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던전 너머에서 가죽 갑옷을 입은 흑발 청년이 뛰쳐나왔다.
생김새도 동아시아인 특유의 특징 이 살아 있는 황갈색 피부에,투 블 력으로 친 머리,영화배우같이 세련 된 외모가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그것보다 방금 한국어로 말하지 않 았나?
흑발 청년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기 에는 상황이 너무나도 다급했다.
벌써 머리 둘 달린 들개들이 입을 쩌억 벌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월월!”
빙백검을 휘두르려던 찰나.
멀리 있던 흑발 청년이 어느샌가 강현의 옆에서 나타났다.
이동 스킬로 다가온 듯했다.
동시에 흑발 청년이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유리병엔 우윳빛 액체가 들어 있었 는데 청년은 곧바로 마개를 따선 강 현에게 뿌렸다.
“클로징 포션을 뿌렸습니다. 그러 니 이제 안심하십시오.”
강현의 몸에 닿은 액체가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하얀 안개처럼 둥개둥개 번져 올랐다.
안개는 강현의 몸 주변을 맴돌다가 이내 곧 피부를 통해 스며들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득달같이 달려 들던 몬스터들이 목표를 잃은 양 두 리번거리다 던전으로 되돌아갔다. 흑발 청년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상큼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아,내가 번역의 가호를 썼었나. 한국인이세 요? 아니면 일본인? 아니,중국인인 가? 오하요,니하오.”
“한국인입니다.”
“한국인 맞으셨군요. 그나저나 하 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요. 카니발 포인트가 떨어지셔서 클로징 포션을 못 사셨던 거죠?”
아까부터 카니발 포인트니,클로징 포션이니 알 수 없는 말들만 늘어놓 는군.
번역의 가호란 게 있는 걸로 봐선 언어가 통일되어 있지 않은 세계인 듯하고.
이것도 저것도 전부 생소한 것투성 이다.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랑 만난 건 그나마 다행이군.
생판 남인 사람을 그냥 도와줬을 리는 없고,뭔가 목적이 있어서 도 와준 거겠지. 잘만 이용하면 정보를 뽑아낼 수 있겠어.
강현은 흑발 청년을 정보원으로 쓰 고자 간략하게 저간의 사정을 밝혔 다.
“사실 카니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카니발 포인트니,클로 징 포션이니 말씀하셔도 뭐가 뭔지 몰라서 말이죠.”
다른 정보는 일체 주지 않고 오로 지 카니발 초심자란 사실만 전했다. 그러고는 혹발 청년의 반응을 살폈 다.
흑발 청년은 다소 의아해했다.
“커뮤니티 인솔자가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까?”
“커뮤니티?”
“하위차원에서 여기로 오는 문을 관리하는 사람 말입니다.”
커뮤니티 인솔자라…….
디벨롭과 같은 하위차원 지부장들 을 말하는 듯하다.
추측컨대 이곳에선 조직을 커뮤니
티라 부르는 것 같았다.
원래는 하위차원 지부장이 카니발 에 대한 기본 정보를 알려 주는 모 양이다.
강현의 경우 하위차원 지부장을 '처리’하고 왔기에 당연히 들었을 리가 없다.
흑발 청년이 어디 소속인지도 모르 는데 사실대로 말할 순 없는 노릇이 다.
강현은 적당히 핑계를 붙였다.
“넘어올 땐 같이 왔는데 도착했을 땐 저 혼자 여기에 떨어져서 곤란하 던 참입니다.”
“아,가끔씩 그런 경우가 발생하긴 하죠. 그럼 하나도 모르시겠군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 파티와 함께 이동하지 않겠습니까? 던전 공략을 하러 가는 중이었는데 사람이 모자 탔거든요. 대신 카니발에 대해 이것 저것 많이 알려드리겠습니다.”
아직까지 노이즈가 섞이지 않는 걸 로 보아 모두 사실인 듯했다.
선심을 쓰는 겸 자기네들 인원도 보충할 생각으로 도와준 거였다. 나중에 던전을 같이 쩔지 말지는 둘째치고 지금은 동행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 말씀해 주신다면 함께하도록 하죠.”
“클로징 포션의 효과가 아깝기도 하니 이동하면서 얘기를 나누시죠.
저쪽 던전 너머에 가면 제 파티 동 료들이 있습니다. 아차,통성명이 아 직이었군요. 전 장재형이라고 합니 다. 한국에서 사셨으면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것 같네요.”
장재형이란 이름을 되뇌던 강현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5, 6년 전 혜성처럼 영화계에 나타 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배 우다.
조연으로 출연했던 데뷔작에서 주 목받기 시작하여,3번째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고 해당 작품은 대흥행 을 이루며 천만 관객을 돌파했었다. 강현은 영화를 좋아했었기에 장재 형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메이크업을 한 모습과는 약간 거리 가 있었지만,이름을 듣고 나니 장 재형임이 확실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원래 세계에서야 아무리 유 명인이래도 여기선 한낱 이세계인에 불과하다.
필요한 건 원래 세계의 명성이 아 니라 이곳에서 살아남을 무력과 지 략이다.
강현은 담담하게 통성명을 했다.
“최강현입니다.”
“강현 씨셨군요. 강현 씨는 어느 차원에서 오셨습니까?”
“가이아 대륙에서 왔습니다.”
“제국과 공국으로 이루어졌다는 곳 이군요. 전 드라칸 대륙에서 왔습니다. 레벨은 어찌 되시는지? 아,오 해는 마십시오. 레벨이 낮다고 태도 를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 파 티 평균 레벨이 60밖에 안 되는걸 요.”
레벨 60이면 하위차원에서 자작에 서 백작가급 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 는 수준이다.
그걸 낮다고 표현하는 걸 보면 이 곳 세계의 평균 레벨이 하위차원보 다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강현은 레벨을 말하기 앞서 상태창 을 확인해 보았다.
[최강현 (LV. 160)]
증폭 : 510
반사 : 231 수정 : 428 정제마나 : 266 리필 : 195 보너스 포인트 : 60 보유스킬 : 각성의 서(?),세이덴의 독주머니 (S),마나폭검 (S),석상 호 걸의 갑옷(幻,쉐도우 리퍼의 외갑 (SS), 명계의 서(?),위치 되감기(S), 개화의 서(기,제왕의 화염검 (S) 군 주의 서(?),석화의 마안(SS), 엘레 멘탈 웨펀(SS), 개방의 서(?),업적 의 서(?), 매혹(A)
특수능력 : 간파
어느덧 레벨이 160에 달해 있었다.
이곳에서 160이면 높은 편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평균 레벨 60 인 파티에게 있어선 월등히 높은 존 재일 거다.
하지만 강현은 곧이곧대로 레벨을 밝힐 생각은 없었다.
있는 그대로 말했다가 엉겨 붙기라 도 하면 귀찮아진다.
적어도 이곳에선 누구도 달고 다닐 생각이 없었다.
강현은 얼추 장재형의 파티 레벨에 맞춰 레벨을 낮게 불렀다.
“67입니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없겠네요. 카 니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하셨 죠? 카니발 포인트도 모르시겠군요.”
“아까부터 말씀하시던데 그게 뭡니 까?”
“보구나 스킬북을 해체하면 얻을 수 있는 포인트죠. 사용하는 법은 몬스터 시체에서 전리품 추출하듯이 보구나 스킬북에 대해 해체 시동어 를 을으시면 됩니다. 그걸로 개인상 점에서 클로징 포션이라든지,스텟 포인트를 살 수 있죠. 그 외에도 카 니발의 기본 화폐로서 사용되기도 하죠.”
장재형의 말에 뜻밖의 내용이 있었 다
강현이 그 점을 짚어 물었다.
“지금 스렛 포인트를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까?”
“네,이건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해 보시는 게 빠르겠군요. 손바닥을 위로 펴고 푸른빛이 머무르는 이미 지를 그리면서 마켓이라고 말해 보 세요.”
강현은 조언대로 손바닥을 위로 향 하게 펼쳤다. 그러곤 손바닥에 푸른 빛이 아른거리는 상상을 하며 시동 어를 읊어 보았다.
“마켓.”
시동어가 먹혔는지 이미지가 아닌 진짜 푸른빛이 손 위에 머물렀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각종 물건과 가 격표가 홀러들어 왔다.
[최강현님의 개인상점]
CP교환기 : 5천 CP 바코드 마커 : 1만 CP 클로징 포션 : 1만 CP 번역의 가호 : 2만 CP 기록식 카니발 지도 : 3만 CP CP를 보너스 스텟포인트로 전환 : 스텟 포인트 1당 100만 CP 스텟을 CP로 전환 : 스렛 포인트 1당 60만 CP1성급 쉘터 : 5000만 CP(유지비 한 달 20만CP)
최강현님의 현재 보유 CP : 0 CP
CP는 카니발 포인트의 약자이리 라.
강현은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어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보구 하나를 꺼냈다.
예전에 울라임 숲에서 얻었던 쉬아 나의 모자였다.
A급 보구이자 나무 계열 기술의 마나 소모량을 줄여 주는 모자였다. 재고처리도 할 겸 시험 삼아 해체 해 보았다.
“해체.”
빛무리가 쉬아나의 모자를 감싸나 싶더니 이내 곧 소멸해 버렸다.
재차 개인상점을 확인해 보니 CP 가 들어와 있었다.
[최강현님의 현재 보유 CP : 120
만 CP]
A급 보구가 120만 CP라…….
높은 건지,낮은 건지 감이 오질 않았다.
강현이 마켓을 살피는 사이 장재형 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하하,해체까지 바로 시험해 보시 네요.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신가 봅니다.”
“뭐 그렇죠. 근데 이 클로징 포션 의 효과는 뭡니까? 아까 보니까 몬 스터들이 저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던데.”
“여기선 웨이브가 무수히 많이 발 생하죠. 다 처리를 못하다 보니까 필드에 던전이 넘쳐납니다. 이게 또 성가신 게 카니발에서 생성된 던전 들은 죄다 몬스터들이 바깥으로 나 올 수 있어서 맨몸으로 필드에 나서 면 하루 종일 고생해야 하죠. 클로 징 포션을 뿌리면 하루 동안 몬스터 들이 인식을 못합니다.”
“던전 안에서도 효과가 적용됨니 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필드 에서만 효과가 발동하죠. 대신 던전 에 들어가면 들어가 있던 시간만큼 효과가 연장되긴 합니다. 저희같이 월터를 사지 못하는 서민들한텐 그 나마 다행인 셈이죠.”
“쉘터란 건?”
“쉘터라고 해서 필드의 일정 구역 내를 안전지대로 만드는 게 있습니 다. 몬스터는 쉘터 안으론 침입할 수 없죠. 이곳 카니발에서 필드의 위협을 벗어나는 방법은 클로징 포 션을 쓰거나,쉘터를 사거나,아니면 안전지대를 형성하는 보구를 얻거 나,이 세 가지입니다. 안전지대를 만드는 보구는 거의 환상의 보구로 분류되니까 보통은 클로징 포션이나 월터를 이용하는 편이죠.”
집에 비유하자면 클로징 포션은 여 관,쉘터는 자택이라 할 수 있었다. 숙박비를 지불하듯 매일매일 포션 을 사며 지내거나,비싼 자택을 사 서 일정량의 유지비만 소모하며 지내거나.
강현은 개인상점을 좀 더 살피다가 내친김에 CP교환기와 바코드 마커 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CP교환기와 바코드 마커는 뭡니 까?”
“아까 CP가 이곳의 화폐라는 건 말씀드렸죠? 타인과 교환을 하려면 CP교환기가 필요합니다. 타입이 여 러 가지라 원하시는 형태로 소유하 고 있으면 되죠. 저 같은 경우엔 반 지 교환기를 쓰고 있고요.”
장재형이 왼손을 들어 보였다.
그의 왼손 약지에 에메랄드 같은 보석이 달린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사용법은 CP 교환기를 착용하고 CP를 넣고 싶은 만큼 넣어서 필요 할 때 쓰면 된다고 한다.
즉 개인상점에 보관되어 있는 CP 는 은행에 '예금’되어 있는 돈이고, CP교환기는 현금을 넣는 ‘지갑’이라 할 수 있었다.
이어서 장재형이 바코드 마커에 대 해 설명해 주었다.
“바코드 마커는 자기 보구에 고유 바코드를 찍는데 사용합니다. 바코 드를 찍은 보구는 주인 외엔 해체할 수 없게 되죠. 바코드를 찍지 않은 물건은 해체 소매치기에 당할 가능 성이 높으니 웬만하면 다 찍어 두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군요.”
타인의 보구를 함부로 해체할 수 있다면 전투 중에도 얼마든지 상대 의 무기를 해체해 버릴 수 있을 거 다.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물건 같았다.
나중에 때를 봐서 한꺼번에 바코드 를 찍어 두는 게 좋을 듯하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던전을 지나치 게 되었다.
던전 너머에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 을 준비 중인 사람 둘이 보였다.
한 명은 머리를 열은 갈색으로 물 들인 젊은 여자,또 다른 한 명은 한쪽 팔에 용 문신을 한 젊은 남자 였다.
젊은 남자 쪽이 강현을 힐끗 보곤 장재형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거참 오지랖 한번 넓구만. 아무나 도와주지 말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