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푸른 비늘로 이루어진 검신이 메르 탱의 목을 저몄다.
메르탱은 싸울 의사가 없다는 의미 로 양손을 들었다.
다만 주변의 성기사들이 당황한 나 머지 무기에 손을 얹고 호들갑을 떨 었다.
“메,메,메르탱 단장님!”
“다,당장 단장님께 검을 떼지 못 하겠나!”
“최강현 경! 우린 신을 섬기는 몸 일세! 섣부른 판단으로 브리튼 교와 척을 질 셈인가!”
갖가지 반응이 쏟아지던 중에 메르
탱이 손을 저어 부하들을 말렸다.
“난 괜찮네. 다들 진정하게나.”
“단장님.”
“어허,괜찮대도. 강현 경,이 검을 치워 주지 않겠나? 내 자네를 방해 할 생각은 없었네. 그러니 말로 하 세나.”
강현은 빙백검의 날을 세워 차가운 검면을 목에 닿게 하고선 무심히 말 했다.
“나머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물러 나십시오.”
“잘 알겠네. 내가 괜한 참견을 한 모양이군. 물러나서 필요할 때 도와 주겠네.”
“아예 쉬시는 게 나을 듯합니다
만.”
“그럴 수야 없지. 여긴 우리 관할 지일세. 여태까지 신의 품으로 돌아 간 사제들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공 락을 완수할 의무가 있네.”
강현으로선 방해만 하지 않으면 아 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최종적으로 메르탱 일행은 탐욕의 방 구석에서 대기하는 걸로 했다.
메르탱을 비롯한 성기사들이 탐욕 의 방 5시 방향의 구석진 곳에 자 리 잡고는 수근거렸다.
성기사들은 강현의 태도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단장님,제아무리 마나 마스터라 지만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모름지기 기사라면 기본적 으로 갖춰야 할 예의가 있잖습니 까.”
“마음을 가라앉히게나. 아픈 자에 게 치료를,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성난 자에게 평온을 주는 게 우리의 사명이잖나. 던전 안이라고 우리의 본분을 잊어선 안 되네.”
“이런 상황에서도 세간의 풍파에 거칠어진 자를 보듬어 주시려 하다 니 대단하십니다.”
“하하,교단의 신자로서 마땅히 가 져야 할 마음가짐일세.”
브리튼 교 성기사들끼리 잡설을 주 고받는 사이 강현은 탐욕의 방을 샅 샅이 살폈다.
보구를 놓아야 할 공간 중앙에는 원형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마법진을 제단 삼아 탐욕 두꺼비에 게 보구를 바치는 구조인 듯하다.
그 외엔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방 안에 있는 거라곤 제단용 마법 진과 탐욕 두꺼비,그리고 탐욕 두 꺼비를 가두고 있는 마법 결계가 전 부였다.
정말로 공략자가 사전에 가지고 있 던 보구를 바쳐야 하나.
강현은 두꺼비가 갇혀 있는 결계로 가 보았다.
“꾸륵. 꾸륵
결계에 다가갈수록 탐욕 두꺼비의 숨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두꺼비 특유의 소리라기보단 화장 실 한 켠에서 한 번씩 들리는 배설 소리 같았다.
게다가 우둘투둘한 피부에선 번들 거리는 점액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 다.
강현은 두꺼비의 역겨운 모습 따윈 제쳐 두고 결계를 유지하는 기둥부 터 살폈다.
특색 하나 없이 시커먼 기둥인가 싶었는데 특이한 점이 발견되었다. 발광이끼의 빛이 닿지 않는 기둥 아래쪽에 로자리오 하나가 붙어 있 었다.
강현은 로자리오를 손가락으로 훑 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감정서를 붙여 보았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로자리오의 정체는 보구였다.
[로즈마리 로자리오]
등급 : A
타입 : 목걸이
특성 : 마나를 불어넣으면 사각형 의 반사 실드를 만들어 내는 보구. 공격에 의해 반사 실드가 부서지면 로자리오까지 파괴된다. 반사 실드 가 부서지지 않게 적당히 사용하고 실드를 회수해야 한다.
두꺼비를 가두고 있는 결계는 로즈 마리 로자리오의 효과에 의해 만들어진 결계였다.
로즈마리 로자리오는 4개의 기둥에 각각 1개씩 부착되어 있어서 총 4 개가 존재했다.
공략 몬스터를 의미 없이 가둬 놓 았을 린 없을 테고,무언가 의미가 있을 거다.
두꺼비를 가두고 있는 A급 보구 4 개.
탐욕의 방 공략 방식에 따르면 총
12점에 해당하는 보구다.
역시 관찰부터 하고 볼 일이군. 공간 안에 제물로 바칠 보구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잖아.
표지판만 보고 움직였다면 애꿎은 보구만 소모했을 테지.
역시 표지판만 보고 함부로 움직일 게 못 되는군.
강현은 빙백검으로 로자리오 주변 을 잘라 내어 로자리오를 빼냈다. 그러자 실드 한쪽 면이 사라지면서 탐욕 두꺼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꾸륵
로자리오를 하나라도 제거하면 두 꺼비가 결계 바깥으로 나올 수 있던 거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각형 실드를 만들어 내는 A급 보구 4개를 이어 붙여서 두꺼비를 가둬 뒀던 거였으니까.
하나,아직은 공격이 불가능했다. 반사 실드는 오로지 결계의 역할만 수행할 뿐,두꺼비에겐 공격무효화 능력이 있었다.
철퍽철퍽.
두꺼비가 될 때마다 점액이 한가득 튀었다.
효과는 모르겠지만 맞아서 좋을 건 없다.
강현은 점액을 피해 옆으로 훌쩍 물러나며 다른 기둥을 향해 달렸다. 두꺼비의 공격을 피하면서 남은 3 개의 로자리오를 회수하는 게 관건 이었다.
탐욕 두꺼비는 입을 쩌억 벌리면서 미끈거리는 헛바닥을 길게 뻗었다. 사정거리는 5미터? 아니 7미터 정 도 되어 보인다.
속도는 쓴살보다 약간 못한 정도 로,피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주의해야 할 건 아까부터 흩뿌리고 있는 점액이다.
떨어진 점액이 바닥에 흡수되지 않 고 방울을 이루어 유지되고 있다. 어느새 유백색의 젤리가 곳곳에 퍼 져 있었다.
간단하게 혀를 피하면서 공격무효 화 능력부터 푸는 게 나았다.
강현이 가볍게 혀를 피하며 두 번 째 로자리오를 취하려던 찰나.
5시 방향 쪽에 있던 메르탱이 배 틀액스를 높이 들며 외쳤다.
“최강현 경이 방법을 찾은 모양이 다! 두꺼비가 방해하지 못하게 유인 해라!”
가만있으라고 말했건만,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굳이 유인해 주지 않아도 피할 수 있거늘 구태여 나서서 참견하고 있 었다.
강현은 메르탱에게서 신경을 끈 채 로 로자리오 회수에 전념했다. 그러는 사이 메르탱 일행은 각자의 무기에 마나를 부여했다.
일반 마나와 다른 하얀색의 빛이 무기에 깃들며 마나 오오라처럼 아 스라이 피어났다.
브리튼 교 내에서 통상적으로 익히 게 되는 신성력을 사용한 것이었다. 한데,탐욕 두꺼비를 유인하던 성기사 가운데 바닥에 떨어진 점액을 밟는 자가 생겨났다.
3명의 성기사가 점액을 밟고 말았 던 것이다.
뭉쳐 있던 점액이 점점 확장하면서 성기사들을 집어삼키려 했다.
마치 슬라임이 먹이를 삼키는 듯한 광경이었다.
“아아아! 누가 도와 줘! 이러다 삼 켜지겠…… 꾸르륵!”
“살려 줘! 단장님! 단장님! 살려 주십시오!”
“윽,몬스터에게서 떨어져 나왔을 뿐인 분비물에 저런 효과가…… 다 들 점액에 갇힌 자들부터 구출해 라!”
점액에 집어삼켜진 성기사들이 숨 이 막혀 고통스러워했다.
메르탱을 비롯한 다른 기사들이 점 액을 베어 내려 해도 공격이 먹혀들 지 않았다.
탐욕 두꺼비의 몸에서 튀어나온 점 액까지도 공격 무효화 능력이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로써 당초의 목적대로 탐 욕 두꺼비를 유인하는 데엔 성공했 다.
탐욕 두꺼비는 혀를 뻗어 점액질에 둘러싸인 성기사들을 차례차례 입 속으로 빨아 당겼다.
메르탱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부하 들이 먹이가 되는 걸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해리! 롭슨! 베이머스!”
“메르탱 단장님,물러나십시오! 놈
이 우리에게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죽은 자들을 위해서라도 단장님만큼은 사셔야 합니다!”
한편 강현은 그사이 기둥을 돌며 4개의 로자리오를 모두 회수했다. 그러곤 성기사들을 쫓고 있는 탐욕 두꺼비를 우회하여 탐욕의 방 중앙 지점으로 향했다.
바닥에 새겨진 원형 마법진 안에
4개의 로자리오를 올리자 마법진에 서 푸른빛이 나오며 로자리오를 감 쌌다.
빛이 사라졌을 땐 4개의 로자리오
역시 제물로 바쳐지고 사라져 있었 다.
탐욕 두꺼비의 주변에 푸른막이 걷 히는 이펙트가 발생하며 공격무효화 능력이 풀린 게 확인되었다.
이제 탐욕 두꺼비를 처리할 차례 다.
그사이를 못 버티고 또 한 명의 성기사가 탐욕 두꺼비의 혀에 휘감 겼다.
메르탱은 강현이 다가오는 걸 보고 도움을 요청했다.
“자네! 얼른 와서 우리 기사들을 도와주겠나!”
성기사를 구하려면 탐욕 두꺼비의 정면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은 점액으로 뒤덮여 있어 이동할 만한 길목이 못되었다. 어차피 중고를 듣지 않고 멋대로 나서서 스스로 화를 자초한 자들이 다.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
강현은 오히려 탐욕 두꺼비가 성기 사를 삼키려고 애쓰는 상황을 이용 하고자 했다.
‘두꺼비의 후방이 비었군.’
강현의 신형이 이곳저곳 흩어져 있 는 점액 사이를 경쾌하게 누비며 탐 욕 두꺼비의 후방에 이르렸다.
벌써 성기사는 상반신이 삼켜진 후 였고 나머지 하반신도 삼켜지는 중 이었다.
강현은 훤히 빈 탐욕 두꺼비의 등 을 향해 빙백검을 찔렀다.
쑤욱!
빙백검의 날이 반질반질한 살갗을 파고들었다.
찌른 반동으로 튀었어야 할 점액들 은 빙백검이 가진 냉기 효과 때문에 얼어붙어 제 역할을 못했다.
그 와중에도 메르탱은 부하를 살리 기 위해 무기마저 던져 버리고 정면 으로 달려들었다.
벌써 성기사의 움직임은 및은 지 오래건만 안간힘을 쓰며 필사적으로 부하를 잡아당겼다.
“조금만 참아! 반드시 꺼내 줄 테 니까!”
“꾸륵! 꾸특!”
한편 탐욕 두꺼비는 등에서 느껴지 는 강한 통증에 더욱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몸에 검이 파고들었건만 입에 넣은 성기사는 죽어도 뱉어 내지 않았다. 과연 탐욕의 방에 자리 잡은 몬스 터랄까.
아픈 와중에도 탐욕은 포기할 수 없는 건가.
탐욕 두꺼비는 검에 찔린 것보다 자기 먹이를 빼앗으려는 게 더 화가 나는지 앞발을 들었다. 그러곤 넓게 벌어진 발바닥으로 메르탱을 후려쳤 다.
과직!
말이 두꺼비지 크기에서 나오는 괴 력은 결코 무시 못할 수준이었다. 현지인이라 실드조차 없는 메르탱 이 막아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탐욕 두꺼비의 앞발이 메르탱을 가 격하면서 갑옷 앞면이 찌그러졌고, 메르탱 본인은 게거품을 물며 몇 미 터나 바닥을 굴러야 했다.
강현은 탐욕 두꺼비가 앞에 정신이 팔린 동안 증폭 스텟 효과를 발동시 켰다.
쿠구구궁!
탐욕 두꺼비에게 가해진 무력이 그 대로 후폭풍이 되어 놈의 몸 안에서 증폭되었다.
여린 내장이 찢겨 나가는 느낌이
검신을 타고 전해져 왔다.
탐욕 두꺼비의 몸뚱이가 쓰러지며 혀를 추욱 내밀기까지는 얼마 걸리 지 않았다.
강현은 탐욕 두꺼비의 몸에서 전리 품 반응이 나오는 걸 보고 손을 대 려다가 멈추었다.
시체가 되었어도 점액 범벅인 건 여전하군.
뭐 탐욕 부리는 사람치고 기름기 없는 사람 없으니 그거랑 비슷한 셈 인가.
적당히 로브 밑단을 찢어 손으로 감싼 후 전리품을 추출해 냈다.
“추출.”
그나마 탐욕 두꺼비가 죽은 후에는
점액이 슬라임처럼 확장하는 일이 없어 무탈하게 전리품을 얻어 낼 수 있었다.
[왕의 다리뼤
등급 : 없음
타입 : 없음
특성 : 던전 공략 물품 중 하나.
[미러 아물렛]
등급 : S
타입 : 목걸이
특성 : 착용자가 저주에 걸릴 경우 해당 저주를 저주 시전자에게 되돌 려준다. 일회용 보구이며 한 번 효 과가 발동하면 사라진다.
저주를 막아 내는 물건은 정말 보 기 힘들기 때문에 소모품임에도 불 구하고 S급 판정을 받고 있었다. 강현은 거울처럼 생긴 미러 아물렛 을 목에 걸며 마나를 갈무리했다. 마지막은 위선의 방이다.
하나만 더 공략하면 던전 공략이 끝난다.
출구는 보통 입구의 반대편에 생기 니까 출구로 나가면 바로 맞은편 구 름다리를 이용할 수 있을 거다. 오지랖 심한 성기사들도 기절한 메 르탱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기에 조 용히 다음 방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강현이 채 9시 방향의 문 으로 가기도 전에 3시 방향 문이 열렸다.
작은 몸집에 걸쳐 쓴 로브,천으로 손과 함께 동여맨 레이피어.
오로지 강현만을 향한 광기 어린 적의.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일이었 다.
요단은 청색 무당벌레가 담긴 유리 병을 떨어뜨린 후 발로 짓밟아 깨뜨 렸다.
쨍그랑!
요단의 분노를 대변하듯 청색 무당 벌레가 형체도 없이 짓이겨졌다. 하찮은 거짓말에 속은 것과 방패막이로 이용당해 굴욕을 겪은 것.
눈이 뒤집혀 쉴 새 없이 쫓아온 결과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었다. 요단은 깨진 유리조각을 잘근잘근 밟으면서 이 갈린 목소리를 내었다.
“최강현,이 자리에 반드시 네놈을 찢어 죽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