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사이런스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푸른 검에 최강현과 똑닮은 인상.
눈 씻고 다시 봐도 최강현 본인이 었다.
최강현이 왜 여기 있지?
녀석을 마중 나가러 간다는 말 자 체가 거짓 정보 아녔나?
설마 정말로 마중 나오는 거였고 우리가 멋대로 거짓말이라고 착각한 건가!
김혜림이 강현을 얼마나 생각하는 지 감안하면 직접 마중 나온 것도 이상하지 않다.
사이런스의 의문에 확신을 더해 주
듯 김혜림이 활을 늘어뜨리며 자신 만만하게 한 마디 던졌다.
“근접전이 더 지옥일 텐데요?”
가까이 오면 강현이 직접 상대해 줄 거란 뜻이잖은가.
철갑기마대 기사들은 투구 아래로 식은땀을 흘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 했다.
“사,사, 사이런스 단장님. 최강현 이 있다는 말을 못 들었습니다.”
“나라고 정말 최강현이 있는 줄 알 았겠느냐?”
“지,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덤벼야 합니까,후퇴해야 합니까?”
지금 가진 병력만으로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임무?
지금 임무 따윌 생각할 여유가 있 다고 생각하는가.
최강현이 돌아왔다는 게 확인된 순 간 임무는 변경되었다.
김혜림 생포에서, 최강현으로부터 생존하는 걸로.
기회가 있다면 김혜림이 방심하여 활을 내린 지금밖에 없었다.
사이런스는 실드를 한껏 끌어올리 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에 나섰 다.
“보,복귀! 전원 몽발리 전선으로 복귀해라! 수단과 방법은 묻지 않겠 다! 살아서 몽발리까지 도착해라!”
사이런스를 필두로 철갑기마대 기사들이 꽁지 빠져라 도망가기 시작 했다.
김혜림은 그들을 쫓는 양 활 겨누 는 시늉을 하다가 활을 내렸다.
“정말이지,없어도 치명적인 남자 네요.”
사이런스 일당이 사라진 걸 확인한 김혜림은 절벽 위로 올라갔다.
절벽 위에는 정말 강현과 똑같은 사람이 서 있다.
사실 사이런스가 본 건 강현이 아 니다.
강현을 본떠 만든 더미일 뿐.
빙백검으로 보이는 검 또한 나무를 깎아 푸른 칠을 해 놓은 목검에 불 과했다.
그래도 멀리서 보기에는 영락없이 강현으로 착각할 만큼 똑같이 생기 긴 했다.
김혜림은 바위에 앉으며 턱을 괴었 다. 그러곤 강현의 등신대 모형을 지그시 감상하며 중얼거렸다.
“참 잘 만들었단 말이지.”
등신대 모형을 남긴 이유는 뻔하 다.
석 달 전만 하더라도 강현은 황궁 의회의 중상모략을 이용하기 위해 쉬프섬으로 떠났다.
황궁의회와 결탁한 두 공작이 마나 마스터를 파견하리란 건 조금만 생 각해도 알 수 있다.
두 공작파의 마나 마스터를 베면
강현의 위상은 더욱 올라갈 것이고, 두 공작파의 세력 내에선 점점 더 강현을 두려워하게 될 게 뻔했다.
한 번 공포심을 느낀 상대를 제압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하지 않는가.
실제로 사이런스는 강현의 모형만 보고도 깜짝 놀라 부리나케 도망갔 다.
몽발리로 돌아간 사이런스는 드리 안 공작에게 강현이 나타났다고 보 고할 것이다.
이는 곧 소문이 되어 널리 퍼져 나갈 것이며 두 공작파는 분을 곱씹 으며 전선을 뒤로 물릴 거다.
뒤로 물러나는 공작파 병력에게 얼 마나 피해를 줄 수 있을지는 황제파 의 장군들에게 달렸다.
김혜림은 이대로 크레인 공국까지 갈 생각이었다.
“무슨 일이길래 세 달이 넘도록 감 감무소식인 걸까?”
강현이 이만큼 오래 걸리고 있다면 보통 일이 아닐 터.
크레인 공국에서 손을 쓴 건 아닌 것 같고 필시 무언가가 있을 거다. 석 달이면 오래 참았다.
여태껏 찾으러 나가고 싶은 걸 얼 마나 참았던가.
김혜림은 천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쪽지를 소중히 펼쳐 보았다.
쪽지에는 강현의 필체가 남아 있었 다.
[날 떠올리면서 물건을 꺼내도록 해.]
강현의 모습을 본 떠 만든 더미이 니 강현을 떠올리면서 꺼내는 게 당 연하다.
강현은 물건 꺼내는 방법을 알려 주려고 적은 내용이겠지만 말투가 매우 달달하다.
그래서인지 볼 때마다 기분이 좋 다.
김혜림은 쪽지를 고이 접어 주머니 에 넣곤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걷던 그녀가 얼른 되돌아 와선 강현의 등신대 더미를 챙겼다.
“아차차,이걸 깜빡할 뻔했네. 귀중 한 거니까 소장해야지.”
*
노스 아일랜드를 앞두고 강현은 고 민에 빠졌다.
‘바다를 건널 방법이 필요한데 어 찐다……
현재 서 있는 해안가에서 노스 아 일랜드까지 최소한 수십 킬로미터는 될 듯하다.
하지만 주변에 쉘터는커녕 사람 그 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야 배는 고사하고 널빤지 한 조각조차 구하기 힘들 것 같다.
루나도 로브 안으로 손을 넣어 머 리를 긁적거리며 고민하고 있었다.
“우응,분명 현자님이 가끔씩 바다 를 건너곤 했었는데 어떻게 건녔더 라?”
“배를 타고 건녔었어?”
“배 멀미 있다고 배 안 랐었어. 더 좋은 방법이었는데 너무 오래돼서 떠오를랑 말랑……
오랫동안 비밀방에 갇혀 있었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도 하다.
배가 없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물을 얼려서
강을 건넜었지. 한 번 시도라도 해 볼까.’ 강현은 빙백검에 마나를 가득 넣으 며 검 끝을 바닷물에 담갔다. 어는점이 낮은 바닷물이라지만 강 렬한 냉기에 의해 조금씩 얼어붙기 시작했다.
빙백검을 담은 부근을 중심으로 얼 음꽃이 피어나며 두터운 얼음발판이 만들어졌다.
그대로 얼음발판 위를 걷자 차츰차 츰 발판이 기다랗게 연장되었다. 강현이 걸을 때마다 그 자리에 얼 음길이 생겨났다.
제3자가 보면 물 위를 걷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이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얼마간 바다 위를 걷고 있는데 별
안간 강한 파도가 몰아쳤다.
철썩!
파도가 얼음길 위를 덮치면서 강현 을 훑고 지나갔다.
심지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파 도가 밀어닥칠 때마다 얼음길 위를 뒤덮었다.
아무래도 얼음길로 지나가는 건 무 리일 것 같다.
강현은 홀딱 젖은 채로 해변에 복 귀하며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좋은 생각은 아니었군.”
얼음길을 만들면서 가기에는 파도 가 문제다.
도착하기도 전에 저체온증에 걸리 겠어.
게다가 마나도 모자랄 것 같다.
리필 스렛을 쓴다 하더라도 수십
킬로짜리 얼음길을 만드는 건 무리 다.
다른 방법을 찾고 있는데 갑자기 루나가 손뻑을 치며 입을 열었다.
“아! 기억났다! 해저동굴이 있었 어!”
강현은 상의를 벗어 물기를 쭈욱 짜며 눈을 가늘게 떴다.
“조금만 기다릴 걸 그랬군.”
“미안,루나가 빨리 떠올렸어야 하
는데..
“해수욕한 셈치지 뭐. 그래서 해저
동굴의 위치는 기억하고 있어?”
“응,여기서 조금만 가면 돼. 근데 오빠 춥겠다. 루나가 등 닦아 줄 까?”
“됐어.”
“헤헤. 해 줄게,해 줄게.”
북풍이 노스 아일랜드를 거치면서 더욱 차가워져선 해변까지 닿고 있 었다.
옷을 갈아입은 강현은 루나를 따라 서 해변을 거닐었다.
그 흔한 조개 껍질조각,미역 한 줄기 없는 하얀 모래사장 위를 걷다 보니 세상의 끝을 걷고 있는 기분마 저 든다.
파도거품 바스라지는 소리를 들으
며 하염없이 걷던 가운데 루나가 멈 춰 섰다.
루나가 해안절벽 아래에 뚫려 있는 동굴을 가리켰다.
“저리로 들어가면 돼!”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 기다려.”
방치된 지 오래된 동굴인 만큼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강현은 빙백검에 그랜드 오러를 부 여하여 그랜드 소드를 만들어 냈다. 누런 그랜드 소드의 불빛을 등불 삼아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헌데 막상 동굴 안은 생각 이상으 로 밝았다.
동굴 벽이며 천장마다 발광이끼를 붙여 놓았고,새어 들어오는 해수가 빠지도록 배수로까지 파 놓았다.
‘이 구조……. 어디선가 많이 본 구조인데……
얼추 내부를 살펴본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확인되었다. 강현은 루나를 불러다가 같이 해저 동굴 안을 걸었다.
해저동굴을 반 이상 지나쳤을 즈 음,슬슬 추워지는 게 느껴졌다. 배수로에 살얼음이 둥둥 떠다니고, 바람 속에 눈 조각이 섞여 있었다.
얼마쯤 가자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는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출구 천장에 있던 마법진이 발동하면서 허공에 여성의 사념체가 투영되었다.
고깔모자에 마법사 망토,길게 닿 은 은발이 인상적인 성숙한 모습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입력된 대사를 을듯 딱딱한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이곳은 현자의 섬입니다. 현자 이 외의 침입자는 배제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현자임을 증명해 주십시오.”
“어떻게 증명하면 되지?”
“현자께선 수수께끼를 좋아하셨습 니다. 당신이 현자라면 수수께끼의 정답을 아실 겁니다. 이것은 상체와 하체로 나뉘어져 있으며 한쪽 손은 하늘로 뻗어 있고,다른 한쪽 손은 바다로 뻗어 있습니다. 열기에 의해 밝음과 어두움을 반복하는 이것의 이름을 말해 주십시오.”
현자란 자가 암호를 수수께끼 형태 로 만들어 둔 모양이다.
강현은 사념체의 주변을 살펴보았 다.
딱히 길을 막고 있는 건 없었다. 이대로 지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 을 정도로 길이 훤히 뚫려 있었다. 강현처럼 생각하는 자가 있는 걸 염려했는지 사념체가 미리 경고를 날렸다.
“현자의 증명을 받지 않은 자가 섬 에 들어설 시엔 섬에 있는 모든 방 어체계가 작동합니다. 당신이 현자 라면 어렵지 않게 문제를 풀 수 있 을 겁니다.”
무려 히든 시스템을 만든 자가 허 술한 방어체계를 구축해 놨을 리 없 다.
정확한 암호를 대고 들어가야만 섬 을 둘러볼 수 있을 거다.
강현은 검지로 선명한 턱선을 매끈 하게 내리그으며 생각에 잠겼다.
‘수수께끼니까 액면 그대로 생각해 선 안 되겠지. 머리와 다리로 나뉘 어 있다라……. 생명체는 아닐 테니 까 정답은 무기물이겠군. 손은 대부 분 활용이나 지시를 위해 쓰이는 표 현이야. 그리고 열로 빛과 어둠을 반복하는 거라면……
수수께끼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상 식을 뒤집는 것에 의의를 둔다.
표현은 사람의 신체로 비유했지만 정답은 전혀 다른 것일 터.
무엇보다 열에 의해 상태가 바뀌는 것들을 열거하여 하나씩 소거법을 적용하면 답이 나올 거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강현은 자신 있게 정답을 내놓았다.
“정답은 햇불이다.”
햇불은 불로 이루어진 상체와 막대 로 이루어진 하체를 가지고 있다.
더하여 열기는 하늘로 뻗으며,재 는 아래로 떨어진다.
더불어 어두운 곳을 밝히기 위해 쓰는 만큼 열을 가하면 밝아지고, 열이 없으면 어두워진다.
그러므로 수수께끼의 정답은 햇불
이다.
강현은 정답을 확신했다.
옆에서 동글동글한 얼굴을 갸웃거 리던 루나도 손뻑을 치며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정답을 들은 사념체는 고개 를 좌우로 크게 흔들며 적의를 표출 했다.
“틀렸습니다. 당신은 현자가 아니 군요. 제재를 가하겠습니다.”
사념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 에서 육중한 진동이 발생했다. 천장과 벽에 금이 가면서 갈라진 틈 사이로 해수가 괄콸 흘러나왔다. 수압이 팽창하면서 갈라진 틈이 더 더욱 벌어졌고,벌어진 균열은 곧 동굴에 붕괴를 일으켰다.
드드드드!
횃불이 정답이 아니었던가.
수수께끼 정답이라는 게 만든 사람 마음대로인 탓에 오답이라고 해서 뭐라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 봤자 나오는 건 없다.
오답이 선언된 이상 불평불만을 토 로할 시간에 행동을 하는 게 낫다. 무너지기 시작한 해저동굴에 남을 수는 없다.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강현은 루나의 손을 잡아 이끌며 노스 아일랜드로 진입했다.
“일단 들어가자.”
해저동굴을 빠져나오자 동굴 출구 에 아른거리던 사념체가 딱딱한 어 조로 경고음을 발산했다.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현자의 섬에 경계령을 내리겠습니다.”
동시에 노스 아일랜드의 눈 덮인 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쿠구구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