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가이아 대륙의 음유시인 중 한 명 이 부른 노래 중에 이런 구절이 있 다.
[그는 화산에서 태어났도다.
용암으로 된 피가 흐르고,달궈진 바위로 된 몸은 식을 줄 모르니. 창공을 나는 매조차도 감히 그를 내려다볼 수 없느니라.]
구절만 봐도 알 수 있듯 타이탄은 항시 지글지글 끓고 있는 바위 거인 이라 할 수 있었다.
타이탄의 주변으로 커뮤니티 조직
원들이 부산하게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든 올라가! 을라가라는 말 안 들려? 이쪽에서 타이탄을 마비시 키면 그쪽에서 올라가야 할 거 아 냐!”
“다시 한 번 아르고스의 눈을 찾아 보겠습니다!”
“하여간 쓸데라곤 조금도 없는 것 들 같으니. 애당초 너희들이 죄수 관리만 잘했으면 이리 고생할 일도 없었을 거 아냐!”
지부장으로 보이는 자가 조직원들 을 닦달하고 있었다.
잘 보니 타이탄을 공격하는 게 아 니라 올라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타이탄 공략에 집중하고 있 는지 강현이 들어왔는데도 알아차리 지 못하고 있었다.
강현은 조직원들에게서 눈을 돌리 며 입구 근처를 살폈다.
표지판을 찾기 위함이었다. 푸석푸석한 홁과 바위밖에 없는 고 원 지대 끄트머리에 표지판에 세워 져 있었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이리 적혀 있었 다.
[타이탄 야드(SSS랭크)]
-타이탄에겐 공격무효화 능력이 걸려 있다. 타이탄의 공격무효화 능 력을 풀려면 타이탄의 머리에 있는 검은바위 제단에 공략자의 시신 하 나를 놓아야 한다. 시신 하나를 바 치면 30분 동안 공격무효화 능력이 풀린다.
-타이탄 야드에는 아르고스의 눈 이 곳곳에 심어져 있다. 땅에 파묻 힌 아르고스의 눈을 파내면 일시적 으로 아르고스의 저주가 발동하여 타이탄의 움직임이 1분 동안 멈춘 다.
-타이탄을 쓰러뜨리면 2페이즈 클 리어.
(강제 클리어 조건 : 타이탄 야드 에 사람의 시체 10구가 존재할시 2 페이즈가 강제로 클리어된다.)
읽어 보니 공략 조건은 단순했다.
타이탄의 머리 위까지 갈 수 있으 면 거기에 제물을 올려서 공격,좀 더 쉽게 공략하고 싶다면 바로 10 명을 죽여서 강제 클리어.
조직원들에겐 죄수란 이름의 제물 들이 있으니 그들로 강제 클리어를 하려 했을 거다.
허나 강제 클리어 조건이 시체 10 구가 ‘존재할시’라는 게 중요하다. 타이탄은 그야말로 들끓는 화산암 으로 이루어진 거인이다.
타이탄에게 짓밟히거나 주먹에 맞 으면 죽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짓이겨진 채로 증발할 거다.
늘 죄수를 끌어다가 SSS랭크를 클
리어하는 자들이 그리하지 못한다는 건 죄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 문이리라.
‘1페이즈를 끝내고 방심하고 있다 가 죄수들을 잃은 모양이군. 저희들 끼리 제물 삼을 순 없으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공략 중인 건가.’ 멀리서 지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조직원들을 통솔하며 공략에 힘을 쏟고 있었다.
달려드는 타이탄에 맞서 지부장은 언월도를 휘둘러 바닥을 가격했다.
언월도에 부여된 그랜드 스피어가 땅에 부딪치면서 흙자갈이 높게 튀 어 올랐다.
튀어 오른 흙자갈은 타이탄의 몸통
이며 얼굴까지 올라가선 강한 폭발 을 일으켰다.
과과쾅!
타격을 가한 물건에 폭발력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인 듯하다.
어차피 공격무효화 능력 때문에 타 이탄에겐 아무런 충격도 전해지지 않았다.
허나 타격이나 입히자고 한 공격이 아니었다.
폭발로 인해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나면서 타이탄의 시야를 차단했 다.
지부장은 타이탄이 주춤하는 걸 보 곤 부하들을 재촉했다.
“뭣들 하고 있어! 얼른 아르고스의
눈을 찾아!”
“지금 찾고 있습니다!”
“찾고 있다고만 하지 말고 찾으란 말이야!”
조직원들 중 한 명이 부리나케 뛰 어다니며 땅바닥을 훑어보았다.
투시 능력을 이용해서 땅 아래를 훑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조직원이 제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곤 허겁지겁 검으로 바닥을 긁 더니만 사과만 한 크기의 유리 눈알 을 꺼냈다.
아르고스의 눈이었다.
조직원이 아르고스의 눈을 타이탄 에게 향하도록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타이탄이 태엽이 끊 긴 인형마냥 멈칫거리더니 이내 곧 움직임이 멎었다.
강현은 아르고스의 눈이 가진 효과 를 관찰하며 생각에 잠겼다.
‘저 아르고스의 눈이란 거,저주 계열 능력이 있나 보군. 눈끼리 마 주치지 않아도 아르고스의 눈이 응 시하는 자는 1분간 마비되는 건가.’ 타이탄이 마비되자 지부장이 조직 원들을 재촉했다.
“지금이다! 시체를 타이탄의 머리 위로 옮겨라! 얼른!”
타이탄의 뒤에 서성이던 조직원들 이 시체 한 구를 짊어졌다.
시체는 같은 커뮤니티 조직원 복장
을 입고 있었다.
죄수가 없으니 저희들 중 한 명을 죽여서 시체를 만든 것이었다. 공략이란 이름하에 너무나도 당연 하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타이탄의 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려던 조직원들은 금방 발이 묶여 버리고 말았다.
타이탄의 발등에 올라타자마자 신 발 밑창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 다.
용암으로 달구어진 검은 바위는 등 반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쉴 새 없이 열기를 내뿜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조직원들이 허둥지둥 물러났다.
“지부장님,무리입니다! 열기 때문 에 뜨거워서 올라갈 수가 없습니 다!”
“재가 되든 말든 일단 올라가란 말 이다! 내 명령을 거역할 셈이냐! 당 장 올라가! 올라가지 않으면 명령불 복종으로 전원 처벌하겠다!”
워낙에 매끈한 바위인지라 그냥 올 라가기만 해도 1분은 훌쩍 넘길 거 다.
거기에 지글지글 끓는 열기가 올라 오는데 대체 어떻게 올라가란 말인 가.
비행 능력이 있는 소환수를 쓰거 나,부유 능력이 있는 스킬을 쓰지 않는 이상 거의 공략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앞에는 열기,뒤에는 지부장.
조직원들은 진퇴양난에 빠져 혼란 에 빠졌다.
혼란에 빠진 상태로 보내기엔 1분 이란 시간은 너무 짧았다.
벌써 1분이 지났는지 타이탄이 움 직이기 시작했다.
타이탄은 발치에서 서성이는 조직 원들의 존재를 용납지 않았다. 곧바로 조직원들의 머리 위로 발을 들어 올렸다.
쿠구구구!
관절 부분을 이루는 바위끼리 맞물 리면서 무거운 마찰음이 조직원들을 에워쌌다.
타이탄의 발바닥에서도 열기가 풀 풀 풍겨 나왔다.
머리 위에 그늘이 드리워졌는데 오 히려 더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역설 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모두 도망……
쿵!
타이탄의 발이 떨어지면서 6명의 조직원들이 한꺼번에 깔렸다.
깔린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말하 지 않아도 알 일이었다.
지부장을 비롯한 남은 조직원들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이제 남은 인원은 고작 3명.
강제 클리어는 물 건너간 지 오래 다.
일반 클리어를 하려고 해도 남은 3명 중에서 또 누군가가 공격무효화 를 풀 제물이 되어야 한다.
게다가 여전히 타이탄의 머리 위에 올라갈 방법을 찾지 못했고 말이다. 그와 무관하게 타이탄은 남은 사람 들마저 밟아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지부장과 조직원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도망치기 바빴다.
쿵! 쿠응! 쿵!
그들로선 반격을 할 실마리가 없다 보니 계속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잠자코 지켜보던 강현은 빙 백검을 뽑아 들었다.
“루나,스노우맨을 소환해. 특대 사 이즈로.”
“특대 사이즈 말이지? 맡겨 둬!”
루나는 레드 그리폰 스태프를 꺼내 어 가볍게 파이어볼을 썼다가 꺼뜨 렸다.
불의 마법을 써서 레드 그리폰 스 태프의 공격 스텟 증가 옵션을 발동 한 것이었다.
그간의 활동으로 인해 레드 그리폰 스태프의 등급은 S급까지 올라 있었 다.
이제는 옵션을 발동하면 모든 스텟 이 일시적으로 100씩 증가한다.
루나는 옵션을 발동한 상태에서 마 법을 시전했다.
“스노우맨!”
루나가 스태프에 대량의 마나를 부
여하자 스태프가 지목한 자리에 눈 덩이가 솟아났다.
눈덩이는 삽시간에 불어나선 5미터 짜리 거대 눈사람이 되었다.
강현은 소환된 스노우맨의 손 위에 올라타며 입을 달싹였다.
그의 입에서 아주 짧고 단순한 명 령이 튀어나왔다.
“GO.”
그에 맞춰 루나가 손을 위로 들었 다가 아래로 내렸다.
시전자의 지시에 따라 스노우맨이 강현을 위로 힘껏 던졌다.
강현은 투석기를 통해 던져진 것마 냥 허공을 헤치며 타이탄의 어깨에 도달했다.
아직 착지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 터 열기가 전신을 덮쳐 왔다.
업화의 불꽃반지는 용암에서 비롯 된 공격은 막지 못한다.
그렇다면 예전에 라그나로스를 상 대했을 때처럼 냉기로 열기를 밀어 내는 수밖에 없다.
강현은 빙백검의 냉기 능력을 한껏 피워 올려 열기를 밀어냈다.
동시에 빙백검을 역수로 쥐며 엘레 멘탈 웨펀 토 속성을 부여했다. 그 러곤 타이탄의 어깨에 힘껏 내리꽂 았다.
투응!
공격무효화 능력 때문에 손맛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손맛과는 별개로 관통 스텟 의 효과는 제대로 발휘되었다. 그랜드 소드의 위력이 공격무효화 능력을 관통하고 타이탄의 어깨에 작렬했다.
쩌적!
어깨 부분을 이루던 검은 바위의 일부가 검으로 가른 양 깨끗하게 갈 라졌다.
벌어진 틈에서 용암이 걸쭉하게 홀 러나왔다.
사람으로 따지면 살이 베여 피가 흘러나오는 셈이다.
타이탄도 고통 정도는 느끼는지 거 센 포효를 내질렀다.
“우오오오!”
타이탄은 어깨에 있는 강현의 존재 를 인지하곤 손바닥을 내리쳤다.
열기를 머금은 검은 손이 강현을 향해 뻗쳐 왔다.
강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자리 에 다시 한 번 빙백검을 내리꽂았 다.
투우응!
두 번째 공격이 가해지면서 타이탄 의 어깨에 있던 검상이 더 크게 벌 어 졌다.
더불어 엘리멘탈 웨펀 토 속성이 적용되었다.
타이탄의 움직임이 느려졌고,날아 들던 손바닥의 움직임 또한 슬로우 모션이 가미된 듯 느려졌다.
강현은 타이탄의 손바닥 밑을 지나 치며 목덜미 부근으로 향했다. 달리면서 오른손으론 빙백검을 쥐 고,왼손으론 아공간 주머니에서 몽 환검을 꺼내어 환영검을 소환했다. 환영검을 소환하면 공격 스렛이 2 배로 올라간다.
현재 강현의 관통 스텟은 740.
몽환검의 효과가 적용되면서 일시 적으로 관통 스렛이 약 1500까지 상승했다.
강현은 일시적으로 스텟을 상승시 켜 놓고 힘껏 빙백검을 휘둘렀다.
터어영!
빙백검이 타이탄의 목덜미를 그으 며 공격무효화 능력에 부딪쳤다.
역시나 관통 스텟의 효과만은 탁월 하여 거침없이 타이탄의 목덜미에 기다란 검흔이 생겨났다.
베인 자국은 앞으로 쏠려 있던 머 리 무게에 의해 점점 더 벌어졌다. 이윽고 타이탄의 목이 아래로 떨어 지며 베인 단면에서 용암이 분화구 마냥 튀어 올랐다.
공격무효화 능력을 무시한 채로 타 이탄을 쓰러트린 것이었다.
강현은 타이탄이 앞으로 기울어지 는 타이밍에 맞춰 바닥으로 뛰어내 렸다.
그가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타이 탄이 스노우맨과 부딪쳤다.
치이이이익!
용암에 뒤덮인 눈이 수증기가 되어 자욱한 안개를 형성했다.
피어오르는 하얀 증기 사이에서 강 현의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강현은 충격 흡수를 위해 굽혔던 한쪽 무릎을 펴며 몸을 일으키려 했 다.
그런데 강현의 목에 언월도의 창날 이 드리워졌다.
등 뒤에서 아직 이름도 모르는 지 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른 비늘의 검과 흑발의 동양인. 최근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든 작자 의 모습과 비슷한데 내 착각은 아니 겠지?”
빙백검을 쓰기로 작정한 시점부터
들킬 거란 예상은 했다.
디스트로이 제복 같은 걸로 감싸기
에는 너무 특이한 검이니까.
목에 싸늘한 창날이 닿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현은 안색 하 나 변하지 않았다.
강현은 시선을 위로 올리면서 나지 막이 말했다.
“젖은 채로 낙뢰 구간에 들어오면 안 되지.”
지부장을 비롯한 조직원들이 문득 위를 보았다.
뿌연 수증기 너머로 시커먼 무언가 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커먼 뇌운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