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166화 (166/381)

166화

풍성하게 펄럭이는 창문 사이로 햇 살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야금야금 뻗어 들어오던 햇살은 금 방 강현의 얼굴에 닿았다.

강현은 알람이라도 맞춘 양 눈을 번쩍 떴다.

왠지 모르게 팔이 저리다.

옆을 보니 세이아나가 강현의 팔을 벤 채로 자고 있었다.

더불어 반대편에선 루나가 강현의 겨드랑이 사이에 파고들어 웅크린 채 자는 중이었다.

‘아,어제 쉘터 안으로 들어와서 여관을 빌렸었지.’

벌룬 포레스트에서 떠나 날밤을 꼬 박 새며 달린 끝에 4성급 쉘터 하 나에 이르렸다.

쉘터 안의 커뮤니티 지부에 들러서 세이아나가 몇 마디 하니까 월터 내 에서 가장 좋은 여관을 잡아 주었 다.

표면상으로 강현,루나를 남편과 딸이라고 소개했기에 한 방을 쓰게 되었다.

한 침대에서 자는 것까진 괜찮은데 자는 동안 일부러 강현의 팔을 당겨 서 베고 잔 모양이었다.

‘얼마나 잤지?’

눈을 움직여 시계를 보니 이제 막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잠자리에 든 게 9시이니 3시간 동 안 잔셈이다.

3시간 취침이면 충분하다.

세이아나와 루나는 더 자게 놔두는 게 나을 듯하다.

두 사람의 머리에서 조심스럽게 팔 을 빼려던 찰나.

세이아나가 몸을 웅크리며 바르르 떨었다.

“죄송해요,죄송해요. 때리지 마세 요.”

흘러내린 캐미솔 어깨끈 너머로 등 에 난 흉터가 얼핏 드러났다.

이쪽 세계의 포션은 효과가 좋아서 웬만한 상처는 흉터 없이 깨끗하게 치료한다.

자기관리에 철저한 그녀가 등의 흉 터를 가만 놔둘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터가 남아 있 다는 건 굉장히 오래된 흉터라는 뜻 이다.

너무 오래된 흉터에는 포션이 듣지 않으니까.

치안이 좋지 않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었나.

아무리 강한 척해도 그 속은 과거 의 아픔에 시달리는 가녀린 여성에 불과했다.

강현은 세이아나와 루나의 머리에 서 팔을 빼내며 침대를 벗어났다. 루나는 여전히 자고 있었지만 세이 아나는 부스스한 몰골로 잠에서 쨌다.

“으으,눈 따가워. 지금 몇 시야?”

“12시.”

“3시간밖에 안 잤네. 더 안 자?”

“충분해.”

“그러다 일찍 죽어. 자자,이리로 와. 잠이 안 오면 누나가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련?”

“필요 없어.”

세이아나는 익살스럽게 이불을 들 추고 있다가 문득 캐미솔이 흘러내 린 걸 확인했다.

그녀 스스로도 늘 등의 흉터를 신 경 쓰고 있기에 일어나지 않고도 흉 터가 드러났음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다.

방금까지 악몽에 시달리다가 깨어 난 참이다.

아마 강현도 봤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하지 않 는 건 그 나름의 배려이리라.

세이아나는 캐미솔 어깨끈을 잡아 올리며 피식 웃었다.

“후후,가끔씩 있지. 피곤하면 괜히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떠오르는 거.”

“어제 힘을 많이 쓴 거였나? 가볍 게 쓰러뜨린 것 같아 보였는데 말이 지.”

“지금 거 제법 득점 포인트 높은 걸?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주제를 돌려 주는 거 나쁘지 않아.”

“딱히 적립하고 싶지 않은 포인트 로군.”

“왜? 경품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미 가지고 있는 경품이니까.”

“오,여자친구?”

“글쎄.”

“아직은 빈 골대라는 거네.”

“무슨 말을 하려고?”

세이아나는 루나의 목전까지 이불

을 덮어 주곤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검은색 캐미솔 위에 외투를 걸치며 창가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 다.

“골키퍼 후보는 많을수록 좋은 법 이야.”

“웬만하면 주전 한 명만 자주 쓰인

다만.”

“후후,여기선 두 명,세 명 세운 다고 뭐라 할 사람 없어. 그물망이 흔들리는 게 싫으면 키퍼를 여러 명 세우는 것도 한 방법이지.”

“딱 그거로군. 연애 경험은 없는 대신 연애 상담만 많이 해 주는 타 입.”

“후후후후후후.”

“쓸데없는 소리는 됐고 본제로 돌 아가지. 굳이 혼자 나선 건 지역장 의 힘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인 건가?”

어제 굳이 강현이라는 근접전 스페 셜리스트를 두고 구경을 하라고 한 건 의도한 바가 있기 때문일 터.

강현은 그걸 지역장의 힘을 실감시 키기 위한 것이라 여겼다.

세이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수정구슬로 네 행보를 계속 지켜봤었잖아. 보니까 넌 힘보다 책 락으로 싸우는 타입 같더라고. 지역 장과의 격차를 실감하면 전설급 웨 이브에서 다른 지역장과 마주쳐도 적절한 작전을 짤 거라 여겼어.”

세이아나의 경우 실드 스텟이 4, 000 에 달한다고 한다.

공격 스텟은 1, 200 정도인데 스킬 에 의해 최대 4, 800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녀가 가진 스태프는 ‘메모라이즈 스태프’란 것으로,등록한 스킬은 마나 소모 없이 계속 쓸 수 있게 해 주는 전설급 보구였다.

즉 비정상적으로 높은 실드 스텟으 로 마법사의 단점을 보완하고,스태 프를 통해 스킬을 무한정 발동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나라면 세이아나의 공세를 뚫 고 피해를 입힐 수 있었을까?

아마 정면대결이라면 뚫기 힘들 거 다.

관통 스텟의 효과를 이용하려면 공 격을 적중시켜야 하는데 그 전에 무 한정 쏟아지는 스킬들이 강현의 공 격을 무력화시킬 거다.

지역장의 무력이 생각 이상? 으로 강 하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강현의 입장은 지역장의 무 력을 실감하기 전과 달라진 게 없었 다.

강현은 창틀에 걸터앉으며 무심한 투로 말했다.

“웨이브 안에서라면 상대가 누구라 도 상관없어.”

*

천붕지통이라 아비가 죽으면 하늘 이 무너지는 것 같이 아프다 했던 가.

니케는 보자기에 싸인 줄리안의 수 급을 보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온 이별을 받

아들일 수가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나머지 감 각이 마비된 듯 현기증이 올라왔다. 옆에선 리리가 오열하고 있었고, 혁명군 동료들 또한 묵념으로 애도 를 대신했다.

니케는 줄리안의 수급을 들고 온 혁명군 대원들을 올려다보았다.

“세이아나가……. 그리도 강했습니 까?”

혁명군 대원들은 생각만 해도 분한 양 치를 떨며 말했다.

“마음 단단히 먹고 듣거라,니케. 대장을 죽인 건 세이아나가 아니 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세이아나

가 아니면 누가 아버지를 죽였단 말 입니까?”

“최강현이 죽였다.”

“최강현이? 그럴 리가……. 그가 아버지를 죽일 이유가 어디 있다 고……

“예정대로 세이아나를 치러 갔는데 최강현이 있더군. 커뮤니티에 붙었 다고 볼 수밖에 없어. 결국 놈도 속 물이었던 거지.”

니케로선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아는 빙검의 기사는 부러질 지언정 꺾이지 않는 자였다.

하지만 눈앞에 아버지의 목이 있 고,살아남은 대원들은 입을 모아 강현의 행위라고 증언하고 있다.

어느 쪽 말을 믿어야 되겠나.

당연 강현이 변질했다는 쪽으로 생 각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니케는 손으로 바닥의 모래를 긁어 쥐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너무 분한 나머지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다.

찢어진 입술 사이로 배어 나온 핏 방울이 눈물을 대신해 떨어져 내렸 다.

줄리안의 죽음을 애도해야겠지만 지금은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갑작스런 대장의 죽음에 혁명군 대 원들이 술렁거렸다.

“이제 누가 혁명군을 이끌지?”

“규칙대로라면 혁명군 간부 7명 중

에 한 명을 표결로 선출해야 해.”

빨리 대장을 정하지 않으면 혁명군 자체가 와해될 가능성이 있었다. 모두가 빠른 표결로 차기 대장을 선출하자고 입을 모으던 중.

니케가 몸을 일으켰다.

줄리안이란 언덕에 등을 기대고 있 던,그저 앳된 청년에 불과했던 그 는 복수심에 가득 찬 한 명의 사내 로 변해 있었다.

“제게 석 달만 주십시오.”

“무슨 의미인가?”

“석 달 안에 대장의 자격을 갖추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혁명군은 몸을 사리고 모든 사건사고는 간부 회의를 통해 처리해 주십시오.”

“고작 석 달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망자의 섬에 다녀오겠습니다.”

망자의 섬.

전설급 웨이브가 터진 나머지 몬스 터홀이 생겨서 버려진 섬이다.

바다 덕분에 섬의 몬스터가 육지에 다다를 일은 없지만,그래서 더더욱 섬 내부에 몬스터들이 꽉 차 있다. 석 달은커녕 한 달도 살아남기 힘 든 가혹한 곳이 바로 망자의 섬이었 다.

줄리안과 함께 떠났다가 돌아온 대 원들의 입에 일순 비웃음이 맺혔다 가 사라졌다.

그들의 비웃음을 알아차린 자는 없 었다.

대원들은 진심으로 걱정하는 양 니 케를 말리려 했다.

“거긴 너무 위험해. 화가 나는 건 알겠지만 냉정을 잃어선 안 된다.”

“무리를 해서라도 그 작자와의 격 차를 좁혀야 합니다. 그래야만 복수 를 할 수 있단 말입니다.”

“후우,네 뜻이 확고하니 뭐라 해 야 할지 모르겠구나.”

“만약 살아서 돌아오면 제가 대장 자리를 이어 받겠습니다. 그거면 모 두 불만은 없을 테지요.”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망자의 섬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버틸 수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저 분노에 미친 자의 말로를 보 는 양 동정의 눈길을 보낼 뿐이었 다.

니케는 울다 지쳐 탈진한 리리를 쳐다보았다.

깨어나면 어떻게든 말리려 들 테니 떠날 거면 지금 떠나야 한다.

니케는 당장 떠날 준비를 하며 혁 명군 대원들에게 묵직하게 작별인사 를 남겼다.

“돌아올 때까지 리리를 잘 부탁함 니다.”

*

고메즈는 자신의 지부 내에서 지내 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재차 최강현 토벌을 꾀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전멸한 디스트로 이를 새로 뽑는 일이었다.

지부 내에 있는 자들 중 무력 순 으로 뽑는 건 물론이고,모자란 인 원은 각 지부의 실력자들을 차출했 다.

디스트로이 재구성이 끝났을 무렵.

고메즈의 지부에 종이 전서구 하나 가 도착했다.

이번에 새로이 디스트로이로 뽑힌 최진철이 종이 전서구를 전달했다.

“지역장님,혁명군 밀정이 종이 전 서구를 보내 왔습니다.”

고메즈는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혁명군 따위의 일은 지미 그놈에 게 떠맡겨라. 그 따위 잡것들에게 할애할 시간이 있을 성싶더냐.”

안 그래도 강현의 위치를 알아내지 못하고 있어 짜증이 돋아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개자식은 희 희낙락거리면서 자신을 비웃고 있을 것 아닌가.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이를 갈 지경이다.

헌데 최진철의 입에서 의외의 보고 가 튀어나왔다.

“내용을 확인해 봤는데 최강현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뭐라고?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더냐!”

생트집에 가까운 성질머리였다. 그러나 최진철은 철저하게 부하의 자세를 고수하며 말을 이었다.

“세이아나와 최강현이 동행 중이라 고 합니다. 세이아나가 배신한 거라 는군요.”

“그깟 은발 계집 하나 붙었다고 어 찌 못할 내가 아니다. 그보다 최강 현의 위치는 적혀 있느냐?”

“카니발 차이나타운 동쪽의 벌룬 포레스트에서 목격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밀정들이 줄리안과 혁명군 정예들을 베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군요.”

“최강현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란 말이다!”

“거기까진 적혀 있지 않습니다.”

“젠장! 당장 디스트로이를 소집해 라! 이리된 이상 내가 직접 벌룬 포 레스트까지 가서 수색을 개시하겠 다!”

그나마 실낱같은 단서라도 잡은 게 다행이었다.

어떻게든 놈의 흔적을 뒤져서 행선 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런데 사람 일이라는 것이 꼭 무 언가 하려고 할 때 방해요소가 끼어 들기 마련이다.

별안간 지역장실 문이 벌컥 열리더 니 디스트로이 한 명이 급하게 들이닥쳤다.

“지역장님! 어떤 미친년이 가이아 대륙과 이어진 경계를 뚫고 입장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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