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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는 플레이어-133화 (133/381)

133화

갑옷 살 돈조차 없었는지 천을 덧 댄 옷차림에,무기라곤 양쪽 허리춤 에 매단 두 자루 단검이 전부였다. 그것도 한 명이면 모를까 4명 모 두 같은 행색이다.

섣불리 겉모양만으로 판단하지 말 라 해도 실력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차슬기가 파티의 리더 격인 장재현 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작은 목소리라 들려오진 않았지만 어떤 말을 했는지는 익히 짐작되었 다.

십중팔구 거절하라고 했을 거다.

동남아시아인 파티는 익숙한 일인 지 해명하듯 말을 꺼냈다.

“하하하,사장님 괜찮습니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다들 레벨 60 넘습 니다.”

번역의 가호 덕분에 평범하게 말해 도 정확하게 전달되건만,일부러 어 눌한 말투를 쓰고 있었다.

마치 동남아시아에 여행 온 관광객 을 상대하는 듯한 태도다.

단검이 B급 이상의 보구이고,전원 레벨 60이 넘는다면 함께 갈 만하 다.

그러나 상대방의 레벨을 확인할 수 단이 없는 이상 정말 60이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장재현의 얼굴엔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를 본 최슬기는 어이없어 하며 직접 동남아시아인들을 상대했다.

“저기요 여러분. 우리가 다른 파티 랑 선약이 있어서요. 아쉽지만 다음 에 기회가 되면 함께하도록 해요.”

정석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한 핑계.

그렇지만 직설적으로 거절하는 것 보단 효과적이었다.

이만하면 물러날 법도 한데 동남아 인들은 애원하는 말투로 들러붙었 다.

“사모님,저희 잘 싸웁니다. 백인들 우리 말도 안 받아 줍니다. 흑인들 우리 무시합니다. 한국 좋아합니다. 독도 한국 땅입니다.”

“김치 잘 먹습니다. 우리 매형 한 국 사람입니다.”

“다른 파티 있으면 같이해도 됩니 다. 최소 8명입니다. 많으면 공략 성공 쉽습니다.”

차슬기는 심호흡으로 부글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며 또박또박 말을 꺼 냈다.

“저희 지금 바쁘거든요. 그러니 까……

보다 못한 김기제가 인상을 쓰며 거친 투로 말했다.

“그냥 같이 들어가. 죽으러 들어가 는 것도 아니고,저쪽도 알아서 잘싸우겠지.”

“이 사람들 차림새를 보세요. 이게 레벨 60의 차림이에요?”

“아니,본인들이 레벨 60이라잖아.”

“그걸 어떻게 믿냐고요.”

“이 여자가 진짜. 후우,눈이 있으 면 주변을 보라고. 벌써 다른 파티 들 다 들어가고 있어.”

“그러다 문제 생기면요? 그쪽이 책 임질 거예요?”

“그래,책임진다 책임져. 참나,오 늘 그날인 것도 아니고 까칠하게 굴 기는.”

“그,그,그날? 말 골라서 못 해 요?”

최슬기와 김기제의 말다툼이 번지

면서 분위기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장재현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중재에 나섰다.

“자자,둘 다 진정하세요. 어려운 일 앞두고 우리끼리 싸우면 되나 요.”

“그래서 재현 씨 생각은 어떤 대 요? 저 사람들이랑 같이 들어갈 건 가요?”

“이렇게 된 이상 다수결로 하죠. 그게 제일 깔끔할 것 같은데.”

“4명으론 다수결이 안 되죠.”

“전 중립이니까 세 분의 의견을 듣 고 다수 쪽의 의견을 채택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강현은 대화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때로는 한 발자국 물러나야 보이는 것도 있는 법이다.

눈앞에 있는 세 한국인의 단점이 훤히 보인다.

최슬기는 편협하며,김기제는 생각 이 짧고,장재현은 위선 덩어리다. 장재현의 경우 방금 다수결을 제시 한 것에서 속이 드러나고 말았다. 동남아인들과 파티를 맺는 걸 두고 최슬기는 반대했으며,김기제는 찬 성했다.

말이 다수결이지 내게 결정권을 떠 넘긴 거나 마찬가지다.

중립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자신은 깨끗하다,모두와 소통한다는 착각속에 남으려 하고 있다.

‘다들 하위차원에서 어느 정도는 했다 이건가. 하나같이 옹고집에 속 이는 방법도 각양각색이군.’

이미 알고 있다.

동남아인들이 레벨 60이 아닌 것 으

레벨 60이라고 할 때 노이즈가 섞 여 있었다.

레벨 60이상인데 낮춰서 부른 건 아닐 테고,레벨이 낮은데 60이상이 라고 사기 치는 걸 거다.

그런 거면 상관없다.

머릿수만 채워 주면 말이다.

강현은 어렵지 않게 결정을 내렸 다.

“같이 가도 상관없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최슬기의 얼굴이 짜 증으로 얼룩졌다.

*

다수결에 의해 강현의 파티와 동남 아인 파티가 함께 던전으로 들어갔 다.

다른 파티들은 먼저 들어간 지 오 래라 통로 안엔 8명의 발소리만 또 각또각 겹치며 울려 퍼졌다.

벽돌로 이루어진 사각형 통로를 걷 다 보니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막다른 길의 벽에는 총 다섯 개의 문이 있었다.

더불어 문 앞에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블레스 던전 1층 공략법]

[1 층에는 총 다섯 개의 방이 있다.

들어가기 전에 각 방의 난이도를 설 정할 수 있다. 표지판 뒤에 있는 10 개의 보석을 이용해 난이도를 조절 해라. 보석을 숫자가 적힌 유리병에 넣으면 해당 방의 난이도가 올라간 다. 모든 방의 기본 난이도는 크랭크 이며 보석 하나를 넣을 때마다 해당 방의 난이도가 1랭크씩 오른다. 어 떤 방이든 최대 SS랭크까지만 올릴 수 있다.]

표지판 뒤를 보니 다섯 개의 유리 병이 보였다.

1번 유리병에는 보석이 없었다.

2번 유리병에는 보석 1개가 담겨 있었다.

나머지 3~5번 유리병에는 각각 보 석이 3개 담겨 있었다.

모든 유리병은 마개가 닫혀 있어 이미 모든 방의 난이도가 확정되어 버린 듯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자들이 멋대로 난이도를 설정해 버린 거다.

저희들이 공략하기 편하게 1번방만 B랭크 난이도로 설정한 게 분명하 다.

나머지 방들은 알아서 하라는 양

적당히 몰아넣어 버리고 말이다. 문마다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오직 1번,2번,3번,5번 통로에는 자물 쇠가 걸려 있었다.

공격무효화 능력이 걸려 있는 자물 쇠이며,안에서 다른 이들이 한창 공략 중임을 의미했다.

비어 있는 건 4번방뿐이었다.

4번방 문에 입장 조건이 적혀 있 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정령의 방(설정 난이도 : SS랭크)

-8명 이상이여야만 입장 가능

원래라면 각 방에 보석을 2개씩 넣어 모두 S랭크 난이도로 손쉽게 도전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늦게 들어온 탓에 괜히 손 해를 보게 되었다.

딱 걸렸다는 양 김기제가 미간을 한껏 구기고 말했다.

“이런 일이 발생하니까 빨리 들어 오자고 한 거라고.”

“저 들으라고 하는 소리예요?”

“됐다 됐어. 아까 하던 얘기는 여 기서 마무리하자.”

“마무리 짓긴 뭘 마무리 지어요? 하 참나,그리 끝내면 저만 나쁜 사 람 되잖아요.”

“자자,기제 씨도 나쁜 의도로 한 소리는 아닐 거예요. 이쯤에서 끝내 죠. 어차피 SS랭크를 공략하기 위해온 거니까 처음 의도대로 공략한다 고 치면 되죠.”

“후우,원래 세계에서 문제 일으키 던 사람이 뭘 알겠어.”

“뭐? 방금 뭐라고 지껄였어? 오늘 나랑 사생결단 내 보자 이거야?”

이러다간 끝이 없을 것 같다. 지들끼리 싸우든 말든 그건 알 바 아니지만 시답잖은 일로 시간을 버 리는 건 사양이다.

강현은 검지로 검갑을 강하게 튕겼 다.

째앵!

“들어가지 않고 계속 공론만 펼칠 거면 빠지겠습니다.”

가장 레벨이 높은 강현이 빠지는

건 모두에게 곤란한 일이었다.

김기제와 최슬기는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다툼은 일단락되었지만 서로 잡아 먹을 듯 노려보는 건 여전했다.

장재현은 답답해하는 기색 하나 없 이 무리 리더 노릇을 계속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다들 잘해 봅시 다. 기분도 다잡을 겸 다들 파이팅 한번 하고 가죠.”

장재현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을 겹쳐 파이팅을 하자는 의미였 다.

낯간지럽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다들 손을 내밀기는커녕 어색한 표 정만 지었다.

아무도 호응해 주지 않자 장재현이 멋쩍어하며 손을 거뒀다.

“하하,제가 너무 들떴나 보군요. 그럼 파이팅은 생략하고 입장하도록 하죠. 다들 문 앞에 서 주세요.”

강현의 파티와 동남아인 파티가 4 번방의 문 앞에 모여들었다.

준비가 끝나자 강현이 문을 열었 다.

끼이 익!

낡은 경첩 소리가 울려 퍼지며 문 안쪽의 마나 기류가 8명을 빨아 당 겼다.

여느 때처럼 시야가 비틀렸다가 원 상복구되었다.

넓은 공간 안에는 네 그루의 나무 가 있었다.

전부 10미터는 될 법한 크기로,기 둥의 굵기 또한 성인 남성 3명이 팔을 벌려야 감쌀 수 있을 듯했다. 기둥과 가지는 야광색 빛을 뿜어내 고 있었고,가지마다 빨간색,파란 색,초록색,노란색 알이 매달려 있 었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표지판에는 아 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강현을 포함한 공략자들이 모두 입장하자 표지판에 글씨가 새 겨 졌다.

[정령의 방(설정 난이도 : SS랭크)]

[정령의 방에는 네 그루의 나무가 있다. 빨간색은 불의 정령 나무,파 란색은 물의 정령 나무,초록색은 바람의 정령 나무,노란색은 땅의 정령 나무다. 각 정령 나무에선 해 당 속성의 (상급) 정령이 태어난다. 공략자가 나무 하나를 벨 때마다 다 른 나무에 맺히는 정령의 알 개채 수가 10개씩 증가한다. 모든 나무를 베면 다음 방으로 갈 수 있으리.]

즉 네 그루 나무엔 정령을 소환하 는 능력이 있고,나무를 벨 때마다 상대해야 하는 상급 정령의 숫자가 많아지는 구조였다.

현재 각 나무에 맺혀 있는 알의

숫자는 10개씩이다.

상급이란 단어에만 괄호가 쳐져 있 는 걸로 보아 난이도 조정에 따라 하급에서 상급으로 문구가 수정된 듯하다.

표지판을 읽던 장재현이 입을 뗐 다.

“나무를 벨 때마다 정령의 숫자가 늘어나는 방식이라는군요. 하지만 SS랭크 던전인 걸 감안하면 단순히 나무를 순차적으로 베는 건 아닐 겁 니다.”

다들 SS랭크 웨이브를 공략해 본 만큼 숨겨진 공략법에 대해 예상하 고 있었다.

최슬기도 장재현의 의견에 동의하

며 입을 열었다.

“나무 하나를 벨 때마다 개체수가 늘어난다고 적혀 있어요. 모든 나무 를 없애야 한다는 부분에 주목해서 생각해 보죠.”

김기제는 영 머리가 안 돌아가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빨리 다 베어 버리면 되는 거 아냐?”

“그랬다간 마지막 나무를 벨 때 그 동안 쌓인 상급 정령을 한꺼번에 상 대해야 해요. 아무래도 모든 나무를 동시에 베는 게 진짜 공략법인 것 같은데요.”

“동시에 베는 방법도 있었군. 그럼 2명씩 나뉘어서 접근해야 되는 거 맞냐?”

장재현,최슬기,김기제만이 활발하 게 의견을 나누었다.

열떤 대화 끝에 네 그루의 나무를 동시에 베는 걸로 결정되었다.

강현의 생각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원래 B랭크 난이도였던 방에서 몬 스터의 무력만 높아진 것이니 배배 꼬인 구조를 가미하진 않았을 거다. 애당초 배배 꼬인 구조는 이미 지 나쳐 왔다.

각 방의 입구에서 난이도를 설정할 때,공략자들끼리 분쟁을 일으킬 법 한 장치가 놓여 있었다.

아마 1층의 숨겨진 공략 방식은 3

번방,4번방,5번방에 보석을 몰아 주고 모든 인원이 1번방,2번방으로 들어가는 게 정답이었을 거다.

최소 8명이 필요하다고 했지,최대 몇 명까지 들어갈 수 있단 제한은 없었으니까.

이미 SS랭크 난이도로 설정된 방 에 들어와 버렸으니 앞으로 나아가 는 수밖에.

이제 8명을 2인 1조로 나눠야 했 다.

헌데 갑자기 동남아인 중 2명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으옥,아프다. 지병 도진 것 같 다.”

“죄송합니다. 내 친구들 병 때문에

가끔씩 발작 일으킴니다. 아무래도 우리 참가 못할 것 같습니다.”

먼저 2명이 쓰러지고,나머지 2명 이 쓰러진 자들을 부축하며 불참의 사를 전했다.

동남아인들의 행동을 본 김기제가 당했다는 양 이를 갈았다.

“씨팔 빌어먹을! 이 새끼들 빈대족 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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