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4개의 구간 생략의 돌에 감정서를 붙여 보니 모든 게 확실해졌다.
구간 생략의 돌은 커즌즈 탑 한정 물품이며,색깔별로 두 층 생략,세 층 생략,네 층 생략,다섯 층 생략 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부 합치면 열네 층에 해당하는 구간을 생략할 수 있는 셈이다.
17층부터 사용하면 30층까지 한꺼 번에 생략할 수 있다.
그리되면 보스몬스터가 있는 층까 지 생략된다는 셈인데,아쉽게도 보 스방은 생략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간중간에 휴식 공간이 있으니까
오히려 구간 생략의 돌이 남는군. 커즌즈 탑 한정물품이니 다른 곳에 서 쓸 수는 없을 것 같고,해체해서 CP로 환전하는 게 최선일 테지.’ 구간을 생략하는 만큼 웨이브 공략 으로 얻을 수 있는 보구의 숫자가 줄어든다.
보구의 숫자가 줄어들면 덩달아 환 전할 수 있는 CP의 양도 줄어들 테 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더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다.
구간 생략을 해도 탑 포인트가 오 를까?
탑 포인트 측정기를 확인해 보니 상당량의 탑 포인트가 들어와 있었다.
[최강현 님의 탑 포인트 : 50이
[전체 누적 탑 포인트 : 35, 100]
[누적 탑 포인트가 4만을 넘기면 특수몬스터가 소환됩니다.]
이미 15층에서 탑 포인트를 CP로 모두 환전하여 0포인트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500포인트가 쌓여 있었다.
A랭크? 전설급 소형 웨이브 보석을 전부 클리어한 만큼의 탑 포인트가 들어온 셈이었다.
구간 생략을 해도 탑 포인트가 쌓 인다면 CP가 모자라 좌판에서 물건을 사지 못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 을 거다.
‘아직 루나의 탑 포인트는 한번도 환전하지 않았으니 CP가 모자랄 일 은 없겠군.’
루나의 탑 포인트는 나중에 한꺼번 에 환전하여 CP교환기로 넘겨받을 생각이다.
루나가 굳이 자기가 쓰고 싶다면 쓰게 놔둬도 상관없지만 애한테 거 액을 쥐여 주는 건 좋지 않다.
그 왜 설날 세뱃돈도 나중에 돌려 줄 거란 명목으로 받아 두지 않던 가.
어지간해선 돌아오지 않는 돈인지 라 함흥차사 돈이라 불리기도 한다 만,그만큼 나중에 루나에게 필요한 보구가 나오면 줄 것이니 얼추 타산 은 맞지 않을까 싶다.
강현은 소리잔에 입을 대며 던전의 길에도 구간 생략의 돌이 나타났는 지 확인했다.
“구간 생략의 돌 s급부터 전설급까 지 확보했다. 그쪽은 어떻게 됐는지 보고해.”
- 이쪽도 던전의 길 16층에 포함 되어 있던 S랭크부터 전설급 던전이 자동으로 클리어됐어. 구간 생략의 돌도 확보한 참이야. 풍경이 혹혹 지나간 것 때문에 조금 어지럽긴 하 지만 그 외에는 별 문제없어.
“17층에서 SS급 구간 생략의 돌을
쓰는 걸로 하지.”
- 사용하면 바로 20층으로 갈 수 있겠네. 오케이 오케이,17층에서 다시 신호 줘.
SS급 구간 생략의 돌을 쓰면 세 층을 생략할 수 있다.
17층에서 쓰면 17층,18층,19층 이 자동으로 공략되고,바로 휴식 공간인 20층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하여 강현 일행과 세이아나 일 행은 17층에서 바로 20층의 휴식 공간으로 이동했다.
20층의 좌판에선 비밀방 열쇠 조 각,개인 마켓 스텟 포인트 10퍼센 트 할인권만 샀다.
이어서 21층에서 SSS급 구간 생략
의 돌을 이용해 21층,22층,23층, 24층 구간을 생략했다.
그리고 25층에서도 마찬가지로 비 밀방 열쇠 조각과 개인 마켓 스텟 포인트 20퍼센트 할인권을 구입했 다.
최종적으로 강현의 개인 마켓 스텟 포인트는 최대 할인율인 50퍼센트 할인이 적용되어,1포인트당 50만 CP에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16층에서 25층으로 이동하는데 걸 린 시간은 3시간에 불과했다.
중간에 누적 탑 포인트가 4만이 넘어 냉기의 사신이 나타났고,특수 몬스터 제거 포션으로 놈을 제거한 것 이외엔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잠깐 숨도 돌릴 겸 25층에서 식사 를 하고 가기로 했다.
강현은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뗄감 을 줍기 시작했다.
그런데 김혜림이 조용히 따라붙어 선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마음이 편치 않네요. 명색이 전설 급 웨이브인데 일이 너무 쉽게 풀리 는 감이 있지 않아요?”
“쉽게 풀리는 정도가 아니지.”
“분명히 뭔가 있겠죠. 이만한 물건 을 노 리스크로 쓸 수 있을 리 없 어요.”
평범하게 한 층씩 공략하는 게 명 절 때 고속도로를 타는 거라면,지 금은 뻥 뚫린 도로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명절 때 차를 타고 목적지 를 향해 뻥 뚫린 길로 가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뭐긴 뭐겠나.
역주행이지.
보기에는 속도를 높여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위험이 발생 할지 모르는 상태라는 거다.
김혜림은 저 나름대로 소거법을 적 용하기 시작했다.
“탑 포인트가 페널티로 작용하는 건 아닐 거예요. 누적 탑 포인트 초 기화도 있고,특수몬스터 제거 포션 도 있으니까요.”
“30층에 들어가려면 또 다른 조건 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군. 예를 들면 특정 수 이상의 웨이브나 던전 을 공략한 자만 보스방에 들어갈 수 있다든지.”
“강현 씨라면 과반수가량 공략했으 니까 그 정도 조건이면 괜찮겠죠. 아,혹시 30층에 보스몬스터가 없는 건 아닐까요? 올롬보르의 베킨스 던 전을 떠올려 봐요. 쉐도우 리퍼처럼 전 구간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보스몬스터일지도 몰라요.”
“그건 아닐 거야. 1층에서 30층을 공략해야 된다고 적혀 있었으니까.”
“으음,단서가 너무 적네요. 정확한 건 직접 가 봐야 알 수 있겠어요.”
“무언가 페널티가 있을 거란 사실 만 염두에 두고 있으면 돼.”
세상에 확실한 게 어디 있겠나. 변수가 존재하는 일을 미리 단정 지어 버리면 임기응변에 녹이 끼어 버린다.
얼추 예상은 하되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강현과 김혜림의 대화는 식사 증에 도 계속되었다.
“혹시 모르니까 누적 탑 포인트 초 기화권은 여기서 쓰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지금 누적 탑 포인트가 몇이지?”
“45, 100이에요.”
“특수몬스터 제거 포션이 없으니
쓰고 가는 게 낫겠군. 아,혹시 그 거 챙겨 왔나?”
“김치찌개 재료 말하는 거죠?”
“그래. 그거.”
“카니발 차이나타운에서 재료 사서 대용량 용기에 넣어 놨어요. 푹 익 었을 테니 공략 끝나고 해 드릴게 요.”
“저쪽 일은 어떻게 됐고?”
“제가 떠날 때만 하더라도 내전 중 이었어요. 다른 일은 굳이 강현 씨 가 신경 쓸 정도는 아니고,그나마 전할 소식이라면 음디티 경과 시빌 경이 전사했다는 사실뿐이네요.”
“그렇게 됐군.”
“네,그렇게 됐죠.”
나머지 사람들은 멍하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알아듣는 거지?
그거이니,저쪽이니 하는 것만으로 도 강현이 말하고자 하는 걸 전부 알아듣고 있는 김혜림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연륜이 물씬 느껴지 는 대화였다.
신기한 나머지 루나가 김혜림의 무 릎을 가볍게 두드리며 그녀를 불렀 다.
“언니,어떻게 알아듣는 거야?”
“눈치로 알아듣는 거야.”
“나도 알려 줘. 가끔씩 오빠가 화 내는 건지,장난치는 건지 구별하기 힘들 때가 있어.”
“아? 뭘 말하는지 알겠다. 그거 구 별하는 건 고난이도 기술인데 말이 지. 루나가 배울 수 있을까?”
“그,그렇게 어려워?”
“엄? 청 어렵지. 먼저 오징어라고 불려야 해.”
“오빠! 오징어라고 불러 줘!”
강현은 수프를 담은 컵에서 입을 떼며 김혜림에게 핀잔을 주듯 말했 다.
“애한테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
“후후,장난치는 걸 구분하려면 장 난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최고 아 니겠어요?”
“난 아직도 널 오징어로 보고 있다 만?”
“슬슬 크라켄으로 승격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돼요?”
“크라켄급 덩치가 되면 그리 불러 주지.”
“봤지? 이게 농담하는 거야.”
“우움……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강현은 수프컵을 비우며 무심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
“참고로 루나는 니모야.”
“어라? 루나에겐 어종이 아니라 제
대로 된 별명을 붙여 줬네요.”
“그래도 바다생물인 건 마찬가지지
만.”
공략에 대한 논의로 시작한 대화는 실없는 주제로 끝이 났다.
식사가 끝난 후,강현을 포함한 공 략대는 26층으로 올라가서 라스트 스퍼트를 끊었다.
전설급 구간 생략의 돌을 이용하여
26층? 29층 구간을 생략했다.
30층 입장 조건이 있지 않을까 했 었는데 그런 것 없이 바로 30층에 도착하게 되었다.
30층은 웨이브의 길과 던전의 길 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매우 넓은 공 간을 이루고 있었다.
30층의 배경은 폐허가 된 중세도 시였다.
다 허물어지고 벽과 기둥만 남은 건물부터 썩은 물이 고여 있는 배수 로,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유리조각,잡초가 자라나 있는 깨진 화분 까지.
쇠락한 망국의 모습이 이럴까.
분위기까지 음산한 것이,시체만 없을 뿐 도시의 형태를 띤 공동묘지 나 다름없었다.
세이아나는 배수로에서 새어 나오 는 악취를 맡곤 손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악취 한번 끔찍하네. 정화조 냄새 도 이것보단 향긋하겠어.”
“독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어요. 독 면역 스킬이나 해독 보구가 없는 사람은 미리 해독 포션을 마셔 두세 요.”
김혜림이 루나와 엘리스에게 해독
포션을 챙겨 주는 사이 강현은 주변 을 둘러보았다.
그 결과 폐허 사이에서 나무 표지 판을 발견했다.
[몽환조의 망상(난이도 : 전설)]
-이곳은 커즌즈의 탑 30층에 존재 하는 몽환조의 망상이 구현화된 던 전입니다.
-망상을 걷어 내려면 몽환조가 소 환하는 ‘하피 퀸’을 모두 처치해야 합니다. 하피 퀸의 숫자는 공략자가 커즌즈의 탑에서 생략한 층의 숫자 만큼 소환됩니다.
-‘하피 퀸’은 비행 중에는 무적 상 태입니다. 하피 퀸은 하피 퀸의 스킬인 ‘깃털 폭풍’에만 타격을 입습 니다.
(석화 상태,액체 상태,스킬 봉인 상태에서도 무적 능력은 유지됨니 다.)
-하피 퀸을 모두 처치한 후에 나 오는 몽환조까지 처치하면 커즌즈의 탑 클리어.
가장 먼저 인지한 사실은 강제 클 리어가 없다는 점이었다.
전설급은 제물로 편히 클리어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 같았다.
두 번째로 눈에 띄는 건 ‘무적’이 란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공격무효화 능력의 한 단계 위의
실드인 모양이다.
전설급 난이도는 처음 겪는 강현이 기에 다소 생소한 능력이었다.
七}피 퀸의 깃털 폭풍이 다른 하피 퀸에게 적중하도록 유인해야 하는 거군. 그리고 역시 생략한 구간만큼 페널티가 있는 거였어.’ 16층부터 구간을 생략했으니 휴식 공간을 제외하고 총 12개의 구간을 생략했다.
그 말은 즉 1? 2마리만 해도 성가 실 것 같은 비행 몬스터가 12마리 나 소환된다는 뜻이다.
뒤이어 다른 사람들이 나무 표지판 에 다가와선 안내문을 쭈욱 읽어 내 렸다.
아니나 다를까,김혜림이 가장 먼 저 공략법을 이해하곤 입을 열었다.
“몬스터의 공격으로 몬스터를 공격 해야 하네요. 유인 역할은 제가 맡 을게요. 공중전을 펼칠 수 있는 스 킬이 있거든요.”
세이아나도 공략법을 이해했는지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해 두었다.
“나와 루나는 썬더 크래쉬의 뇌운 으로 하피 퀸의 시야를 차단할게. 미리 말해 두는데 메모라이즈 스태 프가 부서져서 중간중간에 마나포션 을 마셔야 돼. 공백시간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여 줘.”
“마나포션이라면 많아!”
“저도 지상에서 지원하겠습니다.”
바쁘게 역할 분담을 하는 가운데 하늘에서 12마리의 하피 퀸이 소환 되었다.
여성의 상체에 새의 하반신,6개의 붉은 날개를 지닌 신장 3미터의 거 대 하피였다.
거기에 하피의 여왕임을 상징하는 붉은 벼슬이 머리 위에 떡하니 붙어 있었다.
하피 퀸이 소환된 이상 미적거릴 때가 아니다.
모두가 하피 퀸을 상대로 각자 맡 은 역할을 수행하려고 부지런히 움 직였다.
그런데 별안간 강현이 앞장서며 한 마디 내뱉었다.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다른 숨겨진 공략법이라도 찾아냈
어요?”
“가만히 보고나 있어.”
하늘에선 하피 퀸들이 날개를 퍼덕 이며 공격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강현은 검조차 뽑지 않고 하피 퀸 들이 훤히 보이는 공터로 나섰다.
그 뒤에 강현이 한 일이라곤 하피 퀸들과 눈을 마주친 것뿐이었다.
3초 동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