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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는 플레이어-114화 (114/381)

114화

“하아하아.”

핏물이 흐르는 입술 사이로 거친 숨결이 터져 나왔다.

검문소 주변에는 드리안 공작가의 병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그 사이 에 요단이 서 있었다.

요단은 입술을 짓이기듯 씹으며 악 바리를 썼다.

“배신한 게 아니라고 했잖아! 날 상대하려 들지 말고 최강현을 쫓으 라고!”

악에 받쳐 외쳐 보지만 검문소 병 사들은 여전히 적의로 가득했다. 정상적인 컨디션이었다면,이들의 목숨을 거두지 않고 제압할 수 있었 을 것이다.

하지만 아공간 보구를 빼앗기고 배 냥을 짊어진 게 컸다.

체력이 빠진 탓에 힘 조절이 안 되어 병사들을 베고 말았고,병사들 을 벤 탓에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버렸다.

게다가 재차 공격을 막아 내다 보 니 기사들까지 베어 버렸고,구름다 리에서 구르는 와중에 발목을 삐어 버려서 도망도 치지 못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점점 수렁 에 빠져들고 있다.

요단으로선 미치고 팔짝 될 노릇이 었다.

‘아무리 날 배신자로 여기고 있다 지만 어째서 최강현을 쫓지 않지?’ 요단은 검문소 한구석에 포위되어 있었다.

구름다리로 가는 길은 훤히 뚫려 있는데 어찌하여 강현을 쫓지 않는 가.

소수의 병력이라도 추격에 나서야 정상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마치 뒤늦게 쫓아가도 된다 는 양 자신부터 처단하려 들고 있 다.

그렇게 무의미한 소모전만 계속되 던 차에 검문소 너머에서 한 무리의 병력이 도착했다.

검문소 기사들 중 몇몇이 병력 선

두에 서 있는 자를 알아보고 소리쳤 다.

“본가에서 지원군이 왔다! 철갑기 마대 부단장 겔로그 경께서 지원군 을 몰고 오셨다!”

겔로그의 이름을 들은 요단이 말라 붙은 핏물을 털며 고개를 들었다. 짧게 밀어 버린 머리카락과 조잡하 게 기른 턱수염,기사 제복에 숄더 아머를 착용한 구린 차림새.

단박에 겔로그임을 알아볼 수 있었 다.

겔로그는 핏내가 그득한 검문소 주 변을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간발의 차로 늦었나.”

포위망 뒤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던

검문소의 기사가 겔로그에게 말을 붙였다.

“겔로그 경,요단 경이 배신했습니 다. 지금 포위 중이니 지원을 부탁 드립니다.”

“요단이 배신을? 최강현은 어찌 되 었느냐?”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걱정 마십시오. 얼마 전,천공섬에서 웨이 브가 발생했는데 공략에 실패하여 저쪽으로 건너가는 길이 던전으로 막혔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나?”

“인접해 있다곤 해도 천공섬은 엄 연히 브리튼 교 자치령이니 말입니 다.”

“그렇다면 이쪽의 꼬맹이 일부터 해결해야겠군.”

겔로그는 포위망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 요단의 앞에 섰다.

엉망진창이 된 요단이 시야에 들어 온 순간 겔로그의 입에서 조롱이 튀 어나왔다.

“오랜만입니다,요단 경. 아,오랜 만이라 해도 겨우 두 달밖에 안 되 는군요. 못 보던 사이에 많이 수척 해지셨습니다?”

요단은 숨을 색색 몰아쉬면서 분노 어린 표정을 지었다.

겔로그의 직급과 실력 모두 요단보 다 아래다.

자신보다 아랫것에게 조롱 받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나마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다. 겔로그에게 성질을 내서 일을 더욱 꼬이게 할 수는 없었다.

요단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걸 겨 우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겔로그,이 꼴로 말하는 것도 우 습지만 난 배신하지 않았어. 여기엔 사정이 있으니까 일단 말을 들어 줘.”

“예예,듣고말고요. 한 번 읊어 보 시죠.”

“크옥,사실 임무 중에 스카텐드가 사망했고 난 최강현에게 포로로 잡 혀 있었어. 놈의 술수에 속아서 어쩔 수 없이 검문소 병사를 벴던 거 야.”

“그러셨군요. 잔꾀 많은 요단 경이 속아 넘어가실 정도면 어지간히 대 단한 술수였나 봅니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

“주변을 보십시오,요단 경. 사정이 있다곤 해도 아군을 이만큼이나 베 면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는 게 사실이지요.”

시신과 피로 엉망이 된 검문소.

그 사이에서 피에 젖어 있는 한 명의 마나 마스터.

이제 막 도착한 겔로그가 보기에도 요단이 배신한 걸로밖에 보이지 않 는다.

겔로그의 비아냥에 요단이 남은 마 나를 쥐어짜며 마나 블레이드를 만 들어 냈다.

“그리 나온다면 너희들을 베어서라 도 여길 벗어나 주겠어. 드리안 공 작님께 직접 내 무고함을 알리러 갈 거야.”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할 수 있다면 말이죠.”

마찬가지로 겔로그도 검을 뽑아 마 나를 부여했다.

검의 표면을 따라 매끄러운 선을 지닌 마나 블레이드가 일어났다. 요단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반 발 자국 물러났다.

“네가 마나 마스터라고?”

본 실력을 드러낸 겔로그가 금방 말투 또한 바꾸었다.

“이제 상관 노릇할 때가 아니란 걸 알았나?”

“겔로그. 다시 한 번 말하…… 아 니,부탁이야. 난 배신한 게 아니다. 믿어 줘.”

겔로그가 마나 마스터가 되었음을 알자마자 말투가 누그러진 요단이었 다.

겔로그는 더할 나위 없는 쾌감을 느꼈다. 한때 자신의 머리 위에 있 던 자가 맥을 못 추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상쾌하기 그지없다.

역시 사람은 무엇이든 이루고 봐야 한다.

그게 경지든,공적이든 말이다.

겔로그는 마나 블레이드를 거두며 검을 도로 검집에 꽂았다.

“한 번만 기회를 주지. 듣자 하니 크레인 공국으로 넘어가는 구름다리 쪽에 던전이 생겨서 길이 막혔다더 군. 지금 당장 최강현을 쫓아가서 그를 척살하는데 성공하면 이번 일 을 재고해 보마.”

그러면서 기력포션과 회복포션을 바닥에 툭 던지는 겔로그였다.

부하 취급도 모자라 마치 은혜를 베푸는 양 말하고 있었다.

요단으로선 굴욕일 수밖에 없지만 오명을 벗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 다.

요단은 바닥에 떨어진 포션을 집어 들며 날선 눈빛을 띠었다.

“그래,모든 건 그놈에게서 시작되 었지. 이리 된 이상 반드시 놈을 죽 여 보이겠어.”

*

구름다리는 제법 높아서 천공섬까 지 다다르는데 반나절 가까이 걸렸 다.

구름으로 이루어진 통로를 빠져나 오자마자 포근한 바람이 얼굴을 감 싼다.

고도차가 높은 것치곤 바람의 세기 가 그리 강하지 않다.

섬 자체에 바람을 억제하는 능력이 라도 있는 걸까.

애당초 고대에 마법으로 들어 올려 진 이후로 계속 떠 있는 섬이라 했 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천공섬 위는 평평한 초원으로 이루 어져 있었다.

브리튼 교의 3대 자치령 중 하나 인 만큼 곳곳에 세워진 신전이 보였 다.

강현은 천공섬 끄트머리에 서서 아 래를 내려다보았다.

‘저게 남대륙과 북대륙을 나누는 세계의 틈이군.’

천공섬 아래로 아득히 멀리 떨어진 지상엔,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두운 틈 사이에선 검은 기운의 격류가 한껏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먼 옛날 마왕이 마계와 인간계를 잇는 차원의 문을 열었다가 부작용 으로 폭발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로 인해 원래는 한 대륙이었던 것이 남북으로 둘로 나뉘어 남대륙, 북대륙으로 불리게 되었다.

틈 속에는 마계의 마나라 불리는 마기와 인간계의 마나가 뒤섞여 폭 주하고 있는 터라 기운의 끄트머리 에 닿기만 해도 몸이 터져 죽어 버 린다.

때문에 대륙 서쪽에서 왕래하려면 천공섬을,대륙 동쪽에서 왕래하려면 해저섬을 이용하는 풍습이 오늘 날처럼 정형화되어 있었다.

강현은 초원을 가로질러 맞은편에 있는 구름다리로 향했다.

신전과 주거지를 지나는데 생각보 다 사람이 적었다.

남대륙과 북대륙의 징검다리 역할 을 하는 곳치곤 사람이 너무 적어.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신전이 있는 구역을 지나 맞은편 구름다리에 다다르자 무덤 형태의 건축물이 보였다.

봉분 같은 무덤이 아닌,석굴 형태 의 거대한 왕릉 같은 무덤이었다. 무덤 앞에는 붉은색 십자가 무늬가 박힌 갑옷을 입은 자들이 경비를 서 고 있었다.

브리튼 교의 성기사들이었다.

강현이 다가가자 성기사들이 마스 크 헬름을 젖히며 얼굴을 드러냈다.

“어떤 볼일로 오셨습니까?”

“크레인 공국으로 넘어가려 합니 다.”

“어라? 아래에서 얘기 못 들으셨습 니까? 크레인 공국으로 넘어가는 구 름다리에 던전이 생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공략이 될 때까지 통제 중입 니다.”

듣자 하니 얼마 전에 웨이브가 생 겼는데 공략에 실패하여 던전이 생 겨났다고 한다.

대부분의 천공섬 주민들은 대피한 지 오래이며,눈앞에 있는 거대 무 덤은 무덤이 아니라 SS랭크 던전이 었다.

강현이 전혀 몰랐다는 둣 침묵하자 성기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리안 공작령 쪽 검문소에도 말 해 뒀는데 전달 받지 못하셨습니 까?”

검문소에서는 전달을 받았으되,강 현이 진로를 틀 걸 염려하여 사전에 정보를 차단한 모양이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때에 들어섰다. 슬슬 요단이란 이름의 조커 카드도 효력이 다했을 터.

추격대를 떼어 놓는 정도야 문제없

지만,불필요한 혹을 달면 시간을 지체하고 만다.

강현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잠겼 다.

‘지금쯤이면 요단이 죽었거나,오 해가 풀렸거나 둘 중 하나는 되었겠 군. 으음,이리된 이상 던전을 뚫고 지나갈 수밖에 없나.’

아무래도 브리튼 교의 사제들이 들 어가서 공략 중인 듯한데 그들이 언 제 뚫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길이 막힌 걸 두고 전전긍긍할 시 간 따윈 없다.

차라리 직접 뚫고 가는 게 낫겠군.

혹여나 추격대가 온다 하더라도 던 전 안이면 뿌리치는 정도가 아니라 섬멸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강현은 성기사들에게 던전에 관련 된 기본 정보를 물었다.

“던전 입장 인원제한은 있습니까?”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공략을 도와드릴까 합니다.”

강현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빙백검 을 꺼내 푸른 비늘의 검신을 내비쳤 다.

얼핏 보면 검신을 내비치는 것 같 지만 거의 발검 준비에 가까운 자세 였다.

혹여나 드리안 공작가와 천공섬 브 리튼 교 신전이 결탁한 상태라면 성 기사들이 습격해 올 가능성이 있었 다.

그때를 대비한 예비 동작이었다.

허나 걱정과 달리 성기사들은 강현 을 알아보곤 화색을 띠었다.

“아! 혹시 빙검의 기사십니까? 소 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SSS랭크 웨 이브를 공략하신 분이 어찌 여기까 지 오셨습니까?”

“볼일이 있어 크레인 공국으로 가 려 합니다.”

“그러셨군요. 저희야 마나 마스터 가 도와준다면 고마울 따름이죠. 입 장인원은 20명 제한이고 저희 쪽 성기사 12명이 들어갔습니다.”

“다른 특징은 없습니까?”

“글쎄요. 저희도 들어갔던 자들이 전멸하기 일쑤여서 제대로 된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나머지는 직접 확인해 보도 록 하겠습니다. 길을 터 주시겠습니 까?”

성기사들이 양옆으로 물러나며 던 전으로 들어가는 길을 내주었다. 강현은 성기사들을 지나쳐 무덤 안 으로 들어갔다.

*

무덤 입구 쪽은 별 특징이 없었는 데 100미터쯤 걸어 들어가니 발광 이끼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한 10분쯤 걸었을까.

5개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갈림길 앞에는 표지판 하나가 서 있었다.

[식욕의 방,색욕의 방,탐욕의 방, 위선의 방,나태의 방. 총 다섯 개 의 방에서 각각 스켈레톤 킹의 유골 을 모아 왕릉의 제단에 올려라. 그 리하면 왕께서 알현을 허락하실지 니.]

5개의 방을 공략해서 얻은 물건으 로 보스를 소환하는 방식이었다. 어느 방이 공략되었고,어느 방이 아직 공략 중인지 나타나질 않으니 일단 아무 곳이나 들어가 보는 게 상책일 듯하다.

강현은 다섯 개의 통로 중 한 곳 을 택하여 들어갔다.

강현이 들어선 통로 입구의 윗부분 에 이어진 방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 다.

[색욕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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