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화살은 맹렬한 기세로 촘촘한 간격 을 유지하며 날아들었다.
강현은 실드를 끌어올리며 빙백검 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그가 나서기 전에 세이아나 가 아공간 목걸이에서 스태프 한 자 루를 꺼내 들었다.
“이 누나가 정리할 테니까 편하게 앉아 있어.”
세이아나는 한 손으로 유려하게 스 태프를 빙글빙글 돌리더니 하늘을 향해 처억 치켜 올렸다.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 주문 영창이 홀러나왔다.
“윈드 스톰.”
루나가 가진 B급 스킬과 똑같은 기술이다.
그러나 이름만 똑같을 뿐 위력은 전혀 달랐다.
루나의 윈드 스톰은 고작해야 2미 터짜리 돌개바람에 불과하다.
반면 세이아나의 윈드 스톰은 허리 케인이라도 되는 양 크기를 가늠하 기조차 어려웠다.
거대한 돌개바람이 솟구치면서 날 아드는 화살을 죄다 쓸어 담았다. 뒤이어 돌개바람이 사방으로 바람 의 칼날이 쏘아 냈다.
파파파팟!
그 위력이 어찌나 사나운지 정말
폭풍이 몰아닥친 양 숲의 나무가 우 수수 베여 나갔다.
게다가 절묘하게 바람의 칼날이 사 출되는 방향을 조절하여 강현이 서 있는 곳에는 단 하나의 칼날도 날아 들지 않았다.
루나가 아직도 윈드 스톰의 칼날 방향을 조절하지 못하는 걸 감안하 면 그녀의 마나운용능력이 얼마나 섬세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강현도 마나운용능력이 뛰어난 편 이지만 세이아나는 그 이상인 듯하 였다.
‘저렇게까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한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군.’
얼마 후,세이아나가 윈드 스톰을 풀었다.
윈드 스톰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베여 나간 나무기둥과 부산히 날아 다니는 나뭇잎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조각난 나뭇잎이 여우비마냥 떨어 지는 가운데 흙으로 만든 봉분이 있 었다.
홁으로 된 방어벽을 만드는 스킬임 이 분명했다.
이내 곧 흙이 걷혀 나가면서 그 안에 있던 일련의 무리가 모습을 드 러 냈다.
세이아나는 어깨에 내려앉은 나뭇 잎을 털어 내며 기다란 속눈썹을 깜빡였다.
“흠칠 만한 물건은 없는데 얌전히 돌아가지 않을래?”
습격자들 중에서 검은 두건을 쓴 중년 사내가 눈매를 날카롭게 세웠 다.
활을 들고 있는 걸로 보아 방금 일격은 중년 사내의 공격이었던 둣 하다.
인원으로 보나 풍겨 나오는 기세로 보나 단순한 도적 떼는 아니었다. 도적 떼가 아니라면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을 터.
강현을 노리고 왔다면 커뮤니티 사 람일 거다.
하지만 강현의 정체가 알려진 적은
없을뿐더러 커뮤니티 사람이라면 세 이아나까지 공격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세이아나를 노리고 왔다 는 말이 된다.
카니발에서 지역장을 처리하고 싶 어 하는 무리는 하나뿐이다.
“혁명군이군.”
강현의 말에 상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두건 사내가 강현이 들고 있 는 푸른 비늘의 검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푸른 비늘의 검? 설마 고메즈를 물 먹였다던 소문의 루키더냐? 세이 아나와 함께 있다는 건 설마……
“섣부른 오해는 서로에게 좋지 않
지. 그쪽이 생각하는 전개는 일어나 지 않았어.”
“정황이 명백하거늘 어설픈 변명거 리를 늘어놓는구나. 니케가 네놈을 그리 동경했건만 정작 네놈은 커뮤 니티에 붙은 것이냐?”
“커뮤니티와 혁명군. 어느 쪽에도 붙을 생각 없어. 멋대로 배신자 취 급하지 마시지.”
두건 사내는 시위에 새로이 화살을 걸치며 말했다.
“헛소리에 귀를 기울일 성싶더냐. 어차피 둘 다 쓰러뜨리면 깔끔하게 끝날 일이다. 세이아나 지역장. 널 커뮤니티 추락의 신호탄으로 삼겠 다.”
세이아나는 익살스럽게 어깨를 으 쓱였다.
“다른 지역장을 노리지그래? 바쁜 몸이라서 귀찮은 일은 사양하고 싶 거든.”
“곧 미간을 뚫어 줄 터이니 변명은 그리로 하거라.”
“난 딱히 너희들이 사상놀음에 어 울릴 생각이 없을 뿐이야. 그러니까 괜히 다치지 말고 돌아가라 이거 지.”
“그게 얕잡아 보는 게 아니면 뭐란 말이냐.”
두건 사내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시위를 놓았다.
화살이 앞으로 날아드나 싶더니 별
안간 허공에서 사라졌다.
정확히는 허공에 팔각형의 유리판 이 생겨나면서 그리로 빨려 들어갔 다.
강현은 실드를 끌어올리며 루나의 옆으로 이동했다.
소란을 듣고 일어난 루나가 저 역 시 실드를 끌어올리며 레드 그리폰 스태프를 꺼냈다.
“오빠,내가 엄호할게. 걱정 말고 공격해.”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강현과 루나는 평소의 포메이션대 로 강현이 전방을,루나가 후방을 맡는 방식으로 싸우고자 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세이아나가 강현의 머리를 향해 스태프를 휘둘렀다.
세이아나의 스태프가 강현의 머리 위를 스쳤다.
어느샌가 강현이 머리 위에 팔각형 의 유리판이 생겨나선 화살이 쏘아 져 나오고 있었다.
세이아나의 스태프가 강현의 정수 리를 노리고 날아든 화살을 가볍게 쳐 냈다.
티잉!
무려 그랜드 애로우가 깃든 화살이 다.
바위쯤은 가볍게 뚫어 버릴 관통력 을 지니고 있다.
그걸 마나 한 점 깃들지 않은 스
태프로 쳐 냈다.
심지어 스태프를 휘두를 때 거의 힘을 들이지 않았다.
스태프 자체에 공격을 튕겨 내는 능력이 있다는 증거였다.
세이아나는 스태프를 가로로 세우 며 강현의 가슴을 가볍게 밀었다.
“내가 정리할 테니까 편히 있어.”
“혼자서 자신 있나?”
“후후,운 좋은 줄 알아. 모처럼 은발의 마녀가 싸우는 모습을 VIP 석에서 무료 관람할 기회라고.”
세이아나의 말이 들렸는지 두건 사 내가 얼굴을 구겼다.
그녀의 앞에 마나 마스터가 몇 명 이나 있는지 알기나 하는건가.
은발의 마녀란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 세이아나는 원거리 마법 스킬 을 주로 삼는다.
혼자 있는 마법사를 상대하는 방법 은 어렵지 않다.
맹공을 퍼부어 마법을 연사할 시간 을 주지 않으면 된다.
두건 사내는 정석대로 행동했다.
“내가 엄호하겠다! 모두 산개해서 세이아나를 쳐라!”
“우오오!”
두건 사내를 제외한 모든 혁명군 대원들이 넓게 퍼지면서 세이아나에 게 달려들었다.
모두가 마나 마스터급이기에 각자의 무기에 선명한 마나가 피어올랐다.
흡사 숲 속 가득 도깨비불이 일렁 거리는 듯하다.
두건 사내가 공격의 시작을 알리듯 재차 화살을 쏘았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수십 개로 분 열되더니 두건 사내 앞에 놓인 유리 판으로 들어갔다.
그와 더불어 세이아나의 몸 주변에 수십 개의 유리판이 생겨났다. 유리판마다 그랜드 애로우가 깃든 화살이 튀어나와서 세이아나에게 쇄 도했다.
혁명군 대원들은 화살이 날아가는 걸 확인한 후 스타트를 끊었다.
“방어를 위해서 마법을 쓸 거다! 이 틈에 거리를 좁혀라!”
“접근만 하면 마법을 제대로 쓰지 못해! 어떻게든 거리부터 좁혀!”
사방에서 그랜드 애로우가 날아드 니 한 번쯤은 방어를 위해 마법을 쓸 거다.
그리 판단하고 덤벼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완전히 오판이었 다.
세이아나는 방어는커녕 화살을 모 조리 몸으로 받아 냈다.
수많은 화살이 연이어 세이아나의 실드를 두드렸다.
투두두두둑!
한 발당 최소 공격 스텟 500 이상 의 위력이 담긴 그랜드 애로우다. 수십 발이 적중했으니 누적 데미지가 1만을 넘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드가 걷히기 는커녕 멀쩡하기만 했다.
두건 사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당혹 감으로 물들었다.
“이런 미친! 실드만으로 받아 냈다 고?”
세이아나로선 방어에 스킬을 할애 할 필요가 없으니 그 시간을 온전히 공격을 위해 쓸 수 있었다.
아직 혁명군은 세이아나와의 거리 를 좁히지 못한 상황이다.
세이아나는 허겁지겁 뛰어오는 자 들을 부드러이 훑어보며 주문을 영 창했다.
“씬더 크래쉬.”
스태프에서 쏟아져 나온 마나가 하 늘로 솟구치더니 허공에 먹구름을 생성했다.
먹구름은 마나를 머금을수록 크게 팽창하여 삽시간에 숲 일대를 뒤덮 었다.
세이아나는 스태프를 위로 번쩍 들 면서 방긋 웃어 보였다.
“조금 따끔할 거야.”
그녀가 스태프를 강하게 내리긋자 먹구름에서 수십 다발의 번개 줄기 가 떨어져 내렸다.
혁명군 대원들은 다급히 실드와 방 어 스킬을 사용했다.
번개의 위력은 일개 마나 마스터가 막아 내기에는 너무 강력했다.
처음에는 다들 조금씩 버티나 싶더 니 이내 곧 하나둘 실드나 방어 스 킬이 걷히면서 감전당하기 시작했 다.
파지지직! 쩌영!
“꾸르르르륵!”
“꺼어어어!”
섬광과 같은 불빛이 반짝일 때마다 혁명군 대원들이 하나둘 쓰러져 나 갔다.
이만한 광역기라면 보통 마나가 많 이 드는 게 아닐 거다.
그런데 어찌된 게 스태프에서 무한 정 마나가 솟아 나와 먹구름에 마나 를 공급하고 있다.
마나가 계속 공급되니까 스킬도 계
속 유지된다.
방어 능력이 뛰어나서 어찌어찌 버 티던 자들도 끝없이 떨어지는 번개 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결국 그랜드 마스터급이던 두건 사 내 외에는 모두 게거품을 문 채로 기절했다.
두건 사내도 몸 곳곳이 그을려선 꼴이 말이 아니었다.
두건 사내는 비틀거리다가 한쪽 무 릎을 털썩 꿇었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다니.”
세이아나는 식후 운동이라도 한 양 스태프로 어깨를 두드렸다.
“힘 조절은 했어. 다들 깨어나면 포션 먹여서 돌아가.”
“커뮤니티의 개 따위에게 동정을 받을 줄이야……
“엄연한 거래야. 나랑 최강현은 커 뮤니티와 혁명군의 힘 싸움에 관심 없어. 따로 목적이 있어서 함께 움 직이는 거니까 우릴 노리는 건 그만 두도록 해.”
“커뮤니티 지역장이면서 커뮤니티 와 관계없다고? 그 말 하나로 납득 할거라 생각하나?”
“정 의심되면 돌아가서 기다려 보 든가. 조만간 내가 지역장을 사퇴했 단 소문이 들릴걸?”
두건 사내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 다.
아무리 봐도 세이아나의 모습에서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 는다.
세이아나의 말이 사실대로라면 그 녀에게 적개심을 내뿜을 이유가 없 다.
지역장을 사퇴한다는 건 커뮤니티 를 등진다는 것.
적의 적은 동지라 하지 않던가.
지역장급의 인물이 커뮤니티를 등 지는 건 혁명군으로서도 환영할 만 한 일이다.
고로 더 이상 세이아나를 노릴 이 유가 없다.
더불어 강현에겐 미안한 짓을 하게 되었다.
완전히 생사람 잡으려고 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두건 사내는 고개를 떨구며 자괴감 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짓을 해 버린 건가.”
“적어도 지역장을 건드리기는 건 시기상조라는 걸 알았잖아?”
“나로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사과할 필요 없어. 오해가 맞물렸 을 뿐이지. 이럴 땐 그냥 납득했다 고 하고 물러나는 게 남자다운 거 아니겠어?”
“빚으로 남겨 두겠네.”
“후후,깔끔해서 좋네. 혁명군 대장 다워.”
“내,내 정체를 알고 있었나?”
“돌아가면 내부 정리 한번 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너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밀정을 많이 심어 뒀거드 ”
세이아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몸 을 돌렸다.
“잠자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놨으니 여기서 자긴 글렀네. 최강현,어떻게 할래?”
강현은 물어볼 것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날밤 새고 침대에서 자는 것도 나 쁘진 않겠지.”
그리하여 강현과 세이아나는 각자 소환수를 꺼내서 다음 쉘터로 향했 다.
강현 일행이 떠난 후.
두건 사내,아니 줄리안은 기절한 대원 사이에서 홀로 우두커니 서 있 게 되었다.
“천장에 손이 닿은 것 정도로 하늘 에 닿았다고 착각한 꼴이구나.”
줄리안으로선 깨달은 바가 많았다. 최근 몇몇 지부에서 혁명군 활동이 성공을 거두었기에 지역장과의 격차 가 줄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강현이 고메즈를 물 먹임으 로서 약간 지역장을 깔보는 경향도 있었고 말이다.
저희들이 강해지는 동안 지역장의 수준도 올라간다는 걸 생각지 않았다.
상향평준화는 늘상 존재하는 일임 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혁명군의 의식을 밑바탕부터 개선 하지 않으면 커뮤니티에 대적할 수 없다.
새로운 다짐 속에서 내부 개혁부터 시행하자고 마음먹은 찰나.
줄리안은 별안간 시야가 기우는 걸 느꼈다.
“왜……. 땅이 일어서는 거……
풀썩!
떨어지는 줄리안의 머리 뒤로 핏방 울 맺힌 검 한 자루가 늘어졌다.
언제부턴가 줄리안의 뒤에 혁명군 대원들이 일어서 있는 게 아닌가.
대원들 중 한 명이 줄리안의 머리 를 밟으며 비웃음을 흘렸다.
“킥킥,의외의 수확을 얻었군.”
그들은 커뮤니티에서 심어 놓은 밀 정으로,여차할 때 세이아나 암살 계획을 저지하기 위하여 작전에 참 가했던 것이었다.
여전히 혁명군의 힘으로는 지역장 을 치지 못한다는 걸 알곤 얌전히 기절한 척을 한 거였다.
그런데 잠자코 듣고 있다 보니 세 이아나가 커뮤니티를 배신한다고 하 질 않는가.
그것도 커뮤니티 블랙리스트에 오 른 최강현과 손을 잡고 말이다.
이런 특급정보를 알아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야 있겠는가.
상대가 세이아나와 최강현인 만큼 경거망동할 순 없다.
어설프게 지부장 따위에게 알리면 되려 두 사람이 행선지를 바꿔서 몸 을 감출지도 모른다.
차라리 고메즈 지역장에게 가서 알 리는 게 나았다.
밀정들은 고메즈에게 날릴 종이 전 서구를 작성하다가 잠깐 멈칫했다.
“잘 보니까 아주 재미있는 상황이 군.”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랐나 보지?”
“혁명군과 최강현. 둘이 반목하면 재미있지 않겠어?”
“크크크,그거 좋군.”
밀정들은 서로 쉴 새 없이 키득거 리더니 검을 빼내 들었다. 그러곤 기괴하기 짝이 없는 행위를 벌였다.
기절한 혁명군들의 목을 모조리 베 기 시작한 것이다.
작업을 마친 밀정들은 고메즈에게 종이 전서구를 날린 후 이동에 나섰 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다름 아닌 혁명군 아지트였다.
더불어 밀정들의 손에는 보자기에 싸인 줄리안의 수급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