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강현은 사내를 따라서 지하 2층 복도 끝으로 갔다.
복도 끝은 막다른 길에 불과했다. 하나 사내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가 능숙하게 바닥의 타일 틈에 단검을 집어넣고 위로 올렸다. 그러자 타일이 들썩거리면서 바닥 밑으로 이어지는 구멍이 나타났다. 사내는 타일을 젖혀 주면서 재촉했 다.
“얼른 들어가. 시간이 없어.”
위에서 이변을 느낀 조직원들이 우 르르 몰려오는 중이었다.
발소리로 짐작컨대 숫자는 대략 3,
40명에,벌써 지하 2층에 다 와 가 고 있었다.
강현이 구멍 아래로 들어서자,뒤 이어 사내도 안으로 내려서면서 타 일을 도로 닫았다.
컴컴한 어둠이 내려앉음과 동시에 타일 너머에서 조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이런 미친! 그랜드 스톤이 부 서졌어!”
“뉴,뉴튼 지부장님! 포,포션을 가 져와!”
“머저리 자식아! 이미 늦었어! 목 이 떨어지셨다고! 당장 쉘터 전체에 수배령을 내리고 조직원들을 전부 무장시켜! 공채 응시생들한테도 범인을 잡으면 합격시켜 준다고 하고 그들까지 가담시키도록 해!”
“관문은 이미 닫아 놨습니다!”
“놈들은 독 안에 든 쥐다! 지부장 을 해한 놈이니 방심하지 말고 반드 시 척살해야 한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조 직원들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전의 를 내비쳤다.
이미 쉘터 관문까지 닫아 놓았다고 한다.
정면으로 돌파하려 했다면 쉘터 전 체를 피바다로 물들일 각오를 했어 야 할 거다.
숨죽여 대기하고 있던 차에 어둠 속에서 푸른빛이 피어올랐다.
사내가 창을 꺼내서 마나 스피어를 부여하여 햇불 대용으로 사용한 것 이었다.
“이거 소개가 늦었군. 난 니케라고 불러. 이름 정도는 들어 봤겠지?”
“전혀.”
“나도 꽤 이름을 날렸다고 생각했 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었나 보구만.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돼?”
“최강현.”
“최강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아! 가이아 대륙에서 빙검의 기사라 불렸던 그 최강현?”
“날 아나?”
“가이아 대륙 출신치고 빙검의 기 사를 모르면 간첩이지. 이야,이런 곳에서 동경하던 빙검의 기사랑 마 주치다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너무 호들갑이군.”
“가이아 대륙 차원 관리자를 베고 넘어온 거 맞지? 그거 때문에 지역 장급이 직접 자네를 쫓고 있어. 이 거 가만히 놔뒀으면 아까운 목숨을 잃을 뻔했겠구만.”
“혁명군치곤 커뮤니티의 사정에 빠 삭하군.”
“혁명군도 바보가 아니야. 커뮤니 티 내부 정보를 빼내 올 밀정 정도 는 있어. 잡설은 여기까지만 하고 일단 나가자고.”
커뮤니티에서 추격대를 파견할 것 정도는 예상한 바다.
다만 지역장의 수준을 모르는지라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실감되지 않는다.
니케는 마나 스피어로 길을 밝히며 따라오라 손짓했다.
“이 배수로는 쉘터 바깥까지 이어 져 있어. 이다음에 어떻게 할지는 나가서 얘기하도록 하지.”
“그런 거면 먼저 시가지에 다녀오 지. 동생을 데려와야 해.”
“그쪽에도 우리 쪽 사람들이 갔어. 곧 데리고 올 테니 걱정 마.”
니케가 가죽점퍼 안에 손을 넣어 소리잔을 꺼냈다.
“나야. 시가지에서 쫓기던 두 사람 은 확보했어?”
-확보하긴 확보했는데 오빠 목소 리 듣기 전에는 못 믿겠대.
“동생이 참 똑똑하네. 모르는 사람 은 따라가면 안 되지. 암 그렇고말 고.”
-지금 농담할 때야? 집어치우고 그쪽에 있는 오빠란 사람 바꿔 봐.
니케는 멋쩍게 어깨를 으쏙이며 강 현에게 소리잔을 넘겼다.
강현은 소리잔을 입에 가져다 대며 말을 꺼냈다.
“루나?”
-아! 오빠 목소리다!
“그 사람들이랑 같이 쉘터 바깥으 로 나와.”
-응! 당장 나갈게!
용건을 마치고 소리잔을 돌려주자 니케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활기찬 동생이군. 실력도 좋고 말 이야. 교란작전 펼치는 솜씨가 장난 아니 더만.”
“보고 있었나?”
“혁명군에서도 그랜드 스톤을 파괴 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으니까. 석 달 전부터 엄청 고생했지. 지부 내 에 잠입하고,몰래 그랜드 스톤 보 호장치를 제거해 두고,도주로까지 확보해 뒀어. 이제 뉴튼이 SSS랭크 웨이브에 들어가기만을 노리고 있던 중에 누군가가 사건을 터뜨렸지.”
니케가 말하는 누군가가 강현임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즉 혁명군에서도 그랜드 스톤을 파 괴하기 위해 갖은 준비를 다해 놓았 었다는 뜻이다.
어쩐지 그랜드 스톤이 있는 방에 아무것도 없다 싶었다.
니케는 강현을 힐끗 보더니 넉살 좋게 웃었다.
“하하,딱히 뭐라 할 생각으로 한 말은 아냐.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쪽이 대신 그랜드 스톤을 부숴 준 데다 지부장까지 제거해 줬 으니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성과를 거둔 셈이지.”
“그것만으로 탈출을 돕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의심도 많구만. 순수하게 감사 의
미로 돕는 거야. 뭐 제국 최고의 기 사였던 사람이 우리한테 합류해 주 면 든든하겠지만 싫다는 걸 강요할 생각은 없어.”
질척이는 배수구를 걷던 중 니케가 걸음을 멈췄다.
니케는 마나 스피어로 통로 천장을 비추다가 어느 한곳에 손을 댔다.
“어디 보자. 여기쯤이었나?”
니케가 손에 힘을 주자 천장의 일
부분이 위로 들썩거리면서 밀려났 다.
열린 구멍 바깥으로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이 보였다.
강현은 니케를 따라 바깥으로 나갔 다.
배수구의 퀴퀴한 냄새 대신 청량한 바람이 강현의 뺨을 어루만지며 스 쳐 갔다.
저 멀리 게드팅스 쉘터가 보인다.
정말로 쉘터 바깥으로 나오는 출구 였던 거다.
잠시 기다리자 같은 구멍에서 다른 사람들이 빠져나왔다.
혁명군 소속의 인물 2명과 루나, 지트였다.
루나가 쪼르르 뛰어와선 강현의 허 리에 매달렸다.
“오빠다! 나 오늘 시킨 대로 열심 히 했어!”
“그래,잘했어.”
“헤헤,칭찬 받았다.”
강현은 로브 위로 얼굴을 부비는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사이,지트가 강현에게 포이즌 소드를 반납하며 말했다.
“주군,명령하신 대로 루나 양을 지켜 냈습니다.”
“수고했어. 다시 부를 때까지 쉬어 둬.”
“네,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지트가 소환석으로 돌아가는 걸 본 혁명군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 다.
“소환석? 사람이 아니라 소환수였 나?”
“깜짝이야. 엄청 신사적이길래 사 람인 줄 알았어. 사람도 저렇게 예의 바르기 힘든데 말이야.”
니케가 손뻑을 치며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자자,잡담은 거기까지. 게드팅스 지부에서 알아차리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자.”
“예정대로 블루워터 마운틴에 있는 던전 지대로 가?”
“그리로 가야지. 최강현,그쪽과는 좀 더 대화를 나눠 보고 싶은데 동 행하는 게 어때?”
블루워터 마운틴이면 노스랜드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잠시 동행하는 것도 나쁘 지 않을 듯하다.
추격해 오고 있다는 지역장에 대해
서 듣고 싶기도 하고.
더불어 카니발의 세력구도를 좀 더
알 필요가 있다.
커뮤니티가 카니발을 완전히 장악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혁명군이 존 재하는 걸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 다.
강현은 어렵지 않게 결정을 내렸 다.
“블루워터 마운틴까지만 동행하도 록 하지.”
“그럼 결정됐구만. 속력을 내서 이 동해 보자고. 꼬마 아가씨,오빠들 걸음 잘 따라올 수 있지?”
루나가 손을 양쪽 허리에 올리면서 가슴을 내밀었다.
“꼬마 아냐! 루나야!”
“하하,이거 실례했군. 자,여기 숙
녀 분도 힘내신다고 하니까 얼른 이 동하자고.”
*
강현과 니케 일행은 북쪽을 향해 한나절가량 이동했다.
게드팅스 지부의 추격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즈음,식사도 할 겸 잠시 눈을 붙이고 가기로 했다.
고목이 가득한,삭막한 분위기의 숲 속.
강현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니케 와 마주 앉았다.
니케는 돼지고기맛 푸드스톤을 나 뭇가지에 끼워서 모닥불에 굽기 시 작했다.
“나는 고기를 타기 직전까지 바싹 익혀 먹는 게 좋더라고. 그쪽은 어 때?”
“먹을 수만 있게 되면 상관없어.”
“그럼 안 되지,인생에 있어서 식 도락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건 다 익었군. 하나 들도록 해.”
강현은 니케가 건네준 푸드스톤을 받아 들었다.
음식을 입에 대기 앞서 니케를 뚫 어져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었지. 할 얘기라 해 봤자 혁명군 가입 권유밖에 없을 텐데?”
“하하,기름기 없는 성격이구만. 개 인적으로 그쪽에게 흥미가 있을 뿐 이야. 아,물론 프랜들리란 의미에서 의 홍미야.”
강현의 옆에 갈색 머리의 주근깨 가득한 여자가 앉으며 대화에 끼어 들었다.
“바보 오빠가 시끄럽게 굴어서 미 안해. 가이아 대륙에 있을 때 벤젠 기사단을 엄청 동경했었거든. 난 리 리야. 잘 부탁해.”
자신을 리리라 소개한 여자는 웃으 면서 악수를 청했다.
니케 역시 갈색 머리인데다 리리란 여자와 분위기가 비숫했다.
심지어 허물없이 구는 성격 또한 닮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니케의 입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수 있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너는 오빠한테 바보가 뭐냐?”
“바보를 바보라 부르는 게 뭐 어때 서?”
“에휴,저 말괄량이를 누가 데려갈 는지 원. 최강현,혹시 옆구리 공석 이면 재 데려갈래?”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한테 곤 란한 질문하지 마. 저러니까 바보 소리 듣지. 저런 거랑 남매라는 게 쪽팔린다니까.”
현실판 남매의 표본이라도 되는 양
신명나게 투닥거리는 두 사람이었 다.
강현은 적당히 식은 푸드스톤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졸깃한 식감과 함께 고기맛 과즙이 입안 가득 들어찼다.
맛은 영락없이 고기 그 자체인데 성분은 과일이라는 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강현은 두 사람의 말다툼이 느슨해 질 때 즈음 입을 열었다.
“커뮤니티의 지역장은 어느 정도로 강하지?”
니케는 리리에게 가 있던 시선을 강현 쪽으로 돌리며 역으로 되물었 다.
“뉴튼과 싸울 때 녀석의 수준이 어 느 정도라고 생각했어?”
“굳이 책정하자면 하위차원의 마나 마스터보다 한 단계 위라고 할 수 있겠지.”
“커뮤니티 지부장은 대개 총합 스 렛 2000 내외의 괴물들이야. 하지만 지역장은 총합 스텟 5, 000이 넘는 괴물 중의 괴물들이라 할 수 있지.”
강현의 총합 스렛은 약 1700이다. 최근 꽤 오랫동안 스렛 정리를 하 지 않았긴 하다.
쌓여 있는 보너스 스렛을 부여하면 총합 스텟 2000을 넘기지 않을까 싶다.
얼추 스렛 총량만 놓고 봐도 커뮤
니티 카니발 지부장급은 된다.
허나 지역장급은 5, 000이 넘는다. 거기에 높은 등급의 보구나 스킬을 소지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니케는 수통에 담긴 물로 목을 축 이며 말을 이었다.
“널 쫓고 있는 건 카니발에 있는
7인의 지역장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고메즈란 놈이야.”
*
같은 시각,게드팅스 월터 안은 여 전히 혼란스러웠다.
지부장은 죽었지,죄수들은 꼭꼭 숨어서 잡힐 생각을 안 하지,그랜드 스톤은 부서졌지.
무엇보다 이 사태를 만든 범인을 처단하기는커녕 꼬리조차 잡지 못하 고 있다는 게 컸다.
죽은 뉴튼을 대신해서 지휘권을 잡 은 파이오는 두통 때문에 쓰러질 지 경이었다.
“돌아 버리겠군. 그렇게 수색했는 데도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게 말이 되냐고. 젠장,아직 죄수들도 못 잡 았는데 미쳐 버리겠군.”
“파이오 팀장님! SSS랭크 웨이브 공략시간이 40시간 남았습니다!”
“웨이브는 그냥 패스시켜 버려!”
“네? 그랬다간 저희 지부의 체면 이……
“지부장이 뒈진 마당에 챙길 체면 이 어디 있어? 움직일 수 있는 모 든 인원을 운용해서 지부장을 죽인 놈을 찾아내!”
“알겠습니다!”
범인을 찾아내도 문제다.
무려 지부장을 죽인 실력자 아닌 가.
그를 척살하기 위해 또 얼마나 많 은 병력을 소모해야 할지,피해가 얼마나 확산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 는다.
골머리를 앓고 있는 와중에 또 다 른 보고가 날아들었다.
“팀장님! 남쪽 관문에서의 보고입 니다! 쉘터 바깥에서 누군가가 입장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부랑자 나부랭이들이 찾아온 것까
지 일일이 보고하지 마!”
조직원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 든 이들의 정체를 밝혔다.
“그,그게 고메즈 지역장님과 디스 트로이 부대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