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화
같은 시각.
던전의 길 쪽에서도 같은 상황을 겪고 있었다.
김혜림 일행이 16층에 도착하자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나무 표지 판만 덩그러니 박혀 있었다.
[커즌즈의 탑 16층 안내]
-커즌즈의 탑 16층에는 A랭크,S 랭크,SS랭크,SSS랭크,전설급 소형 웨이브 보석이 각각 비치되어 있습 니다.
-공략자는 보석 중 하나를 선택하 여 공략해야 합니다. 5개의 보석 중 가장 먼저 누군가가 입장한 보석을 선택한 걸로 간주합니다. 단,한 번 난이도를 선택하면 나머지 4개의 소 형 웨이브 보석에는 더 이상 입장할 수 없게 됩니다.
-소형 웨이브 보석 중 하나를 공 략하면 ‘구간 생략의 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높은 난이도의 웨이브와 던전을 클리어할수록 생략할 수 있 는 층수가 달라집니다.
(A랭크-한 층 생략,S랭크-두 층 생략,SS랭크-세 층 생략,SSS랭크 -네 층 생략,전설급-다섯 층 생 락.)
-웨이브의 길에서 먼저 난이도를 설정하면 던전의 길에도 같은 난이 도가 적용됩니다.
-양쪽 길 모두가 해당 난이도를 클리어하면 보상을 이용하여 다음 층으로 바로 갈 수 있습니다.
-고난이도를 클리어하여 단번에 높은 층으로 올라가면 건너뛴 층은 모두 공략을 마친 걸로 적용됩니다.
김혜림을 비롯한 여성진은 안내문 을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일단 웨이브의 길 쪽에서 강현이 난이도를 선택해야 한다.
그 후에야 던전의 길 16층이 선택 한 난이도에 따른 던전으로 재구성 되는 모양이다.
세이아나는 규칙을 이해하곤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계속 SSS랭크나 공략 해야 되나 싶었는데 잘됐네. 현이 녀석이라면 전설급 웨이브를 고르겠 지. 전설급 웨이브는 제물이니,강제 클리어니 하는 거 없이 순수 실력으 로 공략해야 하니까 다들 긴장해.” 세이아나와 엘리스가 나무 표지판 에서 눈을 땐 이후에도 김혜림만은 줄곧 안내판을 반복해서 읽고 있었 다.
문구 속에 뭔가 꺼림직한 부분이 있다.
여태껏 한 층을 통과하려면 SSS랭 크 난이도의 웨이브나 던전을 공략 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A랭크 난이도를 클리어하면 한 층을 올라갈 수 있다 고 한다.
여태까지와 같은 SSS랭크 난이도 를 클리어하면 네 층을 단번에 건너 될 수 있고 말이다.
아무리 봐도 형평성이 맞지 않는 다.
무언가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 에 없다.
더불어 ‘선택한 난이도를 클리어하 면 보상을 이용하여 다음 층으로’란 문구가 거슬린다.
어감이 조금 이상하지 않아?
클리어하면 다음 층으로 갈 수 있 는 게 아니라 보상에 따라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다라…….
강현 씨라면 분명 이 부분을 놓치 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은 이 문구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사람이라면…….
가만히 있던 김혜림이 입꼬리를 씨 익 올리며 말을 꺼냈다.
“강현 씨라면 A랭크를 선택할 거 예요.”
석궁에 쓸 화살을 꺼내던 엘리스가 의문을 표했다.
“가능하면 전설급 난이도를 공략해 서 바로 20층으로 가는 게 낫지 않 나요? 우리 목적은 최강현 씨를 비 밀방으로 들여보내는 거잖아요. 레벨 업이나 보구 취득이 목적이었다 면 그쪽이 낫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구태여 시간낭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엘리스가 동의를 구하는 양 세이아 나를 쳐다보았다.
한편 세이아나는 김혜림의 말을 듣 자마자 다시금 안내문을 읽어 보았 다.
이내 곧 세이아나도 김혜림의 말뜻 을 알아차리곤 그녀의 의견에 동의 했다.
“흐응?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네. 아니다. 이쪽이 정답이겠어. 그렇군, 그렇군.”
“역시 A랭크겠죠?”
“맞아. A랭크겠지.”
세이아나마저 숨겨진 공략법을 알 아낸 마당에 엘리스만 아무것도 알 아차리지 못했다.
양쪽에서 세이아나와 김혜림이 서 로 알아차렸다며 웃고 있다.
엘리스는 저 혼자 동떨어진 기분이 들어 발을 동동 굴렀다.
“뭔데요? 저도 알려 주세요.”
“후후,몇 번이나 읽으니까 알겠더 라고요.”
“후후,나도 네 얘기 들으니까 보 이더라고.”
“끄윽,둘이서만 웃지 말고 알려 주세요.”
대화를 나누던 가운데 비어 있던
공간에 하얀빛이 가득 찼다.
빛이 워낙 강렬한 탓에 손으로 눈
꺼풀 위를 덮으며 빛이 가라앉길 기 다려야만 했다.
하얀빛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라앉 았다.
세 사람은 어렴풋이 남은 빛의 여 파가 완전히 지워질 때까지 기다렸 다가 눈을 떴다.
동굴 형태의 빈 공간이었던 던전의 길 16층은 어느덧 사막지대로 바뀌 어 있었다.
게다가 세 사람의 앞에 새로이 나 무 표지판이 생겨나 있었다.
[모래시계의 시련(난이도 : A)]
-사막 어딘가에 모래시계가 있습 니다.
-몬스터를 사냥하다 보면 모래시 계가 있는 위치를 알려 주는 지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기 까지 24시간이 걸립니다. 그 전에 모래시계를 발견하여 부수면 보스몬 스터가 등장합니다.
-보스몬스터를 사냥하면 던전 클 리어.
배경이 A랭크 던전으로 바뀌었다.
김혜림과 세이아나의 예상대로 강 현이 A랭크 웨이브를 선택한 것이 다.
김혜림은 가이아 보우를,세이아나 는 예비용 SS급 스태프를 꺼내며 퍼석퍼석한 모래를 강하게 딛었다.
“A랭크니까 금방 정리하자고.”
“누가 먼저 지도 찾나 내기할까 요?”
“그거 괜찮네. 지는 쪽이 술 한잔 사는 건 어때?”
“좋아요. 지고 나서 딴 말하기 없 기예요.”
“내가 할 말이야.”
김혜림과 세이아나는 모래를 강하 게 박차며 각자 사냥길에 올랐다. 반면에 엘리스는 석궁을 들고 뒤따 라가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A랭크지? 왜지?”
*
16층에서 A랭크 공략을 시작한 이 후로 1시간이 흘렀다.
난이도가 A랭크에 불과하다 보니 공략하는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강현의 경우 벌써 A랭크 소형 웨 이브 내의 보스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다.
“음머어?”
7개의 뿔이 날카롭게 자라나 있는 황소가 강현을 향해 돌격해 왔다.
럭키 카우란 이름의 몬스터였다.
7개의 뿔이 자라나 있는 것만 빼 면 완전히 육우와 똑같은 외견을 지닌 몬스터다.
그 때문에 저레벨 이세계인 사이에 서 생겨난 격언이 하나 있다.
‘럭키 카우의 고기를 먹었다면 약 방에 찾아가라. 약방 주인에게 사정 을 설명하면 알아서 대량의 설사약 과 함께 10골드짜리 영수증을 준비 해 줄 거다.’
럭키 카우는 몬스터 고기 중에서 거의 유일하다 해도 좋을 정도로 맛 있는 육질을 지닌 몬스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강력한 설사를 유발하기 때 문에 먹은 만큼 다 빠져나간다.
“음머!”
기세는 좋다만 기껏해야 레벨
40? 50짜리 몬스터의 돌격이다. 심지어 공격무효화 능력이나,특수 능력 등 까다로운 조건도 없다. 강현은 빙백검의 빙결 오오라를 이 용하여 럭키 카우의 다리를 얼렸다. 쩌저적!
럭키 카우의 네 다리에 서리가 앉 나 싶더니 순식간에 얼음덩이가 되 었다.
다리의 자유를 빼앗긴 럭키 카우가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요란하게 넘어졌다.
“음머어어!”
쿠투루루룽!
가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넘어진 터 라 럭키 카우의 몸이 한참을 미끄러진 후에야 멈췄다.
다시 일어나고 싶어도 얼어붙은 다 리로 일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현은 꼼짝도 못하는 럭키 카우에 게 다가가 빙백검으로 목을 베어 냈 다.
서격!
A랭크 웨이브의 보스몬스터를 죽 였지만 전리품 반응은 새어 나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전리품이 나오지 않는 군.”
나온다 하더라도 A급은 거의 나오 지 않고 대부분 C 또는 B급 보구만 나온다.
B급 보구 중엔 소리잔이나 종이
전서구 같은 유용한 물건들이 넘쳐 나니 마냥 무시할 만한 건 못 되지 만 말이다.
오히려 저레벨 이세계인들을 잔뜩 고용하여 B급 보구 파밍을 하는 작 업장 사장들도 있는 실정이다.
“나도 소환석만 많으면 작업장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소환석이 많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 만 말이다.
루나도 있고 하니 저레벨 몬스터의 소환석만 잔뜩 모아서 파밍만 시켜 도 파밍은 파밍 대로 되고, 소환수 는 소환수 대로 고레벨 소환수 군단 이 되지 않을까 싶다.
뭐 가끔씩 파밍이나 사업 생각을
할 때마다 나도 일단은 한국인이구 나 싶기도 하다.
근본적인 성향이 남아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강현은 간만에 원래 세계에 대해 생각하며 A랭크 웨이브에서 나갔다.
16층 웨이브의 길로 돌아가자 라 이와 놀고 있는 루나가 보였다.
루나는 라이의 등 위에 올라타서 녀석의 머리를 찰싹찰싹 두드리다가 강현이 온 걸 보곤 라이의 등에서 내렸다.
그러곤 강현에게 쪼르르 다가와선 작달만한 손으로 수통을 번쩍 들었 다.
“엄청 빨리 깼네! 여기 물!”
강현은 습관적으로 입술만 적시는 정도의 물만 마신 후 입을 열었다.
“바깥 상황은 확인했어?”
“응! 아무도 안 왔어! 개미 한 마 리 안 와!”
“아직 근처 지부에선 아무것도 모 르고 있나 보군. 조용히 공략을 마 칠 수 있겠어.”
A랭크 웨이브 정도면 차라리 루나 가 없는 게 기동력 면에서도 더 나 을 것 같아서 혼자 들어갔었다.
그동안 루나와 라이를 시켜 전설급 웨이브 바깥에 다녀오게 했다. 통상적으로 전설급 웨이브는 두세 명의 지역장과 수십 명의 지부장, 1, 000명에 달하는 조직원 및 제물이 참가한다.
혹시나 멀리서 출발한 지부장들이 지금에야 도착하진 않았나 싶어 확 인차 내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커뮤니티 본부에서 하시모 토에게 봉인 임무를 내렸고,웬만해 선 실패할 가능성이 없기에 멀리 있 는 지부장에겐 참가하지 않아도 된 다는 통보를 내린 듯하다.
더불어 강현이 바깥으로 나오자 A 랭크 소형 웨이브 보석에 변화가 생 겼다.
위이이엉!
A랭크 소형 웨이브 보석이 부서지 더니 파편 사이에서 파란색 사탕 같 은 물체가 나왔다.
분명 공략에 성공하면 층을 스킴할 수 있는 보상을 준다 했었지.
A랭크 소형 웨이브를 공략했으니 지금 얻은 보석으론 ‘층 하나’를 스 킴할 수 있을 거다.
강현은 소리잔을 꺼내어 세이아나 를 불렀다.
“세이아나,이쪽은 A랭크 공략 끝 났다. 그쪽 상황은 어떤지 보고해.”
- 예전에 끝났어. A급 구간 생략 의 돌도 얻었고. 감정서 붙여 보니 까 동시에 부수라고 써 있네. 바로 쓸까?
“미리 말해 두겠는데 17층이 아니 라 여기 16층에서 쓸 거야.”
- 예상한 바야. 오히려 16층이 아
닌 다른 층에서 쓴다고 했으면 16 층에서 쓰라고 알려 주려던 참이었 어.
던전의 길에선 웨이브의 길 상황이 안 보이기에 숨겨진 공략법을 알아 차리기 힘들다.
한데도 나무 표지판에 적힌 안내문 만 보고 숨겨진 공략법을 찾아낸 듯 하다.
세이아나의 발상일까? 아니면 김혜 림이?
만약 김혜림이 직접 알아차린 거라 면 흐뭇할 따름이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을는 다더니.’
저쪽에서도 계획을 이해하고 있다
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강현은 A급 구간 생략의 돌을 바 닥에 놓고 그 위에 발을 올렸다. 더불어 소리잔에 입을 대며 신호를 보냈다.
“셋 세고 부수기로 하지.”
- 오케이. 그쪽에서 카운트 해.
“3, 2, 1.”
와그작!
발에 체중을 싣자 A급 구간 생략 의 돌이 부서지며 가루가 되었다. 동시에 16층 전체에 푸른빛 가루 가 흩날렸다.
통로가 유리로 된 아쿠아리음 속에 있는 기분이랄까.
시각적 효과만으로도 온몸에 청량
감이 깃드는 듯하다.
몇 초 후,푸른빛 가루가 사라지면
서 16층 구간이 생략되었다.
더불어 받침대에 놓여 있던 S랭크,
SS랭크,SSS랭크,전설급 소형 웨이 브 보석에 균열이 일어났다.
구간 생략을 한 곳은 공략을 마친 걸로 적용된다 하지 않았던가.
그건 입장이 금지된 웨이브 보석에 도 똑같이 적용될 터.
말장난에 속아 17층에서 구간 생 락의 돌을 썼다면 다른 구간 생략의 돌을 얻지 못하게 되는 구조였다.
쩌적! 쩌어억!
금이 가며 부서져 내리는 4개의 소형 웨이브 보석 사이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각각 웨이브 보석의 색깔을 빼닮은 4개의 구슬.
S급,SS급,SSS급,전설급 구간 생 략의 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