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카니발 차이나타운에 들어선 강현 은 곧장 시내로 향했다.
쉘터 내의 건물은 그리 특별할 게 없었다.
주거건물은 다른 쉘터와 똑같은 4,
5층짜리 다세대 주택이 많았고,상 점가만 중화풍으로 꾸며져 있었다. 거리를 중심으로 좌우로 늘어선 건 물은 처마끼리 줄을 이어 붉은 등을 달아 놓았고,가게마다 입구에 걸어 놓은 발 사이로 다양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만두나 소면은 기본이고 팔각이나 고수 등의 향신료를 쓴 각종 고기 요리,다양한 꼬치구이 등이 즐비했 다.
루나는 신세계에 들어선 양 신기해 했다.
“오빠,저 집은 왜 뱀 같은 걸 문 앞에 걸어 둔 거야?”
“뱀이 아니라 용이야. 귀신 쫓는 부적 같은 거지.”
“어라? 저 아저씨들은 입으로 파이 어볼을 내뿜네.”
“곡예단이군.”
“저? 기 멀리 있는 아줌마 치마 양 쪽이 찢어졌어. 옷 꿰멜 돈이 없었 나 봐.”
“치파오인가. 녀석에게 어울릴지 도.”
“녀석?”
“그런 게 있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릴 적 인천에서 보았던 차이나타 운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거리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카니발의 쉘터들은 효 율을 중시한다.
향신료라고 해 봤자 설탕이나 후 추,고춧가루 정도만 기르는 게 기 본이다.
기르는 가축도 돼지와 소, 닭 정도 에서 그친다.
그런데 이곳 카니발 차이나타운은 대다수의 중국 요리를 만들 수 있는 향신료와 재료가 생산되고 있는 듯하다.
이유를 알아내는 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가지를 걷던 중 어느 가게를 지 나지는데 가게 안에 온통 고양이뿐 이었다.
고양이 카페나 애완동물 가게려니 싶었는데 그런 것치곤 손님이 굉장 히 많았다.
“아저씨,소금 한 마리 분량이랑 계피 반 마리 분량 주세요.”
“여긴 후추 반 마리 분량이랑 설탕 두 마리 분량. 얼른 주게. 갑자기 관문이 개방돼서 손님이 엄청 들어 오고 있네.”
주문을 받은 가게 주인이 켓타워
위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들을 테이 블 위로 옮겼다.
고양이의 목줄마다 조그마한 이름 표가 달려 있었는데 각각 소금,설 탕,후추 등의 글자가 적혀 있었다. 가게 주인은 빗을 들어 고양이의 털을 쓸어 주었다.
신기하게도 빛에 고양이털이 한가 득 묻어났다.
더불어 빠진 고양이털은 금방 다시 자라났다.
빗에 묻어난 고양이털은 모두 맷돌 구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가게 주인이 맷돌을 돌리자 돌 사 이에서 향신료 가루가 새어 나왔다. 실제로 향신료 열매를 가루로 만드는 것과 동일한 방법이었다.
곡예단이나 치파오 차림의 미녀 같 은 건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강현은 가게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며 간판을 확인했다.
[향신료 고양이 가게 : 향? 신냐!]
가게 이름이야 둘째치고 향신료 고 양이라는 문구에 눈이 갔다. 아무래도 향신료 고양이라는 소환 수가 있나 보다.
털이 향신료의 원료와 똑같은 성질 을 가지고 있어서 그 털을 가루로 만들어 향신료로 쓰고 있는 것 같다.
루나도 신기한 나머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고양이를 보고 있었다.
특히 설탕이란 명패를 달고 있는 하얀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 다.
강현은 루나의 로브 후드 위에 손 을 올리며 그녀의 머리를 북북 쓰다 듬었다.
“하얀 가루에 손을 대려 하다니 못 된 아가씨군.”
“설탕 고양이 갖고 싶다.”
“안 돼. 이미 고양이 한 마리 키우 고 있잖아.”
“그럼 라이한테도 저런 털 자라나 게 만들자!”
“설탕은 무리라도 괴롭혀서 울리면
소금 정도는 만들 수 있겠군.”
“……오빠 못됐어.”
“네가 먼저 꺼낸 이야기야.”
강현과 루나는 느긋함이 묻어나는 대화를 나누면서 향신료 가게를 지 나쳤다.
슬슬 정보를 모을 생각이다.
정보를 모으기 좋은 장소라면 여관 식당이나 술집을 꼽을 수 있다. 어차피 식량 보급도 할 겸 하루는 묵어야 하니 여관부터 잡는 게 나아 보인다.
강현은 루나를 데리고 묵을 곳을 알아보았다.
쉘터에 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왔기에 어딜 가든 여행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 다.
발품을 판 결과,값싸면서도 사람 들이 많이 묵고 있는 여관을 잡을 수 있었다.
강현과 루나는 배정 받은 방에 짐 을 풀고 여관 식당으로 내려갔다. 북적거리는 식당 사이에서 비어 있 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식사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기본 적으로 만두 정식과 볶음밥 정식이 있습니다.”
“만두 정식 1인분. 그리고 디저트 중에서 제일 달콤한 음식 1개.”
“네,알겠습니다. 음료는 무엇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물 ”
“주문 받았습니다. 만두 정식 1인 분에 팥경단 1세트로 괜찮으신지 요?”
“그래.”
종업원이 주방에 주문을 전달하러 갔다.
사람이 많으니까 음식이 나올 때까 지 꽤 시간이 걸릴 거다.
강현은 막간을 이용해 주변의 대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곳곳에서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뒤 죽박죽 섞여서 들려왔다.
“불칸에서 전설급 웨이브 보석이 나왔다며?”
“또 하이웨이브가 시작되겠구만. 당분간 쉘터 죽돌이 생활이나 해야 겠어.”
“관문 검문 말인데 그거 별로 의미 없지 않아? 수배당한 놈이 어슬링거 리면서 월터 안으로 들어오겠냐고.”
“모르지. 여긴 암시장이 활성화되 어 있잖아. 여기라면 숨을 곳은 많 아.”
“얼마 전 일로 이곳 쉘터 소속 조 직원들 숫자가 줄었다더라고. 아마 급하게 공채를 열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왔는데 말이지. 암시장에 가면 좋은 소식 좀 들을 수 있으려나.”
“밥 먹고 암시장에나 가자고. 얼른 경매 등록 안 해 놓으면 대기열 밀려서 한참 기다려야 해.”
겉으로 드러난 시가지보다 암시장 쪽이 더 규모가 큰 건가.
식사를 마치고 들러 봐야겠군. 갖가지 정보가 홀러드는 것 같으니 아주 수확이 없진 않겠지.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동 안 종업원이 다가왔다.
종업원이 들고 있는 쟁반 위에는 음식이 한가득 있었다.
앞서 주문한 만두 정식과 디저트 외에도 면 요리와 고기 요리,대나 무통에 담긴 술까지 담겨 있었다. 종업원은 아무런 위화감 없이 음식 을 차례차례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가만 보고 있던 강현이
입을 열었다.
“만두 정식과 디저트만 시켰어.”
“네? 하지만 주문서에는……
“내가 시켰어. 너희 것까지 전부
계산했으니까 같이 먹자고.”
어느샌가 옆자리에 고깔모자를 쓴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나이는 서른 초중반쯤?
백짓장같이 하얀 피부에 갈색 눈동 자,열은 분홍빛 입술을 지닌 여성 이었다. 특징이 있다면 머리카락이 은발인데다 앞머리를 한쪽으로 길게 내어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다는 점 이었다.
강현은 날을 세우며 생면부지의 여 성을 경계했다.
“거절하지. 모르는 사람이 사 주는 밥은 소화가 안 돼서 말이야.”
“그쪽은 날 몰라도 난 그쪽을 아주 잘 알고 있지.”
“사람 잘못 본 것 같군.”
여성은 얼굴을 가까이 대더니 강현 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아니,제대로 본 거 맞아,네가 히든 시스템을 이어받은 아이지?”
강현의 이름을 댄 게 아니라 히든 시스템을 거론했다.
카니발 대륙 내에서 강현 외에 히 든 시스템을 알고 있는 자는 한 명 밖에 없다.
강현은 마나를 끌어올리려다 멈췄 다.
“혹시 세이아나?”
“정답?.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돼?”
“최강현.”
“아? 얼마 전에 고메즈를 물 먹였 다던 그 사람이구나. 녀석의 숨통을 끊었으면 더 완벽했을 텐데 아쉽 네.”
“나름대로 계산해서 한 행동이야. 그보다 어떻게 날 알아봤지?”
세이아나는 턱을 괴며 피식 웃더니 루나를 가리켰다.
“루나 말인데 누구랑 닮았다고 생 각하지 않아?”
그러고 보니 루나와 똑같은 은발에 인상 또한 비슷했다.
루나가 나이가 들면 꼭 세이아나처 럼 될 것 같았다.
강현은 경단을 오물거리느라 바쁜 루나를 봤다가 다시금 세이아나를 보았다.
“그쪽과 닮았군.”
“루나는 내 피를 매개체로 만든 사 역마야. 그러니까 찾는 것도 어렵지 않지.”
세이아나가 아공간 목걸이에서 수 정구슬 하나를 꺼냈다.
수정구슬 안은 두 개의 영상이 비 치고 있었는데 하나는 루나의 모습, 또 하나는 세이아나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말하길 찾고자 하는 대상의 피를 먹이면 대상의 모습을 비춰 주는 보구라고 한다.
루나는 세이아나의 분신과 다름없 으니 세이아나의 피만으로도 루나를 찾을 수 있는 거였다.
세이아나는 수정구슬을 아공간 목 걸이에 도로 넣으며 죽엽청주를 잔 에 따랐다.
“너희들 꽤 재밌게 지내던데?”
“보구를 통해서 계속 지켜본 건 가?”
“히든 시스템 계승자가 어떤 사람 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되 먹지도 못한 녀석에게 초월의 서를 넘길 순 없잖아?”
“그게 4차 각성을 해 줄 스킬북의 이름인가 보지?”
“맞아. 게다가 막돼먹은 녀석이었 으면 바로 루나의 양육권을 뺏었을 거야.”
“이혼남 취급은 썩 달갑지 않군.”
“흐음,옷걸이는 나쁘지 않은데 날 이 서 있는 게 문제네. 조금만 유들 유들했으면 귀여워해 줬을 텐데.”
완전히 강현을 연하남 취급하고 있 었다.
실제로 연상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 만 그녀의 성격 자체가 능글맞은 것 도 한몫하는 것 같았다.
강현은 만두를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의외군.”
“뭐가?”
“성격 말이야. 히든방에 있던 네 사념체는 징징거리기 바빴었지. 본 인도 똑같을 거라 생각했었어.”
“그땐 그런 성격이었거든. 누구나 어린 시절은 존재하는 법이잖아?”
“하긴 흑역사도 역사라고들 하니 까.”
“후후후,접이 느껴져서 더 어른스 럽게 보이지?”
보통은 강현의 가시 돋친 말투에 자멸하거나 섭섭해하기 일쑤다.
허나 세이아나는 관록을 드러내며 부드럽게 받아넘기고 있었다.
잡담은 이만하면 됐다.
강현은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고자 했다.
“초월의 서를 넘겨.”
“넘기라고 해도 말이지. 지금 내 손에는 없거든.”
“무슨 의미야?”
“계승자가 나타나기도 전에 내가 죽어 버리면 곤란하잖아. 만약을 대 비해서 이미 히든 시스템에 포함시 켜 놨어.”
“비밀방에서만 얻을 수 있게 해 놨 다는 거군.”
“응. 그것도 전설급 이상의 웨이브 보석에서만 나오게 해 놨지. 어차피 신화급 웨이브 입장권을 얻으려면 전설급 웨이브를 공략해야 해. 겸사 겸사 얻으러 가자고.”
세이아나의 말대로라면 전설급 웨
이브를 공략하러 가야 된다는 말이 된다.
아까 불칸에서 전설급 웨이브가 발 생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다음 행선지는 불칸이란 곳인가.
또 먼 길을 가야 하는군.
생각에 잠겨 있던 강현은 문득 세 이아나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 다.
“얻으러 가자고…… 라고 했었나? 설마 같이 가자는 뜻은 아니겠지?”
“응. 같이 가려고 이렇게 직접 찾 아왔잖아. 너 혼자선 무리야.”
“내가 가라앉는 배에서 짐짝부터 버리는 사람이란 건 알고 있을 텐 데?”
“후후,누나를 너무 무시하면 못써 요.”
강현과 세이아나가 말을 멈추고 서 로를 바라보았다.
서로 기싸움에서 한 치도 밀리지 않으려고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 다.
그때 였다.
갑자기 여관 식당 입구 부근이 술 렁거리기 시작했다.
여관 안으로 커뮤니티 배지를 단 자들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곧장 강현이 있는 테이블 로 와선 걸음을 멈췄다.
아무리 봐도 내게 용건이 있는 것
같군.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세이아나뿐이다.
설마 그녀가 커뮤니티에 연락을 넣 은 건가?
하지만 여태까지의 대화 중에서 노 이즈가 섞인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강현은 만약을 대비하여 빙백검 손 잡이에 손을 올렸다.
막상 커뮤니티 조직원들은 강현이 아닌 세이아나에게 볼일이 있는 듯 그녀에게 정중히 예를 갖췄다.
“세이아나 지역장님. 방문하셨으면 언질이라도 주시지 그랬습니까. 이 런 누추한 곳에 있지 마시고 지부로 가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