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하는 플레이어-110화 (110/381)

110화

에르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버블 헤드인형 마냥 몇 번이나 고

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몇 초 후에야 에르델이 입을 열었

다.

“따로 행동하다니요. 어디로 가시 게요?”

“디벨롭을 잡으러 갈 생각입니다.”

“황궁의회는요? 게다가 조만간 내

전 조짐까지 보이고 있잖아요.”

“황녀님이라면 잘하실 거라 생각합

니다. 황궁에 도착하면 브리니아 공 국에 연락을 넣으십시오. 네베르나 공왕께서 전력으로 도와주실 겁니 다.”

에르델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말문이 막힌 에르델을 대신해서 임 모벨 백작이 언짢은 듯 한 마디 내 뱉었다.

“이 중요한 시기에 혼자 빠진다니 니. 이미 조직은 와해되었지 않나. 자네가 일선에서 이탈해야 할 정도 의 일인가?”

“내기라면 제 부전패로 하셔도 됩 니다.”

“내기 문제가 아닐세. 일에 있어 대와 소를 명확하게 구별하란 뜻이 네.”

“대와 소라 하심은?”

“몰라서 묻나? 이번 내전을 잘 넘 겨서 에르델 이 아이를 밀어주면 여 제 즉위도 꿈이 아닐세. 그럼 자네 는 공국의 기사 정도가 아니라 제국 최고의 검이 될 걸세. 어찌 이 영광 스런 기회를 뒤로하고 그깟 잡졸을 쫓으려 하냐 이 말일세.”

평범하게 생각하면 지금 이 페이스 만 유지해도 출세가 보장되어 있는 일이다.

출세뿐이랴. 명예 또한 만인이 우 러러보는 높이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강현은 표정 변화 하나 없 이 고개를 저었다.

“원래 목적이 디벨롭을 몰아세우는

것이었으니 그걸로 충분합니다.”

“허,이해가 안 되는구먼.”

나이든 자에겐 그저 젊은이의 치기 어린 생각으로만 보였다.

임모벨 백작은 오지랖인 걸 알면서 도 답답함에 강현을 설득하려 했다. 정신을 차린 에르델이 팔을 뻗어 임모벨 백작을 말렸다.

“괜찮아요. 강현 경이 없어도 충분 히 잘할 자신이 있어요.”

“그렇지만 에르델……

“강현 경에겐 여러모로 은혜를 많 이 입었어요. 도와주진 못할망정 방 해는 하면 안 되죠.”

강현은 가벼운 목례로 감사를 표했 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디벨롭을 쫓으려면 무조건 천공섬 을 거쳐 가야 해요. 천공섬은 드리 안 공작가가 독점하고 있고요. 한창 내전 준비 중인 때라 강현 경을 가 만히 두지 않을 건데 어쩌실 거죠?”

“요단을 데려가서 이용하고자 합니 다.”

요단과 함께 가면 드리안 공작가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되면 두 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원래 요단은 황궁으로 데려가 황궁 의회를 칠 증인으로 활용하려 했다. 강현이 자신의 이용에 쓰기 위해 데려가 버리면 유일한 증인이 사라지는 셈이다.

에르델이 그 점을 짚었다.

“강현 경이 요단을 데려가면 이 여

행을 시작한 의미가 없어요. 황궁의 회가 절 암살하려 했다는 증거를 확 보하지 못하면 앞으로 계속 얕보일 거예요.”

“그 부분이라면 벨런을 얻게 된 걸 로 만족해 주십시오.”

“벨런을 설득해 냈나요?”

“제게 큰 빚이 생겼습니다. 황녀님

을 따르라고 말하면 성심성의껏 충 성할 겁니다. 게다가 두 공작파에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기도 하니 부 하로서는 저보다 훨씬 나을 겁니 다.”

“강현 경은 부하라기보다 파트너에 가깝죠.”

강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확실히 그녀와는 이해관계로 얽힌 파트너의 관계지,부하랄 수는 없었 다.

“파트너보다는 충성을 맹세하는 기 사를 곁에 두는 것이 좋을 겁니다.”

어쨌든 벨런을 얻음으로써 진정 마 나 마스터를 부하로 두게 되는 에르 델이 다.

곁에 강현이 있었다고는 하나 부하 가 아닌 이상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 지 않은 전력이다.

그런 면에서 마나 마스터를 부하로 두게 된다는 것은 앞으로의 왕위쟁탈전에 큰 영향을 미칠 터였다.

에르델은 두 번째 문제점을 지적했 다.

“저야 벨런을 얻는 걸로 만족한다 쳐도 강현 씨는 어떻게 하게요? 요 단을 이용한다곤 했지만 배신당할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은데요.”

요단을 이용한다는 것.

그것은 곧 요단과 일행인 것처럼 가장하여 구름다리를 이용하겠다는 뜻이 다.

드리안 공작가의 세력권 안에 들어 선 순간 요단이 배신을 할지도 모른 다.

제국의 마나 마스터 중 으뜸이라지 만,제아무리 강현이라 해도 적 세력 한복판에서 배신을 당한다면 목 숨을 부지하기 어려우리라.

강현은 아까부터 힐끔힐끔 눈치를 보고 있는 요단을 내려다보았다. 에르델이 어떻게 겁을 줬는지는 몰 라도 강현에게 겁을 먹은 것만은 확 실하다.

그렇다면 배신하지 못하게 할 방법 은 많다.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 다.”

“생각해 둔 방법이 있나 보군요.”

“여러 가지 있긴 하지요.”

강현은 무릎을 굽혀 요단과 눈높이

를 맞췄다. 그러곤 가라앉은 눈동자 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요단 입장에선 한 줄기 희망이 생 긴 셈이었다.

황궁으로 끌려가면 꼼짝 없이 황족 암살 미수로 처형당하게 된다. 하지만 강현을 따라 통행증 노릇을 하다 보면 배신할 기회가 올 터. 서로가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 는 가운데 강현과 요단의 동행이 확 정되 었다.

*

강현은 날이 밝자마자 벨런을 찾아 가 사정을 설명했다.

강현 일행이 쉬프섬을 찾아온 이유 와 벨런이 에르델을 따라 황궁으로 가 줬으면 한다는 말을 전했다. 사정을 들은 벨런은 흔쾌히 강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오히려 내 쪽에서 부탁하고 싶을 정도야. 놈들 을 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현역 으로 복귀하겠어.”

드리안 공작이 포푸의 존재를 알면 서도 방치했다는 게 증명되었다. 방치한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필요할 때 이용하기 위해 방치해 둔 게 분명하리라.

그게 어제였음이 불운할 따름이었 다.

에르델의 밑에서 일하면 조만간 내 전이 발발했을 때 드리안 공작을 칠수 있을 테니 벨런으로서도 나쁜 제 안은 아니었다.

이야기가 일단락되면서 강현 일행 에 벨런이 동행하게 되었다.

강현은 에르델과 임모벨 백작,벨 런,그리고 포박한 요단까지 상선에 태워 도로 본스마로 향했다.

강현이 갑판 난간에 기대어 한숨 돌리고 있는데 임모벨 백작이 곁에 다가왔다.

“에르델은 벌써 잠들었네. 간밤에 계속 긴장하느라 피곤했겠지. 벨런 은 벌써부터 호위기사 노릇을 시작 했더군. 기본적으로 좋은 녀석인 것 같더구먼.”

“백작님은 어찌하실 겁니까.”

“에르델을 따라 황궁으로 올라갈 거냐고 묻는 건가?”

“그렇습니다.”

“일선에서 물러난 지 수십 년일세. 이제 와서 할애비가 황궁으로 돌아 가 손녀를 돕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지. 임모벨 영지까지만 호위할 생 각이네.”

“아직 현역이라 해도 무리는 없으 실 것 같습니다만.”

“허허허,포션도 잘 안 먹히는 나 이인데 현역은 무슨.”

임모벨 백작의 웃음소리가 바닷바 람에 묻혀 산산이 흩어진다.

이후에 한동안 두 사람 사이의 대 화가 끊겼다.

하염없이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시 간을 홀려보냈다.

먼저 침묵을 깬 건 임모벨 백작이 었다.

“내기는 내가 부전승이라 했었나.”

“네. 에르델 황녀님께 다가가는 일 은 없을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세계인들은 전부 출세의 망자라 여겼었네. 하지만 자 네를 보니 예외도 존재하긴 하는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 지 않는다는 점만 따지면 똑같지 요.”

“그렇게 따지면 세상만사가 모두 같지 않겠는가. 중요한 건 어떻게 비치느냐지.”

“딱히 정의로 비칠 생각은 없습니 다만.”

“진부한 말도 할 줄 아는군. 신이 아닌 이상 정의를 논하는 건 우스운 일이야. 오지랖의 연장선으로 꺼낸 말이 아닐세. 자꾸만 이야기를 그쪽 으로 끌고 가진 말게. 낮술 먹은 할 아버지 같아지잖나.”

“그럼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 까?”

“남은 사흘 동안 검투술을 가르쳐 주겠네.”

“그토록 싫어하시더니 별일이군 요.”

“자네가 죽으면 찝껍할 것 같아서 말이지. 뭐 별건 아니지만 없는 것보단 나을 걸세. 내기 운운하기에는 에르델이 벌써 넘어가 버린 것 같기 도 하고.”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능글맞은 녀석. 시침 떼기는.”

그토록 강현을 싫어했던 임모벨 백 작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스스로 나서 서 기술을 전수해 주겠다고 한다. 강현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임모벨 백작은 오늘 저녁부터 시작 하기로 하며 난간에서 몸을 떼었다. 그러곤 선실로 향하면서 등 너머로 한 마디 툭 던졌다.

“내기는 없던 걸로 하지. 앞으로도 에르델을 잘 부탁하네.”

“비즈니스 관계로 말이지요.”

“허허허,고놈 참 얌전하게 대답하 는 경우가 없구만. 자네 좋을 대로 하게나.”

*

사흘 뒤,강현 일행을 태운 배가 본스마에 도착했다.

본스마에서 강현 일행은 둘로 나뉘 었다.

황궁 방향으로 향할 에르델,임모 벨 백작,벨런은 마차를 타고 떠났 고,천공섬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 로 향할 강현과 요단은 본스마에 남 았다.

강현은 세 사람을 보내자마자 요단 의 밧줄을 풀어 주었다.

사람을 묶은 채로 끌고 다니면 눈 에 띄니까 미리 풀어 준 것이었다. 계속 상체를 구속하고 있던 밧줄이 풀리면서 요단이 고민에 휩싸였다.

‘도망가려면 지금밖에 없어. 되는 대로 밀치고 인파 속에 섞여들면 도 망칠 수 있을지도.’

요단의 고민을 사전에 차단하듯 강 현이 요단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따라와.”

밧줄로 묶는 것보다 팔목을 잡는 게 자연스러우면서도 구속 효과까지 겸할 수 있다.

로브 아래로 감추어져 있던 유달리

가느다란 팔이 강현의 손에 잡혔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팔목이 으스 러질 듯 아파 왔다.

“아얏.”

요단이 고통을 호소하자 강현의 손 에서 다소 힘이 빠졌다.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의 힘으로 잡 고 있는 건 여전하지만 아까처럼 아 프진 않았다.

손길이 거칠었음을 깨닫고 신경 써 준 걸지도.

요단은 내심 강현에 대한 공포심이 누그러지는 걸 느꼈다.

‘에르델 황녀한테 들은 것만큼 잔 인한 것 같진 않은데. 사실은 그냥 무뚝뚝한 사람인 건가.’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고 여기자마 자 가슴에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냉정함을 되찾자 여기저기 탈출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리 쉽게 밧줄을 풀어 준 것도 그렇고,여기저기 빈틈이 많아 보인 다.

아니,탈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 고 빼앗긴 레이피어까지 되찾아,못 다한 암살을 수행할 수 있을지도 모 른다.

요단이 머릿속으로 갖가지 궁리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은 마법용품 가게 에 이르렸다.

강현은 요단과 함께 계산대 앞까지 가선 점원에게 말을 걸었다.

“음양 무당벌레 한 쌍 있습니까?”

“음양 무당벌레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재고가 있는지 찾아보겠습 니다.”

점원이 재고 확인을 위해 계산대 안쪽의 문으로 들어갔다.

강현의 주문내역을 들은 요단이 고 개를 갸우뚱거렸다.

음양 무당벌레가 뭐지? 들어 본 적 없는 물건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점원이 작은 병 을 들고 나왔다.

병 안에는 적색과 청색의 무당벌레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딱 한 병 남아 있었네요. 가격

강현은 스카텐드에게서 얻은 라벤 더 상단의 어음을 내밀었다.

몇 장의 어음 중 10골드짜리 어음

3장을 계산대에 올리며 무당벌레가 담긴 병을 낚아챘다.

“거스름돈은 필요 없습니다.”

“네? 너무 많이 주셨……

“수고하십시오.”

강현은 점원의 말을 잘라먹으며 요 단을 데리고 나왔다.

강현에게 잡아당겨져 덩달아 끌려 나오는 와중에 요단의 시선이 벌레 담긴 병에 꽂혔다.

무슨 물건이길래 이리도 급하게 사 는 걸까.

30골드라는 액수라면 적어도 B급

이상은 되는 물건일 거다.

강현은 마법가게에서 나오자마자 병을 열고 적색 무당벌레를 꺼냈다. 그러곤 약간 벌어져 있던 요단의 입 에 무당벌레를 쑤셔 넣었다.

“읍읍! 으읍!”

“삼켜.”

“으으읍!”

사람 입에 벌레를 넣다니! 뭐 이런 난폭한 사람이 다 있어!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 만 강현의 무심한 표정이 요단을 움 츠러들게 만들었다.

결국 요단은 입에 고인 침을 삼키 면서 동시에 적색 무당벌레도 함께 삼키고 말았다.

무당벌레가 목구멍으로 넘어간 걸 확인한 강현이 말했다.

“적색 무당벌레는 사람 몸에 들어 가면 폐 안으로 이동해서 자리를 잡 지. 그 상태에서 청색 무당벌레를 터뜨리면 적색 무당벌레가 아주 큰 폭발을 일으켜. 이만하면 무슨 말인 지 알아들었겠지?”

요단은 삽시간에 안색이 시퍼렇게 물들었다.

지금 도망치면 폭사시켜 버린다고 한 거 맞지?

지금껏 조금 편하게 대해 줘서 허 술할 거라 생각했건만…….

‘이 사람은 악마다,악마! 으으 내 목숨이 악마의 손에 넘어가다니!’

요단은 바들바들 떨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순종했다.

“아,알겠으니까……

“잘 안 들리는군.”

“히익,도,도망 안 칠게요. 그러니 까 폭사시키지 말아 주세요.”

“통행증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 나?”

“통행증이든 여권이든 뭐든지 하겠 습니다.”

벌써 손을 놓았지만 요단은 절대 도망치지 않았다.

도망치는 그 순간 죽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악마의 말에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다.

허나 요단이 모르는 게 있었다.

원격으로 사람을 터뜨릴 수 있는 편리한 물건이 마법물품 가게에 떡 하니 구비되어 있을 리 없잖은가. 음양 무당벌레라는 건 그저 적색 무당벌레를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 고,청색 무당벌레를 먹으면 몸이 차가워지는 c급 영약에 불과했다. 가격 또한 3골드밖에 안 한다. 실상은 강현이 일부러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강제로 먹이는 행동을 취 함으로서 속인 것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요단은 몸이 따 뜻해지는 게 폭사의 징조 중 하나라 착각하고 연신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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