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이어서 메르탱을 비롯한 두 성기사 들도 표지판을 확인했다.
머리 위의 거울이 어떤 역할을 하 는지 모두가 이해한 상황이다. 속마음이라는 게 생각과는 달라서 거짓으로 옮을 순 없다.
즉,방금 거울에 비친 메르탱의 말 은 전부 그의 본심이라는 뜻이다. 부하들에게 성기사의 표본이라 여 겨지던 메르탱이다.
그러나 위선의 거울에 비친 메르탱 은 자신의 신앙심에 도취한 나르시 스트에 불과했다.
메르탱은 두 성기사의 시선에 불신
이 담기는 것을 느끼곤 손사래를 쳤 다.
“둘 다 오해하지 말게. 이건 절대 내 본심이 아닐세.”
“그렇지만 단장님. 여기 표지판에
“줄곧 알고 지낸 나와 이런 몹쓸 던전의 표지판 중에서 무엇을 더 믿 는 겐가? 사람끼리 불신하게 만들려 고 일부러 지어낸 말이 틀림없어.”
어떻게든 위선의 거울이 거짓을 말 하는 것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었다. 하나,메르탱이 부정을 하면 할수 록 위선의 거울도 메르탱의 본심을 적나라하게 비쳤다.
- 감히 신께 봉사하는 날 의심하 다니 아직 믿음이 부족하구나. 그런 불경한 마음으로 여태껏 잘도 신을 믿는다 칭했군. 내가 내세에서 격이 높은 자가 될 동안 너희들은 벌레만 도 못한 놈들이 될 거다.
현실의 고행을 다음 생에 보상 받 는다는 걸로 자기위로를 하는 얄팍 한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브리튼 교의 기본 교리이기에 성기 사들에게도 자리 잡은 마음가짐이기 도 했다.
어쨌건 중요한 건 비아냥거리듯 자 신이 우월하다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게 문제다.
메르탱의 본심을 알아챔 성기사들 이 분분이 거리를 벌렸다.
어느새 성기사들의 머리 위에도 생 겨난 위선의 거울이 그들의 마음을 비쳤다.
-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최악이 네. 여태껏 저런 시선으로 우릴 본 거였어?
- 말만 번지르르했지,완전 미친놈 이잖아. 그러고 보니까 대신전에 있 다가 갑자기 여기로 옮겨 왔었지? 대신전에서도 문제 일으켜서 좌천당 한 거 아냐?
성기사들 사이에서 메르탱의 평가 가 완전히 떨어졌다.
여기서 과연 메르탱이 어떻게 반응 할까.
분노할까,좌절할까.
진성 나르시스트라면 분노할 거고, 소인배라면 좌절할 거다.
메르탱은 후자에 속했다.
“난…… 난 그저……
위선의 거울을 치워 보고자 손을 허우적거려 보지만,위선의 거울은 실체가 없는지 손이 그대로 관통되 었다.
메르탱은 당황하며 3시 방향 문 쪽으로 뒷걸음쳤다.
그러나 공략하지 않은 방은 바깥에
서 들어올 순 있어도 안쪽에서 나갈 수는 없다.
이대로라면 위선의 방 제물로 바쳐 질 자는 메르탱이 되고 말 것이었 다.
메르탱은 황급히 몸을 돌려 문을 더듬었지만 의미 없는 몸부림이었 다.
“끄응! 열려! 열리라고! 빠져나가 야 한다고!”
- 이 작자들이랑 있으면 죽을 거 야. 분명히 나부터 죽이려 들 거야. 그 전에 빠져나가야 해!
처음으로 메르탱의 말과 위선의 거
울의 말이 일치했다.
겉과 속이 모두 비굴해진 참이다. 아까는 다음 생을 언급했으나 역시 지금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한지 필사 적으로 문을 열려고 했다.
한데 갑자기 메르텔이 매달리던 문 이 열렸다.
열릴 리 없는 문이 열리자 메르탱 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여,열렸다!”
그러나 화색이 도는 것도 잠시.
열린 문 사이에서 슬더 가드를 착
용한 사내가 나타났다.
사내는 메르탱을 보곤 눈살을 찌푸 렸다.
“음? 다른 녀석들도 있군.”
“겔로그 단장님,제복을 보십시오. 브리튼 교 성기사입니다.”
“상관없다. 방해가 될 만한 건 전 부 제거해라.”
겔로그의 주변에 서 있던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검마다 알알이 깃드는 마나 오오라 를 눈앞에 두고 메르탱의 눈이 왕방 울만큼 커졌다.
겔로그가 언급한 방해물에 메르탱 이 포함되는 건 두말할 것도 없는 일 이 었다.
여긴 신전이 아니라 던전이다.
기도가 아닌 기책이 필요하다.
그 사실을 모르는 메르탱의 목이 겔로그의 부하들이 휘두른 검에 떨어진 것은 당연했다.
털썩!
겔로그는 쓰러진 메르탱의 시체를 밟고 넘어서며 강현과 마주했다.
이전의 잔심부름꾼 같은 모습은 온 데간데없고 오만함만이 가득하다. 그의 말투에서도 자신감이 흘러넘 쳤다.
“스카텐드와 요단. 이쪽의 마나 마 스터를 잘도 둘이나 없애 주었군.”
겔로그의 머리 위에 생겨난 위선의 거울도 같은 말을 했다.
- 스카텐드와 요단. 이쪽의 마나 마스터를 잘도 둘이나 없애 주었군.
본심과 말이 일치하기에 같은 말이 반복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겔로그는 자신의 머리 위에 생긴 거울을 보곤 코웃음을 쳤다.
“의미불명의 거울이 쫓아다니는구 만. 훗,오랜만에 던전에 들어오니 이런 것도 신선하군. 철갑기마대 부 단장이 되면서 허구한 날 공작가의 임무만 처리했었지.”
강현은 빙백검에 엘레멘탈 웨펀 수 속성 효과를 부여하며 마나폭검을 전개했다.
부서진 마나 파편이 굵직하게 부서 지며 푸른빛의 물결을 이루었다.
겔로그의 부하들이 즉각 방패를 들 어 빈틈없는 방어진을 형성했다.
마나 파편이 일렬로 늘어선 방패들 을 두들기며 충격을 가했다.
투둑! 투투투투!
빙백검의 마나 동결 효과는 마나 파편엔 깃들지 않았다.
대신 엘레멘탈 웨펀 수 속성 효과 가 가미되어 있다.
먼저 부딪친 마나 파편이 방패에 수룡의 낙인을 찍었고,이어서 부딪 치는 마나 파편이 수룡의 낙인을 활 성화시키며 0.5초간 마나 동결을 일 으켰다.
아주 잠깐 마나의 흐름이 멈추면서 방패에 깃든 마나 오오라가 걷혀 버 렸다.
뒤이은 마나 파편들이 철제 방패를
간단하게 찢어 버리며 1선의 기사들 을 찢어발겼다.
방어선이 무너진 사이로 겔로그가 관자놀이를 짚었다.
“매정하구만. 사람이 말하는데 다 짜고짜 스킬이나 쓰고 말이야.”
강현은 빙백검을 허리 쪽으로 당기 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잡담이나 나누러 온 게 아닐 텐 데?”
“흥이란 게 없는 녀석이군. 그나저 나 세상일이란 참 모를 일이야. 1년 전만 해도 시건방진 용병에 불과했 던 네가 공국 최고의 기사인데다 제 국 최고의 영웅으로 칭송 받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리고……
겔로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허리 춤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숄더 가드에 달린 망토를 슬쩍 들 추자 2개의 검 자루가 드러났다.
2개의 검 자루 중 한 자루가 뽑히 면서 요사한 녹색 검신이 자태를 뽐 냈다.
겔로그는 녹색 검에 마나 블레이드 를 입히며 흐렸던 말을 이었다.
“만년 부단장이었던 내가 마나 마 스터가 되는 날이 오더라고.”
자랑스럽게 마나 블레이드를 선보 였으나 날아드는 건 강현의 마나폭 검이었다.
마나 파편의 범위가 아까보다 좁은 대신 파편 하나하나의 굵기가 굵다.
오로지 겔로그만을 노린 공격이다.
실드로 막자니 뚫릴 것 같고,피할 곳은 우측 사선 방향뿐인데 강현이 그쪽 방향으로 먼저 달리며 겔로그 를 벨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동 스킬이 있다면 먼저 쓰라고 강요하는 공격이었다.
그를 반증하듯 강현의 머리 위에 떠 있던 위선의 거울이 강현의 속마 음을 비쳤다.
- 이걸로 이동 스킬이 있으면 미 리 빼고 우위를 점해야겠군. 이동 스킬이 없으면 실드를 뻘 수 있으니 어느 쪽이든 이득이겠지.
위선의 거울이 강현의 전투방식을 그대로 을고 있었다.
적의 또한 본심으로 여기는 것이었 나.
순간순간의 자잘한 전투방식은 그 냥 넘어가는 것 같다.
허나 문제는 굵직한 공격 의사가 거울에 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겔로그는 비웃음을 자아냈다.
“알량한 생각이 그대로 전해지는구 나. 내가 그리 가볍게 보이더냐?”
- 포이즌 소드의 독은 마나까지 녹여 내지. 독무 한 번이면 충분히 막고도 남는단다.
전투 방식이 거울을 통해 전해지는 건 겔로그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의도가 그대로 전해지는 가 운데 전투를 벌여야만 했다.
겔로그는 개의치 않고 녹색 검을 아래에서 위로 부드럽게 휘둘렀다. 녹색 검신에서 녹색의 짙은 독무가 피어나오며 독구름을 형성했다.
마나 파편은 독구름에 파고들자마 자 산을 끼얹은 양 녹아내렸다. 치이이익!
겔로그 본인은 독무에 영향을 받지 않는지 독무 사이를 뚫고 나와 강현 에게 검을 뻗었다.
“겉보기엔 무표정이면서 속으론 아 주 수다쟁이시로군.”
겔로그의 마나 블레이드 역시 독이 깃든 듯 녹색을 띠고 있었다.
- 빙백검의 능력으로 손부터 봉쇄 하고 수를 취할 수밖에 없겠어.
여전히 강현이 취할 수를 그대로 비치는 위선의 거울이었다.
이미 마음을 먹은 이상 수를 변경 하는 건 쉽지 않았다.
강현은 빙백검의 빙결 오오라를 이 용해 겔로그의 손을 얼렸다.
쩌저적!
겔로그의 손에 서리가 맺히기 시작 했다.
손의 자유를 빼앗기기 일보직전이
건만 겔로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 현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검만 뻗으면 닿 을 거리까지 좁혀졌다.
이제 막 마나 마스터가 된 겔로그 다.
강현을 제거하기 위해 요단까지 폭 사시킨 그가 제 몸을 버려 가면서까 지 접근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황금왕의 토시를 쓰는 게 가장 안 전하겠지만 이미 요단의 폭사를 피 할 때 써 버렸다.
강현은 차선책으로 반사 실드를 끌 어올리며 빙백검을 휘둘렀다.
아니나 다를까,빙백검의 날이 겔 로그의 녹색 검과 부딪칠 무렵.
겔로그의 의도가 거울을 통해 비쳤 다.
- 원격으로 얼리는 기술까지 있나. 도굴꾼의 반지를 쓰는 게 좋겠구만.
마나 블레이드를 두른 두 검이 경 합했으나 마찰음이 생기지 않았다. 베이지 않는 것을 두드린 듯 물컹 하면서도 불쾌한 손맛이 빙백검을 타고 전해져 왔다.
이건 공격무효화 능력을 쓴 게 틀 림 없다.
도굴꾼의 반지라는 게 공격무효화 능력이 있는 보구였었나.
겔로그는 빙백검을 밀어내며 강현
의 복부 한가운데를 향해 녹색 검을 내질렀다.
“이제야 그 잘난 얼굴에 금이 가는 걸 구경할 수 있겠군.”
파직!
그러나 녹색 검은 강현에게 닿지 못하고 반사 실드에 막혀 버렸다.
그 즉시 반사 실드가 받은 데미지 를 마나덩어리로 환산하여 겔로그에 게 되돌려 보냈다.
아직 겔로그의 공격무효화 능력은 지속되고 있었기에 반사 데미지가 먹히지 않았다.
겔로그는 자신의 공격이 실드에 막 힌 걸 보곤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 다.
“음? 실드가 남아 있어? 요단의 폭사는 다른 걸로 막아 냈었나.”
막혀서 당황한 자의 말투가 아니 다.
한번에 끝내지 못한 게 아쉬울 따 름이라는 듯 재차 공격을 가했다.
반사 실드도 일단은 실드다 보니 마나 블레이드 두 번 분량의 데미지 가 누적되며 벗겨지고 말았다.
강현이 대처를 위해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그런 한편,강현의 실드를 벗겨 낸 겔로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강현에게 수단이 남았다 한들,어 차피 위선의 거울이 비쳐 주어서 다 알려질 거다.
강현이 취할 행동이야 어차피 거울 을 통해 알 수 있으니,그 때마다 재차 빈틈을 찌르면 그만이었다.
겔로그의 검이 강현의 복부로 향하 다가 갑자기 꺾였다.
그래도 아주 많이 꺾인 건 아닌지 라 옆구리 정돈 그을 수 있을 듯했 다.
그걸로도 충분하다.
검 끝만 닿아도 3초 안에 즉사시 킬 수 있는 맹독이 주입될 테니까. 한데 강현의 머리 위에 있는 위선 의 거울 안에서 무심한 투의 말이 흘러나왔다.
- 옆구리가 조금 긁히겠군. 상관없
나. 어차피 독이 통하지 않는 몸이 니.
겔로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 을 넘은 뒤인지라 당황을 금치 못했 다.
“독이 통하지 않는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서로의 예상대로 녹색 검은 강현의 옆구리를 살짝 그었다.
원래라면 녹색 검의 맹독이 강현을 옭아매야 했으나,강현은 태연하게 빙백검을 역수로 쥐었다.
강현의 바로 앞에선 겔로그가 검을 휘두른 직후의 자세로 멈춰 있었다. 강현은 거칠 것 없이 겔로그를 향해 빙백검을 내리꽂았다. 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