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 이쪽에 고메즈가 나타났어! 빨 리 합류해!
14층의 SSS랭크 소형 웨이브 보석 을 공략하던 강현은 소리잔을 통해 세이아나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솔직히 시간이 좀 더 걸릴 줄 알 았다.
고메즈의 지부로부터 여기까지 오 는데 걸리는 시간도 있고,거기에 하시모토와 충돌하면 적어도 사나흘 뒤에 도착하리라 여겼다.
'하시모토가 장애물은커녕 힘도 못 쓰고 당했다고 볼 수밖에. 정말이지 의외로군.’
하시모토와 드뷔레,말단 조직원 수십 명이면 어지간한 8성급 쉘터 하나쯤은 점령하고도 남을 전력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피해 없이 도착한 것 같다고 한다.
같은 지역장인데도 이렇게나 차이 가 나는 건가.
세이아나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다.
만전을 기하기 위해선 얼른 군단의 서로 이동하여 그녀와 합세해야 한 다.
마침 14층 웨이브의 길을 클리어 했으니 루나를 놔두고 이동해도 상 관없었다.
바로 이동하려고 세이아나의 위치 를 감지하던 찰나.
문득 군단의 서 능력이 발동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유를 알 때까진 오래 걸리지 않 았다.
루나가 강현의 등 뒤를 가리키며 말하길.
“오빠 뒤에 또 해골바가지 따라붙 었어!”
어느새 등 뒤에 냉기의 사신이 붙 어 있었다.
벌써 탑 포인트가 2만을 넘겼단 말인가.
강현 일행과 세이아나 일행이 14 층에 들어섰을 때만 하더라도 특수몬스터가 없었다.
헌데 강현 일행이 웨이브의 길 14 층을 클리어하면서 누적 탑 포인트 가 2만을 넘기게 되었다.
‘타이밍 한번 죽이는군. 저쪽이 클 리어를 못했으니 15층으로 가는 건 안 되고…… W층까지 내려갔다가 던전의 길 14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건가.’
9층에서 드뷔레가 수십 명을 이끌 고 같이 클리어를 해 버린 탓에 탑 포인트가 대량으로 누적됐었다. 당시의 스노우볼이 몸집을 불려 벌 써 2만 포인트를 넘기게 된 것이다. 강현은 탑 포인트 측정기의 액정을 확인했다.
[최강현 님의 탑 포인트 : 40이
[전체 누적 탑 포인트 : 20, 300]
[누적 탑 포인트가 3만을 넘기면 다음 특수몬스터가 소환됩니다.]
[-누적 탑 포인트가 2만을 넘기면 서 특수몬스터인 냉기의 사신이 소 환되 었습니다.
-냉기의 사신은 다른 공략자를 가 장 많이 죽인 자에게 들러붙습니다. -냉기의 사신은 ‘특수 몬스터 제거 포션’을 마셔야만 사라집니다.
-냉기의 사신이 들러붙은 자는 일 부 스킬이 봉인됩니다.
-최강현 님은 냉기의 사신이 내리 는 저주를 받아 ‘군단의 서’,‘석화의 마안’. ‘쉐도우 리퍼의 외갑’. ‘매 혹’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석화의 마안,쉐도우 리퍼의 외갑, 매혹은 아무래도 좋다.
허나 지금 당장 급한 군단의 서가 봉인당해 버렸다.
그 말인즉 군단의 서 효과 중 하 나인 군단원에게로의 텔레포트를 사 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W층에 있던 특수 몬스터 제거 포 션은 이미 매진되어 버렸으니 재구 매할 수도 없다.
W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던전의 길 14층으로 올라가려면 적어도 15 분은 걸린다.
‘그나마 각성의 서가 봉인되지 않 은 게 다행이군.’
강현은 소리잔에 입을 대며 묵직한 목소리로 현 상황을 전달했다.
“군단의 서가 봉인됐어. 15분만 버 텨.”
*
- 군단의 서가 봉인됐어. 15분만 버텨.
강현의 말을 전달 받은 세이아나는 입술을 할으며 자조 섞인 미소를 지 었다.
“후후,15분이라니 너무하네. 이쪽 은 5분 만에 이 꼴인데 말이야.”
세이아나의 주변에는 그녀의 부하 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하나같이 몸의 일부가 소멸된 채로 말이다.
누구에게 당했는지는 말할 것도 없 었다.
지금에 이르러서 서 있는 부하라곤 엘리스 한 명밖에 없었다.
절벽 위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고메즈의 부하들이 고메즈 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나 되려 고메 즈에게 당했다.
절벽 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곤 단 발머리 동양 여자 혼자가 전부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3분 전.
절벽 위에 있던 고메즈의 부하가
별안간 고메즈의 소멸 부여를 봉인 했다.
더불어 스킬 봉인을 건 자는 이상 하게도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반대편 절벽으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절벽 위에 남아 있던 자들 중 단발머리 동양 여자의 외침 이 들려왔다.
“이쪽에서 지원사격을 해 주겠어!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고메즈를 공격해!”
어째서 고메즈의 부하가 배신했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성가신 적이 줄어들고 대신 아군이 늘어난 셈이니 반길 일이었다.
남은 건 소멸 부여 능력이 봉인된
고메즈를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허나 생각처럼 일이 쉽게 풀리진 않았다.
고메즈가 ‘봉인 열쇠’라는 소모품 으로 자신에게 걸린 봉인 효과를 풀 어 버린 것이다.
그 뒤 세이아나의 공격은 물론이 고,절벽 위의 여자가 날리는 모든 화살이 소멸의 기운에 의해 소멸되 었다.
게다가 고메즈가 본격적으로 공격 에 나서면서 세이아나의 부하와 절 벽 위의 디스트로이들이 차례차례 당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 다.
세이아나는 길게 숨을 내몰아 쉬며 전방에서 태연하게 서 있는 고메즈 를 쳐다보았다.
“후우우,차라리 지역장을 하지 말 고 수령 자리를 차지하지그래?”
고메즈는 양손의 건틀릿에 새로이 소멸 부여 스킬을 부여하며 히죽거 렸다.
“그 모양 그 꼴이 되고도 말하는 꼬라지는 여전하구나. 죽이는 보람 이 넘치는 여자는 오랜만이란 말이 지. 그것도 동시에 둘이나 내 앞에 나타나 줄 줄이야.”
고메즈가 잠깐 뜸을 들이다가 절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김혜림
이 서 있었다.
김혜림에게 시선을 둔 채로 고메즈 가 말했다.
“김혜림,최진철 그놈이 너를 불렀 다는 이야기 자체가 거짓이었더냐?”
김혜림은 세이아나에게 치유의 화 살을 쏘아 주었다.
세이아나에게 치유의 화살이 적중 하자 그녀의 상처가 치료되었다. 이어서 김혜림은 가이아 보우에 애 시드 에로우를 소환하며 입을 열었 다.
“글쎄? 확실한 건 나나,최진철이 나 처음부터 당신 부하가 아니었다 는 거지.”
“큭득,기껏 부하 놈을 뽑아 놨더
니 배신자였고,그 부하가 다시 배 신자를 끌어들였다 이건가. 내 입장 에선 단순해서 좋군. 그냥 전부 다 죽이면 될 일 아니더냐.”
“누가 호락호락 당해 준대?”
김혜림이 시위를 놓으면서 산성 거 품이 맺힌 화살이 고메즈에게 날아 들었다.
이미 몇 번이나 시도한 공격이다.
고메즈는 허공중에서 애시드 에로 우를 잡아챘다.
애시드 에로우는 건틀릿에 맺힌 소 멸의 기운에 가로막히며 흔적도 없 이 증발했다.
그사이 세이아나는 메모라이즈 스 태프를 위로 올리며 스킬을 시전했다.
“썬더 크래쉬!”
고메즈의 머리 위에 짙은 뇌운이 드리우더니 굵은 번개가 떨어졌다. 메모라이즈 스태프에 등록한 스킬 은 마나 소모 없이 쓸 수 있다. 세이아나는 자신의 공격 스텟 최대 치만큼 번개의 굵기를 최대한 키웠 다.
밧줄처럼 가느다랗던 번개 줄기가 통나무마냥 굵직하게 팽창했다.
번개가 떨어지면서 새하얀 섬광이 시야를 가득 메웠고, 번개의 여파가 주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파지지지직!
김혜림과 엘리스는 썬더 크래쉬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실드를 끌어올 리며 멀찍이 물러났다.
허나 세이아나는 주문을 유지하느 라 제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도 본인 주문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실드를 끌어올려 번개를 막 아 내야만 했다.
메모라이즈 스태프 덕분에 마나 소 모는 없지만 대량의 마나를 운용하 는 만큼 강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세이아나는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 하는 상태에서 전력을 다해 썬더 크 래쉬를 유지했다.
‘안타깝지만 통상적인 방법으론 녀 석의 소멸 부여에 대항할 수 없어. 지구력 싸움으로 끌고 가야만 해.’
최대 출력의 썬더 크래쉬면 고메즈 도 전신에 소멸의 기운을 둘러야만 버틸 수 있을 거다.
소멸 부여를 유지하려면 많은 마나 가 필요하다.
지구전으로 끌고 가면 세이아나 쪽 이 유리하다.
전류가 땅바닥을 지지며 생겨나는 파열음과 눈부신 섬광으로 인해 전 신의 감각이 멍해져 간다.
그런데 잠시 후였다.
별안간 끊임없이 썬더 크래쉬가 멈 춰 버렸다.
원인 모를 기현상에 세이아나가 의 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의지로 마
법을 끊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녀석에게 스킬 봉인 스킬은 없을 텐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썬더 크래쉬가 아 닌 다른 스킬들 또한 전개되지 않았 다.
‘이렇게 되면 할 수 없지.’
지구전으로 끌고 가지 못하게 된 이상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수밖에. 이내 곧 섬광이 걷히면서 희멀건 시야가 서서히 원상태로 되돌아왔 다.
시커떻게 그을린 낙뢰 지점 한가운 데 고메즈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나 몸 전체에 두른 소멸의 기운 때문에 그을린 구석 한 점 없이 멀쩡했다.
소멸의 기운으로 낙뢰를 소멸시킨 것이다.
고메즈는 손가락 뼈마디를 풀 듯 건틀릿을 꿈틀거렸다.
“크크,이제는 발버둥조차 칠 수 없을 거다.”
직후 거리를 벌리려던 세이아나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 다.
스킬과 보구 효과,그 어느 것도 사용되지 않는데다 몸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밧줄이 온몸에 칭칭 감겨 있는 듯한 느낌이다.
어찌된 조화인지 알 수가 없다.
고메즈는 한 걸음씩 세이아나와의 거리를 좁히며 비릿한 조소를 머금 었다.
“최강현 그놈 덕에 얻은 기술로 그 놈의 여자를 죽이게 될 줄이야. 아 이러니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고메즈가 얻은 기술은 ‘뱀파이어 피어’라는 SSS급 스킬로,일정 숫자 의 몬스터나 사람을 죽여서 혈기 스 택을 쌓아야만 발동할 수 있었다. 혈기 스택은 스킬을 발동하면 모두 사라지며,스킬을 발동할 경우 응시 한 대상의 스킬 봉인,보구 효과 봉 인,움직임을 봉인할 수 있다.
이곳 협곡에 들어와서 세이아나의
디스트로이는 물론이고,자신의 디 스트로이까지 죽인 덕에 스택이 모 두 갖춰져 있었다.
세이아나는 궁지에 몰린 와중에도 웃음기를 잃지 않았다.
“후후,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난 그 사람 여자가 아니거든.”
“팔,다리,어깨 차례차례 소멸시켜 주지. 언제부터 절망적인 표정을 지 을지 한번 보자꾸나.”
김혜림과 엘리스는 세이아나를 구 하기 위해 각자 활과 석궁의 시위를 당겼다.
그러나 어떤 화살을 날려도 죄다 소멸의 기운에 부딪쳐 부질없이 사 라질 뿐이었다.
먼저 고메즈가 메모라이즈 스태프 의 정중앙을 덥석 잡았다.
파스스스스
메모라이즈 스태프의 중앙이 소멸 되면서 두 토막 났다.
뒤이어 고메즈의 손이 서서히 세이 아나의 손으로 옮겨 갔다.
음산한 기운을 품은 손놀림이 실드 를 걷어 내며 가느다란 섬섬옥수를 쥐려 들었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 세이아나에게 선 질색하는 기색 한 점 없었다. 오히려 신랄한 투로 중얼거리길.
“시킨 대로 15분 버렸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사람 하나가 솟아나더니 세이아나를 낚아채 뒤로 던졌다.
세이아나가 떨어지는 자리에 새로 이 눈사람이 솟아나선 그녀를 받아 주었다.
동시에 고메즈의 머리 위에서는 환 영검이 떨어져 내렸다.
고메즈는 소멸의 기운이 깃든 건틀 릿으로 환영검을 없애 버리고 위를 보았다.
그리곤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흑발의 사내를 보며 눈썹을 꿈틀거 렸다.
“제 발로 죽으러 와 주다니 고맙기 짝이 없구나,최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