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군단의 서 능력으로 5층에 돌아온 강현은 그대로 5증에서 하룻밤을 보 냈다.
다음 날 오후.
전설급 웨이브 바깥에 있던 말단 조직원들이 20명쯤 되는 죄수들을 이끌고 5층에 나타났다.
인근에 위치한 지부에서 끌어모은 죄수들이 었다.
풍문에 의하면 최근 SSS랭크 웨이 브가 자주 등장하면서 죄수를 하도 소모한 탓에 죄수들의 숫자가 부족 해졌다고 한다.
그 와중에 전설급 웨이브에서 쓸
죄수를 충당하느라 일부러 누명을 씌워서 죄수를 늘렸다는 등의 소문 도 돌았다.
그런 소문 때문인지,쓸데없는 소 리를 하지 못하게 죄수마다 재갈을 물려 놓았다.
“하피냐 지역장님,급한 대로 카니 발 차이나타운에서 죄수 20명을 끌 어왔습니다. 그리고 하시모토 지역 장님이 죄수 200명을 데려오고 있 다고 합니다. 아마 일주일 정도 걸 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자식은 지각이 기본사양으로 달려 있나 보군. 제 시각에 도착하 는 꼴을 본 적이 없어.”
보고를 듣던 하피냐는 꾀죄죄한 행
색의 죄수들을 보며 불만을 늘어놓 았다.
“쯧쯧,제물로 쓸 죄수들인데 조금 은 씻겨서 보낼 순 없나? 이리 더 러워서야 몬스터도 식욕이 달아나겠 군.”
“당장 씻기겠습니다.”
하피냐의 디스트로이가 나서선 스 태프를 죄수들에게 겨누었다. 스태프의 끝에서 물줄기가 뻗어 나 오더니 죄수들 한 명 한 명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흡사 도살장에서 가축을 도축하기 직전 씻기는 꼴과 비슷했다.
죄수들의 몸에서 홀러나온 땟물이 바닥을 타고 흘렀다.
하피냐는 흐르는 땟물조차 밟기 싫 은지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세이 아나에게 말을 붙였다.
“다음 제물을 조달할 때까지 시간 이 걸린다는 보고가 들어왔네. 서로 20명씩은 데려가야 할 테니 좀 더 기다리도록 하지.”
“그럴 거 없어요. 전부 그쪽이 데 려가세요.”
“양쪽 길을 다 뚫어야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단 건 알고 말하는 건가?”
“전 그쪽이랑 다르게 제물 없이도 쩔 수 있거든요.”
강현이 가진 히든 스킬북은 신화급 웨이브에서 얻은 스킬북 용지로 만 든 것이다.
그래서 히든 스킬북만큼은 세이아 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허나 루나가 가진 소환수에 테라 시스템을 부여하는 능력은 현자의 연구팀이 직접 만들었다.
고로 세이아나도 SSS랭크에서 제 물로 인식되는 소환수를 여럿 가지 고 있었다.
굳이 죄수를 데려다 쓰지 않아도
SSS랭크를 쩔 수 있다.
그 사실을 모르는 하피냐로선 세이 아나를 우습게 여길 따름이었다.
“배짱부리다가 피 보면 본인만 손 해란 걸 알고 있을 텐데?”
“어머,그런 걸 두고 오지랖이라고 들 하죠?”
“그렇게까지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면 제물은 전부 내가 가져가지.”
“웨이브의 길을 공략하던 제 부하
2명도 계속 그쪽 길로 보내겠어요.”
“감시역을 붙일 정도로 내가 못 미 덥나 보군.”
“잘 아시네요.”
“웨이브 내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는 것 정돈 알 테고. 네 무능한 부하가 멋대로 죽어도 내 탓 은 하지 말도록.”
하피냐에겐 굳이 강현과 함께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행을 허락하 는 건 여차할 때 강현과 루나를 제 물로 쓰겠다는 뜻이었다.
짜증 나는 세이아나의 부하들도 제 거하면서 공략도 할 수 있을 터이니 일조이조 아니겠는가.
본인만의 묘수라고 생각하는 얄팍 한 잔꾀가 표정을 통해 그대로 드러 났다.
세이아나는 속으로 하피냐에게 동 정을 보냈다.
‘딱 봐도 이용할 생각으로 가득하 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이 쪽의 얼음남은 사람 농락하는 데에 있어서 스페셜리스트거든.’
강현 본인은 스스로 천재가 아니라 고 한다.
그저 항상 필사적이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거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세이아나가 오랫동안,강현 이 루나와 만난 순간부터 줄곧 밤낮 없이 지켜본 결과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강현은 두말할 것 없는 천재다.
영국인 소설가의 작품에 나오는 모 탐정도 말하지 않는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것들은 이해 만 하면 그저 일상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그 작은 부분까지 일일이 볼 정도 로 세상을 사랑하는 자를 두고 우리 는 천재 혹은 범죄자라 부른다고. 강현은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과 감히 천재라고 말할 거다.
세이아나는 뻗어 나가는 생각을 갈
무리하며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뒷자리 정리하고 전원 던전의 길 계단 앞에 집합해.”
“네,지역장님. 다들 명령 들었지? 각자 개인정비 마무리하고 집합 준 비 해.”
먼저 올라갈 준비를 마친 하피냐가 부하 및 죄수들을 이끌고 6층으로 향했다.
강현은 하피냐 일행을 따라가기 앞 서 세이아나에게 말했다.
“하시모토란 놈이 오기 전에 10층 까지 주파하는 걸 목표로 잡지.”
사람이 많이 모여들면 그만큼 난전 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전에 하나라도 더 열쇠 조각을
확보해 두려는 생각이었다.
세이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도록 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소리잔으로 연락하고.”
“이쪽이 할 소리야. 공략 막히면 물어보도록.”
“후후,하여간 지기 싫어하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강현과 세이아나는 흩어져선 각각 웨이브의 길과 던전의 길에 올랐다. 강현은 루나와 함께 하피냐 일행의 맨 뒤편에 붙어서 이동했다.
나선계단을 오르자 6층에 자리 잡 은 SSS랭크 소형 웨이브 보석에 다 다랐다.
하피냐 일행과 죄수들이 먼저 입장 하고,뒤이어 강현과 루나가 입장했 다.
하피냐는 입장하자마자 공략법이 적힌 표지판을 읽어 내렸다.
“허무왕의 옛 궁전이라……. 1층은 근위병을 상대해야 되는군.”
강현은 모여 있는 죄수들 사이로 하피냐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 다.
위화감을 느끼는 구석은 보이지 않 았다.
하긴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 가.
웨이브 안에 들어가서 표지판만 싹 바꾸고 아무렇지도 않게 빠져나오는 경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쉬이 떠올 릴 만한 발상이 아니다.
생각대로 하피냐는 철썩같이 가짜 표지판의 문구를 그대로 믿었다.
“1층 강제 클리어에 15명이군. 저 승길로의 동무가 특기인 잡졸 근위 병들을 상대로 위험을 무릅쓸 필요 는 없지. 당장 15명을 처리해라.”
최대 입장인원이 30명인 웨이브에 서 1층부터 절반이나 되는 인원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
조금은 의심해 볼 법도 하다.
1층에서 절반이나 바치면 2층,3층 에선 얼마나 더 제물이 필요하다는 건가.
아니나 다를까,하피냐의 디스트로
이들이 의심을 표했다.
“이상합니다,지역장님. 왜 1층부 터 15명이나 바치라고 하는 걸까 요? 무려 최대인원의 절반이잖습니 까.”
하피냐는 한심하다는 양 혀를 찼 다.
“쯧쯧,2류들의 생각 같은 건 고리 타분해서 못 들어 주겠구나.”
“지역장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 까?”
“무조건 1층의 난이도가 가장 쉬울 거라고 생각하니까 함정에 빠지는 거다. 1층을 가장 까다롭게 만들었 고 갈수록 난이도가 낮아지도록 설 정해 둔 것일 테지. 마치 2층,3층에서도 제물이 많이 필요할 것처럼 보이게 해서 1층에서 제물을 아끼게 만들도록 말장난을 쳐 놓은 게 틀림 없다.”
“그런 걸까요?”
“감히 누구의 의견에 토를 달려는 것이냐? 너희와 내 두뇌 어느 쪽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무,물론 하피냐 지역장님이 더 뛰어나십니다.”
“알면 명령대로 행동하란 말이다.”
“아,알겠습니다!”
하피냐의 디스트로이들이 죄수들을 이끌고 허무왕의 옛 궁전 앞으로 갔 다.
궁전 문을 열자 마나기류가 도사리
고 있었다.
하피냐의 디스트로이들이 죄수들과 함께 먼저 들어가고,강현과 루나가 뒤따라 들어갔다.
궁전 1층은 굵직한 기둥이 일정 간격으로 늘어서 있을 뿐인 넓은 홀 이었다.
홀의 12시 방향에는 푸른빛의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병사들이 오 와 열을 맞추어 서 있었다.
가구나 장식물이라곤 하나도 없는 휑한 공간에서 어떻게 공략물품인 ‘전하의 은총’이란 목걸이를 찾으라 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공략물품 따윈 아무래도 좋 았다.
이미 공략을 위한 제물이 모두 준 비된 탓이었다.
하피냐갸 위로 올렸던 손을 내리며 명령을 내렸다.
“죽여라.”
신호에 맞춰 하피냐의 디스트로이 들이 각자의 무기로 죄수들을 겨누 었다.
검,창,도끼 등의 날붙이들이 예 정된 일을 무감각하게 행하였다.
서격! 푸욱! 철퍽!
다양한 특색의 무기가 죄수들을 가 격하면서 갖가지 타격음이 울려 퍼 졌다.
아이가 받은 돈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하고 뽑기 기계에 무감각하게 소모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삽시간에 15구의 시체가 생겨났다. 강제클리어 조건이 갖춰지자 바닥 에 널브러진 15구의 시체가 모두 녹아내렸다.
다음 층으로 시체를 끌고 올라가서 재활용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인 듯 했다.
그에 따라 공략자의 입장을 감지하 고 공격에 나서려던 근위병들이 일 제히 동작을 멈췄다.
근위병 몬스터가 일제히 쓰러지면 서 12시 방향에 문이 생겨났다.
강제 클리어를 처음 보는 강현으로 선 썩 유쾌하지 않았다.
‘아무런 리스크도 없고,아무런 노
력도 없이 보상을 얻는 것에서 성취 감을 느낄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기본원칙 으로 삼는 강현으로선 공감할 수 없 는 방식이었다.
강현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하피냐 의 디스트로이들은 근위병의 사체를 뒤지며 전리품을 찾으러 다녔다. 강현은 12시 방향으로 가기 위해 근위병의 시체 더미 옆을 지나갔다. 헌데 근위병 시체 사이에서 전리품 반응을 띠는 시체 하나가 보였다.
1층의 클리어 조건이었던 근위대장 의 시체이리라.
강현은 근위대장의 시체에 손을 대 고 추출을 행했다.
“추출.”
보상은 영약 2개가 나왔다.
어떤 영약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옆 에서 하피냐가 손을 뻗어 왔다.
“전리품을 보니까 또 욕심이 드나 보지?”
여전히 4층에서 강현이 보구 욕심 때문에 다른 지부 사람들을 벤 걸로 착각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그의 말에서 도발의 뉘앙스가 풍겨 나왔다.
세이아나와의 말싸움에서 밀린 걸 강현에게 화풀이하고 있었다.
강현은 스스럼없이 영약을 하피냐 에게 넘겼다.
“받으시죠.”
하피냐는 영약을 낚아채며 어깨로 강현을 강하게 밀치며 지나갔다.
“좀 더 시선을 내리깔도록. 하는 것도 없는데 예의라도 갖춰할 것 아 니더냐.”
같이 있던 루나가 스태프를 곧추세 웠다.
그러나 강현은 팔을 옆으로 뻗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24층이나 남았다.
고작 아래층에서 얻은 전리품 몇 개 주는 거면 싸게 먹히는 거다. 전리품 몇 개로 지역장을 칠 수 있다면 말이다.
강현은 로브 안으로 손을 넣어 아 공간 주머니를 매만졌다.
'승부처는 2층이 되겠군.’
1층 공략이 끝나면서 공략대는 2 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1층과 다르게 연회장 형태 를 띠고 있었다.
빈 테이블과 양초 없는 촛대,상들 리에가 살풍경한 방을 채우고 있었 다.
연회장의 안쪽에는 스켈레톤이 어 울리지도 않는 연미복을 입은 채 악 기를 켜고 있었다.
음악 소리가 가득한 연회장 속에서 강현과 하피냐 일행이 동시에 표지 판을 확인했다.
연회장 입구에 설치된 표지판에는 이리 적혀 있었다.
[허무왕의 옛 궁전 2층(난이도 :
SSS)]
-허무왕의 옛 궁전 2층에는 스켈 레톤 악단이 있습니다. 악단은 공격 무효화 능력을 두르고 있습니다.
-스켈레톤 악단은 바이올린 2명, 첼로,비올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악기가 연주 중일 땐 모든 공략 자에게 저주가 부여됩니다.
바이올린 연주 : 시야 및 청각 차 단
첼로 연주 : 공략자의 스킬 능력 및 보구 능력이 봉인.
비올라 연주 : 일시적으로 스렛 90퍼센트 감소.
장송곡 합주 : 듣는 이는 즉시 사 망.
-연주 순서는 바이올린,첼로,비 올라 순으로 이어지며,어느 한 악 기가 연주 중일 땐 나머지 악사들이 공격에 나섭니다. 각 악기의 연주가 끝나면 장송곡 연주가 펼쳐집니다.
-연회장 단상 위에서 제물 한 명 을 바치면 스켈레톤 중 한 마리의 공격무효화 능력이 풀립니다. 모든 스켈레톤을 처리하면 옛 궁전 2층 클리어.
(강제 클리어 조건 : 연회장 내에 사람 시체 12구가 존재할 시 옛 궁 전 2층 강제 클리어)
표지판을 읽은 하피냐는 당황을 금 치 못했다.
“12구나 필요하다고? 1층과 합치 면 제물만 27명이 필요하다는 말이 잖아!”
강제 클리어 조건치고는 제물을 너 무 많이 요구한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원래 1,2층 합쳐서 20구만 필요 한 것을 강현이 숫자를 고쳐 적으면 서 7명이 더 소모되도록 유도했으니 까.
현재 하피냐와 디스트로이,강현과 루나,죄수까지 전부 더해도 13명밖 에 안 된다.
강제 클리어를 하려면 13명 중 12
명이 죽어야 되는 셈이다.
하피냐가 굳이 강제 클리어를 고집 한다면 본인 손으로 부하들까지 전 부 죽여야 한다.
아직 3층이 남은 마당에 부하들을 제 손으로 죽일 수 있을 리가 없다. 하피냐를 비롯한 디스트로이들이 당황에 물들면서 주춤거렸다.
그사이 스켈레톤 악사들 중 2마리 가 바이올린을 켰다.
브 으으으?
묵직한 음색이 연회장을 가득 채운 다.
바이올린 음색을 들은 순간 공략자 전원의 시야가 검게 물들고 귀가 멍 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