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183화 (183/381)

183 화

다음 날 아침,웨이브 봉인을 위한 마법진 작업이 시작되었다.

전설급 웨이브 보석을 기준으로, 사방위마다 십 수 명에 이르는 디스 트로이들이 투입되었다.

디스트로이들이 저마다 라인기를 밀면서 부산하게 움직였다.

덜덜덜덜!

라인기를 밀 때마다 석회 가루가 쏟아져 나오며 마법진이 완성되어 갔다.

전설급 웨이브 보석이 워낙에 크다 보니,마법진의 크기 또한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었다.

마법진의 지름만 하더라도 킬로미 터고,둘레는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규모였다.

그리는 사람으로선 문양이 어긋난 건 아닌지,잘못된 방향으로 라인을 그은 건 아닌지 전혀 확인이 불가능 했다.

그래서 드뷔레가 높은 곳에 올라가 서 마법진 설치 작업을 지휘했다.

“마법진 남쪽 방향. 제물이 을라서 야 할 원이 빗뚫게 그려졌다. 다시 그려.”

-드뷔레 님,북쪽 방향 원형진으로 이어지는 직선을 그렸습니다. 제대 로 그어졌는지 봐주십시오.

“여기선 남쪽과 동쪽,서쪽밖에 안

보인다. 북쪽의 작업장은 북쪽 언덕 담당한테 물어봐.”

一 아,네! 죄송합니다!

언덕 위에 있는 자와 평야에서 일 하는 자들끼리 소리잔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수정과 교정을 반복했 다.

새벽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어느덧 정오가 되었건만 아직도 마법진의 밑그림조차 완성하지 못했다.

드뷔레는 땀방울 맺힌 이마를 손수 건으로 훑으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군. 오늘 내 로 밑그림 작업을 마칠 수 있을 거 려 여겼는데 말이지.”

“고생하시는군요.”

그때 누군가 언덕 위로 올라왔다.

세 이 아나의 디 스트로이 였다.

뒤집어쓴 로브로 얼굴을 반쯤 가리 고 있어서 명확한 인상은 보이지 않 았지만,드뷔레는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디스트로이를 통해 이자가 세 이아나의 남편이란 소리를 들었다. 세이아나가 자신의 남편에 대해 깊 이 간섭하는 것을 극히 싫어한다는 것도 말이다.

커뮤니티의 매뉴얼에 충실한 드뷔 레 다.

윗사람인 세이아나의 심기를 굳이 건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드뷔레는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

신하며 입을 열었다.

“고생이랄 것까진 없습니다. 그런

데 무슨 일이십니까? 그……

드뷔레가 호칭으로 고민하자 강현 은 적당히 호칭을 내밀었다.

“무슈 최로 충분합니다.”

“그쪽이 더 편하겠군요. 근데 제가 프랑스 출신이라고 말했던가요?”

“아뇨,말씀하시는 게 불어 쪽이라 혹시나 해서 말해 본 겁니다.”

“혹시 유럽이나 남미 출신이십니 까? 아차,저도 모르게 사적인 질문 을 하고 말았군요. 방금 건 잊어 주 십시오.”

“괜찮습니다. 세이아나가……. 아 니,지역장님이 괜히 과보호를 하는 거니까요.”

“사석이니 편히 말씀하시지요. 두 분이 부부란 얘기는 이미 들었습니 다.”

“그러도록 하죠. 아내가 상관이라 서 여러모로 불편한 게 많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부럽기만 합니다.”

번역의 가호를 쓰면 상대가 어떤 언어를 쓰든 듣는 순간 바로 이해가 된다.

가끔씩 너무 직역을 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불편할 정도 는 아니다.

언어 자체는 상대의 언어가 그대로 나오기에 몇몇 단어로 어디 출신인 지 유추할 수 있다.

강현의 경우 한국어, 영어,중국어 3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고,일본어와 불어를 단편적으로 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드뷔레가 불어 계통의 국가 출신임을 예측한 것이다.

그렇게 사소한 잡담이 오가는 동안 드뷔레가 서서히 긴장을 푸는 것이 눈에 보였다.

강현은 자연스럽게 언덕 아래의 작 업 현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작업 규모가 굉장히 크군요. 밑그 림을 그린 이후에는 어떻게 진행됨 니까?”

“밑그림을 따라서 일정 간격으로 미스릴을 심어야 합니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 같은데 일손 이 부족하진 않겠습니까?”

드뷔레가 살짝 갈등하는 기색을 내 비쳤다.

안 그래도 작업 진도가 예상보다 더딘 참이다.

그런 만큼 일손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드뷔레로선 쉽게 손을 벌릴 수는 없는 처지였다.

드뷔레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 를 쳤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시 모토 지역장님의 임무이니 세이아나 지역장님께 폐를 끼칠 순 없지요.”

그가 거절하는 이유쯤은 쉬이 유추 할 수 있었다.

하시모토가 세이아나를 믿지 못하 기 때문이리라.

강현은 유추해 낸 바를 넌지시 물 었다.

“세이아나가 작업을 방해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음,저로선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 고 싶은 처지지만 뭐……. 아시다시 피 하시모토 지역장님과 세이아나 지역장님의 사이가 좋지 않지 않습 니까. 아,오해는 마십시오. 세이아 나 지역장님을 못 믿는다는 의미로 한 말은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하시모토 지역장님께 도 중요한 임무일 테니 신경이 날카 로워질만도 하지요. 그래도 마냥 가만히 있기도 뭐하니 휴식용 천막이 라도 세워 드렸으면 합니다. 다들 더위에 지쳐 보이기도 하고요.”

나날이 무더위가 심해지는 가운데 오늘은 특히나 더웠다.

태양이란 군주가 풀어놓은 더위란 병사들이 따끔하게 피부를 자극하고 있다.

조금만 바깥에 서 있어도 땀이 삐 질삐질 흐르는데다,서로 팔꿈치만 스쳐도 육두문자가 튀어나올 것 같 은 날이다.

하지만 바람은커녕 햇빛을 피할 그 늘조차 없다.

기둥을 세워 윗부분에만 천막을 씌 우는 개방형 천막이라도 있으면 작업 중에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드뷔레는 잠깐 고민하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괜찮겠지요. 그럼 부탁 드리겠습니다.”

“제물을 올릴 원형 마법진 옆마다

1개씩 천막을 설치해 두겠습니다. 동서남북에 하나씩 설치해 두면 어 느 정도는 휴식처가 될 수 있을 겁 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뭘요. 같은 조직원끼리 돕고 살아

야지요.”

배려란 명목으로 자연스럽게 천막 을 세워 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감사 인사까지 받으면서 말

이다.

게다가 필요한 정보까지 얻어 냈 다.

석회 가루로 그리고 있는 마법진은 밑그림일 뿐이며,실제로 재물을 바 치는 마법적 기능을 이루는 건 미스 릴임을 알아냈다.

지금 그리는 마법진은 그 미스릴을 배치하기 위한 도식이랄 수 있었다. 강현은 드뷔레를 등지며 언덕을 샅 살이 둘러보았다.

전설급 웨이브 보석 북쪽 언덕과 남쪽 언덕,그 어디에도 하시모토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조직원들이 하시모토의 천막 을 드나들며 음식과 술을 나르고 있었다.

‘모든 일을 부하한테 떠넘기고 천 막 안에서 빈둥거리고 있나 보군. 일이 꼬이면 드뷔레부터 탓하겠지. 아주 볼만하겠어.’

*

결국 하시모토가 지시한 내일까지 작업을 마치기 어렵다 여긴 드뷔레 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진지를 지키고 있던 말단 조직원들 까지 모조리 동원하여 작업에 투입 한 것이다.

밤에 불침번 숫자를 줄여야 되는 부담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작업을 끝내는 게 급선무였다. 그 결과,날이 어두워지기 직전 가 까스로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밑그림은 물론이고 미스릴을 심는 작업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로써 내일 날이 밝으면 바로 웨 이브 봉인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드뷔레는 지친 조직원들을 독려하 며 휴식 명령을 내렸다.

“다들 수고했다. 봉인은 내일 9시 정각에 시행할 예정이니 염두에 두 도록. 대신 아침점호는 생략할 테니 편히 쉬어라.”

“수고하셨습니다. 후우,점호 생략 이면 그나마 숨통 좀 트이겠네.”

“그러게 말이야. 여기까지 죄수들 감시하면서 왔지,오자마자 땡볕 아 래서 작업했지……. 빨리 복귀해서 시원한 맥주나 벌컥벌컥 마시고 싶 네. 더운 몸에 탄산이 톡톡 스며들 면서……

“나는 그것보다 여자가 더 땡겨. 세이아나 지역장네 디스트로이들 봤 냐? 어후,보기만 해도 아주 그 냥……

“근데 세이아나 지역장 애 못 가지 는 거 아니었나? 오늘 아침에 보니 까 쬐끄만 은발 여자애가 엄마엄마 거리던데. 남편도 있는 것 같고.”

“애 못 가진다는 거 헛소문이었나 보지. 남편 새끼 부럽네. 세이아나 지역장은 나이치고는 쌔끈하잖아. 어제도 한 거 아냐?”

“낄낄낄.”

음담패설이나 늘어놓던 조직원들이 각자의 막사로 돌아가고.

이윽고 전설급 웨이브 보석 주변으 로 정적이 찾아들었다.

진지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삼엄한 경비가 펼쳐져 있었지만,진지 안쪽 인 웨이브 보석 주변은 경계가 소홀 했다.

시간이 더욱 지나 어둠이 깔리고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심야가 찾아왔을 즈음.

마법진 외곽 테두리 주변에서 일단 의 그림자들이 일렁거렸다.

그림자들의 정체는 강현과 세이아 나,세이아나의 디스트로이들이었다. 세이아나는 스태프로 바닥을 내리 찍으며 살벌하게 웃었다.

“후후,안 보이는 곳이라고 아주 제멋대로들 떠드네.”

강현은 세이아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살아생전 마지막 농담 정도는 마 음대로 지껄이게 놔둬.”

“그랬었지. 자,이제 작전 개시하 자. 나부터 시작하면 되지?”

“그래. 윈드스톰부터 시전해.”

세이아나가 마법진 외곽 테두리 바 깥을 향해 스태프를 겨누었다.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 스킬 시동어가 흘러나왔다.

“윈드 스톰.”

스태프가 겨누고 있는 위치에서 토 네이도마냥 돌개바람이 생겨났다. 휘이이이엉!

강력한 돌개바람이 거대한 빗자루 마냥 메마른 땅을 휩쓸면서 자욱한 흙먼지가 일어났다.

돌개바람으로 일어난 흙먼지가 바 람결을 따라 점점 허공에 번져 나가 면서 대기를 뿌옇게 물들였다.

잠시 후,세이아나가 원드스톰을 풀자 떠올랐던 흙먼지가 가라앉았 다.

마법진 밑그림을 이루고 있는 석회 가루는 바람결에 날아가고,그 자리를 흙먼지가 대신 뒤덮었다.

그렇게 동서남북에서 총 네 차례의 작업을 반복하자 금세 마법진 밑그 림이 흙먼지로 뒤덮여 알아볼 수 없 게 되었다.

그러나 밑그림은 지워졌어도 땅에 묻힌 미스릴의 위치는 그대로이기에 마법진의 성능은 그대로였다.

강현은 마법진 동서남북에 세워 놓 은 천막을 가리키며 다음 지시를 내 렸다.

“넌 3명만 데려가서 동서남북에 설 치해 둔 천막을 제물이 올라갈 원형 마법진 위로 옮겨 놔. 나머지는 나 와 같이 가짜 마법진을 그리도록 하 지.”

“가짜 마법진이라 해도 원본이랑 똑같이 그려야 해. 시간 내에 할 수 있겠어?”

“정확하게 그릴 필요는 없어. 어차 피 하시모토는 못 알아볼 테니까. 유일하게 차이를 알아챌 수 있는 사 람은 드뷔레뿐이지. 그는 내가 아침 일찍부터 내가 붙잡아 두겠어.”

“빈틈없어서 좋네.”

“시간 없으니 바로 시작해.”

“다들 들었지? 얼른 움직이자.”

그날 밤,흙먼지로 뒤덮인 마법진 위로 가짜 마법진이 그려졌다.

평지에서 봐선 절대로 가짜임을 알 아차릴 수 없었다.

알아차리려면 언덕 위로 올라가서

봐야 하는데 그마저도 드뷔레 외에 는 알아차리지 못할 거다.

마무리로 세이아나 일행이 개방형 천막의 위치를 옮겼다.

실제로 제물이 올라서야 할 위치로 말이다.

작업을 마칠 즈음엔 하늘에 여명이 비치고 있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게 오늘 의 날씨를 예감할 수 있었다.

“오늘은 굉장히 덥겠군.”

*

막 아침 8시를 넘긴 시간.

아침 점호가 없기에 취사담당 조직

원 몇몇을 빼곤 대부분이 잠에 빠져 있었다.

전설급 웨이브 보석을 옆에 두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느슨 한 분위기였다.

아직 집합시간까지 멀었건만 드뷔 레는 벌써 일어나 웨이브 보석 쪽으 로 향하고 있었다.

봉인을 집행하기 전에 한 번 더 점검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마법진에 다다르기 직전. 누군가가 드뷔레의 어깨를 두드리 며 그를 불렀다.

“드뷔레 씨,큰일입니다. 언덕 너머 에서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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