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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는 플레이어-132화 (132/381)

132화

전과자란 꼬리표로 사람의 모든 걸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꼬리표가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어쩔 수 없 다.

물론 강현에게는 아무래도 좋을 이 야기 였다.

원래 세계라면 바로 색안경을 꼈을 거다.

어떤 죄목이든 정해진 규칙,지켜 야 할 도리를 지키지 않은 자란 뜻 이니까.

하지만 이곳에선 비일비재하게 벌 어지는 일이다.

속이고,죽이고,빼앗고.

원래 세계에서 무엇을 했든,어떤 것을 추구했든 테라 시스템에 의해 소환된 이상 아무도 믿어선 안 된 다.

자신이 직접 본 것만을 믿어야 할 뿐.

강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슬기는 동의 를 구하는 양 계속 말을 이었다.

“선배,지금 제 얘기 듣고 있어 요?”

“며칠간 지켜봤는데 사람 대하는 태도가 정말 나빠요. 문신을 저렇게 많이 새긴 것도 수상하고……. 아무 튼 원래 세계에서 사고 치던 사람 같아요.”

아무런 근거 없이 마음에 안 드니 까 무작정 나쁘게 말하는 거였다. 들을 가치도 없는 이야기였다.

호칭 또한 어느새 선배로 바뀌어 있었다.

최강현 씨라고 부르는 것보단 친근 감 있는 호칭이었다.

이 여자,파티 내에 파벌을 만들려 하고 있군.

그렇다면 어째서 같이 다니던 장재 현이 아닌 굳이 내게 붙으려는 걸까. 줄곧 닫혀 있던 강현의 입이 열렸 다.

“그런 얘기는 나보다 장재현에게 하는 게 나을 텐데?”

“재현 씨한테 말해 봤는데 아닐 거 라는 말만 해요. 사람이 좋아도 너 무 좋은 게 탈이죠.”

이 살벌한 곳에서 생판 초면의 사 람을 돕는 것 하며,확실히 사람이 멍청할 정도로 순해 보이기는 한다.

“그러니까 우리끼리라도 뭉치자고 요. 선배와 저 사이면 아주 모르는 사이도 아니잖아요. 드대 경영과 20 년대 학번끼리 잘해 봐요.”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 이야.”

“뭔데요?”

“불침번이나 제대로 봐.”

농담인지,진담인지 모를 말로 대 화를 마무리하는 강현이었다.

일부러 애매하게 대답한 것이다. 최슬기와 협력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놓고 면박을 주면 함께하 는 내내 불편한 관계가 되어 버린 다.

그녀와 등지는 건 별 상관 없다.

하지만 카니발의 구조에 익숙해질 때까진 좀 더 이들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침낭에 들어가며 최슬기를 잠깐 보 았는데 그녀가 강현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선배 차례가 되면 깨울게요. 안녕 히 주무세요.”

살갑게 대하는 걸로 봐선 방금 했 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강현이 선후배 관계를 받아들였다 고 여긴 모양이었다.

S대학인가……. 24학번이라면 나랑 은 네 살 차이군.

타 차원에 소환되지 않았다면 아직 대학에 다닐 나이다.

이따금씩 생각해 보곤 한다.

이곳에 소환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쯤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고. 아마도 적당한 직장에 들어가 상사 비위나 맞추고,직장과 집만 오가는 쳇바퀴 나날을 보내지 않았을까? 그리고 가끔 친구들이나 만나 결혼 언제할 거냐는 실없는 대화나 하며 지내지 않았을까?

뭐가 되었든 지루하다 해도,배신 을 염려하고 항상 목숨을 걸어야 하 는 지금의 생활보단 훨씬 평탄하게 살았을 거다.

어쨌거나 이는 어디까지나 만약의 경우.

지금을 살아가는 이상,지금을 바 라봐야 한다.

시간을 압축하여 다가오는 기회마 다 마지막 기회라 여기지 않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강현은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쪽잠 을 청했다.

*

잡음 하나 없이 조용하던 밤이 지 나고 아침이 찾아왔다.

강현을 포함한 네 사람은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때우고 스타더스트로 향했다.

붉은 홁으로 이루어진 평원을 걷던 중 멀리서 한 무리가 소란을 떠는 모습이 보였다.

누더기에 가까운 옷과 맨손맨발.

하나같이 언제 씻었는지 모를 정도 로 지저분한 몰골.

장비조차 착용하지 않은 그들은 하 나같이 무언가를 쫓아 광적으로 손 을 뻗으며 바쁘게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광대 차림의 요정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홀려 뛰어다니는 하멜론의 아이들을 보는 듯했다.

강현은 장재현에게 요정의 정체를 물었다.

“저건 뭡니까?”

“카니발 페어리입니다. 잡으면 CP 를 주죠. 50만 CP부터 5백만 CP까 지 랜덤으로 주는데,필드에 언제 어디서 나타나는지 몰라서 운이 좋 아야 마주칠 수 있죠.”

“근데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났군 요.”

“놔두세요. 저기 카니발 페어리를 쫓아다니는 사람들 보이시죠? 전부 커뮤니티에서 붙잡은 죄수들이에요. 쉘터 내에서 범죄를 일으키면 전부 저런 꼴이 되죠.”

“형기 동안 CP를 모으러 다니게 한다는 겁니까?”

“네. CP를 지불할수록 형량이 줄 어드는 구조입니다. 죄수들은 장비 를 전부 빼앗기고 하루에 12시간씩 주어지는 노동 시간을 이용해서 CP 를 모아야 하죠. 페어리는 유일하게 장비 없이 CP를 얻을 수 있는 수단 이라서 전부 목숨 걸고 쫓아다닌 답 니다. 괜히 건드려서 분쟁 일으켜 봤자 좋을 거 없어요.”

“감시자가 안 보이는데 저대로 죄 수들끼리 돌아다니게 하는 겁니까?”

“네,커뮤니티는 제노스의 독충이 라고 해서,수놈을 몸 안에 심어 두 고 암놈을 이용해 원격으로 터뜨릴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있거든요. 흑마법으로 만들어 낸 물건이라는데 뭐 어찌 됐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 이죠.”

더불어 죄수들이 쫓고 있지 않은 카니발 페어리는 잡아도 된다고 한 다.

던전을 공략하는 것보다 편하게 CP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카니발 페어리를 쫓는 동안 쓰는 클로징 포션 값이나,허탕을 칠 가 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득보다 실이 많았다.

물론 죄수들은 클로징 포션 없이 카니발 페어리를 쫓고 있었다. 카니발 페어리가 날아가던 방향에 는 던전이 있었는데,죄수들을 감지 하자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던전에서 나온 데릭로우스 두 마리 가 지나가던 죄수들을 학살하기 시 작했다.

“크르르

“으헉! 데릭로우스다!”

“비켜,개새끼들아! 난 페어리를

쫓을 거라고!”

“밀치지 마! 죽기 싫어! 살려 줘!”

카니발 페어리를 잡아 운 좋게 5 백만 CP를 얻으면 형량을 단숨에 줄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경쟁자를 몬스터 에게 떠밀어 시간을 벌거나, 무작정 도망치느라 바쁘거나,그나마 회피 나 실드 스텟으로 버티는 자들 등이 뒤섞여 난장판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카 니발 페어리가 허공을 은반 삼아 피 겨를 하듯 우아하게 날아올랐다.

한데 기분 탓일까.

일순 카니발 페어리의 입가에 비웃 음이 맺혀 있던 것 같았다.

‘단순 몬스터가 아니라 의지를 가 진 생명체 같군.’

강현과 장재현이 죄수들을 보고 있 던 사이.

앞장서 나아가던 김기제가 몸을 돌 리며 짜증을 냈다.

“거기,장재현이랑 초짜. 뭐 좋다고 남들 죽는 꼴을 보고 앉았어? 설마 죄수들까지 도와줄 생각이야?”

“아무래도 그렇게까지 할 순 없죠. 죄수들을 도와주면 도와준 사람도 벌을 받게 되어 버리니.”

“알고 있다면 빨리 와. 기한까지 하루 남았다고. 참나,마주치는 족족 뭘 그리 설명하는 건지 원. 무슨 무 료 봉사 가이드도 아니고.”

“화내지 말고 진정해요,기제 씨. 다들 처음은 있는 법이잖아요.”

“화낸 적 없어.”

걸음을 재촉하며 나아가던 차에 뒤

편에서 차슬기의 혼잣말이 들려왔 다.

“성격 더러운 새끼. 진짜 꼴 보기 싫네.”

김기제가 짜증을 내는 게 영 마음 에 안 드는지 투덜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차슬기의 태도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누구나 이유 없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정도는 있는 법이다.

직장 생활이나,가족 관계의 경우 마음에 안 들어도 타협하며 지내야 하기도 했다.

하나,파티 관계는 다르다.

언제든지 맺고 끊는 게 가능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될 일이

다.

그런데도 계속 파티에 남아 있다. 최슬기 같은 타입은 두 가지로 나뉜다.

같은 한국인끼리 움직이는 게 편하 거나,타인이 쫓겨나길 바라거나.

‘이 파티 그리 오래가진 못하겠군.’ 대강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눈에 보이지만 가만히 놔두었다.

문제를 안고 있는 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발목 잡을 것 같다고 미리 제거하 는 게 아닌,필요한 만큼 뽑아 먹고 적절한 시기에 소모하는 게 낫다. 파티 내에 보이지 않는 파란이 커 져 가는 가운데 점점 스타더스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

스타더스트는 커다란 성으로 이루 어져 있었다.

장재현의 설명에 따르면 성 자체가

6성급 쉘터라고 한다.

쉘터는 막대한 CP를 들여 등급을 올릴 수 있었다.

낮은 울타리부터 시작하여 높은 울 타리,담벼락 등으로 바뀌다가 6성 급 때부터 성벽의 모양새를 갖춘다. 가장 큰 쉘터는 카니발 대륙 동쪽 에 있는 10성급 쉘터라는데 그 크 기가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쉘터 주변에는 봉분 형태의 던전 다섯 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던전 앞에선 100여 명 정도 되는 용병들이 서성이는 중이었다.

용병들 틈에 섞여 들자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쯤 돼야 시작하는 거야? 아까 운 클로징 포션만 또 쓰게 생겼네.”

“형씨,계집애처럼 깍깍거릴 거면 쉘터에 가서 치마라도 고르지그래? 시간 되면 호박마차를 보내 드리 지.”

“방금 누가 지껄였어? 이마로 바닥 온도를 재게 해 줄까,앙?”

협조성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

는 분위기였다.

던전 공략을 앞두고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도 거친 분위기에 한 몫 더했다.

서로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모습은 하위차원과 다를 게 없었다.

자신만은 죽지 않을 거라 여기는 근거 없는 자신감,아직 얻지도 않 은 보상을 꿈꾸며 흘리는 탐욕에 젖 은 웃음.

짐승들 사이에 물고기가 섞여 든 양 낮은 온도로 냉정을 유지하는 자 들.

인간 본연의 감정이 파도처럼 출렁 거린다.

정치적인 이유,세력 다툼이 전혀

섞이지 않은 공략에 참가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차라리 이런 게 편하다.

적아를 식별할 필요 없이 나만 신 경 쓰면 되니까.

강현 일행이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죽 자켓과 청바지 복장의 사 내가 용병들 앞에서 소리쳤다.

“다들 주목!”

사내의 자켓에는 알파벳 C가 새겨 진 배지가 달려 있었다.

커뮤니티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 추측을 증명하듯 사내가 자신의 소속을 밝혔다.

“나는 커뮤니티 스타더스트 지부의 현장팀 팀장 메디니다. 지금부터 던전 공략에 앞서 공지가 있으니 모두 잘 들어라. 여기 있는 다섯 개의 던 전은 모두 SS랭크이고 각 던전마다 5, 6개의 방이 있는 걸 확인했다. 각 방마다 최소인원 제한이 있으며, 제일 적은 방이 8명이니 최소 8명 씩 조를 짜도록.”

강현의 파티는 4명이니까,최소 4 명을 더 모아야 입장할 수 있었다. 다들 다른 파티와 협력하고 싶지 않은지 투덜거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새어 나왔다.

메디니는 상관치 않고 말을 이었 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미리 말해 두 지만 커뮤니티 주최의 던전 공략엔 상금이 존재한다. 가장 먼저 공략된 던전에는 던전 공략자 전원에게 50 만 CP씩 지급하니까 염두에 두고 공략에 임해라.”

하긴 아무런 메리트가 없으면 일부 러 먼 길을 달려올 이유가 없다. 설사 공략하다가 막혀서 시간이 걸 린다 하더라도,다른 이가 최초 공 략에 성공하기만 하면 가만히 앉아 서 50만 CP를 얻을 수 있다.

커뮤니티로서도 고작 한 던전에만 상금을 부과하는 격이니,싼값에 많 은 이들을 부려먹을 수 있는 셈이 다.

공지가 끝나자마자 용병들이 분주 하게 움직였다.

이미 8명 이상끼리 뭉쳐 있는 파 티가 먼저 들어갔고,인원 미달인 파티는 인원수를 맞추기 위해 서로 접촉했다.

강현의 파티도 나머지 4명을 찾아 야만 했다.

이왕이면 상대도 4명으로 이루어진 파티인 게 좋았다.

헌데 굳이 찾을 것도 없이 동남아 시아인 4명이 먼저 접근해 왔다.

“저희도 4명입니다. 그쪽이랑 같이 들어가고 싶습니다.”

눈에 띄는 장비라곤 단검 몇 자루 가 전부인 빈약한 인상의 파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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