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화
“저기…… 저희 지부에는 무슨 일 로 오셨는지..
카니발 차이나타운의 지부장인 장 유닝은 식은땀을 홀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눈앞에 고메즈가 떡하니 앉아 있으 니까.
7인의 지역장 중에서도 가장 악랄 한 성격을 지닌 걸로 유명한 고메즈 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본부의 지시를 전하러 온 다른 지역장을 공격했다 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다른 지역장도 서슴없이 공격하는
데 한낱 지부장이라고 다를 게 있으 라.
고메즈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 해 장 유닝은 숨조차 조심해서 쉬고 있었다.
고메즈는 손아귀로 호두를 굴리며 첫 마디를 꺼냈다.
“세이아나가 이곳에 왔었다지?”
“아,네? 아! 세이아나 지역장님 말씀이십니까? 네네,왔습니다. 한 달 전쯤에 방문하셨었죠.”
“여기 와서 무엇을 했나?”
“죄송합니다. 거기까지는 잘……
“모른다는 대답은 사실을 숨기고 있거나,대답하는 방식조차 모르는 머저리들이나 하는 말이라고들 하지. 확인할 방법이 있는데 시험해 보겠나?”
고메즈의 손 안에서 호두가 강하게 맞물렸다.
껍질끼리 강하게 맞물리면서 거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까드득!
장 유닝이 세이아나와 결탁하여 그 녀의 행방을 숨겨 주고 있을 가능성 도 있다.
고메즈의 행동은 말하자면 반 협박 에 가까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소멸 부여 스킬을 쓸 기세였다.
장 유닝은 당황하며 있는 기억,없 는 기억 모두 헤집어선 입 밖으로 끄집어냈다.
“세,세이아나 지역장님은 방문하 자마자 여관에 들렀다가 바로 동쪽 관문으로 나가셨습니다. 정말입니다. 그 외에는 정말로 아는 게 없습니 다. 믿어 주십시오.”
“여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나?”
“보고 받기로는 남편과 딸을 만났 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이아나 지역 장님이 비밀로 해 달라고 하셔 서……
“여기서 놈과 만나서 동쪽으로 가 다가 혁명군을 쳤다 이거군.”
“네? 놈이라면 누굴 말씀하시는 건 지?”
고메즈는 장 유닝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뒤에 서 있는 최진철에게 말을 걸었다.
“최진철,여기서 동쪽으로 가는 길 에 놈들이 들를 만한 곳이 있나?”
“현재 불칸에서 전설급 웨이브를 공략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불칸이 언급되자 장 유닝이 무언가 떠오른 양 말을 꺼냈다.
“아! 얼마 전 불칸 쪽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최강현이 전 설급 웨이브를 노리는 중이라고 하 더군요.”
고메즈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 다.
강현을 잡기 위해 본부의 명령을
무시하는 강수까지 두었다.
추격을 개시한 지 한 달 만에 겨 우 강현의 행선지가 파악되었다.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으랴.
“불칸까진 얼마나 걸리지?”
“평범하게 이동하면 한 달은 걸립 니다.”
“보름 안에 도착할 수 있도록 조치 를 해 둬라.”
“일직선으로 가는 루트와 기력포션 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드디어 더러운 쥐새끼의 꼬리를 잡았구나. 발끝부터 머리까지 아주 차근차근 소멸시켜 주겠다.”
직접 강현을 처리하기 위해 세이아 나의 배반 사실조차 본부에 알리지 않았다.
세이아나의 배반 사실을 알렸다간 본부에서 병력을 파견할 게 분명하 다.
방해꾼 따위가 끼어들게 놔둘 것 같으냐.
놈은 내가 직접 처리한다.
블루워터 마운틴에서의 오점과 함 께 놈을 이 세상에서 소멸시켜 버리 겠다.
?
고메즈의 명령을 받은 최진철은 카 니발 차이나타운 지부에서 나와 디 스트로이들을 소집했다.
그는 디스트로이들에게 불칸까지 보름 안에 가야 한다고 전했다.
디스트로이들은 카니발 대륙 북부 지도를 펼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한 달짜리 거리를 보름 만 에 주파하려면 하루를 이틀처럼 뛰 는 수밖에 없겠군.”
“데릭로우스에게 그만한 체력은 없 어. 중간에 다른 탈 것으로 갈아타 야 해.”
“우리 체력도 고려해야지. 보름 안 에 간다고 해도 지쳐서 퍼진 상태에 서 전설급 웨이브에 입장하는 건 위 험해.”
고메즈의 명령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가 강했다.
데릭로우스의 속도에는 한계가 있 다.
속도가 같다는 조건 하에 이동거리 를 늘리려면 주행 시간을 늘릴 수밖 에 없다.
즉 날밤을 새며 달려야 한다는 뜻 이다.
하루나 이틀이면 모를까 보름 동안 날밤을 새며 달리는 건 무리다.
최진철은 어렵지 않게 답을 내놓았 다.
“모든 부분을 고려해 뒀습니다. 이 틀 달리고 한나절 쉬는 방식으로 달 릴 생각입니다. 쉴 때는 최고급 여 관에서 VIP케어를 받을 수 있도록 7성급 이상의 쉘터를 거쳐 가는 루트를 짜겠습니다. 데릭로우스의 체 력을 고려해서 다른 탈 것 소환석을 수배하고 있으니 번갈아 타면 지구 력 부분도 해결될 겁니다.”
“오,괜찮은 방법인데? 최진철 씨 가 있어서 다행이야. 당신이 없었으 면 우리 모두 고메즈 지역장님 밑에 서 엄청 고생했겠지.”
“하하,과찬이십니다.”
“루트 짜는 거랑 소환석 수배하는 거 맡겨도 되겠어?”
“제가 도맡아서 할 테니 여러분은 바로 출발 준비를 해 주십시오.”
“그래,수고 좀 해 줘.”
디스트로이들은 최진철에게 강한 신뢰를 보내며 출발 준비를 하러 나섰다.
하지만 모두가 나간 건 아니었다.
여전히 방 안에 남아 벽에 기대어 있던 김혜림이 차가운 목소리로 한 마디 날렸다.
“귀찮은 일을 떠맡아서 신뢰를 산 다. 그게 네 방식인가 보네.”
“사람이란 건 단순해서,눈을 돌린 사이에 하기 싫은 일이 해결되어 있 으면 쾌감을 느끼기 마련이지. 쾌감 을 주고 신뢰를 산다. 제법 괜찮은 거래라고 생각되는데?”
“신뢰를 산 다음에 배신하면 결과 적으론 쾌감을 줬으니 배신해도 된 다는 뜻 아닌가? 너 자신이 역겹다 는 걸 참신하게 표현하는걸?”
“그런 소리를 듣고도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게 내 장점 중 하나지.”
“그 정도의 수완이 있는데 어째서 강현 씨를 배신했지?”
최진철은 꾸민 기색이 가득한 가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뜸을 들이 듯 지도를 돌돌 말며 말을 아꼈다. 그가 입을 연 건 지도를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찻잔에 담긴 식은 찻물로 입을 적신 후였다.
“이제 와서 내 입장을 말해 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마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처럼 말하네.”
“물론 없지. 난 어떻게든 반등할 계기를 얻고 싶어 했고,우리 중에서는 녀석이 제일 머리가 좋았지.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가장 먼저 버렸을 뿐이야. 이하나나 최인환은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골 빈 놈 들이었으니까.”
“넌 어쩔 도리가 없는 구제불능 쓰 레기야.”
“너무 열 내지 말라고. 어차피 이 번 일만 끝나면 등 돌릴 사이잖아? 앞으로 너희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 어. 그러기엔 녀석이 너무 아득한 위치까지 올라가 버렸거든.”
“그랬으면 좋겠네.”
“나한테 화를 내는 건 상관없다만 그것 때문에 일을 그르치진 말자고. 이번 일만 성공하면 최강현은 최대 적수를 잃고,난 출셋길을 걷게 되 니까.”
최진철은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김 혜림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그녀가 등에 짊어지고 있는 가이아 보우의 활줄을 잡았다가 놓았다.
활줄이 튕기면서 강한 거부감을 드 러내듯 파르르 떨었다.
그와 함께 최진철의 입에서 무미건 조한 한 마디가 홀러나왔다.
“불칸의 전설급 웨이브 안에서 고 메즈 지역장을 죽여 보자고.”
*
커즌즈의 탑 웨이브의 길 6층 통
로.
통로 중앙의 받침대에 놓인 SSS랭 크 소형 웨이브 보석에서 두 명의 사람이 튀어나왔다.
강현과 루나였다.
지금 막 허무왕의 옛 궁전 3층을 공략하고 나온 참이었다.
3층 보스였던 허무왕을 처리하는데 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허무왕은 기본적으로 유체화 상태 이고,공격하기 위해선 제물을 바쳐 ‘반역의 봉화’란 버프를 받아야 하 는데 그 부분은 라이를 제물로 바쳐 서 해결했다.
강현과 루나가 보석 바깥으로 나오 자 SSS랭크 소형 웨이브 보석이 소멸했다.
강현은 허무왕의 옛 궁전에서 얻은 전리품을 확인했다.
‘1층에서 얻은 영약들은 하피냐가 썼으니까 실질적으론 2층,3층의 전 리품만 내 손에 떨어졌군.’
허무왕의 옛 궁전 2층에서 전리품 2개를,3층에서 전리품 1개를 손에 넣었다.
[당나귀 귀]
등급 : A
타입 : 모자
특성 : 당나귀 귀가 달린 머리띠.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님을 조롱하 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 착용하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를 들 을 수 있으며,착용한 동안 회복 스 텟이 1.2배 상승한다. 다만 착용했 을 때 생기는 부끄러움은 너의 몫.
[오르골 : 악사의 노래]
등급 : SS
타입 : 소모품
특성 : 허무왕이 항상 거느리고 다 니던 악사들의 노래가 담긴 오르골. 오르골의 소리를 듣는 자는 사용자 본인을 포함하여 전원 스킬 및 보구 능력이 봉인된다. 곡의 길이는 30분 이며 곡이 끝나면 오르골이 사라진 다. 또한 곡이 끝나기 전에 오르골 이 파괴되어도 사라진다.
[허무왕의 가면]
등급 : SS
타입 : 장신구
특성 : 허무왕이 쓰고 있던 가면. 착용하고 마나를 불어넣으면 시선을 통해서 발동되는 모든 스킬을 차단 할 수 있다. 얼굴에 가져다 대기만 해도 자동으로 착용되며,착용 후에 마나를 불어넣지 않으면 가면이 벗 겨진다.
보구 3개 모두 다 사용하기에 따 라 쓰임새가 유용할 것 같다.
다만 당나귀 귀는 특성 설명의 문 구 때문에 사용하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차라리 이런 문구가 없었다면 신경 쓰일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과연 임금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물건이랄까.
확실히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이긴 하다.
강현은 보구 3개를 전부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곤 팔목에 찬 탑 포인트 측정기를 확인했다.
[최강현 님의 탑 포인트 : 20이
[전체 누적 탑 포인트 : 8, 900]
[누적 탑 포인트가 1만을 넘기면 특수몬스터가 소환됩니다.]
허무왕의 옛 궁전을 클리어하면서 강현과 루나에게 각각 탑 포인트가 100씩 적립되었다.
더불어 누적 탑 포인트에도 200포 인트가 더해졌고 말이다.
층 하나를 클리어 했을 때,생존자 에게만 탑 포인트가 부여되는 모양 이다.
‘던전의 길에서 세이아나 일행이 층을 클리어 하면 수백 포인트가 더 누적되겠군. 그렇다면 다음 층에서 특수몬스터가 소환될 거야. 어떤 몬 스터가 소환될지 모르니 쉽사리 대 책을 세울 수 없군.’
특수몬스터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 르겠으나 성가실 것만은 확실하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탑 포인트의 사 용 용도를 알아내지 못했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쓸 수 있는 포 인트일 터.
생각에 잠겨 있던 와중에 루나가 강현의 로브 자락을 잡아당겼다.
“오빠 오빠.”
“응? 왜 그래?”
“다음 층으로 가는 문 열렸어.”
고개를 드니 7층으로 올라가는 문 이 열려 있었다.
방금 막 던전의 길 쪽에서 공략을 마친 모양이다.
강현도 상당히 빠르게 클리어한 편 인데,그에 지지 않는 속도로 클리 어 하는 중이었다.
“세이아나도 제물용 소환수를 가지 고 있으니 당연한 건가.”
“저번에 확인해 봤는데 엄마도 그 리폰 이름 이상하게 바꿔 놨었어.”
“무슨 이름이었어?”
“제물용 독수리.”
“거봐,나만 그런 게 아냐.”
강현은 7층으로 올라가기 앞서 6
층 입구에 보이드의 위장덫을 깔아 두었다.
누군가 덫을 밟으면 바로 강현에게 그 사실이 전달된다.
더불어 덫을 밟은 자의 위치를 실 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다.
‘이렇게 해 두면 외부인이 올라왔 을 때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겠지. 덤으로 마나 보충도 할 수 있고.’ 강현은 만약을 대비한 함정까지 설 치한 후에야 7층으로 올라갔다.
나선계단을 빙글빙글 돌며 올라가 자 7층에 다다를 수 있었다.
7층의 구조는 따로 말할 것도 없 었다.
6층과 똑같았기에.
여전히 웨이브 보석의 색깔도 검은 색에 불과했다.
전설급 소형 웨이브 보석은 좀 더 위층에 있는 건가.
강현은 7층에 있는 SSS랭크 소형 웨이브 보석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소형 웨이브 보석이 강현의 몸을 빨아당겼다.
시야가 뒤틀리면서 강현과 루나가 보드라운 모래 위에 착지했다.
쏴아아!
코를 찌르는 짠 내와 역류하는 물 소리.
뒤틀렸던 시야가 복구되기도 전에 어떤 지대인지 감이 왔다.
아니나 다를까,시야가 선명해지면 서 드넓은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야자수 몇 그루만이 심어져 있는 작은 섬.
그중에서도 섬의 해변가에 도착해 있었다.
강현은 가장 먼저 해변가에 설치되 어 있는 나무표지판부터 확인했다.
[레비아탄의 구역(난이도 : S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