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대량의 눈이 새하얀 눈가루를 뭉게 뭉게 피워 올리며 몰려온다. 누군가가 눈사태를 두고 산에서 태 어나는 대식가라 했었다.
정말이지 동감이다.
눈더미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면서 점점 더 몸집을 불려 나갔고 빠른 속도로 산 아래를 향해 다가왔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강현은 얼른 좌우를 둘러보았다.
주변은 경사진 숲 속이었다.
‘해저동굴을 산까지 끌어당겨서 여 기다 출구를 만들었군. 시간이 별로 없어. 얼른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해.’ 눈사태에도 쓸려가지 않을 커다랗 고 무거운 엄폐물이 필요하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바 위가 있었다.
바위의 절반 이상이 지면에 단단히 박혀 있었기에 엄폐물로 삼기에는 충분할 것 같았다.
강현은 빙백검을 휘둘러 바위 앞쪽 에 마나폭검을 날렸다. 동시에 루나 에게 손짓을 하며 달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마나폭검을 날린 곳까지 달려.”
먼저 마나폭검의 파편이 날아가선 바위 앞쪽에서 작렬했다.
과과광!
바위 앞쪽에 눈구덩이가 비스듬하 게 파였다.
구덩이를 향해 뛰려고 발을 내딛은 찰나.
바닥에 쌓인 눈밭에 발이 쑤욱 빠 져 들어갔다.
“윽,많이도 쌓였군.”
하도 눈이 많이 쌓여 있는 탓에 무릎까지 푹푹 박혔다.
뒤따라오던 루나는 아예 허리까지 움푹 빠져든 상태였다.
강현은 루나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 어서 쑤욱 빼내 들었다. 그러곤 눈 밭 위에 소환석을 던져서 라이를 소 환했다.
“라이,날 저기 눈구멍까지 옮겨.”
“크릉
라이가 강현의 허리를 가볍게 물곤 제자리에서 높이 뛰어올랐다.
서전트 점프가 어찌나 높은지 단박 에 눈구멍 앞까지 도달했다.
강현은 루나와 함께 눈구멍 안에 들어가며 재차 라이에게 명령을 내 렸다.
“몸으로 입구를 막아.”
바위를 1차 저지선으로 삼고,눈구 멍을 에어포켓으로 두기 위함이었 다.
이미 라이는 입구 앞에 웅크려 앉 아 있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양 자신의 역 할에 익숙해져 있는 라이였다.
이윽고 눈사태가 강현이 있는 장소 를 덮쳤다.
에어포켓 안이 삽시간에 짙은 어둠 으로 가득 찼다.
눈더미가 바위를 두드림과 동시에 머리 위로 차곡차곡 쌓여 가는 게 느껴졌다.
tz iz tz r= I
一!~I~I~T!
중량감 가득한 소리가 사방에서 양 쪽 귀를 때렸다.
루나는 양쪽 귀를 손으로 포옥 감 싸며 강현의 옆구리에 파고들었다. 반면 강현은 쭈그려 앉은 채로 심 호흡을 반복했다.
사람이 갑자기 눈에 매몰되면 물리 적,정신적 압박감 때문에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가 올 수도 있다.
에어포켓은 충분히 깊이 파 놓았 다.
이 정도 깊이라면 무너져 내릴 일 은 없을 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강하게 들려 오던 소리가 멎었다.
강현은 허리띠 뒤편을 더듬어 수통 을 꺼냈다.
수통을 입에 대니 삽시간에 바짝 마른 입술 사이사이로 수분이 스며 들었다.
“이만하면 나가도 되겠지.”
눈사태의 규모로 짐작컨대 아마 몇 미터를 뚫고 올라가야 할 거다.
쌓이고 쌓인 눈의 무게감은 군 생 활 때 이미 질리도록 경험해 봤다.
2차 매몰의 가능성도 무시할 순 없으니 조심스럽게 출구를 뚫어야 한다.
몸을 일으킬 수조차 없이 좁은 에 어포켓 안.
강현은 빙백검에 그랜드 소드를 부 여하여 출구를 파내기 시작했다. 출구는 동그랗게,비스듬한 방향으 로 파냈다.
그랜드 소드가 부여된 빙백검은 굳 게 뭉친 눈을 거침없이 걷어 내었 다.
한참 동안 구멍을 파내다 보니 어 느덧 눈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이제부턴 손으로 걷어 내는 게 빠 르겠어.’
로브 소매를 길게 빼내어 손을 감 싼 후 눈을 밀어냈다.
그러자 남은 눈이 바깥으로 밀려나 면서 출구가 뚫렸다.
강현과 루나는 출구를 통해 바깥으 로 나왔다.
눈사태가 지나간 자리는 지반을 모 조리 뒤덮은 양 온통 눈밭이었다. 허나 잠깐 숨 돌릴 틈조차 없었다. 산등성이 너머에서 다수의 병사가 다가오고 있었기에.
강현은 잔잔하게 쏟아져 내리는 함 박눈 사이로 다가오는 병사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사람? 아니,몬스터인가. 왠지 눈 에 익은 모습인데 말이지.”
병사들은 전원 돌로 이루어진 자들 이었다.
숫자는 얼추 200명쯤 될까. 석상마냥 돌로 이루어진 몸에 동물 의 머리를 가진 자들이었다.
대부분이 늑대의 머리를 가진 자, 곰의 머리를 가진 자였고,그사이에 호랑이의 머리를 가진 자 한 명이 섞여 있는 형태였다.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
오래전,강현이 각성의 서를 얻었 던 크라이머 던전의 보스방 몬스터 들이 아닌가.
곰 머리 석상과 늑대 머리 석상은 반사 능력을 가지고 있던 걸로 기억 한다.
두 몬스터를 모두 다 처리해야 호 랑이 머리 석상을 공격할 수 있고 말이다.
예전 같았으면 몬스터의 특성에 맞 춰서 주의를 기울이며 공격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관통 스렛의 효과가 있으니까.
관통 스텟의 성능을 시험해 볼 좋 은 기회였다.
실드는 물론이고,반사 실드와 공 격무효화 능력까지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이다.
관통 스렛의 효과 앞에선 석상 낭
인이든,석상 응인이든,석상 호걸이 든 전부 동물농장이나 다름없다. 강현은 빙백검에 그랜드 오러를 덧 씌우며 그랜드 소드를 만들어 냈다.
“루나,연구소 위치는 어디 있어?”
“여기 산등성이만 넘으면 돼.”
“석상 군단만 넘으면 된다 이거 군.”
석상 몬스터들은 오와 열을 맞춰서 내려왔다.
얼핏 보면 시황릉에 묻혀 있던 석 상 유적을 보는 듯하다.
강현은 루나에게 엄호를 맡기며 석 상 군단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갔다. 서로 거리가 좁혀지던 중,별안간 석상 호걸이 입을 열었다.
“스킬,보구 능력 봉인.”
봉인 스킬을 쓴 것이었다.
석상 호걸에게 봉인 스킬이 있었 나?
내게 시선을 꽂은 채로 스킬을 발 동했었다.
시선을 통해 상대의 스킬과 보구 능력을 봉인하는 스킬인 듯하다. 더불어 석상 낭인과 석상 응인들도 전원 무기를 뽑아 들었다.
원래는 창을 쓰던 몬스터다.
그런데 지금은 각자 검을 꺼내 들 고 있었다.
심지어 강현과 똑같은 무기인 빙백 검이었다.
그들의 빙백검에 하나같이 마나 블
레이드가 부여되며 강력한 냉기가 풍겨 나왔다.
200마리에 달하는 석상 낭인,석상 응인이 일제히 빙백검을 드니 그 냉 기로 인해 주변의 온도가 더욱 내려 갔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혀 온다.
스킬도,보구 능력도 봉인된 마당 이니 쓸 수 있는 거라곤 스렛 효과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현은 위기감 보단 의문이 앞섰다.
‘가이아 대륙에서도 빙백검은 내가 얻은 게 전부였어. 그마저도 주운 거였지.’
빙백검 정도 되는 전리품을 수백 자루나 모은다는 건 쉽지 않다. 게다가 굳이 모은다 하더라도 빙백 검만 모으는 건 비효율적이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뿐이 다.
어떤 보구를 통해서 복제해 낸 보 구라는 뜻이다.
그것 외에는 빙백검이 이리 많은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혹시 내가 주운 빙백검도 현자란 자가 일부러 놔둔 게 아닐까?
내가 갇혔던 크라이머 던전에서 각 성의 서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비밀 방에 숨겨져 있었다.
현자가 히든 시스템을 이어 받을
자를 골라내기 위해 만든 던전이라 면 모든 게 설명된다.
‘대강 현자의 윤곽이 보이는군. 하 지만 어째서지? 뭐 고민할 것도 없 나. 이 녀석들만 뚫으면 바로 연구 소이니.’
강현은 빙백검을 늘어뜨리며 가장 앞서 있던 석상 웅인을 가격했다. 한데 응인이 그에 맞서 손목을 비 틀더니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강현 의 빙백검을 막아 냈다.
채앵!
가속하기 전에 상대의 검을 막는 검술.
빌로스 제국의 5대 검술 중 하나 다.
몬스터에게 검술을 주입시켜 놓은 건가.
어이,현자 양반. 당신의 사유지를 지키고 싶은 건 알겠는데 이래서야 우체부도 못 들어오겠어.
강현은 상체를 뒤로 젖히며 응인의 검을 끌어당긴 후 한순간에 허리를 비틀어 힘을 더했다.
일부러 몸을 뒤로 젖힌 덕에 없던 비거리가 생기면서 검에 힘이 들어 갔다.
내가 상대라면 이 검법을 어떻게 상대할까 싶어 궁리한 끝에 만들어 진 대응책이었다.
더불어 강현의 검에는 그랜드 소드 가 부여되어 있다.
마나 블레이드와는 강도부터가 다 르다.
강현의 그랜드 소드가 마나 블레어 드를 단박에 걷어 내며 빙백검마저 잘라 냈다.
동시에 여전히 강대한 힘을 간직한 채로 석상 응인마저 베어 냈다.
쩌저적!
석상 응인이 풍비박산나면서 그 파 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잘게 쪼개진 돌 조각들 사이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마나 블레어 드가 날아들었다.
강현은 크게 뒤로 물러나며 루나를 향해 외쳤다.
“루나! 윈드 스톰!”
“어! 응! 윈드 스톰!”
루나가 마나를 끌어올려 윈드 스톰 을 전개했다.
석상 몬스터 사이에 작은 돌풍이 생겨나면서 바람의 칼날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석상 응인은 마나 공격을 반사하 고,석상 낭인은 일반 공격을 반사 한다.
바람의 칼날에 적중당한 석상 응인 은 반사 데미지를 방출했고,석상 낭인은 몸 표면에 흠집이 갔다. 캬드드드득!
쇠톱으로 비장탄 긁는 듯한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며 귀를 어지럽 혔다.
한편 데미지나 입히자고 시전한 윈 드 스톰이 아니다.
강현이 노리는 건 어디까지나 석상 몬스터들의 발을 묶는 것이었다. 석상 응인들이 방출한 반사 데미지 는 석상 낭인들을 가격했다.
그로 인해 석상 낭인들의 움직임이 멎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쪽은 쉐도우 리퍼의 외갑 때문에 반사 데미지를 받지 않으니 자유롭 게 움직일 수 있고 말이다.
강현은 석상 낭인들 틈 속으로 파 고들어 빙백검을 짧게 그었다.
쩌저적! 쩌적!
상하좌우사선 가릴 것 없이 짧은 검격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그랜드 소드가 일으킨 잔상은 황금 빛 물결이 되어 허공을 수놓았다. 처음에는 잔잔한 물결이었던 것이, 검무가 빨라지면서 점점 파도처럼 거친 물결이 되었다.
한 번 터진 둑을 어찌 막으리.
석상 낭인 사이를 누비며 하나를 베나 싶으면 반 바퀴 돌아 둘을 베 고,둘을 베나 싶으면 한 바퀴 돌아 셋을 베었다.
잔상이 채 없어지기도 전에 황금빛 잔상이 내려앉으니 마치 오로라의 끝자락이 땅에 이른 듯하다.
루나는 강현의 신들린 검무에 넋이 나갔다.
“와아?.”
감탄만 하고 있던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콧김을 강하게 내 뿜었다.
“보고만 있을 때가 아냐. 나도 힘 내서 엄호해야 해!”
레드 그리폰 스태프 덕분에 공격 스렛이 상승된 참이다.
루나는 윈드 스톰을 다수 소환하여 석상 몬스터들을 헤집어 놓았다. 어느덧 그 많던 석상 낭인이 죄다 베여 나가면서 석상 몬스터의 숫자 가 절반으로 줄었다.
석상 웅인과 그들 너머에서 줄곧 가만히 서 있는 석상 호걸만 남게 되었다.
그들 또한 관통 스텟의 효과를 이
용하면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을 거다.
강현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리필 스 렛의 효과를 발동했다.
‘그랜드 소드라 그런지 마나 소모 량이 장난 아니군. 위력은 좋은데 연비는 별로란 말이지.’
정제마나 스텟 덕에 마나 스텟의 효율이 2배로 올랐다지만 공격 스텟 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다.
이번 전투만 끝나면 레벨이 제법 올라 있을 테니 정제마나 스텟도 2 차 각성을 시켜 둬야겠다.
강현은 남은 석상 몬스터들을 제거 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려 했다. 그런데 석상 호걸이 발을 강하게 구르더니 검을 높이 들었다.
“쿠워어어어!”
부하 석상들이 일정 이상 데미지를 입으면 발동하는 패턴.
마나폭검이 었다.
석상 호걸의 검에 맺힌 마나 블레 이드가 부서지면서 마나 파편이 사 방으로 비산했다.
파파파팟!
강현은 얼른 아래로 몸을 날려 루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등 뒤에서 마나 파편이 홉수 실드 에 부딪치는 것이 느껴진다. 강현이야 실드로 막아 내고 있다지 만 석상 응인들은 우두머리의 공격 을 버티지 못하고 바스라졌다.
마나폭검의 효과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산 능선 전역에 마나폭검이 작렬하 면서 위태위태하게 쌓여 있던 눈들 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로 인해 산 위에서부터 2차 눈 사태가 발생했다.
쿠구구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