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방문자의 이름을 들은 파이오는 깜 짝 놀라 의자를 박차며 벌떡 일어났 다.
“지역장께서 오셨다고?”
“중범죄자를 추격하는 중이시라 합 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해? 당장 열어 드려!”
커뮤니티는 기본적으로 본부가 있 는 지역을 제외하고,7개의 지방으 로 나뉘어 있었다.
7개의 지방 안에서 각 지부가 지 방자치를 실행하고 있는 구조다.
고메즈의 경우는 카니발 북동부 지
방의 지역장이다.
북동부 지방에 속하는 지부들의 우 두머리나 마찬가지였다.
파이오는 부하들을 이끌고 얼른 쉘 터 남문으로 향했다.
남문을 개방하자 데릭로우스에 올 라탄 일련의 무리가 위풍당당하게 입장했다.
무리의 선두에는 귀걸이를 낀 백인 사내가 있었다.
파이오는 백인 사내를 향해 경례 자세를 취했다.
“어서 오십시오,고메즈 지역장님. 게드팅스 지부의 파이오가 인사드립 니다.”
가이아 대륙에 사람을 파견하여 크
레인 공국에서 나돌던 강현의 몽타 주를 구해 온 고메즈다.
그 이후,가이아 대륙과 이어지는 차원의 경계에서부터 최강현 추격을 개시했다.
얼마 전에 스타더스트의 던전 생존 자들에게서 목격담을 들었고,북쪽 으로 갔다는 상인들의 증언까지 더 해져 이곳 게드팅스에 이르게 됐다. 고메즈는 쉘터 내의 분위기가 어수 선한 걸 느끼곤 의문을 표했다.
“게드팅스 지부의 지부장은 뉴튼일 텐데?”
“저. 뉴튼 지부장은 사정이 있
어서……
“관문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고
말이야. 사건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 는군. 파이오,설명이 필요하다고 생 각하지 않나?”
“이,일단 지부로 가시지요. 전부 설명 드리겠습니다.”
고메즈는 게드팅스 지부로 자리를 옮겨서 모든 사정을 들었다.
혁명군의 테러,그로 인한 죄수들 의 탈옥. 그리고 뉴튼의 죽음까지. 사정을 모두 들은 고메즈가 입을 열었다.
“뉴튼은 죽었고 아직 범인은 잡지 못했다 이거군.”
파이오는 진땀을 뻘뻘 흘리며 고메 즈의 눈치를 살폈다.
“지,지금 최선을 다해 수색 중입
니다.”
“여태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면 벌써 도망쳤다고 봐야겠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죄수들이 탈 옥한 시점부터 사방의 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한 번도 열지 않았습니 다.”
“파이오 팀장.”
“네.”
“난 말이야 자네처럼 말을 잘 듣고 멍청한 부하를 정말 좋아해. 실컷 부려 먹은 다음에 죽여도 아깝지가 않거든.”
“죄,죄송합니다. 살려 주십시오.”
“금방 비굴해지는 점도 아주 좋아 하지. 뭐 당장은 죽이지 않을 거니까 긴장 풀어. 나도 가끔은 자비심 이라는 걸 베풀 때가 있거든.”
“가,감사합니다.”
웃으면서 파이오를 들었다 놨다 하 는 고메즈였다.
고메즈는 즐겁다는 양 히죽히죽 웃 으면서 파이오의 어깨를 툭툭 두드 렸다.
그러곤 의자 등받이에 등을 파묻으 며 편한 자세를 취했다.
“그나저나 뉴튼의 시체에 검상이랑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고 했나?”
“네,그렇습니다.”
“내가 쫓고 있는 녀석이 딱 그런 무기를 쓰고 있지. 근데 너는 혁명 군의 소행이라 했고 말이야. 그럼 내가 쫓는 녀석이 혁명군에 들어갔 다는 게 되려나?”
“거기까진 잘……
고메즈는 의자 뒤에 서 있던 부하 를 향해 검지를 까딱였다.
“이시이.”
“네,말씀하십시오.”
“혁명군에 심어 놓은 밀정에게 연 락을 넣어서 최강현이 혁명군에 가 담했는지 확인해 봐.”
“당장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부하를 내보낸 고메즈는 주머니에 서 호두를 꺼내 손 안에서 굴리며 여유에 잠겼다.
“연락이 올 때까지 당분간 여기 머 물러야겠군.”
파이오로선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 리였다.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기로 유 명한 고메즈다.
그의 장난으로 죽은 자가 한둘이 아니다.
죽은 자들 중에는 조직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파이오로선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 었다.
“죄수들이 탈옥해서 곤란하다 했었 나? 시간도 때울 겸 내가 해결해 주지.”
“조,좋은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고메즈는 좋은 여흥거리가 생겼다는 양 경쾌하게 호두껍질을 깨부쉈다.
빠드득!
“죄수들의 가족들에게 탈옥한 자들 을 잡아 오라고 시키는 거야. 어디 보자 상금은 5000만 CP 정도가 좋 겠군. 그 정도면 가족도 팔아넘기지 않겠어?”
“훌륭한 작전이십니다. 헌데 아직 잡히지 않은 자가 많아서 전부 5000만씩 지불하는 건 좀……
“데려오면 죄수들은 죽이고 가족은 웨이브 제물로 써 버려. 탈옥범을 숨겨 주고 있었으니까 데려올 수 있 었던 거잖아? 공범들 따위에게 상금 따윌 지불할 수야 있나.”
가족을 팔아넘기게 만든 후에 죽인 다.
이토록 악랄할 수가 있을까.
그들이 지을 절망적인 표정을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지 웃음을 터뜨리는 고메즈였다.
방 안이 그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는 가운데,파이오는 고개를 숙인 채 파르르 떨 뿐이었다.
*
다음 날 아침.
강현과 니케 일행은 북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간 대화를 나눠 본 결과,니케 일행이 어떤 자들인지 대강 알게 되 었다.
먼저 니케,리리 남매는 굉장히 쾌 활한 성격으로 자유분방한 면이 있 었다.
혁명군에 가담한 이유는 그저 아버 지가 혁명군 대장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외엔 김윤중이란 이름의 40대 한국인이 있었다.
강현을 경계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말수가 적은 건지 이동하는 내내 말 이 없었다.
강현도 먼저 말을 거는 성격은 아 닌지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아서 어 떤 사람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북쪽으로 이동하던 중 니케가 강현 의 이야기를 듣곤 박장대소했다.
“하하하,그랜드 마스터가 되려고 그 소동을 벌인 거였어? 스케일이 남다르구만.”
“그랜드 스톤을 부수려고 석 달이 나 투자하는 것도 보통 스케일은 아 니지.”
“위에서 지령이 떨어졌으니까 있는 힘껏 작전을 짰을 뿐이야. 이번 일 은 끝났으니까 다음 지령이 떨어질 때까진 용병 생활이나 하고 있어야 겠지.”
“평소에는 다른 신분으로 위장하고 있는 거군.”
“맞아. 혁명군은 점조직으로 운영 하고 있거든. 지령은 어디까지나 연 락책을 통해서만 전달되고 있어. 평소에는 각계각층으로 위장해 있고 말이야.”
점조직에 사회 각계각층으로 잠입, 연락은 오로지 연락책을 통해서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방식이다.
“하위차원에서 조직이 쓰던 방식인 것 같은데.”
“놈들의 방식대로 놈들을 괴롭히고 있는 거지. 그래도 우리는 노골적으 로 웨이브 공략 방해 같은 건 하지 않지만.”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겠 지. 커뮤니티 입장에선 공략 못하겠 다 싶을 땐 패스하면 그만이니까.”
“머리 좋은데? 척하면 척하고 알아 듣는 게 마음에 들어.”
“띄워 줘도 혁명군에는 안 들어 가.”
“에이,억지로 들어오라고는 안 한 다니까. 그나저나 북쪽에는 뭐 하러 가는 거야?”
“볼일 때문에.”
“만약 볼일이 끝나고 들어올 생각 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굳 이 혁명군 관련 일이 아니더라도 협 조할 일이 있으면 서로 협조하는 게 어때?”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
서로 커뮤니티에 찍힌 신세다.
적의 적은 동료라는 말도 있지 않 은가.
필요할 때만 공동전선을 펼치는 건
찬성이다.
굳이 한 식구까지 될 필요야 있겠 나.
이해관계만 일치하면 뭐든 못할까.
니케는 강현의 시원시원한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기분 좋게 웃었다.
“하하,역시 말이 잘 통한단 말이 야. 자고로 남자는 시원시원한 맛이 있어야 한다고. 안 그래?”
“뭐든 미적대서 좋을 건 없지.”
“그치?”
푸른 하늘 아래 니케의 호탕한 웃 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 리리가 귀를 파며 신경질을 냈다.
“아후,시끄러워. 볼륨 좀 낮춰. 누
가 들으면 술판이라도 벌인 줄 알겠 네.”
“틀린 건 아니지. 새로운 우정에 취했으니까.”
“우쭈쭈,우리 오라버니. 드디어 미 치셨어요?”
“쯧쯧,말하는 꼴하곤. 예전엔 귀여 웠는데 어쩌다 이리 못된 애가 됐는 지 모르겠네.”
“오빠한테만 못 되게 구는 거야.”
또 남매 싸움이 시작되려는 참이었 다.
질리지도 않나 보다.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 던 루나가 리리의 옷자락을 잡아당 겼다.
“언니,언니.”
니케를 보며 으르렁대던 리리였으 나 루나가 부르자마자 천사 같은 미 소를 지었다.
“루나야,언니 불렀니?”
“오빠한테는 원래 못되게 굴어야 하는 거야?”
“아냐,니케 오빠처럼 바보 같은 사람한테만 그러는 거야. 루나네 오 빠는 루나한테 잘해 주지?”
“응! 루나 먹으라고 사탕도 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줘!”
“루나는 좋은 오빠 있어서 좋겠 네.”
“헤헤헤.”
강현과 루나,니케와 리리.
두 쌍의 남매가 시끌벅적하게 떠들 며 움직였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고목나 무 숲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데 숲 출구에서 대여섯 명쯤 되는 무리가 야영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이 니케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 어나 아는 체를 했다.
“니케냐? 무사했구나. 후우,다행 이다.”
니케도 상대방을 알아보곤 반가움 을 감추지 못했다.
“블랑코? 너 카니발 차이나타운에 서 활동하고 있던 거 아냐?”
“게드팅스에서의 일을 전해 들었거
든. 혹시나 추격대에 쫓기고 있진 않을까 싶어서 미리 지원 나왔지.”
“내가 너한테 지령 내용을 말해 준 적 있던가?”
“거기까진 모르고 일 때문에 게드 팅스로 간다고는 했었잖아.”
“아,그랬었지. 보다시피 무사히 빠 져나왔어. 괜히 신경 쓰이게 했군.”
“섭섭한 소리 말라고. 같은 혁명군 동료끼리 서로서로 도와야지.”
한편 잠자코 있던 강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잉,지잉,지잉.
대화 내내 시끄럽게도 울려 대는 군.
저 블랑코라는 사람,말하는 내내
온통 노이즈 투성이야.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부분에서 노 이즈,지원 나왔다는 부분에서 노이 즈,그리고……. ‘같은 혁명군 동료’ 라는 부분에서도 노이즈가 섞였어.
저 녀석,무늬만 혁명군이고 달리 숨기고 있는 이중신분이 있군. 혁명군이 아니면서 혁명군이라고 자칭하는 자다.
정체를 추리하는 건 어렵지 않다. 혁명군에 심어진 밀정.
그게 바로 블랑코의 숨겨진 정체일 거다.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니케와 블 랑코가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럼 블루워터 마운틴까지 함께
가자고. 혹시 습격을 받으면 조금이 라도 아군이 많은 편이 좋잖아?”
“그거 좋네. 야영 흔적을 지워 둬. 난 우리 팀원들한테 얘기해 주고 올 게.”
니케는 몸을 돌려 강현이 있는 곳 으로 되돌아왔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웃고 있던 얼 굴이었으나,블랑코에게서 등을 돌 리자마자 웃음기를 지웠다.
그는 블랑코 일행을 흘깃 보며 목 소리를 낮췄다.
“다들 잘 들어. 블랑코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저 녀석 분명 커뮤니티 와 내통하고 있는 게 분명해.”
니케 역시 블랑코가 수상하다 느낀
모양이었다.
강현이야 간파 능력이 있어서 금방 알아차렸지만 니케는 그것도 아니 다.
니케도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다.
리리는 얼굴에 미소를 그렸다.
멀리서 보기에는 화기애애하게 잡 담을 하고 있는 표정으로 보인다. 허나 그녀의 입에서는 낮고 진중한 목소리가 홀러나왔다.
“내통하고 있다는 증거는?”
“게드팅스에서 죄수 잡기도 바쁠 텐데 벌써 관문을 열었을 리 없잖 아. 카니발 차이나타운까지 소문이 전해졌을 리 없지. 커뮤니티에서 직 접 연락을 취한 게 아닌 이상 말이야.”
“어느 정도 일리는 있네. 오빠 말 대로라고 하면 우릴 찾아온 이유가 있을 거야. 커뮤니티에서 밀정더러 직접 범인을 잡으라고 시키진 않았 을 거 아냐?”
“의외로 직접 잡으라고 시켰을 수 도 있지.”
니케와 리리 사이에 대화가 오가던 중 강현이 입을 열었다.
“고메즈가 게드팅스에 도착한 걸지 도 모르겠군.”
니케는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 다.
그는 다방면으로 계산을 해 본 결 과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다.
“네 얘기대로라면 앞뒤가 모두 맞 아떨어져. 고메즈에겐 밀정을 심어 둘 정도의 능력이 있어. 게다가 최 강현 널 쫓고 있지. 혹시 게드팅스 에 네가 있었다는 증거를 남긴 적 있어?”
“적어도 남에게 이름을 알려 준 적 은 없어. 흔적이 남을 구석이라면 뉴튼과 싸울 때 빙백검을 쓴 정도? 놈이 작정하고 나에 대해 조사했다 면 빙백검의 흔적 정도는 알아볼 테 지.”
“빙고로군. 블랑코를 통해서 네가 혁명군에 가담한 건지 알아보려 한 걸지도 몰라. 사실 여부를 알아내려 면 나와 접촉할 수밖에 없어. 그래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겠지.”
많은 의견이 오간 결과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고메즈가 코앞까지 쫓아왔다.
굳이 지역장급 인물과 부딪쳐서 힘 겨운 싸움을 벌일 필요가 있을까. 블랑코만 제거하면 해결될 일이다. 그가 죽으면 고메즈에게 강현의 위 치를 알릴 자는 아무도 없다.
니케는 망설임 없이 전의를 드러냈 다.
“여기서 제거해 버리자고. 밀정을 살려 둘 필요는 없잖아?”
한때 동료였다는 의식 때문에 망설 일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케는 가차 없
이 결단을 내렸다.
이 미친 세계에선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리리와 김윤중도 각자 무기를 꺼내 려고 보관 보구에 손을 댔다.
그때,강현이 그들의 행동에 제동 을 걸었다.
“당장 죽이진 말자고.”
“응? 어째서?”
“저런 놈들은 단물까지 다 빨아먹 은 다음에 버려야 하는 법이지.”
강현은 손가락으로 경쾌하게 검갑 을 튕기며 한 마디 덧붙였다.
“내 앞에서 뒤통수를 치려 하다니 배짱 한 번 좋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