 다!”
다른 단원들도 하나둘 난간 너머를 재차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쉬었 다.
그러나 안심하는 것도 잠시뿐.
선박 앞쪽에서 연이어 육중한 소리 가 들려왔다.
쿵! 쿠응! 쿵쿵!
이번에도 몬스터 시체가 부딪친 걸 까.
갑판 위에 긴장감이 팽배한다.
혁명군 단원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난간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바다를 본 순간 모두의 낯 빛이 누렇게 떴다.
바다 수면 중에는 몬스터의 시체가 가득했던 것이다.
개중 대부분은 육지몬스터의 시체 였다.
몬스터의 시체들에는 하나같이 창 으로 꿰뚫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와 함께 모두가 해변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선의 끝에는 절대로 살아남지 못 할 거라 여겼던 자가 서 있었다. 아비를 잃은 분노를 원동력 삼아 망자의 섬에서 살아남은 사내가 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