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화
“자네 소식 들었나? 두 공작이 황 궁의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더군.”
“그거야 당연하겠지. 역모를 꾸몄 다는 게 들켰으니 사형당할 게 뻔한 데,누가 죽을 자리로 들어가겠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하의 두 공작 이잖나.”
“후우,골 때리는구만. 벌써 내전은 확정된 분위기고. 북쪽에 소금 팔려 고 준비 중이던 사람들은 올해 장사 종친 셈이군.”
여관 식당 곳곳에서 상인들의 탄식 섞인 소리가 홀러나왔다.
어딜 가나 내전 얘기로 분분했다.
이런 반응들은 당연했다.
제국 내에서 가장 큰 내전을 앞두 고 있으니,어느 누가 소식에 소홀 하겠는가.
상인들은 진행 중이던 종목을 접고 군수물자 확보에 들어갔고,백성들 은 언제든지 피신할 수 있게 짐을 꾸려 두었다.
곳곳이 내전 이야기로 떠들썩한 가 운데 점원이 식당 구석 자리에 음식 을 가져다주었다.
“주문하신 오트밀과 버섯 스프,베 이컨 말이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음식접시가 올라오는 테이블 양옆 으로는 강현과 요단이 마주 앉아 있 었다.
본스마를 떠난 두 사람은 현재 제 국 서쪽의 작은 도시를 지나는 중이 었다.
강현의 모습으로 말할 것 같으면 금발로 염색을 하고 머리에 두건을 둘렀으며,알이 없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게다가 식탁 옆에는 스카텐드의 바 스타드 소드를 기대어 놓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전의 인상 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요단은 여전히 강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거 반드시 들킬 거예요. 스카텐 드랑 전혀 안 닮았어요.”
그렇다.
굳이 금발로 염색을 하고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다니는 건 스카텐드로 위장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세간에는 스카텐드의 사망 소 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두 공작파는 스카텐드와 요단이 함 께 움직이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현이 이처럼 꾸미고 스카 텐드를 연기하기 위해 변장한 것이 었다.
강현은 걸쭉한 버섯 스프에 스푼을 담그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네가 쓸데없는 짓만 하지 않으면 들킬 일 없어.”
스푼을 뜨기 전에 자신이 걸치고 있는 로브의 가슴팍을 툭툭 건드리는 강현이었다.
로브 안주머니에 있는 청색 무당벌 레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요단은 저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얹으며 굳어 버렸다.
자신의 몸에 자리 잡은 적색 무당 벌레란 이름의 폭탄 때문에 절로 식 은땀이 홀렸다.
“며,명심할게요.”
“알고 있으면 됐어. 그보다 몇 가 지 확인해 둘 게 있어. 일단 여기서 구름다리까진 얼마나 걸리지?”
“어디 보자,여기서라면 케이델 공 작령을 지나서……
요단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 현이 쥐고 있던 스푼을 한 손으로 구부러뜨렸다.
“거짓말을 하는 통행증이라면 차라 리 없는 게 낫겠군.”
케이델 공작령을 지나야 한다는 말 을 할 때 노이즈가 섞여 있었다. 개화의 서 1차 특수능력인 간파가 있는 한 강현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를 모르는 요단으로선 점점 더 강현의 끝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흐으으,아직 말이 끝나지도 않았 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알아차렸지? 정말로 인간이 아니라 악마일지도 몰라. 어느 고등 마법사가 소환한 녀석이냐고.’
겁에 질린 요단이 어깨를 움츠렸
다.
강현은 요단에게서 대답이 없는 걸 두고 재차 압박을 가했다.
“대답이 없는 건 동의한다는 건 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사실은 케시어를 지나쳐서 해저동굴로 가는 게 더 빨라요.”
이번에는 요단의 목소리에 노이즈 가 섞이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긴 했으나 본보기로 혼줄을 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 다.
강현이 로브 안쪽에서 청색 무당벌 레가 든 유리병을 꺼냈다. 그러곤 손으로 유리병의 겉면을 감싸듯이 쥐며 힘을 주었다.
뽀드득!
손바닥 피부가 유리병 겉면을 타고 미끄러지며 마찰음을 흘렸다.
힘을 주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위 협용이다.
겁을 먹고 있는 요단에겐 병을 깨 부수려는 것처럼 보이리라.
아니나 다를까,요단이 기겁했다.
“사,사실대로 말했잖아요. 왜 부수 려고 그러세요!”
“거짓말을 하는 놈은 필요 없다고 했다.”
“두 번 다시 거짓말 안 할게요! 하 늘에 걸고 맹세할게요. 진짜요,진짜 라니까요. 으아! 안 돼!”
급한 나머지 요단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갑작스런 소란에 주변 사람들이 강 현과 요단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쳐 다보았다.
너무 이목이 쏠리는 건 좋지 않았 다.
경고는 이쯤만 해 둘까.
강현은 유리병을 도로 로브 안에 넣고 으름장을 놓았다.
“두 번은 없어.”
“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여 기서 드리안 공작에 연락을 넣을 땐 어떤 수단을 취하지?”
“드리안 공작님께 연락이요?”
“보고할 때 어떻게 연락하냐고.”
“상단이나 근처 귀족가의 전서구를 이용해요. 보낼 때는 드리안 공작가 문양이 담긴 봉인을 찍어서 보내고 요.”
요단이 로브 안쪽 주머니에서 드리 안 공작가의 문양이 새겨진 봉인 도 장을 꺼냈다.
강현은 서슴없이 그 도장을 낚아채 며 말을 이었다.
“봉인 도장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아!”
“네가 몰래 드리안 공작에게 서신 을 보내면 곤란하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랬다간 그 쪽이 청색 무당벌레를 터뜨릴 텐데.”
그 외에도 강현은 두 공작파에 속 한 마나 마스터들의 성향 등을 물었 다.
세간에 알려진 것 외에 다른 능력 은 없는지,한때 서로 반목하던 세 력이었으니 특별히 서로 불편해하는 점은 없는지,지금 각자 어디서 어 떤 활동을 하는지 등등…….
요단은 강현이 무엇을 위해 묻는 건지도 모른 채 고분고분 대답했다. 그저 몸을 차갑게 만들 뿐인 청색 무당벌레가 무서워서 말이다.
필요한 정보를 뽑아낸 강현은 식사 를 마친 후 요단과 함께 방으로 돌 아갔다.
특색 없는 2인실 안.
요단은 습관적으로 로브 앞쪽을 목 까지 끌어 올리며 말했다.
“간단하게나마 씻어도 될까요?”
강현은 관심 없는 양 무심하게 대 답했다.
“그러든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강현의 눈치를 보며 욕실로 들어가는 요단이었다. 요단이 씻는 동안 강현은 줄곧 가 지고 다니던 스카텐드의 몽환검을 집어 들었다.
몽환검 손잡이에는 붉은 마법석이 박혀 있었다.
경합할 때마다 상대와 스킬이 뒤바 뀌는 효과를 지닌 광대유령의 소을이다.
당분간 위장을 위해 간접공격 수단 인 몽환검만 쓸 테니 스킬이 바뀌는 효과는 필요 없다.
소켓에 박은 마법석은 재활용이 불 가능하지만 파괴하여 제거하는 건 가능했다.
강현은 빙백검으로 마법석을 부숴 버렸다.
파삭!
이걸로 몽환검 본래의 능력만 활용 한 채로 사용할 수 있을 거다.
‘정말 무식하게 크군. 위장용으로 만 사용하고 정 어쩔 수 없을 땐 빙백검을 쓰는 식으로 가야겠어.’ 마법석 제거를 마친 뒤엔 침실에 비치된 깃펜과 종이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두 공작은 스카텐드와 요단을 파견 하여 강현과 에르델을 죽이라 했다. 헌데 에르델이 무사히 황궁에 복귀 하면 이 두 마나 마스터의 근황에 대해 의심을 품을 터.
한동안 스카텐드로 위장해 있어야 할 강현으로선 아직까지 스카텐드가 살아 있는 것으로 상황을 꾸며 둘 필요가 있었다.
강현은 깃펜을 움직여 가짜 보고서 를 작성해 나갔다.
[벨런이 에르델 황녀에게 붙어 버 려서 어쩔 수 없이 습격을 미뤘습니다. 대신 최강현이 디벨롭을 쫓기 위해 크레인 공국이나 하니온 공국 으로 가려 한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놈의 행적을 파악하려면 디벨롭이 정확히 어느 공국으로 갔는지 알 필 요가 있습니다. 라벤더 상단 케시어 지부에 서신을 넣어 주시면 알아서 습득하여 놈을 추격하겠습니다.]
모처럼 드리안 공작가의 봉인 도장 을 손에 넣었다.
드리안 공작의 눈을 속이는 것을 끝낼 수야 있겠는가.
기회가 될 때 짜낼 수 있는 건 모 조리 짜낸다.
강현은 두 공작의 눈을 속임과 동
시에 디벨롭의 위치까지 캐낼 수 있 도록 서신을 적어 내렸다.
서신 작성이 끝난 후,밀랍을 녹여 봉투를 밀봉하곤 봉인 도장을 꾸욱 눌렀다.
물컹하게 녹은 밀랍이 양옆으로 밀 리면서 도장의 문양이 찍혔다. 강현은 여전히 욕실 안에서 물소리 가 끊기지 않는 걸 확인하곤 바깥으 로 향했다.
‘녀석이 나오기 전에 서신을 붙여 둬야겠군.’
*
요단은 물이 담긴 대야에 비친 자
신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아,이제 어쩐다. 몸에는 이상한 벌레가 자리 잡아 버렸고,거짓말도 안 통해. 그렇다고 실력으로 제압할 수도 없고. 하아,완전히 망했어.”
사람이 적당히 빈틈도 있어야지 너 무 철벽이다.
이대로 강현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공국에 다다르면 어떻게 될까. 필요가 없어지면 바로 죽일지도 몰 라.
그 냉혈한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어.
최강현도 아직은 디벨롭이 두 공국 중 어느 공국에 있는지 몰라.
강현이 헤매는 동안 시간이 흐를
테니 그동안 방법을 찾아내면 돼.
*
여관을 떠난 강현과 요단은 마시장 에 들러서 말을 빌렸다.
아무래도 걸어서 이동하는 것보단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게 빠르다.
두 사람이 떠난 도시에서 케시어까 진 나홀이란 시간이 걸렸다.
케시어는 가이아 대륙에서 가장 보 편적인 종교인 브리튼 교의 총본산 인 도시였다.
도시 중심의 언덕 위엔 아테네 신 전을 3배로 키운 듯한 모양새의 대 신전이 있었고,대신전을 중심으로 부속 건물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강현과 요단은 도시 중심부가 아닌 외곽 쪽 시장으로 갔다.
강현은 마시장에 들러 라벤더 상단 의 상인들에게 말을 반납했다.
“첸체에서 밀린 말입니다. 여기서 반납하려는데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잠시 임대계약서 좀 볼 수 있을까요?”
“여기 있습니다.”
“음,네,확인됐습니다. 이용해 주 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해저동굴로 가는 길에는 산 이 많다.
말이 다치기 쉽기에 오히려 걸림돌 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말을 반납한 것이다.
마시장에서 나오는데 요단이 둥그 적거리며 느린 걸음으로 걷기 시작 했다.
앞서 걷던 강현이 걸음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문제라기보단 궁금한 게 있어서 요.”
“말해 봐.”
“디벨롭이 어느 공국에 있는지 모 르잖아요.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아무 공국이나 가시려고요?”
요단은 케시어에서 희망을 걸기로 결심했다.
케시어에 있는 브리튼 교의 사제들
은 저주 해제와 치료 능력이 뛰어나 다.
어쩌면 몸 안에 있는 적색 무당벌 레를 제거할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고로 정보 수집을 핑계로 강현 은 케시어에 묶어 두려 했다.
강현은 별다른 반응 없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일단 따라와.”
요단은 로브 앞쪽을 목까지 끌어올 리며 강현을 따라갔다.
인파 사이를 걷던 강현이 다다른 곳은 라벤더 상단 케시어 지부였다.
디벨롭의 위치를 물은 건데 뭐 하 러 상단 지부로 오는 거지.
요단은 서신 보관창구로 향하는 강 현을 보며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 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현이 점원에게 서 서신 한 장을 받아서 돌아왔다. 서신에는 드리안 공작가의 봉인이 찍혀 있었다.
드리안 공작가가 최강현에게 서신 을 보내?
아니,그럴 리가 없잖아.
아! 설마 체첸에서 가져간 봉인 도 장을 써서 뭔가 한 거야?
요단의 불안감이 커져 가는 와중에 강현이 서신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 다.
잠시 후,강현의 입에서 요단의 마
지막 희망을 꺾어 버리는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디벨롭이 크레인 공국으로 갔다는 군.”
요단이 울상을 지은 건 두말할 것 도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