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말을 건 이는 다름 아닌 강현이었 다.
다급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강현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가 오히려 더 욱 긴장감을 일으켰다.
드뷔레는 표정을 달리하며 의문을 표했다.
“무슈 최,무슨 말씀이십니까? 몬 스터가 몰려오고 있다니요?”
“새벽에 정찰 삼아 인근 지대를 둘 러보았는데 몬스터들이 몰려오는 게 보였습니다. 아마 10분 내로 여기까 지 도착할 겁니다.”
“그럴 리가……. 웨이브 주변에 던
전이 없는 건 확인했습니다.”
“죄수들에게 클로징 포션을 뿌려 주었습니까?”
“아뇨,200명이나 되는 죄수들에게 매일매일 클로징 포션을 뿌려 줄 수 는 없지요. 어차피 죽을 자들이니. 하지만 가장 가까운 데에 있는 던전 지대조차 5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몬스터들이 반응할 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미적거릴 때가 아닙니다. 몬스터 의 접근을 허용하면 자칫 봉인 계획 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지 않습니 까. 보초를 서고 있는 병력까지 모 두 모아서 북쪽으로 가야 합니다.”
클로징 포션을 안 뿌렸을 경우,기 껏해야 3,4킬로미터 내의 던전만 반응할 뿐이다.
그러나 전설급 웨이브 보석을 중심 으로 반경 5킬로미터 내에 던전이 없다는 건 이미 확인된 바였다.
드뷔레로선 바로 납득이 되지 않았 지만 강현의 말마따나 미적거릴 때 가 아니었다.
몬스터 때문에 죄수 한 명,마법진 한 끗이라도 상해서 웨이브 봉인에 실패한다면 그 즉시 하시모토의 불 호령이 떨어질 거다.
드뷔레는 급하게 전설급 웨이브 보 석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확실히 지금은 원인을 따질 때가 아니지요. 급한 대로 보초들만이라도 끌고 가겠습니다. 무슈 최도 함 께 가 주십시오.”
몬스터들의 습격까지 겨우 10분 남았다.
아직 잠들어 있는 병력을 깨우고, 무장시키고,집합시키는 등의 여유 따윈 없었다.
깨어 있는 자들만 바로 준비시켜 떠나기에도 빠듯하다.
드뷔레는 진지 외곽에서 보초를 서 던 말단 조직원들을 모아 북쪽 언덕 으로 향했다.
강현 역시 드뷔레와 함께 북쪽으로 향하며 몽환검을 꺼냈다.
모두가 몬스터의 습격 따윈 생각지 도 못한 탓에 당혹감에 물들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게 당연하다.
원래는 여기까지 나타날 리 없는 몬스터를 강현이 직접 유인하여 여 기까지 끌고 온 거니까.
‘이 근방에 있는 던전 지대란 던전 지대는 모두 돌면서 몬스터를 끌어 왔지:새벽 중에 강현만 따로 진지에서 빠져나와 라이를 타고 인근 던전 지 대를 돌았다.
물론 클로징 포션은 뿌리지 않은 채였다.
대략 30개 정도 되는 던전이 있었 고,그중에서 1층이 마나기류 관문 이 없는 던전에서만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수만 하더라도 무려 50 마리에 달했다.
북쪽 언덕 위에 올라서자 평야 너 머에서 몬스터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종류 또한 대형 몬스터부터 비행 몬스터까지 다양했다.
다수의 몬스터가 돌진하듯 달려오 다 보니 발구름 소리만 해도 가히 위협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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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I~I~I~I~r!
“젠장,이런 때에 몬스터 습격이라 니.”
의외의 머릿수에 드뷔레가 입술을 짓씹었다.
지금 끌고 온 조직원들만으로 상대 하기엔 조금 벅찬 감이 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자신의 스킬들을 발휘하기만 하면 몬스터 무리가 이 언덕에 닿기도 전 에 완벽한 처리가 가능했다.
드뷔레는 장검을 뽑으며 비행 스킬 을 전개했다.
그리고 날아오르기 앞서 말단 조직 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비행 몬스터는 내가 맡겠다. 지상 에 있는 몬스터는 너희들이 맡도록. 최대한 우리 선에서 끝내도록 하자 꾸나.”
“두말하면 잔소리 아니겠습니까. 염려 마십시오.”
몬스터 집단과의 전투 시 가장 까 다로운 유형은 지금처럼 비행형과 육상형 몬스터를 동시에 상대하는 경우였다.
비행 몬스터의 엄호를 받고 있는 육상 몬스터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 다.
그래서 드뷔레는 혼자서라도 비행 몬스터를 처리하고자 했다.
한데 비행 스킬인 ‘이카로스의 날 개’를 사용한 순간.
드뷔레는 이질감을 느꼈다.
“어? 왜 스킬이 발동하지 않지?”
아까부터 이카로스의 날개를 계속 전개하고 있건만 등에서 마나의 날 개가 생겨나지 않았다.
스킬 자체가 발동되지 않는 것이 다.
아니,이카로스의 날개만이 아니었 다.
주변의 몬스터 숫자에 비례하여 공 격 스텟이 올라가는 ‘광전사의 혈 기’란 스킬 또한 발동되지 않았다. 한시가 긴급한 상황인데 영문 모를 이유로 스킬이 발동되지 않는 것이 다.
드뷔레로선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 에 없다.
강현은 당황하는 드뷔레를 잠자코 지켜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괴조의 깃털 효과가 먹혀들었군. 당한 본인은 귀신에 홀린 기분이겠지.’
아까 진지에서 드뷔레를 부를 때,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괴조의 깃털 을 붙였다.
괴조의 깃털은 드뷔레의 몸에 스며 들면서 스킬 봉인 저주를 걸었다. 그로 인해 30분간 스킬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무대의 뒷면에서 보면 정말이지 단 순하기 짝이 없는 트릭에 불과하다. 허나 트릭을 모르는 입장에선 그야 말로 아닌 밤의 홍두깨가 따로 없 다.
드뷔레가 허둥지둥 급하게 지시를 변경했다.
“방금 지시는 취,취,취소다 취소!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자들은 비행 몬스터도 겨,견제해라! 비행 몬스 터가 언덕을 넘게 해선 안 된다! 나 머지는 나를 따라 육상 몬스터를 친 다! 어,어서 움직여!”
급한 나머지 말하는 도중 몇 번이 나 혀가 꼬였다.
그것만 봐도 드뷔레가 정신적으로 크게 불안정해진 것을 알 수 있었 다.
물론 그의 실력이라면 시간을 들여 서라도 몬스터 무리를 처리할 수 있 을 터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몬스터 퇴치 가 아니라 ‘몬스터들에게 돌파당하 느냐’다.
한 마리라도 놓친다면 해당 몬스터 가 마법진을 망치거나 죄수들을 죽 일 것이다. 그리되면 걷잡을 수 없 을 만큼 일이 커지게 된다.
때문에 본래 성격답지 않게 크게 당황하는 것이었다.
한편 명령을 내려야 할 지휘관이 당황하니 아랫것들의 움직임도 둔탁 해질 수밖에 없었다.
원거리와 근거리 전투 모두 가능한 자들은 어디 속해야 할지 알 수 없 어 우왕좌왕했다.
드뷔레의 당황스런 지시 때문에 ‘왜 저래? 차라리 내가 지휘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듯 불편한 표정을 짓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드뷔레는 검에 그 랜드 소드를 부여하며 언덕 아래로 질주했다.
“뭣들 하느냐! 기껏 해야 레벨
60? 100대의 몬스터다! 얼른 정리하 지 못할까!”
어찌어찌 언덕 위에선 원거리 공격 이 가능한 자들이 비행 몬스터를, 근접전이 전문인 자들은 육상 몬스 터를 상대하는 진형이 갖춰졌다. 말단 조직원들이라곤 하나 전원 마 나 마스터급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 다소 불안정한 상태에서도 어찌어 찌 몬스터를 막아 내는 건 가능하기 는 하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들 사이에 강현이라는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있다는 것을.
강현은 몽환검에 마나 블레이드 정 도만 씌워 둔 채로 설렁설렁 몬스터 를 상대했다.
그러면서 말단 조직원들이 몬스터 에게 치명상을 입히려 할 때마다 가 까이 붙어서 수정 스렛의 효과로 그 들의 공격 궤도를 틀어 버렸다.
차앙!
“어어? 어? 뭐야! 분명 목을 노리 고 휘둘렀……. 크악!”
“크헉! 어,어떤 미친놈이 반사 실 드가 있는 몬스터를 대놓고 공격한 거야? 반사 데미지가 사방으로 튀잖아!”
“내 눈이 침침한가. 왜 자꾸 공격 궤도가 틀어지는 기분이 들지?”
조직원들은 무리 속에 조커가 섞여 있는 것도 모른 채 팽팽한 전투를 벌였다.
강현은 소리 없이 전장을 뛰어다니 며 몬스터와 조직원 사이의 균형을 맞춰 나갔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흐르고 홀러 오전 9시에 이르렸다.
*
“드뷔레! 드뷔레! 드뷔레는 대체 어디 갔느냐! 빌어먹을 놈,감히 내가 부르는데 대답조차 없어?”
잠에서 깬 하시모토는 제복 매무새 를 가다듬으며 드뷔레를 호출했다. 하지만 아침 식사를 마칠 때까지 드뷔레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드뷔레를 찾으러 나선 부하로 부터 의외의 보고가 올라왔다.
“하시모토 지역장님,드뷔레 님은 북쪽 언덕 너머에서 몬스터를 사냥 하고 있습니다.”
“뭐? 봉인을 앞두고 무슨 쓸데없는 짓이냐!”
“죄수들이 클로징 포션이 없어 몬 스터들을 끌어들인 듯합니다. 숫자 가 많아서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머저리 같은 놈. 그깟 몬스터 몇 마리 처리 못해서 쩔쩔매? 그런 주 제에 지역장 후보였다니 웃음밖에 안 나오는군.”
“드뷔레 님이 복귀할 때까지 봉인 을 미룰까요?”
“아니다! 봉인은 예정대로 진행한 다. 그깟 놈 하나 없다고 봉인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낭비 할 이유 가 없지 않느냐. 가서 봉인을 준비 해라.”
“네,얼른 준비하겠습니다.”
하시모토의 명령에 의해 전설급 웨 이브 보석 주변에선 봉인 절차를 밟 기 시작했다.
하시모토의 디스트로이들이 죄수들
을 50명씩 나누어 전설급 웨이브 보석 동서남북에 배치했다.
아침부터 햇살이 쌩쨍 내리쬐고 있 었기에 디스트로이들이 하나둘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에이씨,짜증나게 덥네. 어제보다 더 더운 거 아냐?”
“봉인 진행되는데 얼마나 걸리냐? 누구 아는 사람 없어?”
“제물 바치고 30분은 기다려야 할 걸?”
“30분이나? 어휴,그동안 계속 대 기해야 되잖아?”
“어제 휴식용 천막 설치해 뒀잖아. 거기서 대기하면 되지.”
그사이 죄수들이 족쇄에 매달린 철
구를 질질 끌며 전원 원형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하시모토의 디스트로이들은 그늘이 고픈 나머지 죄다 개방형 천막 밑으 로 들어갔다.
한편 하시모토는 남쪽 언덕에 을라 봉인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 드뷔레가 함께 남쪽 언덕에 올랐다면 마법진이 미세하게 다르다 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을 거다. 그러나 한 번도 준비 과정에 동참 하지 않은 하시모토가 미세한 변화 까지 알아차릴 리 없었다.
이윽고 소리잔을 통해 디스트로이 들의 보고가 올라왔다.
- 웨이브 보석 동쪽에서 보고 올 립니다. 제물 50명 전부 원형 마법 진에 배치했습니다.
- 서쪽에서 보고 올립니다. 마찬가 지로 배치 끝났습니다.
- 북쪽에서 보고 을립니다. 제물 배치 끝났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 남쪽도 이하동문입니다.
마침내 하시모토가 소리잔에 대고
봉인 개시 신호를 내렸다.
“이제부터 봉인을 진행하겠다. 동 쪽에서부터 마나를 끌어올려라.”
미스릴은 마나를 감지하여 스스로 마나를 발하는 성질을 가진 광물이 다.
그래서 미스릴로 만든 무기를 사용
하면 본래 가진 마나보다 훨씬 많은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세계인들은 대개 보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카니발에선 기껏해 야 마법진에 활용하는 정도였다.
- 5초 뒤에 마나를 끌어올리겠습 니다. 저희가 시작하면 북쪽,서쪽, 남쪽 순으로 차례대로 마나를 끌어 올려 주십시오.
이윽고 동쪽에 배치된 디스트로이 들이 차례차례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땅에 박힌 미스릴 조각들이 디스트 로이들의 마나에 반응하며 스스로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동쪽,북쪽,서쪽,남쪽…….
미스릴 하나가 마나를 발하면 바로 옆에 박혀 있는 미스릴도 반응했다. 마치 일종의 도미노 현상을 보는 듯했다.
순식간에 모든 미스릴이 마나를 발 하며 마법진이 발동했다.
다만 미스릴을 땅속 깊이 심어 두 었기에 땅 위에서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어 보였다.
그저 진하게 풍겨 오는 마나의 기 운만으로 마법진이 발동했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한데 개방형 천막 그늘에서 쉬고 있던 디스트로이 몇몇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중얼거렸다.
“뭔가 엉덩이 밑에서 강한 마나가
느껴지는데 기분 탓인가?”
“미스릴 조각이 많아서 그리 느껴 지는 거겠지. 죄수들이 허튼 짓거리 못하게 감시나……
파아아앗!
잡담을 하던 중 개방형 천막 아래 로 갑작스런 침묵이 찾아왔다.
별안간 모든 디스트로이들이 사라 진 게 아닌가.
마치 마법진의 제물로서 증발한 것 마냥.
반대로 막상 제물로써 마법진에 올 라간 죄수들은 멀쩡했다.
죽음을 앞두고 실의에 빠져 있던 죄수들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했 다.
“여,여보게들! 놈들이 사라졌어! 길이 열렸다고!”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이,이거 도망쳐도 되는 거 아 냐?”
바로 옆에 있던 디스트로이들은 물 론이고,진지 외곽을 지키던 말단 조직원들까지 전부 없어진 실정이 다.
게다가 이상하게 요 이틀간 밥과 약이 튼실하게 지급된 덕에 기력이 얼마간 회복되어 있었다.
죄수들 중에서 눈치 빠른 몇 명이 족쇄를 매단 채로 부리나케 탈출을 시도했다.
한두 명이 달리기 시작하니 나머지
에게도 군중심리가 작용하여 집단 도주가 시작되었다.
“감시하는 놈들이 사라졌다! 도망 치자!”
“기회는 지금밖에 없어! 달리자 달 려!”
“와아아아!”
남쪽 언덕 꼭대기에 올라서 있던 하시모토가 입을 쩌억 벌렸다.
“이,이런 미친 경우를 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